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ing Story] 찬란한 실패를 보듬어준 뮌헨의 맥주들

2022.10.30 09:00:24

부제 : 일상(우리의 고단한 순간)엔 맥주가 필요하다
✽본 지면은 한국음식평론가협회와 함께합니다.

 

맥주가 가장 맛있게 느껴지는 느낌적인 느낌을 머금은 10월, 한 해를 돌아볼 준비를 하기 좋은 때이기도 하다. 성공의 기억들로 가득 찬 한 해를 돌아볼 수 있다면 참으로 좋으련만, 우리의 삶이 어찌 행복한 순간으로만 채워지겠는가. 짧은 행복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순간은 맥주처럼 쌉싸름한 일들이 더 많을 우리들의 삶일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삶에 주어진 작은 위로가 바로 맥주 한 잔일 터, 나는 감히 정하봉 와인 인문학자의 저서 <삶에는 와인이 필요하다>에 영감을 받아 본 에세이의 부제를 ‘일상(우리의 고단한 순간)엔 맥주가 필요하다’라 명하고자 한다.


본 글은 필자가 유학 실패라는 인생의 쓴맛을 맛보았던 눈물겨운, 하지만 찬란한 독일 도시 뮌헨에서 맥주와 함께한 시간 속으로 독자들과 산책을 떠나고자 한다. 그 시간을 떠올리며 맥주 한 잔을 아끼는 맥주잔에 채워 마신다. 독자들도 지금 맥주 한 잔을 손에 들고 산책을 떠날 채비를 마치길 바란다. 맥주 한 잔을 삼키며 본 칼럼을 접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달콤쌉싸름한 안주 한 조각이 되기를 고대하며 회상 속으로 들어간다.

 

 

와~ 역시 독일놈들 답다


햇살 좋은 주말 아침이다. 이른 아침 뮌헨 국제공항으로 입국해 앞으로 머물게 될 아파트에 도착한다. 내부 정원에 들어서자 본인을 처음 맞이해 준 풍경은 가히 독일, 특히 뮌헨스럽다. ‘뮌헨스러움’이라. 독자들은 ‘뮌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본인이 가진 뮌헨이라는 도시가 지닌 상징적인 이미지는 역시나 옥토버페스트. ‘독일 놈들은 맥주를 물처럼 마신다.’라는 아무 말 대잔치가 단순히 근거 없는 아무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테라스에 족히 10병은 돼 보이는 빈 맥주병들이 지난밤의 흔적들로 내게 손을 흔들고 있다. ‘어서 와, 뮌헨은 처음이지?’ 
곳간이 비면 마음이 흉흉해지듯 맥주 세 짝 정도는 다들 테라스에 갖춰 놓아야 한다는 뮌헨인들의 조촐한 미덕도 확인하게 된다.

 

 

물 만난 고기의 삶(맥주 = 수분 = 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어떠한 일을 책임지는 직분을 맡게 되면 그에 맞는 책임과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는 의미로 쓰인다. 필자 역시 뮌헨에서의 생활 3일 차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물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맥주 가격에 ‘이왕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면 영양분이 더 많은 맥주가 경제적이잖아!’라는 합리화를 내재하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물 만난 고기가 돼 금요일 저녁에 영화 보며, 주말 점심에 혼밥하며 맥주 한 병을 당연하게 쥐게 됐다. 주중 학교에서도 수분 섭취는 계속된다.

 

 

슈바인스학세 도장 깨기를 하며 받은 선물


Schweinshaxe(슈바인스학세). 한국에서는 흔히 ‘독일식 족발 요리’라고 부른다. 돼지의 앞다리 정강이 부위로 만든 요리이기에 편히 통칭해 그리 부르지만, 필자에게는 희로애락의 순간마다 함께 했던 의미 있는 음식이기에 굳이 정성 들여 ‘슈바인스학세’라고 부른다. 


고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필자에게 독일 유학길에 오르기 전 이 비주얼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고깃덩어리를 불에 구워 뜯어 먹는 만화 속에서나 보이는 모양과 흡사한 생김새는 가히 욕망의 대상이었고 탐닉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뮌헨에 도착해 3주간은 거주지등록, 입학등록증 발급 확인, 예금계좌 개설, 비자 취득 등 이방인이기에 해결해야 하는 행정처리로 정신이 없었다. 크고 작은 이슈들로 초조함과 근심에 묻혀 맘 편히 잠들지 못했던 나날이었다. 필수적인 행정처리를 마친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드디어 맛봤던 슈바인스학세 첫 경험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었다.

