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숙박을 넘어선 예술적 경험", 국내 호텔들의 아트 큐레이션 전략

2024.09.03 09:00:00

 

최근 국내 호텔 업계에서 예술 작품을 활용한 차별화 전략이 두드러지고 있다. 주요 호텔들은 세계적 명성의 작가들부터 신진 아티스트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뵈며 ‘아트 호텔’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의 특성과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한 섬세한 큐레이션으로 고객들에게 독특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미디어 아트와 같은 현대적 작품들을 적극 도입하며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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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에 ‘진심’인 호텔들
브랜드 이미지와 공간에 따른 작품 선정과 배치의 미학

 

 

호텔의 브랜드 이미지나 콘셉트는 그 호텔의 전반적인 분위기, 목표 고객층, 제공하는 경험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요소가 호텔 내 예술 작품 선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터. 호텔들은 어떤 작품을 어떻게 선정하고 배치할까? 


라까사호텔 서울과 광명은 회화와 조각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호텔에 전시하고 있다. 여러 국적을 지닌 예술가의 작품들은 야외 입구, 로비, 복도, 객실은 물론 레스토랑과 카페 등 호텔의 다양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라까사호텔은 디자인과 공간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진 호텔”이라고 소개한 라까사호텔 CD 사업부 김지영 팀장은 “공간과 가구의 조화로부터 오는 아름다움을 중시해, 작품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배치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모던하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호텔인 만큼, 호텔 이미지에 어울리는지, 현재 전시된 작품과 조화로운지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작품을 고른다. 


근래에는 미디어 작품들이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한다. 미술 컬렉터이기도 한 호텔 고문을 통해 큐레이션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예술가와 작품을 조사하고, 갤러리나 아트 페어, 예술 전시회 등을 통해 적합한 작품을 마침내 선정한다. 


김 팀장은 “호텔이 가진 브랜드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선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좋은 작품은 보는 사람들의 연령과 지위를 막론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선정에 있어 정해진 가이드라인이 있다 보면 다양성에 한계가 생기기 마련이므로, 호텔이 가진 각각의 개성 있는 공간 안에 어떤 작품을 놓았을 때 고객이 흥미를 느끼고 미술품에 한 발 더 다가오는가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고른다. “흥미로워야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법”이라고 김 팀장은 강조했다. 


아울러 김 팀장은 고객들의 피드백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례로 라까사호텔 광명에 설치돼 있는 이용덕의 ‘infront of me 091581’는 2.1m 높이의 작품이다. 음각 작품이지만 일정거리를 두고 보면 양각으로 보이는 신비로운 이 작품은 본래 라까사호텔 서울 로비에 배치를 해뒀지만, 공간이 충분히 넓지 않아 이 변화를 알아채기가 어려웠다. 

