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번화한 명동 한복판. 4호선 10번 출구를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15층짜리 빌딩 앞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선전전이 벌어진다. 캐리어를 끌고 호텔을 찾아가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강렬한 인상의 시위용 피켓에 눈길이 사로잡혀 걸음을 멈춘다.
이곳은 한때 5성급 특급호텔로까지 등극했던 ‘세종호텔’이다. 1966년 12월 20일 개관한 세종호텔은
세종대학교가 소속된 대양학원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세종투자개발’이 운영하는 호텔이다.
2021년 12월 10일. 세종호텔 노동자 12인은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 7월 18일, 세종호텔 부당해고에 대한 2심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해고 노동자들의 상소를 기각했다.
경영난으로 인한 구조조정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재난 속에서 호텔업계를 비롯한 전 산업 분야에서 수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렇다면 세종호텔의 해고 노동자들은 왜 3년 가까이 길고 고단한 투쟁의 길을 선택한 것일까?
* 현 사안에 대해 사측의 이야기를 듣고자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응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세종호텔 사태의 전개
영광의 시대에서 갈등의 시대로
명동 한복판, N서울타워가 한눈에 올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세종호텔 앞에서는 3년째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40년 넘게 특급호텔의 명성을 지켜왔던 세종호텔은 이제 3성급 관광호텔로 전락했다. 객실 점유율은 80%를 웃돌지만, 한때 200명에 달하던 정규직 직원은 이제 22명에 불과하다.
세종대학교가 소유한 세종호텔은 한때 안정적인 인력으로 유명했다.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지부장(이하 고 지부장)은 “2011년만 해도 280여 명의 직원 중 97%가 정규직이었다.”며 “당시 세종호텔은 동급 호텔 직원들이 오고 싶어 하는 직장이었다. 서울신라호텔이나 시내 소재 주요 특급호텔에서 어텐던트를 하다가도 세종호텔로 올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1년 한국의 복수노조법이 도입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경영진의 이해관계와 더 밀접하게 연계된 두 번째 노조가 설립된 것이다. 이로 인해 호텔 내 노사 관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2012년, 고 지부장이 속한 민주노총 소속 노조의 파업이 38일간 지속됐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노사 간 갈등은 점차 깊어졌고, 2014년에는 연봉제 도입과 함께 최대 30% 임금 삭감이 가능한 조항이 신설됐다.
이후 지속적인 구조조정으로 정규직 규모가 축소돼 갔다.
코로나19의 영향과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정리해고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 호텔 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줬고, 세종호텔도 예외는 아니었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세종호텔은 여러 차례에 걸쳐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2020년부터 희망퇴직 등을 통한 대규모 인력 감축이 이뤄졌고, 2021년에는 12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됐다. 그로 인해 정규직 직원은 팬데믹 이전보다 대폭 줄어든 40명만이 남게 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해고된 노동자 모두가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이었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감과 F&B사업의 수익성 악화를 구조조정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노조 측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고 지부장은 “정부 지원금 등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며 “수천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기업이 해고 회피를 위해 매각한 자산은 고작 10억 원 미만”이었다고 지적했다.
세종호텔의 현 상황에 대해 고 지부장은 “현재 세종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8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치가 워낙 좋고 오랜 단골 고객들이 있어 객실 수익은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회복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외형적 회복에도 불구하고, 내부 운영은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한다. 정규직 22명으로 333개 객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야간에는 전체 호텔을 단 1명이 담당한다. 고객 응대는 물론이고 화장실 청소, 쓰레기 처리까지 모두 해야 하는 상황이다.
# F&B의 축소, 이유는?
한편 F&B 부문의 축소에 대해 고 지부장은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세종호텔은 4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고의 한식 뷔페업장 ‘은하수’를 영업하고 있었다. 케이터링 사업도 상당한 규모로 진행했다. “2019년까지만 해도 F&B 부문 매출이 객실보다 훨씬 더 많았다.”고 고 지부장은 말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이후 F&B 사업을 거의 전면 중단했는데,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연회장 운영만으로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호텔 업계에서는 보통 F&B 사업을 통해 객실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데, 세종호텔은 이를 포기한 셈”이라고 그는 말했다.
