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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taurant & Culinary

[The chef_ 조희숙 편] 한식, 문화에 스며들다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빼꼼히 열린 작업실 문 사이로 얼굴을 들이니, 조희숙 셰프는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작업대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서 와~ 어휴 이게 얼마만이야. 밖이 많이 덥지?” 그녀의 미소에서 느껴지는 인품은 참 온화하다. 하지만 온화함 속에 감춰진 카리스마는 여름날 내리쬐는 태양만큼이나 강렬하다. 본지 8월호에서 만난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는 조희숙 셰프를 두고 ‘셰프들의 셰프’라 말했다. 한식을 공부하는 셰프라면 모를 리 없는, 조희숙 셰프가 걸어온 30년 한식 외길 인생. 아로새겨진 사명감이 젊은이의 심장처럼 뜨겁다.


교사를 그만두고 주방이라니요!
좋은 부모를 양성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가정교사가 됐다. 소박하지만 소중한 꿈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었고 가정의 소중함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었다. 수도여자사범대학(現 세종대학교의 전신)을 졸업하고 1981년 지금의 임용고시에 해당하는 순위고사를 치렀다. 그리고 그 해 9월, 전남 고흥에 있는 점암 중앙 중학교에 발령이 났다. 가정 과목 교사로 재직하며 2년이 되던 무렵 겨울 방학에 대학교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주방에서 한번 일해보지 않겠니?” 선배는 졸업 후 세종호텔 한식팀에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세종호텔 한식당은 국내 한식당 가운데 으뜸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아니, 교사를 그만두고 주방이라니요!” 인터뷰 도중 기자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와 버린 이 말. 당시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다. 지금처럼 셰프라는 말이 흔히 쓰이지 않던 시절, 조리사는 힘들고 어려운 직업 중 하나였다.

무던히도 추웠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12월 19일. 첫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조리 부장님까지 면접을 보고 나왔는데, 바로 조리복으로 갈아입고 일을 시작하라는 오더가 떨어졌다.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주변으로부터 손맛이 좋다는 소리도 들었고 무엇보다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12월의 호텔이 얼마나 분주한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별을 보면서 출근해 다시 캄캄한 밤에야 퇴근할 수 있었다. 밤마다 자리를 펴고 끙끙 앓았다. 속이 상한 부모님은 꿈의 직장을 마다하고 고생을 자처하는 딸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또한 딸의 선택이었다.
“고민 많았지. 아직 방학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달만 일해보고 방학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도 있었으니까.”
퇴근하는 버스에서 열 번, 스무 번이고 생각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가 어려웠지만 마음을 굳히고 나니 오히려 가벼워졌다. ‘내 안에 끼가 있다면 최대한 발휘해보자.’ 한편으론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의무감까지 밀려왔다. 세종호텔 한식팀에는 40여 명의 직원이 소속돼 있었는데 그들 중에서도 대학교 동문들이 여럿 있었다.


<1988년. 세종호텔 한식당 한가람 조리장 시절 메뉴를 기록한 노트(좌),

1992년 본지 8월호에 소개된 조희숙 조리장의 레시피(우)>


5년 즈음 지났을 무렵 세종호텔에 고급 한식당 한가람을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조희숙 셰프가 책임자로 지목돼 처음으로 한식당 오픈에 뛰어들게 된다. 이후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의 과장으로 재직하며 호텔 한식당의 기틀을 마련해갔다.


"내가 어디에 서 있을 때 가장 효율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셰프, 다시 교단에 서다
후학양성에 큰 뜻을 품는 셰프는 많다. 다만 그 방식이 저마다 다를 뿐이다. 조 셰프에게도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대학가에서 수차례 교수직 제안이 왔다. 당시 가르치는 것에 부담을 많이 느끼던 터라 쉽게 현장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교육이 필요하다면 현장에서 가르칠 테니 학생들을 보내달라던 그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꿈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셰프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다시 교편을 잡았다.
“주방에서의 마지막 날, 쓰고 있던 셰프 모자를 벗어 날짜를 기록하고 사인을 했어. 주방에서의 마지막을 기념하면서 말야.”


"현장에서 못다한 일을 학교에서 펼쳐보는거야."