▲이용덕의 ‘infront of me 091581’, 사진 제공_ 라까사호텔 광명


그런데 비교적 공간이 넓은 라까사호텔 광명 로비로 옮기고 난 뒤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작품과 고객 사이에 일정 거리가 확보돼, 작품 앞을 지나가게 되면 사람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작품이 볼록하게 움직이는 착시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김 팀장은 “작품 앞에서 고객들이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앞으로 오기를 반복한다.”고 전하며, 친구를 데려와 단체로 왔다갔다 하며 즐거워하던 고객들의 모습을 회상했다. ‘infront of me 091581’은 볼록함과 오목함, 겉과 속, 음과 양이 뒤바뀐 역상조각이다. ‘상반된 두 세계의 공존’, 즉, 존재와 비존재가 동시에 병존하는 작품이다. 김 팀장은 “고객들이 함께 공감하고 즐거움을 선사하며, 새로운 영감을 주는 예술 작품은 또 무엇이 있을까 항상 고민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라까사호텔은 다양한 작품과 작품의 이야기가 담긴 도록을 준비하고 있다. 각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배경, 작가의 의도 등을 기록해, 작품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자 계획했다. “마치 로컬 갤러리에 온 듯, 투숙하는 동안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로 예술품이 주는 작은 위트와 메시지를 편하게 즐기기를 바란다.”고 김 팀장은 덧붙였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또한 예술 작품 큐레이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다. ㈜서한사 앰배서더박물관 유자영 큐레이터는 “호텔의 각 공간 특성과 분위기에 맞는 작품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때로는 작가에게 의뢰해 호텔 맞춤형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호텔 로비의 중심에는 영국 작가 애니 모리스의 ‘STACK8, ULTRAMARINE BLUE’가 있다. 유 큐레이터는 “이 작품은 원래 9개의 구로 구성됐으나, 천고가 낮은 호텔의 공간성에 맞춰 8개로 재구성했다. 호텔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세심하게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문에 들어서는 고객을 맞이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금강의 빛’은 호텔의 대표적인 예술 작품이다. 총 13m 길이의 이 작품은 조선후기 대표화가 정선의 금강전도(국보 제217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10분 분량의 영상은 사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며, 그 속에 서울의 도시화 과정과 호텔의 역사를 함께 담았다. 특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 속에 1955년부터 현재까지의 호텔 모습이 숨겨져 있어 이용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호텔 내 웰니스 공간에는 현대 미술의 거장 알렉스 카츠의 작품을 배치해 활동적이고 건강한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했고, 호텔 오너에게 가수 김창완이 직접 그려 선물한 작품 또한 호텔 내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유 큐레이터는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객들이 작품을 통해 감동과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호텔을 찾는 고객들에게 새로운 예술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로비에서 복도까지
작품의 전략적 배치로 보는 호텔 아트의 힘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작품 분위기에 따라, 혹은 큐레이팅 의도에 따라 각기 다른 공간에 배치된다. ‘숯의 작가’ 이배 작품을 소장 및 전시하고 있는 국내 3개 호텔 사례를 비교해 보자. 

 

 

서부산 최초 5성급 호텔 윈덤 그랜드 부산은 호텔을 찾은 고객들이 더욱 깊이 있는 첫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이배의 ‘붓질’ 시리즈 ‘Brushstroke-15’, ‘Brushstroke-25’, ‘Brushstroke-20’ 3점을 프런트 데스크 뒤편에 배치했다. 숯을 재료로 흑백의 서체적 추상을 표현한 작품은 작가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붓질이 더해져 고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서울신라호텔은 지난 2023년, 조현화랑과 협업해 로비 공간의 작품을 이배의 신작 ‘Brushstroke-15j’, ‘Brushstroke-16j’ 2점으로 교체했다. 공개된 작품은 ‘프리즈 서울 2023’을 기념, 서울신라호텔을 위해 탄생했다. 작가가 기존에 작업하던 화폭보다 더 큰 300호(가로 3m, 세로 2m)의 규모로 그려내, 화폭 크기에서 느낄 수 있는 붓질의 힘과 다양하고 복잡한 배열의 획을 섬세하게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이 걸린 곳은 ‘더파크뷰’와 ‘더 라이브러리’, ‘패스트리 부티크’ 등 F&B 업장이 집중돼 있는 진입로의 입구다. 치열한 웨이팅으로 명성이 자자한 만큼 유동된 인구가 큰 위치에 작품이 배치돼 있어, 되도록 많은 호텔 방문 고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기념사진 또한 촬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파라다이스시티는 이배의 작품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고객들에게 선뵌다. 파라다이스시티의 시그니처나 마찬가지인 쿠사마 야요이의 ‘Great Gigantic Pumkin’이 메인 포토스폿 역할을 하는 가운데, 호텔 중앙의 메인 로비에서 컨벤션으로 이어지는 레드윙(Red Wing) 복도의 후반부에 이배의 ‘Issu du feu ch-11’를 배치했다. 레드윙의 시작점에 위치한 하우메 플렌자의 ‘ANNA B. IN BLUE’가 자아낸 신비로움에 이끌려 복도를 따라 걷다보면 박서보의 ‘ECRITURE NO. 110326’와 김창열의 ‘WATERDROPS’를 조우하게 된다. 기분은 어느새 차분하고 고요해지는데, 숯을 잘라 조각난 면을 캔버스 위에 빼곡하게 붙인 ‘Issu du feu ch-11’는 그 마지막 종착점에 배치돼 있다.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오롯이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여러 각도에서 빛을 받아 반짝이며 우리가 알고 있던 숯과는 전혀 다른 깊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공간의 톤앤매너를 완성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강한 인상을 남긴다. 

