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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6 (화)

레스토랑&컬리너리

[Dining History] 국내 파인 다이닝의 계보를 읽다

②혼돈 속의 파인 다이닝, 미래지향적인 토대 마련해야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발간된다. 이를 두고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세계적인 레스토랑 평가서가 한국에서 처음 발간된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미식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가늠케 한다. 하지만 급격한 성장에는 성장통이 따르기 마련. 국내 파인 다이닝 업계에 공존하는 빛과 그림자를 살펴봄으로써 균형 있는 발전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세계인이 이목이 집중될 미식의 도시, 서울을 기대해본다.


파인 다이닝은 관점의 차이
취재에 앞서 파인 다이닝의 사전적 용어가 아닌, 파인 다이닝이라 일컫는 기준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파인 다이닝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프렌치를 베이스로 한 정갈한 서비스, 잘 세팅된 테이블, 인테리어, 작고 섬세한 코스 요리, 고급 식재료, 포멀한 서비스, 프리젠테이션 등으로 정의하기엔 기준이 모호하다. 내가 파인 다이닝이라고 생각한 레스토랑을 다른 누군가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에스테번의 송훈 셰프는 파인 다이닝은 관점의 차이라고 말한다. 파인 다이닝인지 아닌지를 놓고 가르기보다 셰프의 정체성이 담긴 음식 스타일로 보는 것이 파인 다이닝을 이해하는 데 더 가깝다는 것이다. 셰프’s 다이닝으로 하되, 부제로 레스토랑의 콘셉트을 잡아주는 것. 이를테면 셰프 본연의 정체성이 담긴 요리에 비스트로인지 프렌치 클래식인지 콘셉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본 기사에서는 파인 다이닝을 외식 업계의 다양성에 근거한 큰 개념의 트렌드로 정의하고 본론에 들어간다.


<롯데호텔서울_피에르가니에르 서울>


파인 다이닝의 화려한 외출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최와 외국인의 유입이 한국의 식문화 패턴을 바꿔놓았다. 매스컴에서 요리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전국에 조리학과가 급격히 증가했고 2000년대 들어서 조리유학이 붐이 되더니 파인 다이닝에도 새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던 원 테이블 레스토랑, 해외의 미쉐린 레스토랑, 스타 셰프들의 소식 등이 미식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2008년에 피에르가니에르 서울이 롯데호텔에 들어오면서 미쉐린 레스토랑의 입성을 환호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해외 조리유학파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다. 이들은 외국의 미쉐린 레스토랑 근무 경험과 유명 조리학교 졸업 등의 화려한 이력을 바탕으로 파인 다이닝의 본격적인 물꼬를 텄다. 젊은 셰프들의 등장과 함께 청담, 신사, 압구정을 중심으로 로드샵이 활성화됐으며 파인 다이닝의 성장을 알렸다.


< 랩24>


로드숍 중심의 레스토랑 문화 행사 열려
파인 다이닝의 성장과 더불어 로드숍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도 생겼다. 청담동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을 중심으로 모인 그랜드테이블협회는 2005년부터 레스토랑 위크를 개최하며 파인 다이닝의 문턱을 낮추기도 했다. 레스토랑 위크는 일정 기간 동안 레스토랑 메뉴를 50% 할인해 더 많은 사람에게 파인 다이닝의 기회를 제공하는 뉴욕 레스토랑 위크를 모티브로 삼았다. 이후 이 행사는 현대카드 고메 위크, 시티카드 레스토랑 위크로 발전됐고, 2010년부터 세계 스타 셰프들을 초청해 각국의 식문화를 소개하고 공유하는 서울 고메 행사가 TV조선 주최로 해마다 열리고 있다. 


