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앤레스토랑 뉴스레터 신청하기 3일 동안 보지 않기 닫기

2024.04.15 (월)

카페&바

[이용숙 사케 소믈리에의 All about Sake] 사케 세계화의 초석을 다진 이바라키현(茨城県) 스도혼계(須藤本家)

곰팡이가 만든 선물, 천년의 부활

<(좌)마당 안에 있는 400년 된 케야키 나무, (우)스도혼계가 직접 재배하는 야마다 호 벼>


동경 도심에서 1시간 반 자동차로 달려 미토시(みとし)IC에서 일반 국도로 진입하면 넓은 논과 들이 펼쳐진다. 그 한가운데에 작은 산봉우리가 있고 오래된 정승집 같은 가옥이 눈에 띈다. 스도혼계 건물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안쪽에 400년 묵은 오엽송이 가지를 늘어뜨리고 손님을 맞는다. 넓은 마당에 거대한 나무와 수백 년 세월을 함께 하는 자연물이 가득하다. 스도혼계의 가훈은 ‘술, 쌀, 흙, 물, 나무’다. ‘좋은 쌀은 좋은 흙으로부터’, ‘좋은 흙은 좋은 물로부터’, ‘좋은 물은 좋은 나무로부터’라는 뜻이다. “절대 나무를 자르지 말라.”라는 가르침이 조부 때부터 내려오고 있다. 케야키라는 이름의 400년 된 나무는 이른 아침 귀를 대보면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마당의 거목들은 땅속의 복류수를 빨아 들여 집안의 우물로 고여 들게 한다. 이 우물로 쌀을 씻고 술을 만든다. 오랜 세월이 지층과 천연 필터를 만들어내는 모양이다.


좋은 사케를 만들기 위한 3대 요소는 쌀, 물, 기술이다. 스도혼계에서는 직접 쌀을 재배한다. 거기서 사용하는 야마다호(山田ほ)라는 품종은 최근 일본 사케의 주원료로 사용하는 야마다 니시키(山田錦)의 어머니격이다. 야마다 니시키 품종보다 키가 20㎝정도 더 크고 알도 더 굵다. 키가 크면 뿌리가 깊게 내려 영양분을 빨아들일 뿐 아니라, 뿌리부터 쌀알까지 이르는 수분 양이 적어 단단하고 잘 깨지지 않는 양질의 쌀이 만들어진다. 10월에 쌀을 수확해서 빠른 시간에 정미를 하고, 5개월이 지나면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쌀알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태양과 자연풍만으로 천천히 말린다(오다카케; おだ掛け). 맛있는 쌀을 키우기 위한 근본 바탕은 흙이다. 논은 온도가 높아야 그 속의 미생물이 움직이기 좋은 상태가 되고, 벼가 왕성하게 자란다. 흙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비료를 줘야 하는데, 낙엽이나 동물의 배설물을 섞은 뒤 냄새가 없어지고 손으로 만져도 부담 없을 정도로 오래 발효시킨 뒤 사용한다. 비료는 10월, 벼 수확이 이뤄진 직후부터 사용하며, 토질 관리를 위해 1년 1모작을 기본으로 한다.


<스도혼계의 마당 안 수백 년 된 우물>


술 맛을 좌우하는 물은 앞에 말한 도가 울타리 안의 커다란 우물에서 끌어온다. 이 우물은 처음 이곳에 도가가 생길 때부터 있었다. 칼륨이 많이 함유돼 효모와 발효균의 증식을 돕는다고 한다. 이 물은 스도혼계를 둘러싼 수백 년 된 고목들이 만들어냈는데 나무 주위에 자연스레 물줄기가 형성되고 합류점이 생긴다. 이 합류점에 우물을 팠다. 가뭄에도 술 빚기에 충분한 물이 나오고, 자연스레 나무뿌리와 흙에 나쁜 성분이 걸러진다. 이 나무들은 바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 술은 추운 겨울에 빚는다는 뜻으로 칸츠쿠리(寒つくり)라 한다. 여름바람에는 잡균이 많지만, 겨울에는 차고 깨끗한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도가를 둘러싼 수백 그루의 나무들은 활엽수가 대부분이다. 여름에는 바람이 불어도 풍성한 잎 때문에 나무 위로 지나가지만, 겨울에는 잎이 없어서 나무 아래까지 차고 깨끗한 바람이 분다. 술 맛의 비법이 여기에도 숨어있는 셈이다.
물론 스도혼계는 고유의 도정기술, 술을 발효시키는 시코미(仕こみ) 기술, 발효 과정의 온도를 맞추는 기술 등 다양한 자체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쌀과 물, 흙, 바람 등 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875년간 다른 도가가 흉내 낼 수 없는 술맛을 만들어낸 비결일 것으로 추측한다.