 


 

INTERVIEW

 

 

“호텔 아트는 고객의 감상과 이미지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

긍정적인 경험 제공하는 작품 배치에 신경 써”
윈덤 그랜드 부산 박지호 총지배인

 

호텔에서 소장 중인 작품 중 주요작 몇 가지를 소개해달라. 


윈덤 그랜드 부산은 투숙객들이 머무는 동안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1층 로비부터, 27층까지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배치하고 있다. 1층 로비에는 이소연 작가의 ‘사슴숲’과 김종학 작가의 ‘숲’ 두 작품이 나란히 위치해 있다. 이소연 작가의 ‘사슴숲’은 섬세한 붓 터치로 표현된 자화상과 사슴들의 모습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로비의 인테리어와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종학 작가의 ‘숲’은 자연의 생명력을 화폭에 자유롭게 담아내 도심 속에서도 잠시나마 자연의 휴식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한편, 호텔 최고층인 27층에는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인 보스코 소디의 작품(Untitled)과 도나 후앙카의 ‘DMTbosque’가 각각 설치돼 있다. 보스코 소디의 작품은 유화 질감과 색의 조화를 통해 깊이 있는 감동을 전달하며, 도나 후앙카의 작품은 서정적인 색채와 추상적 형태로 시선을 사로잡는 특징이 있다. 이 두 작품이 최고층 레스토랑인 ‘온더클라우드’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더욱 특별한 식사 시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호텔 내부에 설치할 예술 작품의 선정을 위해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예술 작품을 고를 때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작품이 고객들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휴식과 영감을 주거나, 호텔의 고유한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호텔에 설치된 모든 작품의 가치는 단순히 가격뿐만 아니라 호텔의 브랜드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때문에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윈덤 그랜드 부산만의 이미지와 분위기에 맞는 작품을 선정해 배치하고 있다.

 

호텔 내 예술 작품들은 어떤 기준으로 배치되나?


작품을 배치하고 전시할 때는 작은 부분 하나까지 섬세하게 신경을 기울여 진행하고 있다. 작품의 색상, 크기, 스타일 등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지 체크하고 호텔 내의 주요 동선을 따라 작품을 배치해 고객이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며, 큰 작품은 넒은 공간에, 작은 작품은 보다 집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에 배치한다. 마지막으로 설치된 일련의 작품이 하나의 이야기나 테마를 가지고 이어질 수 있도록 작품 간의 관계성을 고려한다. 앞서 소개한 김종학의 ‘숲’과 이소연의 ‘사슴숲’을 로비에 나란히 배치하고, 최고층에 위치한 ‘온더클라우드’에 보스코 소디와 도나 후앙카의 작품을 설치한 것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예술 작품의 적절한 보존 조치는 작품의 경제적, 문화적 가치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작품 관리(EX. 온도, 습도 조절, 조명 관리 등)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호텔에 설치된 미술작품은 고객의 감상과 고객의 이미지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이를 위해 윈덤 그랜드 부산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품을 관리하고 보존하고 있다. 모든 직원에게 예술품 관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 청소나, 인테리어 작업 시 작품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유의하고 있다. 또한 24시간 보안 관리가 진행되며 예술품 보험 가입으로 정기 점검 및 평가를 통해 예술품의 손상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보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품을 관리하는 데 있어

가장 까다롭고 어려운 지점이 있다면? 


지역 특성상 바닷가와 인접하기 때문에 날씨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호텔 내에 전시돼 있는 작품은 빛과 온도, 습도, 물리적 손상으로 보호될 수 있는 위치에 배치하고 있지만 긴 장마나 무더위가 이어질 때는 일정한 온도와 습도 유지, 조명 조건에 더 많은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인천에서 벌어지는 호텔 아트 3파전 
각기 다른 작품으로 호텔의 정체성 구축해 

 