# 투명하지 않은 모기업 구조
세종호텔의 모기업 구조에 대해서도 의혹은 가시지 않는다. 세종호텔의 모기업인 세종투자개발은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로 유명하다. 또한 전국 관광호텔과 전문식당에 5000여 종의 식자재를 공급하는 ‘주식회사 케이티에스씨(KTSC)’라는 자회사는 연 매출 1700억 3000만원(2023.12.31. 기준)의 기업이다. 고 지부장은 이런 상황에서 왜 호텔 사업을 축소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비정규직 증가와 아웃소싱 확대
호텔 서비스의 질 하락 우려돼
고 지부장은 호텔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호텔 업계 전반의 정규직 비율이 크게 떨어졌다. 특히 4성급 이하 호텔들의 고용 형태가 많이 나빠졌는데, 이는 결국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의 여파는 세종호텔의 근로 조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력이 줄어들면서 남은 직원들의 업무량이 증가했다. 여러 명의 직원이 담당하던 야간 근무 업무는 이제 한 명의 직원이 담당하고 있다.
세종호텔의 상황은 호텔업계의 광범위한 트렌드를 반영한다. 호텔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아웃소싱과 임시직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고용 안정성과 서비스 품질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노조 대표들은 이러한 접근 방식이 근시안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경험이 풍부하고 만족도가 높은 직원이야말로 특급 호텔을 차별화하고 고객의 재방문을 유도하는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쟁점 분석 : 경영상 불가피한 선택인가, 부당한 노조 탄압인가
회사 측 입장 (추정) | 노조 측 입장 |
-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급감으로 구조조정 불가피 | - 코로나19 충격은 인정하나, 정부 지원금 등으로 버틸 수 있었다고 주장 |
- F&B 사업의 수익성 악화로 사업 축소 결정 |
- 자산 규모가 큰 기업임에도 해고 회피 노력 미흡 (자산 매각은 10억 미만에 그침) |
-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객관적 기준 적용 시도 (외국어 능력 등) |
-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만 해고 대상이 된 것은 명백한 노조 탄압 |
사측 ‘불가피한 선택’ vs 노조 ‘선별적 해고’
대법원서 1, 2심 결과 뒤집힐까?
한편 회사 입장은 따로 내세울 것이 없다고 전한 사측 관계자는 추가적인 언론 대응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회사 측이 언론 대응을 자제해 왔음을 언급하며,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그는 “3년 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호텔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고,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직원을 내보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회사 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동안 4번의 소송을 통해 회사의 입장이 충분히 알려졌다고 생각한다.”며 “3년이 지난 지금 와서 이 문제를 다시 기사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세종호텔 정리해고 분쟁은 지난 7월 18일 2심에서 패소 후 현재 대법원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 측은 “정리해고 시점의 경영 상황만을 고려하고 이후 호텔 경영 회복 등은 판단 기준에서 제외한 것은 문제”라고 주장한다. 한 노조의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해고가 진정한 경제적 필요성보다는 조직된 노동력을 약화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고 지부장은 이르면 올해 12월에서 내년 1~2월 중 대법원판결을 예상하고 있다. 세종호텔 사건 대리인인 법무법인 여는 조혜진 변호사는 “세종호텔 상고심에서는 정리해고의 요건에 부합하는 해고였는지 여부를 법리적으로 다투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절차적인 정당성에 관련한 쟁점을 주로 다룰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 관계자는 “법원은 코로나19로 인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과 해고회피노력, 공정한 해고 대상자 선정기준 등의 절차적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3월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제된 것은 사실이고, 이로 인해 호텔 매출 급감과 경영난 발생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세종호텔에서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정리해고 절차를 2021년 8월부터 개시했기에 절차적 요건을 충분히 거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인은 “매출을 올리지 못해 결국 인력을 정리하는 수순을 밟게 되는데, 근로자 입장에서는 이를 경영자의 책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며, 노사 간 신뢰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다른 호텔에서 인력 감축이 큰 이슈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노사 간 협의와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전한 그는 “공정성과 공평성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
노조 측이 가장 이해 못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한 호텔 F&B사업 축소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취재를 하면서 역시 궁금했다. F&B에서 강세인 호텔에서 식음사업을 폐지한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인터뷰에 응한 관계자는 호텔산업 전반에 걸쳐 F&B 부문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객실 위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5성급 호텔의 경우 브랜드 가치 때문에 F&B 부문을 유지하지만, 그 외 호텔들은 수익성 때문에 F&B를 줄이려는 게 메가 트렌드”라고 설명한 그는 “때문에 일부 호텔에서는 F&B 부문을 임대로 전환하거나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매출이 늘어날수록 필요한 인력도 많아진다는, 자본주의에 따른 수순이라는 것이다.
