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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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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ce! Liquor_ 25th Special] 25인이 뽑은 내 인생의 술

‘술’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술 마신 아버지를 나무라시던 어머니, 대학교 입학 후 신나게 놀다 얼큰하게 취했던 일, 마시기 싫은 자리에서 억지로 마셔야 했던 기억 등 ‘술’에는 좋고 나빴던 다양한 기억들이 공존해 있다.
사실 우리는 술 뿐 아니라 모든 것에 취해 살아간다. 그 모든 취함 속에서도 ‘좋고 싫음’이 있듯,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았던 술자리가 있는 반면 정말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을 정도로 좋았던 술자리도 있다. 25년간 호텔과 외식업계에 취해 살아온 <호텔&레스토랑>은 창간 25주년을 맞아 ‘술 좀 안다’는 25인에게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내 인생의 술’을 뽑아 달라고 요청했다.
참여해준 25인 모두 술 속에서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느꼈다. 다시는 없을 그들의 술을 들여다보자.

*순서는 이름을 기준으로 가나다 순이나 편집상 바뀔 수 있습니다.

정리 오진희 기자


빌까흐-싸몬 (Billecart-Salmon)

내 인생 최고의 술은 빌까흐-싸몬(Billecart-Salmon)이라는 아주 조그만 양조장에서 만드는 샴페인이다. 이중 드라이한 로제인 브뤼 로제(Brut Rose)를 제일 좋아한다. 꼽은 이유로는 내가 Andrew Salmon 씨와 약혼을 한 이후부터 24년의 결혼동안 매년 시부모님이 가족행사나 명절 때마다 준비해서 마시는 술이기 때문이다. 이 샴페인은 빌까흐라는 프랑스인과 싸몬이라는 영국인이 결혼해 빌까흐-싸몬이라는 이름을 지니는데, 나의 시댁 성씨가 바로 싸몬이고 나도 앤드류와 국제결혼을 했기에, 내가 시댁의 가족이 된 이후로 25년간 마시고 있는 샴페인이 됐다.


꾸베 드 샤또 Cuvee du Chateau

와인도 좋아하고 맥주도 좀 마신다하는 지인들과 홈파티를 했었다. 테이블 한 가득 고급 요리들과 와인은 물론, 다양한 맥주를 즐기고 있었는데, 모두들 이런 맥주가 있냐며 신기해하고 맥주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묵직한 바디감과 깊은 풍미에 놀라워했다. 11%의 알코올, 마른 자두, 적포도, 커피, 초콜릿의 맛과 아로마가 크리미한 거품과 어우러지며 모두를 감탄케 했다. 그 날 이후, 와인 애호가에서 맥주 애호가로 전향(?)한 이들도 여럿 있다.(웃음)

권경민 저자가 뽑은 묵직한 바디감이 돋보이는 ‘꾸베 드 샤또’
벨기에 수도원 제조방식의 4가지 중 마지막 스타일인 쿼드루펠(Quadrupel)을 플랜더스 서부 잉헬문스터 성(Ingelmunster Castle) 지하의 오크통에서 10년 숙성한 맛을 재현한 프리미엄 클래스의 맥주다. 벨기에의 수많은 양조장 중에서 까다로운 가입 조건 때문에 20곳만 가입돼 있는 BFB(Belgian Family Brewers) 회원 브루어리로, 맥주 숙성을 위한 성(castle)을 소유하고 있으며, 5대째 벨기에 전통방식에 의해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샴페인 병과 같은 오목한 바닥의 두꺼운 유리병과 코르크로 마감돼있는 고급맥주로, 샴페인처럼 아이스 버킷에 서빙된다.