2014년 9월 1일 개관한 그랜드 하얏트 인천은 1024개의 객실과 8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대형 연회장을 두 곳 이상 보유하고 있다. 큰 규모만큼이나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호텔 곳곳에서 전시하고 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트 작가 백남준을 비롯해 팝아트의 선구자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세계 최고의 조각가 아르망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일반 작품 외에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고객들에게 한국의 전통미를 보여주기 위해 도자기와 고가구를 객실 앞 복도에 배치하고 있다. 주요 소장 작품으로는 미국 내 한국출신 예술인 1세대인 존배의 ‘Simple Ties’, 20년 넘게 달항아리만을 빚어온 강민수의 ‘달항아리 201202-1’와 한국 현대 미술의 거장 이강소의 ‘From an island’, 달항아리 회화로 유명한 최영욱의 ‘Karma’ 등이 있다. 해외 작가로는 미국 미니멀리즘의 거장 프랭크 스텔라의 ‘Feneralia’와 세계적인 예술가 아르망의 ‘Eros au violoncelle’가 전시돼 국제적인 수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권기수의 ‘Untiled’와 김유철의 ‘풍심류’ 등 미디어 아트와 사진 등 현대적 기법을 활용한 작품들 또한 선뵈고 있다. 

 

 

동북아 최초 복합리조트로 2017년 4월 20일 공식 개장한 파라다이스시티에는 세계적 거장들과 국내외 작가들의 조각, 회화 등 예술 작품 3000여 점이 총망라돼 있다. “아트와 엔터테인먼트가 만난다.”는 의미에서 ‘아트테인먼트 리조트’를 표방하는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예술 작품은 상당히 중요한 포션을 차지하고 있다. 파라다이스시티를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쿠사마 야요이의 ‘Great Gigantic Pumpkin’은 고객들의 기념촬영 명소다. 곳곳에 위치한 유명 작가의 작품들로 호텔 이용객들은 자주 걸음을 멈추고 포즈를 취하곤 한다. 


로비 리셉션 벽면에는 피터 핼리와 로렌 클레이가 협업한 ‘Parad ise Lost I - IV Between Urras and Anarres’가 걸려있다. 이 작품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특별히 낮게 설치됐는데, 이는 작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호텔 내부 곳곳에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강소, 오수환, 김호득 등의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이 인테리어 콘셉트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객실에는 이 작가들의 에디션 작품이 기본적으로 배치돼 있다.


연회 예약실에 있는 장재록의 ‘웨딩링’은 극사실적인 하이퍼리얼리즘 계열의 회화 작품이다. 사진처럼 보이지만 먹으로 세밀하게 그린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절로 감탄사가 터진다. 키즈존에 있는 패트릭 휴즈의 역원근법을 이용한 회화는 착시효과로 시선을 사로잡고, 루빅 앞에 있는 이반 나바로의 ‘CLAMORES EN VANO, ESTO ES MALO’ 또한 스파이미러와 일반미러의 무한반복을 통한 깊이감을 구현해 반응이 좋은 편이다. 


파라다이스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도 호텔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재단은 1997년부터 2014년까지 ‘뉴욕 아트오마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2명의 작가에게 뉴욕 체류 기회를 제공했으며, ‘신진기예전’이라는 기획전시를 통해 젊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해 왔다. 이러한 지원을 받은 작가들 중 뮌, 오인환, 정연두 등 30여 명이 현재 국내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작가로 성장했다. 특히 김승환 작가와 인천 가톨릭대학교 이호진 교수의 작품이 파라다이스시티에 전시돼 있어, 재단의 지원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파라다이스시티는 개관 이후 지속적으로 두 가지 예술 방향을 추구해 왔다. 전통적인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SNS에서 공유하기 좋은 인스타그래머블한 전시와, 파라다이스시티의 철학과 일치하는 혁신적인 예술 전시를 기반으로 라인업을 꾸준히 다져가며 독특한 예술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는 9월 3일부터는 미국 추상미술 작가 조쉬 스펄링 ‘원더(Wonder)’ 展을 개최할 예정이다. 


올해 3월 5일 그랜드 오프닝을 맞이하며 인천 지역 호텔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모히건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이하 인스파이어)는 아시아의 진정한 엔터테인먼트 목적지로의 도약을 다짐했다. 리조트의 중심부인 로툰다에는 키네틱 아트의 정수를 보여주는 디지털 샹들리에가 설치돼 있으며, 지난 7월 25일부터는 권오상 작가의 현대미술전시 <뉴스트럭처:프리즘>을 개최하고 있다.


