[남기엽의 Hotel Notes]  제주 능선의 풍광에 접하고 싶을 때, 제주 롯데아트빌라스

2022.02.17 08:54:11

 

선택과 집중의 어려움


책을 읽을 때나 음악 들을 때 괴로운 것은 강박이다. 서문부터 순서대로 읽는 것은 지루하고 읽고 싶은 부분은 눈길을 잡아끄는 소제목 몇 단락이다. 음악도 그렇다. 빠른 1악장, 통통 튀는 3악장이 내가 좋아하는 소나타인데 지루한 2악장은 날 괴롭게 한다.

 

 

이어령 작가는 책을 읽을 때 좋아하는 챕터만 골라 읽었다. 밴드 뮤즈의 보컬 메튜 벨라미도 피아니스트 리스트의 소품 몇만 골라 들었다. 쇼팽 에튀드를 들을 때 op.10~1부터 12번까지 다 들어야 할 필요 없지 않은가.

 

 

물론 책의 저자는 논리와 맥락을 고려해 챕터를 배치한다. 작곡가도 마찬가지. 그 의도를 드러내기 위한 서사가 템포와 조성을 입고 차례로 기다린다. 그래도 우리가 고등교육을 연구하는 학자가 아닌 이상 강박에 젖어 독서와 감상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끌리는 것부터 읽고, 듣자. 뭐 연구자도 아닌데 전체의 구조, 체계정합성에 천착할 필요 없다. 그리고 설령 연구할 의지가 나중에 생기면 그때 순서를 고려해도 전혀 늦지 않다.
 

 

어느 연주자가 파가니니 랩소디 카덴차만 앵콜로 했던 것처럼 클래식 공연 앵콜 역시 꼭 완곡을 다 해야 하나. 그러니 힘 빠지고 지치니까 느린 소품 하나 치고 들어가는 클리셰를 요즘처럼 폭풍치는 콘텐츠 세상에서 아직 고수하는 것이다. 이미 1시간짜리 영상도 지겨워 5분, 1분 영상으로 분절돼 소비되는 시대에서 버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소위 ‘5성급 호텔’을 보면 애매한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수영장, 헬스장을 반드시 넣어야 하다 보니 억지로 우겨넣은 듯한 느낌을 받는 곳이 꽤 된다. 그건 이해가 가는데 최근 기존 호텔을 리모델링해 재개관한제주 서귀포 어느 호텔은 런닝머신에 ‘아이팟(에어팟이 아니다)’ 연결 젠더가 있었다. 런닝할 때마다 소리가 났고 움직일 때마다 요동치는 헬스기구의 진동은 내 안전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작은 결함은 CS에 대한 호텔의 애티튜드를 보게 한다. 그냥 포기해도 될 텐데. 그런 관점에서, 오늘 다루는 곳은 깔끔하게 부대시설을 포기하고 방 안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경험을 제공하는 어느 호텔(리조트)에 관한 이야기다.

 

풍광을 품은 여유와 새소리가 공존하는 곳


제주도에 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도심과는 다른 자연환경과의 조우다. 누군가는 시끄러운 파티클럽 음악에, 중국인을 겨냥한 화려한 쇼핑시설, 그리고 북적대는 맛집과 시원한 바다가 목적이지만 또 누군가는 조용한 휴식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제주 롯데아트빌라스(이하 제주 아트빌라스)는 유명 건축가의 서로 다른 테마에 따라 설계된 독채빌라를 제공한다. 빌라마다 주방가전과 조리기구 일체가 있고, 야외 자쿠지가 있다. 빌라 위치에 따라 바다가 보이기도 한다.

 

 

처음 보는 독채빌라는 그 외관부터가 이채롭다. 모던한 색감과 ‘움집’을 떠올리게 하는 ‘켄고쿠마’는 입실 전부터 설렘을 예비한다. 각방은 편안한 침구와 TV로 구성돼 있고 특히 층고가 굉장히 높아 어느 호텔도 제공할 수 없는 개방감을 선물한다.

 

야외 자쿠지는 마당에 나가면 있는데 요즘 날씨는 춥지만 물이 따뜻하므로 전기장판 틀고 에어컨을 켜는 특이한 취향을 가진 이라면 즐길 수밖에 없다. 밖에 사람들이 지나다녀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지나다니지 않으므로 큰 문제는 아니다.


 

 

특히 일부 빌라의 경우 안에 히노키 욕조가 둘이나 있는데 가족단위로 많이 이용하는 투숙객들이 애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복층으로 구성돼 있는 빌라 중 1층에는 ‘다도룸’이 있었는데 언제든 차분하게 차를 음미할 공간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휴식을 풍성하게 해준다.


부대시설은 수영장, 노래방, 헬스장 등이 있는데 수영장은 일부 기간만 운영한다. 노래방은 예약이 쉽지 않으며 헬스장엔 사람이 없었는데 기구도 거의 없다. 그런데 빌라 안에서의 경험이 부대시설에 대한 빌라 안에서의 경험만으로 충분해서 부대시설의 부족함이 큰 결점은 아니다. 특히 ‘라운지’ 같은 무인 카페에는 투숙객이 마실 수 있는 커피 및 신문이 비치돼 있고 저 멀리 바다를 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어 잘만 활용하면 꽤 좋은 휴식처가 된다.


 

 

룸서비스 역시 빠르지는 않지만 실망스럽지 않은 퀄리티로 정성스럽게 제공된다. 조식 역시 빌라에서 먹을 수 있었는데, 호텔이 아닌 제주 아트빌라스에서는 방 안에서 풍광과 함께 먹기를 권한다.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지점 속 운이 좋으면 불그스레 선명한 몸체를 자랑하는 호반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룸컨디션’의 좋은 선례


이로써 압도적인 룸컨디션 하나만으로 고객에게 만족을 제공하는 제주 아트빌라스에 관해 알아봤다. 나는 사실 책을 처음부터 다 읽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


 

 

그런데 나는 전술한 이어령 작가의 문장을 읽고 비로소 처음부터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났다. 나는 작곡가의 해석이 궁금해 작곡가의 전기, 평전, 레코드까지 ‘내돈내산’으로 나름 적지 않게 분석하고 생각하고 심지어 연주하며 경험했다. 그런 나 같은 청중이 지금에서야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연주자가 생각하는 작곡가의 의도가 아니다. 연주자가 지금 갖는 삶, 그 순간순간을 부대끼며 표현하는 그 느낌이다.


 

나는 제주 아트빌라스가 소개하는 유명 건축거장의 의도니, 콘셉트 등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들이 구현한 제주능선에 걸린 채광과 경험에 설득됐다. 선택과 집중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