현실이 만들어 놓은 종이호랑이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던 현실은 달랐다. 현장에서 쌓았던 경험과 자질은 저 너머에 있었고 점수와 성과에 따른 잣대만을 매섭게 들이댔다. 학교에 있기 위해서는 학위가 필요했고, 연구와 교육에 매진해야 할 에너지가 부수적인 것들로 소비되고 있었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지식은 아주 기본적인 지식으로 한정돼 있었다. 셰프로서 변화와 변형, 자유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무대는 학교가 아닌, 현장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실무적인 것과 멀어질수록 종이호랑이가 되는 느낌이었다.
“외적인 것이 아닌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나라는 성과지향주의가 만연해 있잖아? 요리의 기술적인 것을 가르치기보다 인간성을 리드할 수 있는 교육 자질이 더 중요해.” 그녀의 교육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2년, 4년씩 공부한 학생들의 이탈이 안타까웠고 회의감마저 들었다. 수요와 비전, 능력과 적성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무작정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봇물이 터졌다. 신라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당시 신라호텔은 ‘월드 베스트 호텔’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 외부 인사 영입이 활발히 이뤄지던 시기였다. 조희숙 셰프는 신라호텔 한식당 서라벌의 한식조리장(조리부 차장)으로 컴백을 알렸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셰프 모자를 썼다. 하지만 현장에서의 길이 순탄치 않았다. 전반적으로 호텔 한식당의 침체기가 업계를 압박해오고 있었다. 특 1급 한식당들이 하나 둘 문 닫기 시작한 것도 이 때. 신라호텔 마저 한식당 영업을 종료하면서 조 셰프도 호텔 생활을 접었다.
“나에게 퇴사를 종용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한식당이 없어진 마당에 내가 다른 부서에 있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어.”


<매실소스의 마늘쫑과 가지냉채, 작은 삼계탕, 미역국에 띄운 만두(위부터 시계방향)>


주미 한국대사관저에서 꽃피운 한식
신라호텔을 나와 ㈜제네시스의 한식당 론칭에 합류해 메뉴개발에 공을 들였다. 그렇게 매장 오픈을 앞두고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무렵,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회장이 주미 한국대사로 임명되면서 조희숙 셰프에게 대사관저 주방장으로 함께하기를 제안했다. 홍 대사는 평소 우리 음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리 문화의 전통과 계승에 관심이 많았다. 대사관은 각국 인사들의 교류의 장인데, 그들에게 선보일 우리음식을 잘 아는 셰프가 가야 한다는 게 홍 대사의 주관이었다. 조희숙 셰프는 삼고초려 끝에 미국행을 결정하고 다시 새로운 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한국 음식은 훌륭한 외교 수단이 됐다. 외교 행사에 소개되는 한국 음식에 감탄하는 손님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입소문을 타고 외교관 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쿠킹 클래스까지 열게 됐다. 어떤 한식이었을까? 화려한 기법의 양식 같은 한식이었을까?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한국 음식이야. 하지만 새롭게 표현해봤지. 상품 가치가 있는 음식의 변화... 한식도 이렇게 할 수 있구나! 라고 느낄 수 있는 변화 말이야. 나는 줄곧 한식만 해온 사람이라서 한식밖에 몰라. 다른 요소를 섞어 전혀 다른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재주는 없어.”


이게 무슨 한식이야? 그런데 먹어보니 한식 맞네?
대한항공 퍼스트클래스 기내식 메뉴 개발을 하던 시절, 처음으로 한식 풀코스 메뉴를 선보인 것도 조희숙 셰프다. 기내식 메뉴 개발 마무리 단계의 첫 메뉴 시연에서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이 했던 말이 조 셰프의 요리를 한마디로 정리해줬다고. “처음 보고는 한식이 맞나? 했는데 먹어보니 정말 한식이더라…”
“한식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흔들어보지만, 흔들 수 있는 마지막 요소까지 남겨놓는 거야. 그것마저도 한식이 되게.”