호텔 다이닝 아닌 로드숍에서 파인 다이닝 트렌드 주도
전반적으로 로드숍의 분위기가 모던하면서 캐주얼한 파인 다이닝 콘셉트로 흘렀고 음식 수준도 높아지다 보니 파인 다이닝의 대표성을 띤 호텔 다이닝이 빠르게 트렌드를 흡수하는 로드숍을 예의주시하기에 이르렀다. 프렌치가 대세이던 호텔의 다이닝은 이전의 무겁고 클래식한 패턴을 벗고 미국식, 스페인식의 모던 클래식 다이닝으로 변화됐고 해외 스타 셰프 초청 프로모션을 선보였다.
달라진 고객 성향도 한 몫 했다. 유학, 여행 등으로 외국의 파인 다이닝을 경험한 고객들은 끊임없이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파인 다이닝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신속히 반영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과거에는 로드숍들이 호텔 다이닝에 경쟁이 안 됐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오히려 로드숍들이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와 고객의 요구를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
롯데호텔 모모야마의 김선희 총괄선임책임자는 “호텔 입장에서는 로드숍의 빠른 성장이 위협이 되기도 한다.”면서 “로드숍은 오너 셰프이거나 주방과 경영만으로 운영이 이뤄져 의사결정이 빠른 반면 호텔은 의사 결정 단계가 길고 제한이 많아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일일이 대응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로드숍, 안정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 다이닝
상황이 이렇다보니 호텔은 보수적인 이미지로 비춰지거나 트렌드에 뒤쳐져 자기정체성을 잃기도 한다. 반면 로드숍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외국의 많은 미쉐린 레스토랑들은 음식보다는 서비스를 놓고 고민한다. 테이블 수가 적을수록 요리와 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고 미쉐린 별을 획득하기도 유리하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관리가 어려워 기존의 품질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작은 규모의 레스토랑으로 시작해 미쉐린 별을 획득하게 되면 세컨 브랜드를 론칭해 비즈니스를 키워가는 경우가 많다.
같은 재료를 놓고 어떻게 창의적으로 표현하는지- 즉 새로움을 추구하고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을 셰프의 역량으로 본다면 안정성과 일관성은 서비스의 기본이다. 현대카드 하우스 오브 더 퍼플의 홍재경 대표는 “이런 안정적인 서비스를 잘할 수 있는 곳은 호텔 다이닝”이라며 “새로운 것에 변화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안정적으로 꾸준히 가는 것은 호텔만의 강점”이라고 말한다.   

 

<(좌) 알버트 아우 셰프(마카오/홍콩, 마쉐린 3스타), (우)피에르 가니에르 셰프(프랑스, 미쉐린 3스타)>


파인 다이닝의 발전이 낳은 산물, 미쉐린 가이드
파인 다이닝 업계가 미쉐린으로 술렁이는 분위기이다. 이를 반영하듯 곳곳에서 암행 평가단에 대한 제보가 전해지면서 보이지 않은 경쟁과 부담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호텔은 실정상 미쉐린이 접근할 수 있는 소지가 적다. 한 호텔 관계자는 “호텔의 레스토랑에 별이 부여되는 경우는 드문 데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처음 발행되다보니 아무래도 한국적인 음식에 점수를 더 주지 않겠느냐.”면서 “미쉐린은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아니므로 고객에 의한 평가를 기준으로 삼겠다.”고 전했다.
한편 농식품부는 한식세계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내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의 발행을 위해 오래전부터 물밑작업을 진행해왔다. 본지 2010년 10월호에 게재된 ‘특별연재 한식세계화 지금이 적기’를 보면 당시 농식품부 한식세계화 담당 강혜영 사무관의 말을 인용해 “한식세계화 초기에 미쉐린 가이드의 유치를 위해 노력해왔으나 당시에 그들은 한국음식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또한 “국내외로 한식이 널리 알려지면서 한식의 우수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반응하고 있다”면서 달라진 상황을 알렸다. 우리나라의 미식 수준이 과거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미쉐린 가이드의 유치가 단순히 그들의 주관적인 평가에 불과하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국내 미식수준의 향상과 파인 다이닝의 확장이 가져온 의미 있는 변화라고 볼 수 있다.