인스파이어는 미디어 아트를 활용한 다양한 공간을 선뵈고 있다. ‘오로라’ 거리의 초대형 LED 천장을 유영하는 핑크 고래, 국내 최대 실감형 미디어 아트 전시관 ‘르 스페이스 인스파이어’, 그리고 6개의 테마별 아트 컬렉션 공간 ‘인스파이어 원더’가 대표적이다. 초대형 LED 사이니지로 뒤덮인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거리 오로라는 한국 관광 해외 홍보 영상에도 등장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야외 공간에도 예술적 요소가 가득하다. ‘순환’을 키워드로 한 대형 아트 조형물들이 리조트 곳곳에 설치돼 있으며, ‘디스커버리 파크’에서는 한국의 설화와 단군 신화를 모티브로 한 조각품들을 만날 수 있다. 마이클 젠슨 최고마케팅책임자는 “다양한 아트 콘텐츠를 통해 방문객에게 예술적 영감과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아트 플랫폼’의 역할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인스파이어는 앞으로 ‘인스파이어 아트 시리즈’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과 K-아티스트를 세계에 소개할 계획이다. 

 

 

 

움직이는 예술, 살아있는 공간
호텔이 품은 미디어 아트의 매력

 

 

한편 디지털 아트와 새로운 미디어 아트 작품을 선뵈는 호텔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라까사호텔 또한 호텔 공간과의 조화를 고려하며, 고객이 작품과흥미로운 교감을 할 수 있도록 각 공간에서 미디어를 활용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서울점 로비에 들어서면, 좌측 넓은 벽면에 정정주 작가의 작품 5개가 있다. 작품들은 마치 각기 다른 공간이 들여다보이는 창문처럼 전시돼 있는데, 실시간으로 빛이 움직이며 변화되는 공간을 영상으로 마주하게 된다. 고객들은 영상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 또 다른 공간에서의 휴식을 상상하게 된다. 


광명점 레스토랑 라까사키친 쪽에는 2019년 오픈 때부터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 터키계 네덜란드 작가 파레틴 오렌리의 ‘I am the folk’는 광명동굴이 있는 가학산이 통창 가득 보이는 레스토랑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통창으로 보이는 산자락 끝에 앵무새 한 마리가 미디어 새장에 앉아 있는데, 실제의 산과 미디어 속의 앵무새가 동시에 보이며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앵무새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무서워하는 고객들도 있지만 즐거운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원더 미디엄(WONDER MEDIUM)의 파라다이스 워크는 파라다이스시티의 두 공간 사이를 잇는 통로에 설치된 일종의 감각의 브릿지다. 짧은 시간 동안 시각과 청각이 모두 자극되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제임스 터렐의 작업에 대한 오마주로서 제작된 이 작품에서, 고객들은 아치형 천장과 벽면을 따라 설치된 기둥들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조명과 음악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호텔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디어 아트는 한국 예술계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故백남준의 작품이다. 그랜드 하얏트 인천 로비에서는 백남준의 ‘The 25,000 Year Old Man’이라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인간이 미술에 처음 눈을 뜨게 된 2만 5000년 전의 크로마뇽인을 주제로 로봇을 제작한 작가는 15개의 플라스틱 TV 캐비닛을 구성해 크로마뇽인의 전체적인 현상을 만들고, 각각의 모니터에는 네온으로 상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그들의 생각과 꿈을 나타냈다. 높은 예술적 수준을 지녔던 크로마뇽인의 특징을 전화, 편지, 바이너리 코드(0101), 팔레트, 고대 상형문자, 레코드판 등 네온의 다양한 형태로 형상화해, 현대 인류의 조상으로서 그들의 예술적 정신이 현대에 그대로 이어져 모든 예술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본질임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다. 

 

 

파라다이스시티의 럭셔리 부티크 호텔 아트 파라다이소에는 백남준의 ‘HITCHCOCKED’가 전시돼 있다. 영국 출신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을 작품화한 이 작품은 히치콕의 영화 <새>의 주요 등장인물과 동물, 사물을 캐비닛 주위에 배치한 후 물감을 뿌려 작품으로 표현했다. 천재 감독 히치콕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마치 두 거장의 만남을 목격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미디어 아트를 보다 흥미롭게 감상할 기회를 제공한다. 


