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엽 변호사의 Labor Law Note #2] 장시간 서있어야 하는 호텔리어의 직업병, 산재 처리될까?

2022.10.21 09:00:34

 

친절해야만 하는 직업의 애로


누군가에게 친절하기란 쉽다. 그런데 친절해야만 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비스업은 힘들다. 직업장에서 나의 애티튜드와 레퍼런스를 일치시켜야 하기 때문. 그럼에도 이게 업무에 도움이 된다. 의뢰인이 아무리 했던 질문을 또 하고, 쓸데없는 걱정에 의한 가설에 근거한 염려스러운 시나리오를 많이 말해도, 당사자가 처한 상황이 돼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변호사는 듣는 직업이다. 의뢰인과의 관계에서는.


법정에선, 말하는 직업이다. 구술이든, 서면이든 침묵하지 않는다. 초년차 때부터 지금까지 법정의 무거운 침묵을 깨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판 절차에 의견을 얘기하는 일은 긴장되지만 그래도 항상 했다. 법정에서 좀 더 말할 걸 후회했던 적은 있어도 말했던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내(대리인)가 하는 말이 곧 당사자(본인)의 말이 되는 것, 이건 생각보다 압박이 크다.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을 클라이언트를 만나거나 법정에 가기보단 홀로 방에 앉아 서면을 쓰는 변호사와 달리, 호텔리어는 대부분의 시간을 고객을 만나는 데 쓴다. 그래서 친절해야만 하는 시간이 더 길다. 용모도 단정해야 하고, 서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체력도 약해지고 여기에 정신적 데미지를 가하는 이벤트라도 있는 날이면 몸 상태가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온다. 출퇴근길에 정신을 잃기도 하고, 다리에 피가 몰려 걷기조차 힘들고.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호텔리어 스스로 감당해야 할까?

 

 

출퇴근하다 다치면 업무상 재해가 될까?


어느 호텔리어 A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A는 객실관리부 소속의 룸메이드로 객실 청소 및 침구 교체, 바닥 청소를 담당한다. 꼼꼼하게 객실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허리를 굽혀 침대 밑을 살피고 미끄러운 화장실에서 넘어지기도 여러 번, 몸이 성한 곳이 없다. 손님이 몰리는 가변적인 상황에도 추가인력 배치가 어려워 고된 노동을 소화하기도 한다. 육체적으로 누적된 피로 때문에 잠도 얼마 못 잔 A. 하지만 사명감으로 다음날 출근길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업무상 재해에 해당할까?


당연히 해당한다. 다음 법을 보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 ①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ㆍ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3. 출퇴근 재해

가.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
나. 그밖에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

 

과거에는 사업주가 제공한 통근버스나 교통수단을 이용하다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에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지만 2018년 법이 개정돼 걸어서 출근하든, 자동차를 타든, 대중교통을 타든 모두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럼 좀 위험해 보이는 ‘할리데이비슨’을 타다가 사고가 난 경우라면? 물론 인정된다. 그럼 정말 위험해 보이는 전동킥보드를 타다가 출퇴근한 경우에는? 좋은 질문인데, 이 경우도 대법원은 업무상재해로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에 포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 퇴근길에 잠깐 친구들과 클럽에 갔다가 집에 가는 길에 사고 난 경우라면 어떨까? 퇴근길에 쇼핑을 하러 쇼핑몰에 들렀다면? 출근길 새벽 수영 레슨을 받으러 가는 길에 사고가 났다면? 보호되지 않는다. 이런 것까지 보호가 된다면 출퇴근 하는 날 일어난 사고는 산재가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통상의 출퇴근 재해 판단 기준에서 ‘출퇴근 행위 중 일탈 또는 중단이 없을 것’이 요건인데, 위 행위들은 모두 일탈 또는 중단에 해당한다.

 

 

 

점심시간에 발생한 사고도 업무상 재해가 될까?


된다. 사안이 궁금하면, 항상 법조문을 보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 ① 근로자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로 부상ㆍ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업무상 사고

가.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따른 업무나 그에 따르는 행위를 하던 중 발생한 사고
나. 사업주가 제공한 시설물 등을 이용하던 중 그 시설물 등의 결함이나 관리소홀로 발생한 사고
다. 삭제 

라. 사업주가 주관하거나 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행사나 행사준비 중에 발생한 사고
마. 휴게시간 중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행위로 발생한 사고
바. 그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

 

회사 인근에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면 인정된다. 만약 얼마 안 되는 점심시간 동안 기분전환을 위해 좀 먼 곳의 레스토랑에 가서 먹고 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면? 그래도 가능하다. 정상적인 식사에 수반되는 행위(이동)이고, 휴게시간(점심시간) 내에 식사를 한 뒤 사업장으로 복귀하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그럼 점심시간에 골프레슨을 받으러 갔다가 오는 길에 사고가 났다면? 우리 법은, 노동에 필요한 행위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두고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두고 있다. 출퇴근을 해야, 밥을 먹어야 일할 수 있다. 항상 일하는 데 필요한지 여부를 기준으로 생각하자. 골프 레슨을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는가? 답은 쉽게 나온다.


오래 구두 신고 서 있어야 하는 프런트 직원이 걸린 하지정맥류도 산업재해가 될까? 하지정맥류,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근골격계 질환은 산업재해로 신청이 가장 많이 되는 질병 중 하나인데, 사실 이 질환들은 일상생활에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공부를 하거나, 그냥 잘못된 자세로 앉아있거나, 헬스를 하다가도 많이 발생할 수 있기에 그 경계가 모호하다. 보통 공단에서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는 기준에 따르면 자세, 힘, 전신진동, 중량의 정도, 반복성 등이 고려된다. 예를 들어 무거운 물건을 반복적으로 구부려서 드는 일을 많이 했다면 인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단순히 오래 서 있는다고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 경우 의료전문가의 소견을 받아야 하는데 담당의사 소견과 공단 자문의의 소견이 다를 때도 있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접근하면 된다. 허리디스크(추간판탈출증)의 경우 승인되는 비율이 높지 않으나 허리디스크가 아닌 요추염좌의 경우에는 승인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그리고 우선 요추염좌 부분이라도 승인을 받아놓으면 휴업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고, 만약 입사 전 치료 내역이 없다면 향후에라도 심사청구 또는 쟁송을 통해 충분히 다퉈볼 수 있다. 


하지정맥류 역시 마찬가지. 장시간 서서 일하는 간호사, 혹은 하이힐을 싣고 좁은 기차를 다니는 승무원 모두 ‘장시간의 직립’, ‘업무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서있어야 하는 사정’, ‘자세를 굽히는 빈도’ 등을 입증해 산재가 인정된 사실을 있고, 판례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호텔리어의 경우에도, 하루에 몇 시간동안 서 있어야 했고, 복장규정이 어떻게 되는지, 휴식빈도는 어떻게 되는지, 가족력은 없었는지, 기왕증이 있는지 등을 검토해 충분히 산재신청을 할 수 있다. 법률전문가의 조력이 반드시 요구되는 이유다.


당연한 것은 존재하기는 쉽지만, 설득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재판은 항상 어렵고, 큰 압박감을 준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그것이 호텔리어의, 아니, 당신의 권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