파인 다이닝 시장의 불안 요소
- 경영 노하우가 담긴 체계적인 구조 돼야
파인 다이닝이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고민해야 할 것도 적지 않다. 한 유명 레스토랑에 수입 식재료를 납품하는 소매업자는 “거래처 900여 곳 중 20여 곳만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면서 “아직 시장의 포션이 작고 저변화되기 힘들어 파인 다이닝 시장이 꾸준히 유지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파인 다이닝 시장이 불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밀레니엄 서울힐튼 식음료부 홍석일 상무는 그 원인을 다이닝 업계의 체계적이지 못한 구조에 있다고 말한다. 홍 상무는 “이미 대기업이 외식 시장의 주요 상권을 잠식하고 있는 상태여서 대기업이나 투자자에 의해 파인 다이닝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설명하며 “중소기업, 소상공인이 활성화돼 그들에 의한 지속적인 투자가 밑받침되는 건강한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따라 전문 경영인의 역할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파인 다이닝은 식재료, 기물, 인건비 등이 차지하는 지출이 큰 편이다. 따라서 아무리 오너 셰프에 의한 파인 다이닝의 시대가 도래하고 음식의 품질이 좋아지더라도 경영에 대한 노하우 없이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겉보기에는 손님이 많아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보여도 지출의 폭이 커 유지가 힘든 파인 다이닝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기도 한다. 따라서 요즘은 컨설팅 업체를 통해 전문 경영인이나 영업력을 갖춘 지배인을 별도로 고용하거나 투자자를 통해 주방과 경영을 분리하는 곳이 늘고 있다.


<밀레니엄서울힐튼 시즌스>


- 부동산 시장에 흔들흔들, 질적 저하로 이어져
파인 다이닝 시장을 불안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원인은 부동산 시장이다. 흔히 “레스토랑을 물색할 때 목이 좋은 곳에서 장사를 해야 잘 된다.”고 한다. 하지만 소위 목이 좋은 곳은 그만큼 임차료도 비싸다. 레스토랑에서 지출되는 고정비 중에서도 임차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임차료 상승폭이 커지면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옮겨 다니거나 고정비를 낮추기 위해 메뉴에서 식재료 단가, 서비스 인력 등을 감축해야 하므로 결국 다이닝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플레이팅의 김진표 대표는 “부동산의 가치로 창업의 기준을 삼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상권을 개척해 자리의 가치를 높일 것”을 조언하지만 이 경우에도 최근 불거져 나오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의 정체지역(주로 주거지역)이 점차 활성화되고 개발이 가속화됨에 따라 상승하는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바깥으로 내몰리는 인구 이동 현상을 말한다. 이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다이닝 시장에도 나타나고 있다. 상권이 활성화됨에 따라 임차료가 상승하고, 기존에 세를 형성했던 다이닝들은 다른 곳으로 내몰리거나 문을 닫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간판이 걸리고 임대료만 비싼 특색 없는 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홍대 인근이다. 이곳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B씨는 “대기업 브랜드가 상권을 장악하면서 높아진 임차료를 견디지 못하고 임차료의 변동 폭이 낮은 곳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었다.”면서 “그 때 옮기지 않았다면 지금쯤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를 떠안고 있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중국어, 일본어 문구들이 가게 앞을 장식하고 대형 관광버스가 비좁은 골목을 메우고 있지만 홍대 인근도 예전에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과 맛집이 조화를 이루던 때가 있었다. 이 레스토랑들은 결국 인근으로 상권을 넓혀 상수동, 합정동, 연남동 등지로 자리를 옮겼다.
이태원에 열정도(고층건물에 둘러싸인 섬 같다 해 붙여진 이름)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원래 인쇄공장단지가 있던 곳인데 모두 빠져나간 빈 공간을 서촌, 공덕, 이태원 등지의 청년 장사꾼이 모여 상권을 이루면서 명소가 됐다. 특히 비어있는 장터라는 뜻의 공장空場은 매주 둘째주 토요일 저녁 전국에서 활동하는 푸드 트럭, 예술인들이 모인 야시장으로 채워지면서 5000여 명의 사람들이 다녀가는 트렌디한 장소가 됐다. 하지만 이곳도 대기업과 프랜차이즈들이 장악하면 또다시 다이닝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최근 서울의 주요 상권에 포진돼 있던 대기업의 외식 브랜드와 프랜차이즈들이 줄줄이 손을 털고 나왔다. 높아진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다시 상권이 형성된 곳을 물색할 것이고 결국 상권 붕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이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것이 장기안심상가 제도이다. 장기안심상가는 5년 이상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상가 건물주에게 최대 3000만 원까지 상가 리모델링비를 지원하는 제도로 서울시가 9억원의 예산을 들여 올해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1,2차에 걸쳐 선정된 대상자가 35명에 불과할 것 으로 보여 실효성이 얼마나 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파인 다이닝 업계가 걸어가야 할 길