Ballantine’s 30Y과 Ballast Point ‘Sculpin’을 1:3으로 섞은 폭탄주

지난 여름 아버지께서 Ballantine’s 30Y을 크래프트 맥주인 Ballast Point ‘Sculpin’에 섞어 주셨다. 그 맛의 궁합은 이제까지 먹어본 폭탄주 중 최고였다. 앞으로 얼마나 Ballantine’s 30Y을 맥주와 함께 마실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한번쯤 Ballantine’s 30Y을 열었다면 시도해 봐도 좋을 듯 하다. 폭탄주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포르투칼 H&H 마데이라 와인

30년 동안 전 세계 와인을 마시고 있다. 2015년 여름, 포르투갈 마데이라섬에서 세계 3대 강화와인 중 하나인 포르투갈 H&H 마데이라 와인을 마시게 됐다. 무려 1894년 빈티지 와인으로. 이는 내 생애 마셨던 가장 오래된 빈티지 와인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122년의 세월을 넘어도 실크 같은 달콤한 꿀맛의 와인에 잠시 넋을 잃어 버렸던 그때가 여전히 새롭게 떠오르기도 한다.


Farmer’s Leap

한국에 수입 검토 당시 훌륭한 퀄리티로 많은 수입사들로부터 주목 받던 와인이다. 당시 국내 수입사 결정을 와이너리 담당 곁에서 도와줬었다. 수입 이 후 인기 와인이 돼 볼 때 마다 나를 흐뭇하게 만드는 와인이다. 기분 좋은 과일 풍미와 향이 마시는 내내 이어지는 밸류 와인이다.


듀체스 드 브루고뉴 (Duchesse De Bourgogne)

다양한 맥주를 맛보면서 비슷한 뉘앙스에 지쳐갈 무렵 한줄기의 상큼한 맥주가 있었으니, 바로 그 이름도 길고 긴 듀체스 드 브루고뉴. 그동안 신맛이 나는 맥주는 상한 것 이라고 여겨서 마시는 것을 꺼려했지만, 야생 효모와 자연발효를 통해 오히려 신맛이 도드라지는 이 맥주가 지친 나의 미각을 달래줬다. 게다가 비타민워터를 마시는 느낌으로 해장은 덤! 맥주인 듯 맥주 아닌 맥주 같은 ‘듀체스 드 브루고뉴’를 내 인생 최고의 술로 뽑은 이유다.


쉔 블루 아벨라르 2007 (Chene Bleu Abelard)

중세 유럽 최고의 사랑 이야기를 품은 이 와인은 보르도 경영대학원에서 Wine MBA 수학 중 처음으로 수입한 와인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애정을 가진 와인이다. 가격은 다소 높은 편이지만 런던 증권거래소(LSE)의 CEO가 막대한 자본으로 직접 투자한 와인으로 ‘Smart Luxury’라는 단어를 오감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프랑스 론 지역에서 최초의 슈퍼 론(Super Rhone)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와인으로, 와인 잔 가득 퍼지는 잘 익은 블랙베리, 감초 등의 향이 풍부하고 잘 숙성된 타닌의 구조감이 우아하고 힘 있게 와 닿으며 그 여운이 따듯하고 길게 느껴진다.


죠셉 펠프스 인시그니아(Joseph Phelps Insignia)

15년째 와인수입사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특정 스타일에 얽매이기 보단 정성껏 만들어진 와인은 모두 즐길 줄 아는 개방형 입맛의 소유자다. 그런 내게도 가장 특별한 최고의 와인은 있는 법. 바로 죠셉 펠프스 인시그니아(Joseph Phelps Insignia)다. 2008년 세계 최고의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최초로 방한했을 때 이 와인을 주제로 한 특별한 디너에서 통역을 맡아 그와 어깨를 나란히 했었다. 그가 이 와인에 대해 설명하던 중에 작은 실수를 했는데 나는 감히 파커에게 이를 콕 집어 물어봤다. 그는 즉시 “이 친구 말이 맞다.”며, 내용을 정정했고 이내 내 어깨를 툭 쳐주는 것이 아닌가. 이후 그 디너는 꿈처럼 흘러갔다. 와인사적 가치와 품질로도 걸출한 와인이지만 내게 이 와인은 내가 수입하는 제품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다는 자부심의 상징으로 언제나 남아있다.


슈나이더 바이세(Schneider Weisse) 컬렉션 시리즈

슈나이더 바이세 컬렉션 시리즈는 독일 유학 시절 매주 수요일마다 가졌던 맥주 모임(CAW)에서 우리와 함께 했던 맥주다. 그래서 밸런스가 훌륭하고 묘한 매력이 있는 이 맥주는 추억과 향수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2015년 12월 독일 여행시 뮌헨 슈나이더 바이세 브로이 하우스에서 Georg Schneider VI(대표)와 같이 갔던 일행과의 초대 만찬, 그때 슈나이더 맥주와 음식과의 푸드 페어링 역시 또 하나의 기억으로 남는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밀맥주 중의 하나다.


