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의 명가의 와인] 칠레의 다가스(DAGAZ) 와인

2022.06.17 09:00:38

- 본 글의 외국어 표기는 기고자의 표기에 따릅니다.

 

남태평양의 서늘한 바닷가 포도밭을 찾아서


포도나무는 기후에 대단히 민감한 과수다. 포도가 충분히 익을 수 있는 온화한 기온과 충분한 당분을 생산할 수 있는 일조량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고온 건조한 지중해성 타입의 기후가 최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치면 고급 와인을 만들기에는 적절치 못한 포도가 생산되기도 한다. 높은 기온이 포도를 익게 하나, 지나치면 산미가 급격히 감소하며 생동감이 부족한, 균형감을 상실한 와인이 된다. 풍부한 일조량이 당분을 축적시켜 안정된 힘을 가진 알코올을 발생시키지만 이 또한 지나치면 포도 껍질을 태워 미감의 훼손을 가져 올 수 있고, 알코올이 과잉돼 뜨거운 느낌의 와인이 만들어진다.

 

칠레의 중앙부에 있는 센트럴 밸리 와인 생산 구역은 대부분 지중해성 기후의 혜택을 입어 품질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양질의 포도가 탄생되는 지역이다. 마이포 밸리, 카차포알 밸리, 콜차과 밸리 등이 그곳들이며, 이곳에서 양질의 와인이 대량 생산돼 칠레 와인의 가성비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최근 칠레에서는 태평양 해변가 쪽의 포도밭을 집중적으로 개척하고 있다. 완벽하다고 하는 지중해성 기후에서도 2% 부족한 ‘서늘함 혜택(Cool climate effect)’을 이곳에서 추구한다.

 

칠레의 서쪽 남태평양 바닷물은 남극을 거쳐 순환해 북상하는 훔볼트(Humbolt Cold Current) 해류로 온도가 매우 낮은 한류다. 태평양의 찬 기운이 거칠고 차가운 해풍과 서늘한 안개의 형태로 칠레의 해변을 엄습한다. 이 서늘함의 효과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저문 밤부터 이튿날 새벽에 걸쳐 약 8시간 동안 작동하며 폭염에 지친 포도나무의 기력을 회복시켜주고, 포도 열매 안의 산의 소비를 막아준다. 그 결과, 폭발적인 과일향과 당미, 알코올과 함께 신선한 산미가 살아있는 생동감있는 와인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기적의 테루아가 드디어 발견됐다. 유명한 콜차과 밸리의 가장 아랫쪽를 찾아낸 한 탐험 양조자의 입지전적 이야기가 이 달의 와인 명가 주제다.    

 

 

포도밭 탐험가 Marco Puyo


비냐 다가스(Viña DAGAZ)의 설립 파트너이자 와인메이커인 마르코 푸요는 1994년부터 콜차과 밸리의 다양한 테루아를 탐험하기 시작했고, 밸리의 다양한 지역에서 그가 일하던 여러 양조장의 와인을 생산해왔다. 그러던 중, 2005년 바닷가쪽 푸만케(Pumanque) 인근에서 매우 특별한 테루아를 발견했다.

 

2006년 마르코는 파트너들과 함께 이곳에 40여 ha의 포도밭을 조성했다. 2009년부터는 시범적으로 한 두 오크통 분량의 와인을 소량 생산했다. 이로써 그는 특정 자연 환경 구역의 특징을 담은 독자적인 콘셉트의 와인을 처음으로 만들 수 있었다. 2015년에는 코르크 마개 생산업자인 파트리시오 고메스 바리스(Patricio Gomez-Barris)와 함께 비냐 다가스 양조장을 설립했다. 마르꼬가 선정한 양조장 이름인 ‘DAGAZ’라는 단어는 고대 북유럽 켈트족의 룬 문자로 ‘새로운 길의 시작’을 의미한다니, 그가 새로 시작하는 파트너십 와이너리의 창립과도 연관된 뜻깊은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DAGAZ’는 문자 그대로는 ‘낮(Day)’를 뜻하며 변화와 시작, 낮과 밤의 균형과 조화를 의미, 상형문자로서 무한궤도의 상징인 ‘ ∞’의 형상을 띠고 있다. 붉은 색상의 ‘DAGAZ’ 기호는 와이너리의 상징이 돼 와인 레이블과 와이너리 시설 도처에 장식돼 있다. 