“파인 다이닝의 흥망은 결국 그 나라 국민의 경제력과 정비례한다. 보통 식당업을 생각할 때, 실내장식이나 식자재 공급, 주방 시스템, 테이블과 수저 세트 등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부분만 본다. 하지만 파인 다이닝은 철저하게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는 것이 더 맛있고, 무슨 와인을 곁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연구하고 서비스의 수준도 높여야 한다.”


- 파인 다이닝의 가격 거품 없애고 경쟁력 갖춰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홍 상무는 “국민 소득은 계속 높아질 것이므로 파인 다이닝도 함께 성장할 것”이라며 파인 다이닝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한편, “파인 다이닝의 가격 거품을 없애고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결국, 내수 순환 발전이 외식시장의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므로 한순간 거품이 사라질 것을 예측해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 셰프의 역량 강화해야
파인 다이닝에 고객은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셰프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요리를 연구하고 트렌드를 선도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게 됐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음식을 선보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떤 요리가, 프레젠테이션이 인기를 얻으면 어느 순간 레스토랑마다 짜 맞춘 듯 같은 요리가 선보여질 때도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송훈 셰프는 “경계를 구분하기보다 셰프 본연의 음식을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카피보다 창작, 발명으로 음식문화의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고객에게 다양성을 선보이는 것이 셰프의 몫이라는 말이다.
파인 다이닝의 화려한 겉모습과 다르게 저임금 문제와 노동시간은 열정 페이로 회자되며 오래전부터 불거져왔다. 특히 최근에 셰프들의 TV출연이 많아지면서 팬층도 두꺼워지고 셰프의 권위가 상승된 반면, 이런 모습만 쫓아 지원했다가 곧 저임금과 많은 노동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노동시간을 준수하고 임금을 제대로 주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 이를 통해 능력 있는 새로운 인력을 양성하고, 이는 다시 다이닝 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 미래지향형 파인 다이닝
HMR(Home Meal Replacement; 가정간편식)도 파인 다이닝의 새로운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가 된 HMR 시장은 1인 가구의 증가, 여성의 사회진출과 관련이 깊다. 특히 최근에는 셰프가 만들어주는 배달식도 생겨 꾸준한 인기를 얻는 등 향후 파인 다이닝이 HMR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다양한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한 할랄 푸드, 나라별 세분화된 파인 다이닝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똑같은 음식이 아닌, 차별성을 높이기 위해 메뉴에 스토리를 담아 고객에게 전달하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역할도 커질 것이다. 이에 따라 특화된 식재료를 활용하고자 로컬 푸드, 현지 구매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호텔 전성규 주방장은 현 트렌드를 메뉴의 다양화, 소량화로 보고 small, simple, modern, classic을 요리에 반영했다.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 나인스 게이트 그릴에서는 플레이트에 담긴 음식의 양을 1/3로 줄이고 다양하게 구성해 선보이고 있다.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_ 나인스 게이트 그릴(푸아그라 테린, 램볼, 카파치오)>


- 파인 다이닝 서비스도 부응해야
요리의 트렌드가 변화하듯 서비스의 트렌드도 변한다. 일본의 서비스는 기모노를 갖춰 입고 허리 굽혀 인사하는, 절도 있으면서 정중한 태도로 유명하다. 과거에는 이런 일본식 서비스를 따르는 파인 다이닝이 많았지만 점차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서비스로 가는 추세이다. 천편일률적으로 따라 하기보다는 고객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진심이 담긴 서비스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호텔 서비스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에는 고객이 왕인 였다. 잘 차려입은 수트, 단정한 서비스의 지배인이 고객을 응대하는 것 자체로 귀족 고객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의 서비스는 하인이 아닌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 같은 서비스로 변하고 있다. 


