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과 함께하는 세계의 디저트] 추수감사절 식사문화의 아이콘, 펌킨파이

2019.11.01 09:20:32



가을이 온 지금 필자의 머릿 속에는 온통 늙은 호박, 특히 펌킨파이(Pumpkin Pie)에 대한 생각밖에 없다. 원조의 맛과 미국식 분위기의 펌킨파이를 찾기란 쉽지 않아, 필자는 항상 서울 어디를 가던 펌킨파이를 열정적으로 찾는다. 실제로 몇 번 먹어본 적은 있으나, 제대로 된 펌킨파이는 없었다. 얼마전 C社에서 펌킨파이를 팔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비록 최고의 맛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 먹었던 것들 중 가장 정통 펌킨파이에 가까웠다.

‘펌킨(Pumpkin)’이라는 늙은 호박의 영문이름은 그리스어로 ‘거대한 멜론’이라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됐다. 펌킨파이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매우 대중적인 디저트다. 하지만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다. 펌킨파이는 미국 추수감사절에 특히 인기가 많은데, 추수감사절 식사문화의 아이콘이자 필수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늙은 호박은 기원전 5500년경 중앙아메리카에서 처음 재배되기 시작했고, 유럽의 탐험가들이 아메리카대륙에서 유럽으로 들여온 첫 음식들 중 하나다. ‘박’이라는 식물이 유럽사에서 처음 언급된 것은 1536년인데, 얼마 안 돼 잉글랜드에서 꾸준히 재배되기 시작했다. 당시 잉글랜드는 달고 맛있는 페이스트리를 만드는 데 있어서 상당히 발전해 있었는데, 늙은 호박은 빠르게 잉글랜드인들이 즐겨찾는 재료로 발돋움했다.

초기의 펌킨파이는 우리가 아는 형태와는 달랐다. 초기의 파이는 크러스트가 없었고 속을 파낸 늙은 호박 껍데기에 구웠다. 프랑스의 펌킨파이는 크러스트가 있었지만, 크러스트는 용기 역할만을 했다. 중세시대의 펌킨파이는 여러 가지 향신료를 첨가한 형태로 발전했고, 부유계층이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는 특권층의 상징으로 여겼다. 당시에는 설탕 역시 매우 귀했기 때문에 설탕, 향신료 그리고 채소가 들어간 만찬을 대접하는 것이 곧 사회적 위치를 대변했다. 유럽국가들의 식민지 정착민들이 북아메리카에 도착한 후에도, 그들은 크러스트를 버리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음식이 귀했고, 특히 겨울철 부족한 음식을 대체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먹는 음식의 가짓수를 다양화하는 것은 배고픔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였다. 유럽인들이 중남미의 음식에 적응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당시 감자와 토마토에 독이 있다고 여겨졌지만, 늙은 호박의 경우는 달랐다. 유럽의 박과 비슷했고 맛은 오히려 더 좋았기 때문이다. 식민지 정착민들이 늙은 호박을 자신들의 음식으로 발전시키는 동안, 18세기 잉글랜드 현지인들의 펌킨파이에 대한 사랑이 식었고, 늙은 호박을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연관 지어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는 펌킨파이가 잉글랜드에게 식민지에서 일어난 일종의 ‘음식계의 독립선언’이 된 셈이다. 20세기 초가 돼서 통조림 형태의 늙은 호박이 편리하고 맛있고, 신선하고, 시간을 아껴주는 음식으로 널리 보급됐다. 펌킨파이는 미국 추수감사절의 고유한 특징으로 자리잡았고 미국 음식문화의 중심으로 남을 것이다. 나중에 펌킨파이를 먹을 기회가 생긴다면, 그 역사와 더불어 지금의 펌킨파이를 발전시킨 농업 전문가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셸 이경란
MPS 스마트쿠키 연구소 대표
Univ. of Massachusetts에서 호텔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오랫동안 제과 분야에서 일해 왔다. 대한민국 최초 쿠키아티스트이자 음식문화평론가로서 활동 중이며 현재 MPS 스마트쿠키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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