와인메이커 Marco Puyo는 늘 새로운 기획을 꿈꾸는 도전가이자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소유자다. 그는 탐구적이며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생산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칠레의 거의 모든 와인 생산 지역에서 26년간을 일했기 때문에 각 테루아의 세세한 특성을 잘 알고 있다. 해외에서는 프랑스 보르도와 샹파뉴, 부르고뉴 지방에서, 그리고 미국의 나파 밸리와 아르헨티나의 우코 밸리에서 양조 경험을 쌓았다. 이제 그는 이러한 다채로운 경험을 재산으로 자기 와인을 만드는데 열정을 쏟고 있다.

 

1966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마르코는 1992년 칠레 가톨릭 농대(Pontificia Universidad Católica of Chile)를 졸업하고 와인메이커가 됐다. 그 후, 프랑스 보르도의 와인 명가 라피트 로스칠드(Domaines Barons de Rothschild)가 칠레에서의 와인 생산을 위해 설립한 합작법인 비냐 로스 바스코스(Viña Los Vascos)의 수석 와인메이커로서 근무하게 됐다. 아콩카과 밸리의 명가 에라쑤리쓰(Errazuriz) 근무를 거쳐, 2018년 본인의 회사인 다가스에 집중하기 직전까지는 칠레에서 두 번째로 큰 와인 생산 기업인 산페드로 타라파카(Viña San Pedro Tarapacá)의 와인 생산 감독을 역임했다.

 

또한 대외 활동도 활발히 전개, 2004년~2005년 사이에는 칠레 와인 생산자 협회의 이사직을 맡아 까르므네르 품종을 홍보하는 콘테스트 ‘Carmenere al Mundo’를 만드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현재 마르꼬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딸 둘을 둔 다복한 가정의 행복한 가장으로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칠레의 새로운 엘도라도
Colchagua–Costa PUMANQUE


비냐 다가스가 위치한 푸만케 구역은 콜차과 밸리의 하부 와인 생산 구획인 ‘Colchagua–Costa)DO’로, 가장 바닷가 쪽에 위치해 있다. 푸만케를 포함한 4개 마을(로롤 Lolol, 파레도네스 Paredones, 리투에체 Litueche)로 구성됐다. 이곳에 조성된 다가스 양조장의 푸만케 밭은 태평양으로부터 34km 떨어진 해발 240m에 있다. 산티아고 남서쪽 230km, 산타크루스 서쪽 46km 지점이다. 푸만케 밭은 토양은 화강암으로, 지표면 깊숙한 곳의 극심한 열과 높은 압력 조건 하에서 형성된 결정 화성암이다.

 

이 성분은 석영과 운모와 같은 다른 성분들과 융합하며 지표면 쪽으로 올라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암석들 중 일부는 침식돼 화강암 토양이 생겨난 것이다. 석영석이 특별히 풍부한 화강암성 토질로서 깊고 배수가 잘 돼 뿌리의 성장에 최적이다. 이런 종류의 토양은 포도주에 좋은 산도를 줄 뿐만 아니라 우아한 미네랄 특성을 부여한다.

 

“이로써 우리는 푸만케의 포도를 가지고, 프랑스의 꼬뜨 뒤 론(Cotes-du-Rhone), 스페인의 갈리시아(Galicia)와 라 리오하(La Rioja)의 화강암 토양에서 재배되는 포도들과 동등한 수준의 세계적인 와인을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라고 마르꼬는 기쁨에 차서 설명했다. 


차가운 밤, 해양 안개, 석영질 화강암 토양으로 구성된 다가스 밭의 자연 환경은 매우 특별하며, 콜차과 밸리의 다른 구역과도 차별화되고 있다. 하루 종일 다양한 날씨의 혜택을 받는 구역과 마르코가 선택한 품종을 재배하고 신선함과 미네랄을 와인에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토양이 있는 곳이다. 그의 방대한 경험으로부터 마르코는 테루아의 중요성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이 그가 푸만케에 프로젝트를 고정시킨 이유다.

 

굽이치는 구릉의 경사지에 조성된 푸만케 단일 포도밭은 1m×1.9m 간격으로 식재해 총 5263주/ha의 식재 밀도를 가지고 있다. 좁게 심어진 포도나무는 옆 나무와의 경쟁을 피해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되고, 화강암 토질에서 풍부한 미네랄 성분을 섭취하게 된다. 까베르네 소비뇽 20ha, 시라 11ha, 까르므네르 6ha, 쁘띠 베르도 2ha가 식재됐다. 2016년 첫 빈티지로 그들은 ‘DAGAZ Tierras de Pumanque’라는 이름의 와인을 생산했는데, 푸만케 구역에 식재된 4가지 품종을 모두 블렌딩해 만들었다.