<(위) 스시모토 스시카운터, (아래) 모듬 사시미&떼땅저, 브륏 리저브 마리아주>


파인 다이닝 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고객의 에티켓
한 유명 레스토랑에서 영업 시작 30여 분을 앞두고 주방과 홀 직원이 모여 예약사항 등 업무 공유를 위한 조회가 열렸다. 이날 분위기를 무겁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노 쇼에 관한 문제였다. 파인 다이닝이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지만, 파인 다이닝을 이용하는 고객의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하루 전, 혹은 당일 예약을 취소하거나 심지어 전화도 없이 아예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고객도 있다. 고객이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으면 그 시간을 예약하지 못한 다른 고객에게도, 고스란히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레스토랑에도 피해다. 예약은 레스토랑과 고객과의 신뢰에 기반하는 약속이므로 이에 대한 인식이 정착되지 않는다면 노 쇼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최현석, 오세득 셰프 등이 소속돼 있는 플레이팅에서는 소속된 스타 셰프들과 함께 노 쇼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특히 최현석 셰프는 지난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노 쇼족을 언급하며 노 쇼는 약속을 저버리는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노 쇼 문제를 개선한 사례도 있다. 일부 호텔의 파인 다이닝에서는 노 쇼 방지를 위해 예약 시 보증금Deposit을 받기도 하는데, 예약날짜에 임박해 예약을 취소할 경우 보증금의 일부를 예약 취소 비용Cancel Charge으로 부과하는 방법이다. 롯데호텔 모모야마의 김선희 총괄매니저는 “롯데호텔 모모야마는 2014년부터 노 쇼에 따른 보증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면서 “예약 시 보증금과 관련해 고객의 충분한 양해를 구한 뒤 노 쇼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예약을 해놓고 가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 고객이 미안하다며 대신 다른 고객을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김 총괄매니저는 “예약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에게도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는 일은 파인 다이닝 발전의 토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보증금 문제는 여전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약 시 보증금에 대한 양해를 구해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파인 다이닝의 급격한 성장세와 견주어서 바른 예약문화 정착에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테이블 매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파인 다이닝을 주축으로 이뤄진 레스토랑 위크 행사를 총괄했던 한 업계 관계자는 “파인 다이닝의 높아진 수준과 달리 아직 고객의 수준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며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입장하거나 테이블 집기 등을 가져가거나 훼손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최근에는 애완동물 입장 제한처럼 어린이 입장 불가를 선언한 곳도 적잖다. 아이의 지나친 행동이 다른 고객들에 피해가 된다는 말인데 이를 방관하는 부모의 태도에 업계가 꺼낸 레드카드인 셈이다.


<No kids zone 안내문>


맛은 파인다이닝의 절대적인 기준 될 수 없어
다이닝의 평가 기준은 맛+α. 최근에는 여기에 가성비라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치면서 가격 대비 맛이 어떤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플레이팅의 김 대표는 “아무리 유명한 미쉐린 레스토랑을 찾더라도 누구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컨디션으로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맛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맛을 논의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맛을 파인 다이닝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아는 만큼 즐길 수 있고 나아가 작품을 통해 힐링을 얻는 것처럼 요리도 마찬가지. 파인 다이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맛만이 아닌 플레이팅, 서비스, 인테리어, 식재료 등 전체적인 가치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위) 파크하얏트서울 코너스톤, (아래)오크우드프리미어인천 Panoramic65>


한국인의 정체성 담은 외식 문화로 거듭나야
지금까지 파인 다이닝의 성장 과정과 파인 다이닝의 성장이 가져온 것들 그리고 미래지향형 파인 다이닝에 필요한 요소들을 살펴봤다. 이것을 급격하게 성장한 파인 다이닝의 흐름에 끼워 맞추기보다 다각도의 노력과 고민이 업계와 고객이 상생하는 길로 안내할 것이라고 본다. 아무리 잘 차려진 식탁에서도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파인 다이닝을 즐기는 모두의 노력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은 외식 문화로 거듭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명품은 오래될수록 그 가치를 더하지 않나. 우리나라의 파인 다이닝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INTERVIEW] 해비치 호텔 & 리조트 이민 대표