한식이 세계화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나요?
자꾸만 사람들이 한식을 문제투성이로 만들어버린다. 대체 무엇을 바꿔야 하냐며 묻고 또 묻는다. 그럼 나는 다시 묻는다. “왜 바꿔야 하는데요?” 한식은 한국인의 문화 그 자체다. 오랜 시간 동안 철학과 환경적인 요소가 융합돼 고착된 문화가 어떻게 잘못된 게 있을 수 있을까? 배척하는 게 아닌, 받아들이는 게 문화다. 왜 이렇게 먹게 됐을까? 어떻게 만들었을까? 재료는 어떻게 사용했을까? 사람과 식문화가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결국 식문화는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다.


뉴 코리안의 등장
갑자기 퓨전이 붐이 됐다. 믹스 앤 매칭이 시장의 원리에 의해 지속되고 소멸됐다. 그러다가 우리의 것들이 중심축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한식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중심축이 정부 주도로 옮겨갔다. 다양한 이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모던 한식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뉴 코리안 퀴진이라는 분야가 생겼다. 다양한 시도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어하던 셰프들이 어느새 뉴 코리안 퀴진이라는 분야에 카테고리화됐다. 이러한 호칭이 불편하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빠르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으니까. “한식 셰프인가요?”라고 물으면 “네.” 라고 답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러한 현상을 두고 조 셰프는 “틀렸다.”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것이 무엇인지 중심을 잘 잡고 가길 바랄 뿐이다. 우리의 것에 잘 버무려 낼 수 있다면 한식의 가능성은 배가될 테니까. 여기서 기자는 궁금했다. 우리가 한식이 아닐까 짐작하는 요리를 “한식이오.”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쉽지 않았으니까.
“김치 빠에야와 푸아그라 전. 어떤 게 한식인 것 같아? 양식에 한식적 요소를 얹는 것과 한식이지만 재료에 변화를 주는 것이 보이지 않아? 한국적 요소를 느낄 수 있으면서 기법마저 한국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지. 이젠 재료에 국경이 없어졌잖아.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 외치면서 정작 가장 한국적인 요소를 못 찾는 게 안타까워.”         


이 땅의 한식을 위해
한식에 관심을 갖는 건 참 좋은 현상이다. 호텔에서 한식을 무시하고 천대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한식을 한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한식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식보다 우선되는 게 양식이다. 내로라 하는 스타 셰프 중에서 오롯이 한식을 하는 셰프가 있는가? 가까운 일본에서는 자국의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극진하다. 우리가 무시하는 한국음식을 세계인에게 사랑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호텔에서는 메인 키친, 콜드 키친, 베이커리 키친 등 각 부서로 나뉘어 있지만 모두 양식당을 위한 키친이다. 반면 호텔의 한식당은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구조다. 육수도 끓여야 하고 나물도 무쳐야 하고 떡도 내야하고 모든 준비에서 완성까지 한곳에서 이뤄진다. 한식을 위한 키친이 많아지면 어찌 한식이 발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엄마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그녀는 그렇게 말을 이어갔다. 묵묵히 걸어온 길에 뿌려진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한식을 공부하는 젊은 셰프들에게 시행착오를 되물리지 않으려고, 그녀는 오늘도 기록할 것이다.
“나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고 싶어. 내가 그동안 한식을 해오며 궁금했던 것들, 관습적으로 해왔던 요리들에 과학적인 토대를 만들 거야. 현장에서 적용할 만한 베이식한 서적들 말야. 두고두고 꺼내 볼 수 있는.”


Epilogue  뭔가 오랜 숙제를 했다…라는 느낌이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소중한 가정을 일깨워주고 싶어 했고 좋은 부모로 교육하고자 했던 그녀였기에, 조희숙 셰프의 음식은 언제나 집밥처럼 따뜻하다. 그녀에게서 한식을 배운 사람이라면 한국음식에 대한 온정(溫情)도 고스란히 알아가리라. 그래서 그녀의 작은 스튜디오가, 그녀의 앞치마가, 그녀의 티스푼이 부럽기까지 하다.


조희숙 셰프  세종호텔,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호텔 신라 한식당을 이끌어오며 호텔의 여성 셰프로 주목할 만한 획기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제네시스의 메뉴개발 고문, 주미한국대사관 총주방장을 역임했으며 경남도립 남해전문대학, 대전우송대학교에서 외식조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양성에 매진해왔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샘표 맛 연구 프로젝트, 기업 메뉴 컨설팅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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