 

 

푸만케 구역 테루아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린 다가스의 대표 와인인 띠에라스 데 푸만케 와인은 연간 3500여 병 소량 생산되기에, 안타깝게도 국내에 수입되지는 못하고 있다. 칠레에서는 매우 드물게도 생쏘(Cinsault) 품종으로 만드는 이타티노(Itatino) 와인이 4500여 병 생산되는데, 이 역시 국내에 미수입됐다. 다가스 양조장은 장래에 칠레 남부 마울레 밸리 지역에서 꺄리냥(Carignan) 품종 와인을 생산할 계획을 갖고 있다. 양조장에서 소량 생산되는 와인들은 현재 12개국에 판매되고 있다.

 

이 12개국 안에 한국이 들어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마르코는 또한 ‘집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에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레드 와인만 생산하고 있다. 국내에는 그중 3종이 수입된다. 다가스 양조장의 와인은 양조 과정에서 화학제품의 사용을 최소화하며, 동물성 재료와 그 부산물을 사용하지 않아 비건 콘셉트에 적합하다. 국내 수입되는 와인의 일부에는 뒷 레이블에 Vegan 인증 마크가 붙어 있다. 새로운 테루아가 전해 주는 칠레 레드와인의 새로운 지평, 다가스를 만나 보자.    

 

까베르네 소비뇽 Cabernet Sauvignon

 

 

칠레 까베르네 소비뇽은 품종 고유 특성과 칠레의 테루아가 기묘하게 결합돼 가장 특징적인 향과 미감을 형성한다. 안 그래도 야생적인 개성이 강한 까베르네의 DNA에 찬 기운의 영향과 광물성 토질로 인해 더욱 옹골찬 까베르네 소비뇽이 탄생된다. 그래서 와인 초심자라 할지라도 한 달 만 칠레 까베르네를 마셔보면 곧바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다가스의 까베르네는 다소 그 뉘앙스를 살짝 달리했다. 필자가 시음한 2019년 Dagaz, Cabernet Sauvignon은 이 회사의 기본급 와인이다.

 

까베르네 소비뇽 100% 단품종 와인이며, 3월 3주차에 잘 익은 포도송이를 수확해, 8℃의 저온에 4일간 사전 침용시킨 후, 3주간의 발효와 이어진 10일간의 추가 침용 과정을 거친다. 발효를 끝낸 와인은 프랑스산 중고 오크통에서 10개월간 숙성 기간을 거친다. 전형적인 까베르네 소비뇽 색상으로, 진한 루비 칼라를 보이며, 까시스, 익은 자두, 블랙 체리 등 베리향이 풍성하고, 바닐라 오크 뉘앙스가 세련됐다. 진하게 다가오는 첫 맛의 감흥이 향긋하며, 매끄러운 실크 같은 과하지 않은 절제된 타닌감이 멋지다.

 

체리 파이 풍미를 동반한 14.5%vol의 힘찬 알코올을 갖고 있으며, 마치 캘리포니아의 오크빌 Oakville AVA 까베르네 소비뇽을 마시는 세련미를 느낄 수 있다. 연 2만 병 정도 생산되는데, 기본급 와인이며 가격도 저렴한데도 불구하고, 병이 묵직하고 병 바닥의 움풀 패인 부분이 상당히 깊숙하게 들어간 위용을 자랑해 깜짝 놀랐다. 영국의 최고 권위자 팀 앳킨 MW로부터 점수 94점, 제임스 서클링 점수 90점을 받은 핵 가성비 와인이다.

 Price 4만 원대

 

이스테이트, 까베르네 소비뇽  Estate, Cabernet Sauvignon

 

 

와인 레이블에 ‘Estate’라는 표현이 붙는 경우는 두 가지인데, 각각 의미가 약간 다르다. 첫째는 자사 소유 밭의 포도로 생산했다는 의미로 표현한 경우다. 다른 농부가 생산한 포도를 구입해 만든 와인이 아니라는 의미인데, 자사 보도가 타사 포도보다 꼭 더 좋다는 보장은 없지만, 포도 재배의 첫 순간부터 수확까지 일관된 관리를 받았다는 점에서 품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해당 농장의 개성이 담겨 있을 수 있다. 둘째는 기본급 보다 나은 상위의 또 다른 상품의 ‘뀌베(Cuvée)브랜드’로서 사용한 경우다.