스도혼계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술 도가다. 1141년 당시 사무라이 집안이었던 스도혼계의 주변은 대부분 농가였는데, 그들이 빈곤해 영주에게 세금을 바치지 못하자 스도혼계에서 대신 세금을 내곤 했다. 그러나 세금이 점점 늘어나면서 대납이 어려워져 술을 빚어 팔기 시작한 것이 스도혼계 역사의 시작이다. 술을 빚어 파는 곳이었지만 사무라이 집안에는 간판을 달지 않는 것이 원칙으로, 지금까지도 도가에 간판을 달지 않는다. 이바라기현 카사마시(笠間市)의 작은 시골 기차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스도혼계요.”라고 한 마디만 하면 운전 기사는 되묻지도 않고 논두렁을 이리저리 달려 바로 그 대문 앞에 내려 준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가인 만큼 최고급의 사케만 빚는다. 2007년,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IWC(International Wine Challenge)에서는 세계 최초로 ‘라이스 와인’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사케가 금상과 은상을 수상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이바라기현의 스도혼계(須藤本家)다.


<(위)스도혼계의 대표군 사케들, (아래)스도혼계 55대 기업 장인과 필자>


일본 사케가 세계 진출을 시작하게 된 것은 55대 장인인 스도겐우에몬(須藤源右衛門)씨의 공로다. 875년 넘는 역사의 도가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발효에 대한 논문을 쓰고, 경제학 전문 과정도 수료하는 등 도가의 후계자로서 다양

한 공부를 마친 후 가업을 이어 55대 장인이 됐다. 그는 외국 각처를 여행하며 와인 전문가를 만나고, 자료를 모았으며 세계적인 협회와 대회에도 참가했다. 1995년 호주에 이어 미국 등지에 수출하면서 고객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유명한 와인만 찾아오던 와인 애호가마저 일본 사케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처음 미국에 진출할 때만 해도 미국 내에서 일본 술은 낮게 평가됐었다. 품질도 좋지 않고 맛도 없는 술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도 본가의 술을 선보인 뒤부터는 전혀 달라졌다. 일본 음식 뿐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요리와도 잘 어울리고 그 맛과 향이 좋아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 요리 전문가도 즐길 정도라는 새 평을 이끌어냈다.
스도혼계는 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가인 만큼 최고급의 사케인 긴죠 술만 빚는다. 비행기로 비교해본다면 이코노믹 클래스는 없고 퍼스트 클래스와 비즈니스 클래스만 있는 것이다. 그만큼 생산의 가치를 최고의 품질에 둔 것이다.
스도혼계의 대표 자랑거리는 고슈(古酒 숙성술)이다. 고슈를 빚는 곳은 많이 있지만, 일반 혼조슈를 숙성시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스도혼계는 긴조슈를 숙성시켜 만든다. 보통 숙성 과정에서 색이 노랗게 변하지만 스도혼계의 고슈는 하얗고 맑은 색을 유지한다.
스도혼계는 미국 시장에서도 일본 숙성 사케의 가치를 전하며 사케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높였다. 1993년에 빚은 것의 경우 2007년 뉴욕에서 720ℓ 한 병에 1만 3000달러(한화 1500만 원 상당)에 수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특히, 이 가격은 도가 측이 요구한 가격이 아닌 뉴욕의 와인 소믈리에들이 블라인딩 테스트를 한 결과 정해진 가격이었다고 한다. 또한 와인의 황제로 불리는 유명한 로버트 파커씨로부터 91점을 받기도 했다.


<2007년 IWC 대회에서 금상, 은상 수상>


최근 특별한 날이 찾아왔다. 지난 5월 26일 이세시마(伊勢志摩)에서 열린 G7정상회의 때 아베 수상 부인 주최 만찬회에 스도혼계의 대표 술인 카쿤코(かくんこう)가 선택된 것이다. 카쿤코 사케는 27%만 남기고 도정을 한 사케로서 독일 수상의 남편과 캐나다 수상의 부인으로부터도 일본문화의 진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스도 가업장인이 처음 도가를 맡았을 당시와 비교하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온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사케의 풍성한 향을 잘 즐기기 위해 사케 잔이 아닌 와인글라스를 사용해 보고, 사케 이름을 지을 때 영어문화권에서 발음하기 쉽고 친숙한 이름을 붙이는 등 가히 혁신(Innovation)이다. 875년을 이어온 전통의 끈을 놓지 않고, 또 세계 시장의 변화에 발맞추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스도혼계, 그 앞날이 주목된다.


이용숙
니혼슈 키키사케시(사케 소믈리에)

(주)린카이 이용숙 대표는 오랫동안 사케 소믈리에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오사카경제대학 객원교수 및 니혼슈 홍보 한국사무국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시장의 사케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사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밤’을 매년 개최, 사케에 대한 정보 공유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25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기획

더보기

배너



Hotel&Dining Proposal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