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근의 Kitchen Tools] 제과제빵 3대 도구 - 거품기와 볼(Bowl)과 주걱

2021.10.04 09:00:00

얼마 전 르 꼬르동 블루 동문회에 참석했다가 동문들에게 제과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한결같이 ‘밀대, 저울, 스크래퍼’라고 대답한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물으니 ‘볼, 밀대, 나무판’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주방에서 사용하는 도구도 사람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제과 주방 기기는 모든 사람의 의견이 거의 같았는데 바로 발효기, 오븐, 믹서 이 3대 기기를 꼽았다.

사진제공_한국조리박물관

거품기의 변천사


오래 전부터 거품기는 요리에서 중요한 도구로 사용됐다. 당연히 서양의 주식인 제과제빵에서도 빠지지 않는 주요 3대 도구로 거론되곤 한다. 이 도구가 나오기 전에는 나무젓가락으로 거품을 내곤 했다. 초기 거품기는 버드나무로 만들어 쓰다가 쇠를 가공하는 기술을 익힌 후 쇠로 만든 제품을 사용하게 됐다. 지금도 벼룩시장에 가면 못 쓰는 쇠 거품기가 많이 나와 있다. 이후 나온 것은 스테인리스 거품기다. 요즘은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가볍고 견고한 거품기도 많이 보급됐다.

프랑스 가정에서 거품기를 사용한 것은 1900년대로 알려져있다. 우리나라도 1960년에 호텔이나 전문식당에서 사용했지 그 외의 장소에서는 아주 귀했다. 미군부대를 통해서 쇠 거품기가 시중에 나왔지만 그럼에도 당시 거품기 있는 식당이 드물었다. 오죽하면 나무젓가락으로 거품을 다 냈겠는가. 요즘 일하는 셰프들은 도구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현재 사용하는 믹서가 과거 제과 거품기가 발전해 만들어진 것을 모르는 셰프들이 많다. 손으로 하던 거품기에 모터가 장착되면서 다양한 제과 도구가 만들어졌다. 빵 반죽, 소스 제조 등 거품기의 기능은 다양하다.

 

손 반죽을 할 줄 아는 셰프

 

1984년 여름에 꼬르동 블루에서 제빵을 공부할 때 빵 셰프가 밀가루 반죽을 꼭 손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에는 쉽지만 조금 후에는 손목이 아팠다. 그래도 교수는 반죽을 대리석판에 두들기면서 반죽을 완성시키라고 했다. 하루는 셰프에게 동료 학생이 “믹서가 있는데 왜 힘들게 밀가루 반죽을 합니까?”라고 질문을 했다. 빵 셰프는 “유명한 셰프가 되려면 별안간 전기가 나가도 일을 할 수 있게 손 반죽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필자도 ‘맞다.’고 생각했다. 제빵에서는 손 반죽이 기본이다. 전기가 없을 때를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지금도 꼬르동 블루 학교는 손 반죽 강의를 고집하고 있다. 배울 때 기계 반죽만 할 줄 알면 창의적인 셰프가 안될 것으로 생각된다. 손 반죽을 해보고 자신있다면 기계 반죽도 손 반죽의 기준으로 시간 조절을 하면서 반죽하면 빵은 잘 나오게 돼 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가지고 연습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후배 셰프들에게 하고 싶다.

 

요리에 진심인 나라, 프랑스 시장에 가보니 관광상품으로 스테인리스로 만든 거품기를 본 적이 있다. 5cm 크기의 귀여운 상품으로 시장에서 구입한 기억이 난다. 프랑스에서는 작게 주방도구를 만들어 관광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관광지 전경 등을 이용해 열쇠고리 등의 관광상품 만드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주방에서 있었던 일


조리 거품기와 제과 거품기의 모양은 약간 다르다. 조리 거품기는 고르게 섞는 것을 목적으로 해 약간 길쭉하게 생겼고, 제과 거품기는 거품을 잘 낼 수 있도록 좀 더 넓고 둥근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셰프들은 모양에 관계없이 사용한다.