벨기에의 카지노 재벌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은 파라다이스시티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변 인테리어로는 깃털 소재로 된 새 모티브의 가구와 히치콕 작품 사진 등을 함께 사용했다. 비디오아트 특성상 고장이 잘 나고 워낙 오래된 작품이기에 백남준 작가의 조력자이자 비디오아트 제작자인 이정성 테크니션을 통해 꾸준히 보수와 복원을 진행하고 있다.

 

 

라까사호텔 광명 로비에는 높이 3m가량의 대형 미디어 작품, 백남준의 ‘Robot on the Roof’가 설치돼 있다. 다양한 사이즈의 브라운관 TV 9개로 이뤄진 이 작품을 유지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김 팀장에 따르면 어떤 날에는 작품을 관리해 주는 마스터와 호텔 시설팀, 담당자인 김 팀장까지 맨발로 작품 받침 위에 올라가 비디오 단자와 리더기를 이리저리 옮기며 고장 원인을 찾았다고 한다. 브라운관 TV를 옮기거나 수리해야 할 경우에는 혹여나 브라운관이 손상되지 않도록 담요와 완충재를 사용해 완벽하게 포장한 후 주고받는다. 브라운관 TV가 주는 영상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고장이 적고 화질이 선명한 LED로 교체를 제안받기도 했지만, 유지할 수 있는 한 브라운관을 유지하며 작가의 시선이 담긴 영상을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다.”고 김 팀장은 말했다. 

 

 

광명에 거주하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자부심이 되는 이 작품은 라까사호텔 광명의 상징과도 같다. 김 팀장은 “현재 미디어 아트가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백 작가의 실험적인 영상과 위트 있는 퍼포먼스는 여전히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오늘날의 미디어 아트에서도 그의 실험 정신이 여전히 강력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백 작가는 생전 “예술가는 미래를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965년 뉴욕의 한 시사회에서는 “붓과 바이올린 대신 전열선 혹은 반도체로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60년 전 이미 현재의 시대를 예견한 그의 작품들을 찾아 호텔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INTERVIEW

 

“호텔의 예술 작품은

현실의 무거움 잊게 만드는 힘 지녀”
파라다이스시티 아트팀 전동휘 디렉터

 

파라다이스시티가 소장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은 무엇인가? 


제프 쿤스의 ‘Gazing Ball’ 시리즈인 ‘Gazing Ball(Farnese Hercules)’은 푸른 공의 반짝이는 표면에 비친 유명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관계, 욕망, 흥미 그리고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고,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PARADISE PROUST’ 또한 파라다이스시티의 주요 소장품이다. 파라다이스시티만을 위해 제작된 ‘PARADISE PROUST’는 작가 작품 중 세계 최대 사이즈로, 한국의 전통 조각보 모티브에 착안해 디자인됐다. 파라다이스시티에 담고자 하는 기쁨과 행복을 작가의 대표작인 프루스트 의자를 통해 생동감 있게 완성해 냈다. 

 

▲제프 쿤스의 ‘Gazing Ball(Farnese Hercules)’ /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PARADISE PROUST’, 사진 제공_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 필요한 예술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가? 


호텔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쿠사마 야요이의 ‘Great Gigantic Pumpkin’, 제프 쿤스의 ‘Gazing Ball(Farnese Hercules)’, 데미안 허스트의 ‘Golden Legend’ 등 볼륨감과 화제성을 겸비한 작품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의 경우 주제에 따라 때로는 다소 묵직하거나 그로테스크한 작품도 전시하지만, 공용 공간의 작품은 공간의 기능과 매칭이 되는지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예술 작품은 호텔이 지닌 인테리어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작가의 아우라나 아이디어를 통해 고객들이 현실의 무거움을 잠깐이라도 잊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볼륨감 있는 작품으로 전체적인 아트워크의 무게를 잡아주고, 이러한 요소들의 작품으로 강약의 변화를 준다. 

 

작품을 소장하고 배치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궁금하다. 