호라이센 시보리다테 나마 원주

일본 유학시절 일본 요리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 사케를 공부 하던 중 처음 접해본 열처리 안 된 사케다. 사케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제사상에 올리는 정종의 이미지가 많았는데 풍부한 과실 향과 나처럼 술이 약한 사람에게 적절한 단맛이 매력적이었다. 예전에는 양조장분들만 마실 수 있는 귀한 사케였는데, 현재는 냉장유통으로 마니아층에게 좋은 반응을 받고 있다.


글렌피딕

내 인생의 술을 꼽으라면, 바로 ‘글렌피딕’을 이야기 한다. 글렌피딕을 제조하는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가 내 인생과 닮은 점이 많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의 창업자 윌리엄 그랜트는 어릴 때부터 가축을 돌보는 일을 하다 커서는 구두 공장 및 라임 공장에서 일했다. 그 후 ‘모트랙’이라는 증류소에 회계 일을 하면서 증유 기술, 증류 산업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직접 위스키를 담그기 시작했다. 윌리엄 그랜트가 세상을 떠나고 증손자인 4대 CEO는 ‘싱글몰트’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었다. 이에 회사 직원들은 반대했지만, 4대 CEO는 반대를 무릅쓰고 싱글몰트를 출시했고, 성공한 위스키가 바로 ‘글렌피딕’이다.
나 역시 처음부터 바텐더라는 직업을 가지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연히 본 칵테일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들을 보고 이 직업에 흥미를 느꼈다. 설거지를 도와주며 업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칵테일 조주 방법을 배웠다. 더불어 칵테일 쇼를 하는 기술까지 습득하게 됐다. 지금은 업장과 협회를 운영하는 중이다.
내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주위 사람들은 많은 걱정을 했다. 특히 플레어 바텐더 대회 중 루키 라운드를 10년간 개최하고 있는데, 수익을 남기기 어려워 주위에서 많이 반대했었다.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가는 자가 고생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후배 양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으며, 이제는 많은 이들이 잘 따라주고 루키 라운드 개최를 돕기 시작했다. 이에 남들이 하지 않고 행하는 것을 걱정 했을 때 내 결정을 도와주는 건 ‘글렌피딕’ 이었다.


리헤에(利兵衛)

내가 꼽은 술은 사케 리헤에다. 리헤에를 꼽은 이유로는 정말 특별한 사연이 있는 사케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술이라고 부르고 싶은 리헤에는 술 이름이 빨간 병과 어울려 예쁘다. 일반적으로 사케 도수는 16도 전후로 빚고 있지만 리헤에는 20도의 알코올 도수를 내는 특별한 사케다. 알코올을 첨가하지 않는 순미일 경우 쌀 자체로 20도 도수를 내는 방법은 전문가도 어려운 주조기술이지만, 히도시 씨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뜨거운 열정을 알코올로 승화시키고 그동안의 기술개발과 연구를 토대로 20도 도수의 일본 최초의 준마이 긴조슈를 탄생시켰다. 20도의 도수인데도 술맛은 향기롭고 부드럽고 고급스런 맛으로 마무리해준다. 언더락으로도 잘 어울리는 멋쟁이 술이다.

 이용숙 사케 소믈리에가 뽑은 사랑의 사케 ‘리헤에’
일본 후쿠이현 술도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히도시 씨는 말한다. 자신의 인생은 “술 그 자체”라고. 히도시 씨는 후쿠이 시골 술 도가 출신으로 동경 농업대학 발효학과로 진학해술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운명적으로 나라현의 키다주조(喜多酒造) 술도가 외동딸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때 그는 섹스피어의 햄릿의 명대사 “죽어야하나 살아야하나”처럼 “사랑을 따를 것인가? 가업을 이을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됐다. 결국 히도시 씨는 사랑을 선택했다. 이렇게 탄생한 나라현 키다주조의 리헤에(利兵衛), ‘러브 사케’라 해도 어울리지 않을까?