 

 


최소한 독일 밖으로 쫓겨날 문제는 해결이 됐으니, 슈바인스학세 도장 깨기를 시전하게 된다. 뮌헨에서 꽤나 괜찮게 한다는 슈바인스학세 전문점들을 찾아다니며 풍요로운 한 접시를 만끽했다. 물론, 맥주는 선택이 아닌 필수.


Löwenbräu Keller(뢰벤브로이 맥주양조장 &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를 함께한 중년의 독일인 부부가 있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사진 속 오른쪽에 자리한 동그란 감자경단인 카르토페클뢰세(kartoffelklöße)를 생산하는 큰 회사의 대표였다.

 

 

필자가 독일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중년의 남성은 말없이 내 식사까지 계산하고는 학업을 잘 마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자신도 젊은 시절 해외 유학하며 고생을 많이 해봐서 어떤 마음일지 잘 안다며 필자가 잘되길 바란다며.


사진을 다시 열어보니 그날의 따스함이 다시 느껴진다.

 

 

유학길에 올랐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거침없이 표현하고 실천하던 실행력이 있었다. 부족한 언어구사력에도 불구하고 쉬는 시간마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고 저녁 식사 자리를 주선하고자 노력했다. 뮌헨에서 한국 음식을 조금 맛볼 수 있는 아시안 식당을 정말 어렵게 찾아 모두를 초대해 함께 식사하고는 했다. 

 

 

대학원 진학, 유학 이유를 서로 나누며 조금씩 알아가는 자리에 역시 맥주는 빠질 수 없는 음료였다. K-인싸력 만렙을 탑재한 필자는 이 자리에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맥주 안주 조미김을 모두에게 소개했다. 무려 올리브유와 녹차, 청솔을 곁들인 엄청난 “Well-being 김”이라며 한껏 너스레를 떨었다. 맥주와 함께 먹기 좋은 스낵이라며 추천하는 이 동양인이 정말 이상해 보였을 듯하다. 물고기나 먹는 거 아니냐며 어이없어하던 친구가 한 번 맛을 본 후 쉴 새 없이 먹어 치운 사실은 비밀로 묻어두겠다.

 

 

HB, 상처받은 영혼의 안식처


낯선 땅에서 이방인의 삶은 사소한 것조차도 마음을 퍽퍽하게 하고는 한다. 유학 생활을 감당하기에는 준비가 덜 된 스스로를 온몸으로 느끼고 집으로 돌아온 날에는 생각이 많아 잠자리에 들기 쉽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집으로 향하는 길에 편히 들를 수 있는 호프브로이하우스(HB: Hofbräuhaus am Platz)가 자리하고 있었다. 유난히 심신이 퍽퍽한 날에는 귀갓길에 들러 그 공간에 가득 채워진 활기와 여행객들의 설렘을 느끼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해주고는 했다. HB는 내게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해주는 안식처와 같았다.

 

 

하루는 이 동양인이 어찌나 처량해 보였던지 악단의 지휘자가 나를 손짓해 불렀다. 무슨 대화를 나눴었는지 기억이 선명하지 않으나, 사진을 같이 찍어도 되냐는 나의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비어홀을 가득 채우는 사람들의 흥겨운 소리를 압도하며 울려 퍼지는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음악은 HB의 심볼과도 같다. 이 투박한 음악 소리를 들으며 맥주를 한 모금 두 모금 삼키면 그날 있었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마력이 있는 음악 소리다.

 

 

바이어부어스트(Weißwurst)
성모마리아의 은총이 깃든 순결한(?) 백색 소시지 한 입


뮌헨에서 3개월가량을 머물며 관광객들이 3일 만에 둘러본다는 주요 관광지를 한 곳도 제대로 가보지 못했던 듯하다. ‘급한 일들 해결해놓고 나중에 천천히 둘러보면 되지 뭐...’라는 생각이었으나, 애석하게도 급한 일들은 끊임없이 생겨났고 감히 관광객이 될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많은 일이 있었으나 각설하고 결국 유학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오기로 했다. 먼 산을 바라보며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삼키려 부단히도 노력했던 듯하다.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귀국을 결심하고 나니 참으로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한국으로 보내는 짐에 그간 서글펐던 일들도 함께 담아 보내고 잠시 내게 주어진 여유를 만끽했다. 뮌헨 대성당이라고도 불리는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는 단연 뮌헨 관광의 중심이다. 유서 깊은 건축물들과 주변에 자리한 식당, 상점가들은 오랜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들이 많았다. 정처 없이 걷다 앉은 식당은 소박하기 그지없었으나 120년간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식당이었다. 주인 부부의 서글서글한 친절함에 이끌려 주변의 화려한 레스토랑보다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