작품의 선정 과정은 오너십의 과감한 결정과 아트팀과의 긴밀한 의견 교환을 통해 구체화한다. 기본적으로 작품은 호텔의 전체 인테리어 콘셉트와 관계성이 맞아야 한다. 벽 색감과 몰딩 형태, 분위기를 고려, 미술사조로 따지면 획 작업이 있는 추상표현주의 작품 위주로 선정하기로 인테리어 회사와 협의했다. 김호득, 이강소, 오수환, 이호진, 제여란 등의 작가 작품이 있는 이유다.


한편, 작품 배치는 위치 선정부터 조명이나 가이드라인의 배치까지 전반적인 고려를 요구한다. 대표적으로 쿠사마 야요이의 ‘Great Gigantic Pumpkin’이 놓인 와우 스페이스는 3개의 윙이 만나는 지점으로, 바닥이 원형이며 중심부만 검정 대리석이 깔려 있다. 때문에,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원형의 작품이 필요했고, 해당 작품이 채택됐다.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좌대 역시 검정 라운드로 돌렸다. 

 

공간에 맞는 적절한 사이즈의 작품을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는 데미안 허스트의 ‘Golden Legend’는 벽을 트고 들여야 할 만큼 설치 난도가 높았다. 유리 돔 아래 놓여있는 이 작품은 45도 각도로 배치돼 있다. 마치 하늘에서 날개 달린 말이 내려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각도와 위치를 신중히 선택했다. 

 

파라다이스시티는 꾸준하게 크고 작은 작품 교체와 보강을 이뤄왔다. 작품들은 아트 스페이스 전시에 쓰이기도 하고, 고객 동선에 있던 작품이 직원 동선으로 가기도 한다. 아트 스페이스의 전시 테마에 맞춰 파라다이스워크에 있는 작품 역시 주기적으로 바꾼다. 

 

파라다이스시티에는 별도의 예술 작품 관리 부서가 있다. 주로 어떤 업무를 수행하나?


호텔 아트팀은 컬렉션 매니지먼트(Collection Management)로서 작품 설치와 이동, 철수 및 보수 등 전반적인 대응과 작품 DB 관리를 한다. 아트 스페이스의 전시 기획과 전시장 공간, AV, 인프라 시설의 유지 및 관리도 도맡아 하고 있다. 


호텔은 기본적으로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시설이다. 때문에 표면 처리가 민감한 작품 등에 손때가 생긴다거나, 파손의 위험이 생길 수 있는 것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데미안 허스트의 ‘Golden Legend’가 그런 경우다. 미술과 과학, 대중문화의 전통적인 경계에 도전하는 데미안 허스트는 신화에 나오는 동물 페가수스를 표현한 작품을 통해 신화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생물을 신비롭거나 희망적인 환상으로만 보지 않고, 현실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작품에 깔려있다. 따라서 작품의 금박 부분은 희망과 환상을, 해부된 절반은 신화를 현실화하는 연출이다. 24K 금박이다 보니 손이 닿는 순간 지문이 남는데, 벌써 여러 차례 보수를 진행했다. 현재는 부득이하게 유리 가이드를 설치한 상황이다. 

 

파라다이스시티가 제시하는 ‘아트테인먼트 호텔’의 비전이 있다면?  


2017년 오픈한 파라다이스시티는 아트워크가 충분히 갖춰진 상태에서도 작품 배치를 지속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배 작가 작품의 경우에도 다른 회화 작품이 있던 것을 교체한 것이다.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과 작품을 로테이션하기도 하며 다양하게 선뵈고자 한다. 


직원들을 위한 작품 배치도 중요시된다. 아트테인먼트 리조트라는 명목에 걸맞게 직원들에 대한 부분도 신경 써야 한다는 오너 입장에 따라, 직원 동선에도 작품을 배치한다. 폴 알렉시스의 ‘Eastern Celebrity & Western Celebrity 15’는 본래 9개의 작품으로 이뤄져 있지만, 벽 사이즈 때문에 6점만 현재 위치에 설치하고 나머지 3점은 직원 카페에 두고 있다.  


한편 파라다이스는 서울에 새로운 호텔을 계획 중이다. 2028년 오픈 목표인 이 호텔은 약 200실 규모로, 더욱 하이엔드한 아트워크를 선뵐 예정이다. 인천보다 높은 수준의 작품들로 구성해 세계적 수준의 아트테인먼트 호텔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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