감홍로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의 모습이 좋아 바텐더라는 직업을 선택해 일을 한지도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호텔&레스토랑>이 창간 25주년을 맞이해 내 인생의 최고의 술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많은 술이 있지만 전통주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조선 3대 명주 중의 하나이며 약리작용이 뛰어난 감홍로를 추천하고 싶다.


페이머스 그라우스(Famouse grouse)

바텐더를 시작할 때 돈도 없고 위스키는 마시고 싶었던 시절, 접한 위스키다. 가격대비 성능비가 아주 좋다. 특히 온더락으로 마시기를 추천한다. 나는 부슬부슬 비오는 날 Bar에 앉아서 이 위스키를 마시면 옛날의 첫사랑이 생각나기도 한다. 요즘에 수입되는 페이머스 그라우스를 마셔 봤는데, 맛이 변해서 좀 실망하기도 했다.


앙리자이에 에세죠 1976년(Henri Jayer Echezeaux 1976)

부르고뉴 와인의 신, 전설로 불리는 앙리 자이에(Henri Jayer)가 만든 에세죠 1976년. 외관상 상태가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 늦기 전에 마셔야 겠다는 결정으로 집에서 와이프와 기분 좋게 마신 와인이다. 상태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전설의 와인은 전설이었다. 마치 사랑과 희망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내 가슴 속에 별빛을 담은 듯한 묘한 기운이 느껴진, 그 날의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Louis XIII by Rémy Martin

2008년 대학교를 갓 졸업한 뒤 가진 첫 번째 홈파티 때였다. 그날은 작은 자취방에 작은 가스레인지 두 개로 8명의 지인들을 위해 풀코스 요리를 했다. 얼그레이 향을 넣은 초코 디저트가 나온 순간 지인들 각자는 자기만의 필살기를 꺼냈는데, 쿠바산 시가와 함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레미 마틴에서 나온 루이 13세 코냑이었다. 좁은 자취방에 옹기종기 끼워앉은 8명, 방을 가득채운 쿠바산 시가연기, 내가 만든 초콜릿 디저트와 루이 13세 꼬냑, 그리고 수다와 잡담. 절대 쉽게 만들어지지 않을 인생 최고의 마리아주였다.


감홍로

우리 술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연재하면서 이 술을 설명할 때가 가장 즐겁다. 감홍로는 역사 속 스토리가 정말 많은 술이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조선 3대 명주라고 명명했고, 골동반, 평양냉면과 함께 평양 3대 명물로 손꼽혔다. 별주부전에는 “토끼야 용궁에 가면 감홍로가 있단다.”라고 거북이가 토끼를 꾀는 장면이 나오고, 춘향이가 상경하려는 이몽룡을 붙잡기 위해서 감홍로를 내놓는 장면이 춘향전에 들어가 있다. 게다가 평양을 대표하는 술로 당대 선비들과 주당들, 기생들이 가장 사랑했던 술이라고 하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술은 보존해야할 술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슬로푸드 국제 본부에서 시작된 전 세계 각지에 멸종 위기에 처한 전통 식 재료를 보존하는 캠페인 ‘맛의 방주’에 우리나라 최초로 등재된 술인데, 멸종 위기에 처한 귀한 술이라 더 귀하게 생각되는 술이다.

▲ 이석현 회장과 이지민 콘텐츠 기획자가 뽑은 ‘감홍로’
예로부터 이강고, 죽력고, 감홍로를 ‘조선의 3대 증류주’라 했다. 우리나라 증류주는 서양의 위스키나 브랜디와는 다르게 술에 기능성 약재 등을 넣어 ‘약으로 먹는 증류주’로 발전했다. 감홍로는 홍국이나 방풍, 정향 등의 약재를 넣어 빚었다. 감홍로와 이름이 비슷한 술로는 관서 감홍로가 있는데, 이것은 증류할 때 꿀과 지초를 첨가해 술의 색과 맛을 낸다. 그러나 파주 감홍로의 단맛은 용안육에서, 향과 색은 지초나 홍국, 진피 등의 약재에서 얻어진다. 다른 전통주들과는 달리 감홍로는 다양한 칵테일로 만들기에 매우 적합하다는 평이다.


