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환의 Local Food] 지역요리의 재해석

2020.11.05 08:50:00



Inspiration!
2011년 10월로 기억한다. 류니끄 개점 당시 분주히 움직이던 손과 발은 모자란 실력과 이해도가 아닌, 패기 넘치는 열정과 젊은 능력이라고 착각했었다. 도쿄, 시드니, 런던에서 8년간 온갖 고생과 값진 수행을 했었다고 생각했지만 열심히 하고 버텨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긴 수행을 끝내고 한국에서의 시작은 모든 것이 괴리에서 온 변형이었다. 외국에서 사용했던 식재료와 기물 등 환경이 많이 달라서 원하는 사이즈의 채소와 가금류 등을 구할 수가 없었다. 현대적 테크닉을 사용한 변형과 대체의 프레임을 자연스레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당근, 양파를 건조해 분쇄하는 파우더화, 거품을 만드는 거품화, 즙을 내어 졸인 후 점도제를 넣는 젤리화, -196도 액체질소에 넣어 급속냉각 등을 사용한 ‘Three Ways of~’, ‘Four Ways of~’의 메뉴들이 많았다. 그리고 일본요리와 프렌치요리의 긴 수행을 하면서 ‘나만의 Only One’ 요리를 하고 싶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현대요리의 첫 선두주자다보니 손님에게 나가는 음식은 일말의 실험 과정이었고 욕도 많이 먹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파스타, 일식은 회와 초밥, 중식은 자장면과 탕수육처럼 직관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게 무슨 요리냐’는 식의 족보 찾기에 급급했었던 것 같다. 2015년 이후 류니끄는 혹독한 검증의 시간을 지나 많은 국내외 손님들이 찾기 시작했으나 자신의 요리의 정체성을 물으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나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테크닉에만 연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국 사람이 한국을 모르는데 한국 식재료를 어떻게 알겠는가?” 내 머릿속을 세게 치고 들어오는 이 두 가지 질문은 ‘Hybrid Cuisine’이 어디에서 왔고 지금의 류니끄 ‘류태환’의 모습을 갖추게 한 근본적인 질문이 됐다.

그날 이후 일주일에 한번 주방을 나와 가까운 지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지역 리서치 초심자에게는 아무런 정보가 없어 쉽지가 않았지만 다행히 당시에도 인터넷이 활성화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지리적 표시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리적 표시, PGI(Protected Geographical Indication)는 2002년 보성 녹차를 최초로 순창고추장, 횡성 한우, 이천 쌀 등 100여 개의 품목이 등록돼 있었는데 나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일단 머릿속에 이러한 시스템을 이해하기위해 노력했다. 유럽과 일본은 일찌감치 지역의 특산물을 권장하고 개발하기 시작해 지역경제가 활성화 됐다. 예를 들어 프랑스 안쥬 비둘기, 브레스 닭, 알바 트러플, 부르고뉴 와인, 디종 머스타드 등이 있다.

아주 단순한 논리였다.
지역별로 갖고 있는 떼루아(Terroir; 기후, 토양)는 다르고 적합한 작물을 키우고 지역에서 권장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시스템이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자연스레 쉬는 날에는 지방으로 리서치를 가게 됐다.

리서치를 떠나기 전 지리적 표시를 확인하고 그 지역의 조합장이나 생산자 넘버를 알아냈다. 다행이도 긍정적으로 받아주셔서 즐겁게 식재료 여행을 떠날 수 있었고 운전하는 동안에는 리서치팀과 디테일을 얘기하며 메뉴 구성이라든지 가는 길에 보이는 이정표를 보고 즉흥적으로 지역을 리서치하고 방문하는 등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는 방법이었다. 일단 몸으로 부딪혀 알고 봐야 했다. 젊음의 패기와 열정은 무지에서 나온다했던가? 관록보다는 모르는 것을 알아야겠다는 앎의 즐거움이 앞설 때였으니, 먼 여행은 주방의 열기 속에 달구어진 몸의 온도를 낮추고 또다른 여유와 나를 찾는 시간이었다. 



먼 숲을 보며 달리는 내 자신은 이미 그곳에 있었다.
이미 그곳에서 나무를 보며 잎사귀까지 만지고 있었다. 지역 생산자들의 터프한 모습은 흙이 묻어있는 채소의 모습과 흙냄새 그 자체였다. 누구나 자기자식과 집을 사랑하듯 그들이 키우는 작물과 대지를 사랑했다. 때론 대규모의 생산성에 집착하는 비즈니스맨들도 만났지만 전자의 농업방식과 있는 그대로의 것을 지켜온 ‘부티크 방식’이 아날로그의 내 자신과 잘 맞았다. 현장의 경험은 오롯이 발로 뛰고 눈으로 직접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만져보는 데 목적을 뒀다. 식재료의 애착은 이와 같은 방식에서 싹이 텄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에 대한 사랑으로 헤리티지와 역사까지 가게 됐다. 지역에서 만나는 생산자와 그들이 키운 생산물은 고스란히 류니끄로 가져와 철저한 재료 테스트를 거친 후 새로운 메뉴로 탄생하게 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요리는 식재료를 가지고 먹을 수 있게 조리하는 행위다. 식재료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식재료의 적기는 사계절 속에 나뉘는 절기와 떼루아 그리고 지방의 식문화에 기인한다. 



이러한 시간은 고독한 셰프의 버팀목이 됐다.
인문학의 관점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의 경험은 미시적 관점에서 거시적으로 자연스레 바뀌게 됐고 매년 돌아오는 계절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했다. 그리고 우연이던 필연이던 고독한 셰프의 버팀목이 돼줬다. 30대 초반의 류태환은 40대가 됐으며 생산자는 어린 셰프의 스승이 돼줬고 지역은 놀이터가 됐다. 2015년의 소소한 식재료 탐험이 류니끄를 지탱하는 골격이 됐고 계절마다 바뀌는 여러 지역의 영감의 메뉴가 이제는 한 지역만 풀어내는 ‘심도의 지역메뉴’가 됐다.

지역 속에서의 관점과 지역 밖에서의 관점은 확연히 다르지만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지속가능한 생산과 가공이라는 ‘공급과 수요’의 궁극적 목표에 기원한다.

선순환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자연환경의 보호와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한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식재료를 만드는 사람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은 뜻이지만 지금까지 실천해온 메뉴작업이 지도 전체를 그려내듯 최선을 다해 좋은 직업인으로 성장하고 싶다.

다음 호부터는 순차적으로 서천, 장흥, 고흥 등 각 지역을 리서치하는 과정과 결과물들을 다룰 예정이다.

류태환 
류니끄 오너셰프
프로젝트 류니끄 셰프디렉터
일본, 호주, 영국에서 8년간 요리 수행을 하고 2011년부터 류니끄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지방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