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근의 Kitchen Tools] 열두 번째 이야기 - 빵 만드는 도구, 계량컵과 틀

2021.11.18 09:00:12

 

한 번은 수평으로 깎아서 잰다. …… 한 스푼은 수평으로 깎아서 잰다. 한 티스푼은 수평으로 깎아서 잰다.”

- 패니 메릿 파머(Fannie Merritt Farmer, 1857~1915)

 

다양한 가루의 힘(力)

빵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밀가루다. 일반인이보면 색이 흰색이니 그게 그거인 거 같지만 전문가들은 밀가루 특성에 따라 용도가 달라서 구분해서 사용한다. 보통 박력으로는 쿠키를 만들고 중력으로는 요리에 많이 이용한다고 알고 있지만 정확히 구분요령을 알고 싶었다. 필자가 처음 일 배울 때 강력, 중력, 박력 밀가루를 구분하지 못해서 선배에게 물어보니 웃기만 하고 가르쳐주질 않았다.

하루는 필자를 부르더니 그걸 알려면 공부 조금 더해야 한다고 하면서 지금은 밀가루 포대에 인쇄된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인쇄된 것이 눈에 보였다. 왜 전에는 안보였는지 모르겠다. 그 후 밀가루에 대해서 공부해보니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선배는 수준에 맞게 가르쳐주는 지혜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아 오늘 유난히 보고 싶다.

 

파리 바게트의 두 가지 보물

 

필자는 빵 공부를 꼬르동 블루에서 6개월한 다음 에펠탑 근처 빵집에서 근무했다. 이곳의 출근은 5시였다. 출근하면 재료 계량하고 반죽하고 발효하고 바케트를 구워 판매한다. 필자는 주로 바게트 보조를 했다. 따뜻한 바게트 냄새, 그리고 표면은 딱딱하고 속은 보들보들한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하루에 보통 200여 개 정도 만든다. 이 빵을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 다 먹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쌀집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프랑스에서는 빵집이다. 그래서 바게트 값은 국가에서 정한다. 빵집에서 일할 때 계량컵과 빵이 이렇게 중요한지 처음 알았다 그래서 두 가지를 소개해본다. 빵틀은 밀가루 반죽한 다음 2차 발효 전에 넣는 케이스다.

 

밀가루 반죽(Dough)의 가치

 

밀가루 반죽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통속적으로 돈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다가 빵(Bread)이라는 말로 변하게 됐다. 빵과 돈은 장구한 세월의 인연을 맺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일꾼들이 하루의 일과를 끝마치면 그 대가로 화폐가 아닌 빵을 받았다. 이처럼 빵은 경제 활동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빵과 관련된 다양한 일화들이 있는데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을 찬양하는 뜻으로 나일 강에 빵을 던졌다는 기록을 통해서도 빵이 인간에게 중요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서기 2세기에 로마 황제들은 백성들에게 빵을 주고, 서커스 등의 유흥을 제공해 우민화(愚民化) 함으로써 폭동을 일으킬 위험을 줄이고자 했다고 한다.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혁명 당시에 민중이 빵을 달라고 외치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시오.”라고 응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빵의 역사

 

지금까지 알려진 빵의 기원은 이집트가 가장 먼저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인들은 노천에서 굽던 방식을 바꿔 원추형 화덕을사용하게 됐고, 발로 가루 반죽을 했다. 밀이 발효되면서 발생한 기체가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했다. 흰 빵은 가장 질이 좋은 밀가루로 만들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부자들의 식품이었다. 기원전 2세기 그리스에는 제빵의 명수들이 오늘날의 것과 흡사한 치즈빵을 비롯해 50여 가지의 빵을 구워 냈다.

 

공화정 시대의 로마에서는 빵집들이 모든 사법권을 가진 행정장관의 통치 하에 있었는데 처음에는 노예들이 나중에는 죄수들이 곡식을 빻았다. 이후 빵집들은 세력을 늘려 더 큰 수익을 얻고자 했고,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그것은 곧 제빵업자들에 대한 큰 불신을 낳았다. 1700년대 터키에서는 터무니없이 빵값이 오르자 제빵업자 한둘을 교수형에 처하는 등 제빵업자들을 가혹하게 다루기도 했다. 내용물을 속인 제빵업자는 그의 가게 문설주에서 극형에 처해졌다.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콜럼버스는 제2차 항해시에 유럽의 곡물을 카리브 연안지역에 가져갔고, 뒤이어 정착한 사람들이 아메리카 본토의 밀을 도입했다. 초기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갈색 빵과 볶음은 좋은 양식’이라며 좋아했다. 독립 전쟁기에 이르러 빵은 미국인들 식사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됐고, 대륙회의에서는 ‘미합 중국 대 육군의 빵 제조자 총감독 및 대관’을 임명했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롤러 제분기가 등장했다. 이 기계는 곡물을 빻는 고된 일을 맡아 줬으나 동시에 곡식 안에 들어 있는 단백질과 비타민을 파괴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빵과 과학

1857년에 프랑스의 파스퇴르(J.Pasteur)가 효모의 작용을 발견하면서부터 5000년의 역사를 갖는 제빵의 비밀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곧 순수 배양이 가능한 이스트가 상품으로 만들어지고 제빵법도 과학적으로 체계화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것은 빵을 만드는 기본 배합 재료다. 즉 밀가루, 소금, 물을 섞어 반죽한 뒤 부풀리는 것은 변함없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빵을 구울 때 사용하는 틀의 변화는 크지 않다. 이유는 틀 없이 굽는 빵도 많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요리를 할 때 계량컵이 필요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 주방이다. 그러나 제과, 제빵 주방에서는 꼭 필요하다. 내가 아는 이는 일본에 제과 공부를 하러 갔는데 재료 계량하는 연습을 3개월 동안이나 시켰다고 한다. 그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계량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의 손맛

 

우리나라 요리는 손맛이라고 ‘적당히’라는 개념이 만연돼있다. 필자도 호텔에서 요리를 할 때 매일 재료를 계량하지는 않고 처음 계량을 정확하게 하고 그것을 기억하려 한 다음 그 다음부터는 눈대중으로 조리를 한다. 아마도 처음 보는 사람은 왜 계량을 하지 않고 요리를 할까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평생동안 조리를 해온 선배들은 눈대중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계량을 하지 않아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데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일일이 계량해서 만든 요리가 오히려 맛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유는 식재료의 상태를 잘 알아야 요리를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과나 빵에서는 계량이 왜 중요한지 생각해보니 재료를 계량한 다음에 재료를 섞기 때문에 재료가 빠진 게 없는지 점검할 수 있다. 조리를 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요리는 재료가 한두 가지 빠지는 경우라도 소금, 후추를 잘 넣어 맛을 잘 내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빵이나 케이크 등은 한 가지라도 넣지 않으면 배합이 맞지 않아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케이크를 잘 만들기 위한 조건으로는 첫 번째가 신선한 재료, 두 번째가 정확한 계량과 배합, 세 번째가 적당한 온도다. 계량스푼과 계량컵은 조리와 제과 제빵에서 저울과 같기에 꼭 필요한 도구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