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에는 과거의 왕도 부럽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가끔씩 상상하곤 한다. “내가 과거 왕들보다도 더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단연코 지금의 내가 과거 어느 왕이나 귀족들보다도 더욱 맛있는 음식들을 누리고 살고 있다고 자신한다. 최소한 먹는 것에 있어서 만은 나의 행복이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식재료를 생각해 보자. 음식의 핵심이 되는 좋은 식재료를 구하는 데 있어서 현대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거의 없다. 프랑스의 훌륭한 와인을 쉽게 구할 수 있고, 노르웨이의 연어를 신선하게 공수받을 수 있으며,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다양한 향신료나 허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전문 요리사가 해주는 훌륭한 음식을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할 수 있는 것이 레스토랑의 등장이다. 전문요리사가 우리를 위해서 음식을 해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인 레스토랑들이 많이 생긴 것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레스토랑 본격적 등장
그렇다면 현대와 같은 레스토랑은 본격적으로 언제 시작됐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혁명이 사회경제적 변화만 불러온 것이 아니다.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미식문화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확산된 계기가 된 것이다.
당시 전문식품점에서 식품을 조리해 만들어 파는 식품전문가들도 많았지만, 대부분의 전문요리사들은 왕족이나 귀족들에게 고용돼 그들의 식사나 행사를 위한 음식을 만들었다. 일반 대중들은 전문요리사가 해주는 음식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발생하면서 전문요리사들의 고용주였던 왕족이나 귀족들이 쫓겨나거나 길로틴에 목이 잘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은 고용 요리사들이 시장에 나가 자신의 솜씨에 의지해 독립 개업함으로써 레스토랑이 본격적으로 확산하게 됐다. 이제 대중들도 전문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돈만 지불할 수 있다면 최고의 맛을 경험하는 데에 신분이나 가문은 더 이상 관계가 없게 됐다.
사실, 프랑스혁명이 발발하기 전인 18세기 중반까지도 프랑스 파리의 외식환경은 미식의 도시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일반인은 기껏해야 선술집 또는 여관의 타블 도트(정찬테이블)에 가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식사를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과 합석을 해서 경쟁적으로 나눠 먹어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 해먹는 것보다 다소 비싼 가격이지만 손님의 요구에 맞춰 독립적인 테이블에 좋은 품질의 재료를 사용해서 1인분씩 정해진 가격으로 판매를 시작한 레스토랑이 본격화되면서 이 모든 행복이 가능해졌다.
부르주아의 등장, 미식문화 형성의 밑거름이 되다
본격적인 레스토랑 등장 전에 상공업자 동업자조직인 길드를 중심으로 유사한 형태의 음식이나 식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케이터링, 로티쇠르, 파티스리 등). 하지만 본격적인 레스토랑의 등장은 식탁의 역사를 넘어서 미식문화 형성에 큰 전환점이 됐다. 가히 혁명이라 할 만한 이 현상은 파리를 비롯해서 다른 모든 도시에서도 눈에 띄는 큰 변화를 불러왔다.
레스토랑은 궁정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산해진미를 차린 식탁, 말하자면 궁정문화 자체를 상품화했다. 거기에 상공업 분야에서 부를 축재한 신흥 부르주아가 레스토랑의 주고객으로 등장하면서 레스토랑산업의 발전과 더 나아가 본격적인 미식(Gastronomy)의 시대가 막을 열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식전문가들도 프랑스혁명 전후를 기점으로 등장했다. <미식예찬>(1848)을 쓴 대표적인 미식평론가인 장 앙텔므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과 대표적인 미식 비평가며 <식통연감>을 쓴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Alexandre Grimod de La Reyniere, 1758~1837)가 그들이다.
단순한 한 끼가 아닌
미식의 전당이 된 레스토랑
궁정이나 귀족의 식문화로만 발전돼 온 요리나 서비스가 프랑스혁명을 계기로 보다 폭넓은 사회층에 개방됨으로써, 마침내 본격적인 미식의 시대가 막을 열게 됐다. 그 화려한 중심무대가 된 공간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레스토랑인 것이다.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자신이 먹고 싶을 때,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서 행복하게 먹을 수 있는 미식의 전당으로서 레스토랑은 인간의 잠재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공간이 된 것이다.
- 글 : 이규민 교수
현재 한국음식평론가협회 부회장, 한국외식산업정책학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농림축산식품부 외식산업진흥과장과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KISA) 부회장을 맡은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