샤토 마뇰(Chateau Magnol)

2003년 9월 프랑스 최대의 Winemaker Barton & Guestier 社 , Chateau Magnol의 Wine Connaisseux(와인 꼬네쉐르, 와인전문가 과정) 출장연수를 다녀왔다. 보르도의 전형적인 샤토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와인 소믈리에로서 교육에 감명 받았다. 지하 벙커는 2차 세계대전 때 군인들의 벙커로 사용하던 곳으로 2003년에는 2만 병 정도의 와인들을 보관하는 Cave로 사용되고 있었다. 시간이 같은 장소를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던 곳에서 와인을 숙성(熟成) 시키는 장소로 변화시키는 것을 보면서 오묘한 시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카브의 맨 끝에는 이곳의 가장 귀중한 와인들만 따로 모아놓고 또 다른 철문으로 공간을 확보해놓은 ‘Paradise’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이미 낡아버린 라벨 위로 희미한 연도만을 겨우 읽을 수 있는 많은 와인들이 진열돼 있었다. 파라다이스란 이 공간의 이름처럼 어쩌면 와인의 낙원(樂園)은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다이안 플래망 와인 마스터는 이곳의 와인들 중 많은 부분의 와인을 ‘Incredible’이라고 표현하면서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가격을, 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와인이 많이 있다고 대단히 자랑했다. 그리고 시작된 테이스팅, 우리 연수생 일행들은 122년 된 와인을 한 잔 씩 테이스팅 했는데 아무 표현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테이스팅한 그 와인은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와인이었다.


불로 생막걸리

천원의 행복. 걸쭉한 불로 생막걸리는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탁 쏘는 맛이 일품이다. 어떤 안주와도 잘 어울리며, 안주가 없으면 김치를 벗 삼아 분위기 잡고 즐기기에 제격이다. 김치와도 청량함을 느낄 수 있다.


블랙 보모어 1964

위스키의 세계도 끝도 없어 넓고 깊어서 이제 고작 10여 년 넘게 마셔본 경험으로 인생 최고의 술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듯 하고, 인생 최고의 술이라기보다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위스키 중의 하나라고 표현하고 싶다. 블랙 보모어는 싱글몰트 위스키 중에서도 전설급에 해당하는 위스키 중의 하나다. 아일라섬의 보모어 증류소에서 42년 동안 숙성된 싱글몰트 위스키로,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검은 색을 지니고 있다. 위스키 애호가라면 누구나 초장기 숙성된 오래된 위스키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데 블렌디드 위스키들은 오래 숙성됐다고 해도 그 차이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싱글몰트 위스키, 그 중에서도 쉐리캐스크에 숙성된 위스키들은 숙성 년도수가 오래 됨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여 준다. 아일라 섬이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42년 동안 쉐리 캐스크에서만 숙성된 싱글몰트 위스키를 마셔보니 장기 숙성 쉐리 캐스크 위스키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맛과 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마신 블랙 보모어 1964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Duck Pond Pinot noir 2004

미국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2000년대 초반에 동네 친구이자 손님인 덕 폰드 와이너리의 Scott Jenkins 부사장이 내게 맛보여 줬던 내 생애 최초의 오레곤 피노누아 덕 폰드 피노누아 2004 빈티지가 아무래도 내 생애 최고의 와인이 아닌가 싶다. 오레곤 피노누아가 가지고 있는 3대 특징, 즉 과실 향과 산미 그리고 흙 맛(혹자는 미네랄리티라고도 표현한다.)이 균형감 있게 녹아있어 처음 마셔본 오레곤 피노누아에 흠뻑 빠지게 했고, 그 인연으로 2007년 한국에 비니더스코리아란 와인수입사를 세우게 된 계기가 됐다. 물론 이 덕 폰드 피노누아는 아직까지도 비니더스 코리아의 대표 상품이다.