 

이 경우, 수확한 포도 중에서 상품의 포도 만을 모아서 고급스럽게 만든 와인에 사용하곤 한다. 다가스의 ‘이스테이트’는 자사 푸만케 지역 밭에서 수확된 까베르네 소비뇽을 엄선해 생산된 와인이다. 필자가 시음한 2018년 빈티지는 까베르네 소비뇽 100% 단품종이며, 3월 3주차에 잘 익은 포도 송이를 수확해, 8℃의 저온에 6일간 사전 침용시킨 후, 3주간의 발효와 이어진 10일간의 추가 침용 과정을 거친다. 발효를 끝낸 와인은 프랑스산 중고 오크통에서 14개월간의 숙성 기간을 보낸다. 글라스 중앙 부분의 짙은 루비 색상과 가장자리 부분의 흑갈색이 부드러운 대조를 이루며, 숙성 초기의 연륜을 보여준다. 농익은 자두향과 크랜베리의 산미, 까시스의 야생성이 조화를 이루는 매혹적인 향이 잘 다듬어져 글라스를 메우고 있다.

 

마지막 피날레 부분에는 바닐라와 토스트, 초콜릿 향이 동방의 신비스런 향나무 풍미와 함께 포도의 과일향과 융합돼 전달된다. 지금도 맛있지만, 중기 숙성 능력을 갖춰 10년 정도까지 보관 가능할 듯 보인다. 역시 중후한 무게를 가진 특별한 병에, 레이블은 포도밭 테루아를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두툼한 종이에 표현, 고급스러움을 더해 준다. 남미의 대표적 와인 품평회 ‘Des Corchados 2020’에서 94점을 획득했다.  

Price 7만 원대

 

콜위, 까베르네 소비뇽 Kolwe Vineyard, Cabernet Sauvignon 

 

남태평양의 찬바람의 영향을 받는 푸만케의 다가스 농장 Kolwe 포도밭은 2004년에 식재돼 올해로 18주년을 맞는다. 필자가 시음한 콜위 뀌베의 빈티지는 2018이었으니, 14년생 나무의 포도였다. 한창 힘차게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다. 


4월 초에 수확한 포도는 8℃의 저온 스테인레스 탱크에서 7일간 저온 침용(Cold Sock) 과정을 거쳐 포도 껍질의 풍미를 주스에 한껏 빼 담았다. 발효를 마친 와인은 1차적으로 6개월간 프랑스산 중고 오크통에서 숙성시켰으며, 그 다음 내부를 태우지 않은 2500L들이 대용량 오크조에서 12개월간 숙성시켰다. 마르꼬는 이를 통해 까베르네 소비뇽 포도의 과일 풍미와 화강암성 토질의 미네랄, 해안가의 신선미를 해치지 않을 정도의 약한 오크 뉘앙스만을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콜위 와인은 앞선 두 와인에 비해, 산미, 당미, 타닌과 알코올 상호간의 균형감이 매우 뛰어났다.

 

짙은 흑적색 루비 색상에 블랙커런트, 유칼립투스, 민트 초콜릿, 정향과 아니스향이 특징적으로 전면에 드러나며, 시간이 흐르면서 황토 흙내음과 허브, 감초와 바닐라, 토스트 향이 예민하게 드러난다. 입에서는 맛깔 나는 산미에 생동감과 에너지가 넘친다. 입안을 코팅시키듯 진한 집중도가 좋으며, 화강암성 토질에서 유래한 미네랄 표현은 마치 보르도 메독 레드 와인을 접하는 듯하다. 우아한 부께의 복합미, 부드러운 질감, 잘 짜여진 구조감, 빼어난 개성이 돋보이는 수준급 레드와인이다.

 

Tim Atkin 점수, DesCorchados 점수, LA Cav 점수에서 94~96점을 받았으며, 2022 Decanter Wines of the Year에서는 37위에 기록됐다. 함께 행복을 누릴 음식으로는 포르치니 버섯, 발사믹 포트 소스를 곁들은 티본 스테이크를 추천한다.  

Price 12만 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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