위기를 넘어 상생의 길로 가려면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시기에 발생하는 정리해고는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이 따른다. 특히 호텔업과 같은 서비스 산업에서는 숙련된 인력의 확보가 핵심 경쟁력인데, 대규모 해고로 인해 이러한 인적 자원이 한꺼번에 유출되면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실제로 많은 호텔들이 코로나19 규제 완화 이후 급증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숙련된 인력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업계인들의 걱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이 관광산업을 확장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비용 절감 방안과 안정적이고 숙련된 인력을 통한 서비스 품질 유지 사이의 균형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세종호텔의 분쟁은 이러한 업계 전반의 문제를 축소판처럼 보여주고 있다. 정규직의 대규모 축소와 외주화 확대, 객실 청소 등 핵심 업무의 불안정한 고용형태 전환, 외국인 노동자 고용 증가 등은 고용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서비스 품질 저하도 우려된다. 경험 많은 정규직 직원들이 대거 이탈하고 인력 부족으로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야간에 300여 객실을 직원 한 명이 담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현재 대법원까지 올라간 이 사건에 업계 관계자들은 보다 관심을 두기를 희망한다. 어느 편에 서서 지지하기를 요하려는 것이 아니다. 호텔 업계가 팬데믹에서 회복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호텔이 경제성과 공정한 노동 관행, 고품질 서비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때라는 것을 전하고 싶다.
호텔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다각도의 노력 또한 필요해 보인다. 정부 차원에서는 위기 상황에서의 고용유지 지원책을 강화하고, 호텔 등급 심사 시 고용의 질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하다.
호텔 경영진들의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 숙련된 인력의 유지가 호텔 경쟁력의 핵심임을 인식하고, 노동조합과의 협력적 관계 구축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단기 수익성보다는 장기적 서비스 품질 제고에 초점을 맞추는 자세가 요구된다.
노동조합 역시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해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고용 형태 다변화에 대응한 조직화 전략을 수립하고,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의 권익을 대변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인식 제고다. 기후변화로 인해 최근 소비자들이 호텔들의 지속가능성에도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호텔이 친환경 제품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 석유 에너지를 대체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 찾아볼 일이 아니다. 호텔을 선택할 때 고용의 질, 노동권 보장 여부 등을 고려하고, 적정한 서비스 요금 지급에 대한 의식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 호텔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돼야 인력난의 고질적 문제가 해소될 것이다. 이를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종호텔 사태는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가 한국 호텔산업의 구조적 취약점을 어떻게 드러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단기적 위기 대응이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일개 기업의 문제를 넘어선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지난 호인 8월호에 실린 [HOTEL HR] 기사를 고 지부장에게 보여줬다. 지난 호의 주제는 ‘내부 마케팅’으로, 직원들이 만족해야 고객도 만족한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였다. 고 지부장이 깊이 공감하며 제목을 읊조린 것이 기억에 남는다.
오는 9월 4일,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철회 투쟁 1000일을 맞게 된다. 호텔 노동자들의 처우와 관련, 이번 기사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다뤘으면 하는 내용이 있는지 물었다.
고 지부장은 “호텔은 한 나라의 관광산업과 서비스 수준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특히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첫인상을 받는 곳”이라 말하며, “단순히 비용 절감만을 위해 고용의 질을 낮추는 것은 장기적으로 한국 관광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와 호텔 업계가 함께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답했다.
세종호텔 사태는 단순한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한국 호텔산업 전반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드러난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그리고 이를 통해 한국 호텔산업이 어떻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단기적 이해관계를 넘어 장기적 관점에서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세종호텔 발 위기가 오히려 한국 호텔산업 도약의 전화위복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