제이콥스 크릭 샤르도네(Jacobs Creek Chardonnay)

내 생에 최초의 와인은 마주앙이었다. 당시엔 수입와인 자체를 만나 보기가 쉽지 않았다. 난 마주앙을 통해 단순히 와인이 무엇인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와인에 대한 첫사랑을 느끼게 했던 와인은 제이콥스 크릭 샤도네(Jacobs Creek Chardonnay)라는 호주산 화이트 와인이다. 이 샤도네는 느끼한 서양식 생선요리를 일순간 감미롭고 풍부한, 그리고 전혀 느끼하지 않은 멋진 음식으로 탈바꿈 시켰다. 이때부터 나는 와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깊이 즐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와인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사람이든 와인이든 첫사랑은 잊을 수 없는 것 같다. 20년이 넘도록 좋은 와인들을 수없이 만나 오면서 느꼈다. 아직까지는 나의 첫사랑 같은 와인이 내게 있어서 최고의 술이 아닐까 싶다.


디에볼레 키안티 클라시코 노베첸토 리제르바(Dievole Chianti Classico Novecento Riserva)

국내 최초의 이태리 식당 일폰테가 1985년 1월 10일 첫 문을 연 이후로 ‘일폰테’에서는 25년간 근무해오면서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식음료 업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항상 최고의 와인을 전도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지난 30여 년의 호텔리어 생활동안 대한민국에 수입된 대부분의 와인을 경험해 보았다고 자부한다. 그중에서도 내 인생에서 최고의 와인을 하나를 꼽으라면 십여 년 전 와인 수입업체의 권유로 처음 접해본 디에볼레사의 ‘키안티 클라시코 노베첸토 리제르바(Chianti Classico Novecento Riserva)’를 얘기하고 싶다. 키안티 클라시코를 처음 접했을때 그 묵직한 바디 감과 커피 향, 코코아 향, 장미 향 등 여러 과일향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그 맛에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키안티와 함께 고객과 소통했으며, 키안티와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눴다. 나는 키안티와 함께 남은 호텔리어 생활을 이어 나가며, 키안티와 함께 은퇴 후 삶을 향유할 것이다.

홍석일 상무가 뽑은 ‘디에볼레 키안티 클라시코 노베첸토 리제르바’
키안티 클라시코 (Chianti Classico)란 용어는 흔히 키안티라고 불리는 거대한 와인 언덕의,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 전통을 가지고 있는 지역에서 생산된 투스카니 레드와인을 이야기 한다. 1984년 이래 키안티 클라시코는 이탈리아 법이 ‘특별히 존경할만한 (Particularly Esteemed)’으로 정의하는 와인들에게만 부여되는 최고 DOC등급의 일종인 DOCG를 획득했다.
키안티 땅은 암석질이고 건조해 일하기가 어렵지만 최종 상품의 품질을 향상 시켜주는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의 완벽한 공생관계를 확립해준다.


You Raise Me Up, Cabertnet Sauvignon

롯데호텔 식음팀에서 27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와인을 접했다. 그러면서 와인이 가지고 있는 향과 맛뿐만이 아니라 와인이 의미하고 있는 스토리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음팀에서 관리자로 일하고 팀장으로 일하면
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나를 믿고 같이 희노애락을 같이하는 직원들이다. 직원들의 즐거움을 같이 축하해주고 슬플 때 같이 울어주는 것이 조직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생
애 최고의 와인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You Raise Me Up, Cabertnet Sauvignon’을 꼽고 싶다. 이 와인의 이름이 내가 식음팀장을 하면서 느끼는 직원들과의 소통,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직원들은 즐겁거나 슬프거나 할 때 서로가 힘을 주는 의미에서 이 와인을 즐긴다.


술아

오랫동안 소믈리에 일을 하다 보니 참으로 많은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공부, 여행, 만남들이 온통 술과 관련된 것은 제 인생의 축복중 하나였다. 멀리 많은 곳을 술을 목적으로 여행 다니면서도 항상 채워지지 않는 것은, 여행의 끝은 항상 다시 돌아온 떠난 자리에서 끝난다는 것을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알았다. 세계의 수많은 술들을 마시며 항상 부족했던 부분은 편안함이었던 것. 긴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 탕아를 따뜻하게 맞이해준 곳은 고향과 어머니였다. 내게 기억에도 없는 모유 같은 우리 전통주인 과하주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은 ‘술아’다.

<2016년 4월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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