 

 

독일에는 지역마다 특색있는 전통 소시지들이 존재한다. 각 지역마다 모양과 맛이 다른 소시지가 생산되며, 자신들의 소시지가 (그리고 맥주가) 다른 도시 것들보다 더 맛있다고 자부한다.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 소시지 중 하나인 바이스부어스트는 달콤한 바이에른 머스터드 소스를 발라먹으며, 바이스비어(Weißbier: 흰색 맥주라는 의미를 지니며 밀맥주를 일컫는다)와 브레첼을 곁들여 먹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원래 이 소시지는 정오 교회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만 먹어야 한다’라고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어린 송아지 고기로 만든 이 소시지는 냉장 시설이 발달하기 전에는 염장을 많이 하지 않아 상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껍질도 두꺼운 창자를 쓰는 보편적인 소시지들과는 달리 매우 얇은 창자를 사용해 터지기 쉬우므로 불에 굽지 않고 물에 조심히 삶아내는 조리법이 일반적이라 한다. 

 

담백하게 간을 한 부드러운 소시지를 달콤한 머스터드 소스와 함께 맛보며 주말 오전의 쌀쌀한 공기를 코로 들이마시던 그 기분이 문득 떠오른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실내보다는 야외 테이블을 먼저 채워 앉는다. 

 

 


잠시나마 비추는 햇살의 따스함이 주는 그 촉감의 맛을 느끼고 난 후로는 필자도 무심결에 야외 자리를 찾아 앉게 됐다.

 

작별, 다시 재회할 그 날을 기리며...


맥주를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며 지난 시간을 떠올려보니 사진 속의 내 모습에 여러 번 눈길이 간다. ‘인생 참 쓰다...’라는 생각이 매일 들었던 꿈 많은 청년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인생의 쓴맛이 잠시 잊혀지는 쌉싸름한 맥주 한 모금이 저 청년 곁에 없었더라면 얼마나 텁텁했을지 가늠하기도 힘들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무모했고, 준비가 미흡했던 도전이었다. 저 시절의 나에게 다가가 조언해줄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줄 말들이 너무나도 많다. 한사코 말리며 때가 되지 않았으니 더 준비하고 가라는 조언을 힘주어야 해주고 싶을 듯도 하다. 그러나 설령 그러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안다. 저 청년은 조언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도전을 해버렸으리라는 것을. 

 


“무엇인가를 해보지 않고 고민만 하거나 외면하고 지나친다면 계속해서 아쉬워하게 될 거야. 나는 그래서 늘 무언가 도전하는 것에 망설이지 않으려 해. 해보고 나서 잘되면 좋은 거고 안돼도 경험이 될 수 있지만, 시도해보지도 않는다면 그저 미련으로만 남아있게 될 테니까.”


저 청년은 주변의 걱정과 만류에도 완고했다. 지금의 내가 저 청년에게 다가가 진심으로 말려 본다. 하더라도 그 완고함을 돌려놓지는 못할 듯하다. 그러하기에 차라리 상처받지 말라고, 꺾이지 말라고, 두 손에 맥주를 쥐어 주며(?) 응원해주고 싶다.


‘일상(우리의 고단한 순간)엔 맥주가 필요하다’라는 부제로 필자의 실패담과 함께 한 맥주 한 모금들을 돌아봤다. ‘맥주, 인류에게 주어진 최초의 음료’라는 기록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맥주는 우리의 삶에 희로애락에 함께 깃들어 있다. 가볍게 “맥주 한잔할까?”라는 말을 건넬 수 있듯이, 우리에게 맥주는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또는 혼자 휴식을 취하기 위해 편히 손에 쥘 수 있는 음료라고 생각한다.

 

 

유난히도 덥고 습했던 여름을 뒤로하고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에 서 있는 오늘, 인생의 씁쓸함을 달래주는 쌉쌀한 맥주 한 모금이 독자들의 손에 들려있기를 바라며 시간여행을 마치려 한다.

 

무모할지라도 늘 도전해 보시기를 응원하며.

 

오창훈

Salon de 오대감 호스트 
경희대학교에서 주관하는 소믈리에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고,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KISA) 와인소믈리에 자격 및 워터소믈리에 자격을 취득, 음료와 함께 다양한 주제로 담소를 나누는 비영리 커뮤니티 <Salon de 오대감> 호스트로 음료가 삶에 주는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