 

양식 주방에서 거품기는 주로 소스 제조하는데 많이 사용한다. 내 생각에는 가장 많이 만들던 소스가 마요네즈다. 샐러드에 필요한 마요네즈를 200L씩 만들어 사용했다. 필자가 조리를 처음 할 때 선배 셰프가 노른자 180개를 준비한 후 거품기로 마요네즈 만드는 것을 보고 놀랐었다. 몇 시간 만들기도 힘들지만 더 어려운 것은 마요네즈가 분리되면 안 되기에 더더욱 어려웠다. 한 번은 노른자 120알을 준비한 후 선배가 만드는 것을 보조하다가 거의 마무리가 다 됐는데 잠깐 일 보러 간 사이 필자가 거품기를 잡고 천천히 돌리면서 기름을 넣다가 분리가 돼 혼난 적이 있다. 그때 마요네즈를 만들던 거품기의 손잡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손잡이가 약하면 돌리기가 엄청 힘들기 때문이다. 요즘 셰프들은 모두 마요네즈를 사서 사용하니 80년도 세상하고는 너무도 다른 것을 느낀다. 거품기로 계란 반죽 등을 할 때 자기 거품기로 사용하는 셰프들도 많다. 그러니 필자는 초보 조리사들은 원시적인 방법으로 기초를 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볼과 주걱

 

두 번째로 중요한 볼은 제과에서 필요한 도구 중 하나다. 모든 것을 볼 하나로 해결한다. 제과 주방에서는 가끔 냄비가 없을 때는 볼 자체를 불에 올려놓는 경우도 많다. 양식 주방에서는 냄비 대신 스테인리스 볼로 끓이고 삶는다. 그래서 제과 주방 볼은 바닥이 검게 탄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요즘은 다양한 도구를 비치하고 있다. 고급 볼은 구리로 만들어져 있다. 프랑스 유명 빵집 벽에는 어김없이 구리 볼이 걸려 있다. 구리 볼은 소금과 식초로 세척을 하면 깨끗해진다. 현대에 와서는 크기도 다양하고 가벼워진 스테인리스 볼을 많이 사용한다. 작은 볼은 소스 만들 때 사용하고 큰 볼은 바구니 대신으로 사용한다.

세 번째로는 주걱을 선택했다. 서양에서 스크래퍼가 주걱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주걱은 원래 음식을 떠서 담을 때 사용하는 도구다. 국내에서 주걱의 첫 등장 시기를 추정해보면 경주 금관총에서 발굴 된 4, 5세기경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놋쇠 주걱이다. 이 당시 솥과 함께 출토됐는데 당시 주걱의 모양은 지금 제과에서 사용하는 주걱과 모양이 다르다. 추측하건대 과거에는 나무였다가 주조기술의 발전으로 놋쇠를 사용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주걱 용도는 다양하다. 주로 무언가 섞거나 옮기는 데 사용한다. 주걱은 다양한 디저트 만들 때 많이 이용된다. 요즘은 주걱 재질이 스테인리스 시대를 거쳐서 플라스틱과 실리콘이 유행이다. 과거에는 거의 다 손으로 해결했다. 앞으로도 도구는 계속 발명될 것으로 생각이 든다. 아마도 부식이 안 되고 강도가 있으며 위생적인 도구가 만들어질 것이고 사용자 중심으로 편리하게 인체공학적인 면이 고려돼야 할 것이다. 분해 조립도 용이해야 한다.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셰프들도 도구 개발에 신경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 달걀 커터나 감자 깎기 등은 셰프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제과에서는 중요한 도구를 선택하라고 하면 볼, 제과 거품기, 저울, 몰드, 주걱을 꼽는다. 주걱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는 제과인들은 대개 젊은 셰프들이다. 나이 든 이들은 모든 것을 손으로 눈짐작해도 무게가 정확하다. 손재주가 많은 것인지, 경험이 많아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최수근
한국조리박물관장/음식평론가
하얏트, 호텔신라에서 셰프를 역임했고, 영남대, 경희대 등 대학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다 2021년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조리·서비스경영학과 교수로 정년했다. 
현재 한국조리박물관장과 음식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