“이제는 오너 셰프에 의한 파인 다이닝 시대가 도래했다고 봐요. 여기엔 유학파들이 큰 몫을 해줬어요. 외국에서 튼튼한 기초와 경험을 쌓은 셰프들에 의해 시장은 양분화됐고 결국 실력으로 승부하게 된 거죠. 이런 면에서 파인 다이닝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Q. 셰프 출신 경영자로 업계에 귀감이 되고 있으신데, 국내 파인 다이닝에도 전문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말이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주방과 경영을 겸하는 것은 어려워요. 음식의 맛은 기본으로 하더라도 홍보, 단골 고객을 확보하는 영업력이 있어야 하거든요. 일원화할지 이원화할지는 본인이 잘 판단해야죠. 이 모든 걸 혼자 해서 비용을 절감하거나 지배인, 홍보 대행을 해줄 전문가를 찾거나. 저라면 후자를 선택해요. 어느 정도 자신의 역할이 커졌다고 생각하면 그 때부터는 직접적인 경영을 오너 셰프가 해도 될 것 같아요.


Q. 조선 호텔에 오래 근무하셨는데요. 해비치 호텔&리조트로 오시면서 총지배인과 대표이사를 겸하시다가 지금은 대표이사 직무만 하고 계신데, 그때나 지금이나 벤치마킹 등 해외 출장으로 외국의 파인 다이닝을 많이 경험해보셨을 듯 합니다. 우리나라의 파인 다이닝에 비춰봤을 때 특별히 느낀 점이 있으신가요?
서비스적인 면이죠. 외국의 오너 셰프들은 투자자를 끼고 지분을 받아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음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죠. 그렇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것은 두말할 것 없지만 서비스에서 차이가 나기 마련이에요. 아무래도 로드숍은 서비스의 품질이 떨어질 수 있어요. 일정 부분 비정규직인 것도 영향이 있고요. 파인 다이닝에 걸 맞는 서비스를 보여줘야 합니다.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가 음식의 맛에 초점을 맞췄다지만 부가적으로 서비스와 데코레이션도 포크, 나이프로 표시가 되거든요. 우리나라의 파인 다이닝은 너무 음식에만 집중하는 나머지 서비스는 간과하기도 해요. 자연스러운 서비스와 탁월한 고객응대. 외국의 파인 다이닝과 비교했을 때 차이점이죠.


Q. 3~4년 전만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파인 다이닝이 단시간에 눈부시게 성장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우려 반, 기대 반인데 개인적인 견해가 있으신가요?
긍정적이죠. 80년대 후반 올림픽이라는 이슈가 있으면서 프렌치를 기반으로 한 파인 다이닝 바람이 살짝 불었어요. 하지만 큰 힘을 받지는 못했죠. 3~4년 전 쯤부터는 프렌치 베이스가 아닌 한식, 퓨전, 이탈리안을 중심으로 파인 다이닝 시장이 다양화 됐고요. 오너 셰프에 의한 파인 다이닝이 이슈가 된 건 2000년대 후반이죠. 1997년 1998년에 시안, 라쿠치나 등의 파인 다이닝도 있었지만 오너와 셰프가 따로 있었어요. 2008년에 임기학 셰프의 프렌치 비스트로 레스쁘아가, 2009년 초에 임정식 셰프의 정식당이 등장하면서 오너 셰프의 파인 다이닝이 화제가 된 것 같아요. SNS가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식당계의 얼리 어답터로 불리는 블로거들이 있었어요. 당시 테이스티 블루바드에 있던 최현석 셰프도 블로거들에게 유명했고요. 블로거들에 의해 셰프가 세상 밖으로 처음 나왔다고 봐요. 이후 SNS로 이런 현상이 확산됐고 이걸 방송이 터트려 준거죠. 이제는 오너 셰프에 의한 파인 다이닝 시대가 도래했다고 봅니다. 여기엔 유학파들이 큰 몫을 해줬어요. 외국에서 튼튼한 기초와 경험을 쌓은 셰프들에 의해 시장은 양분화됐고 결국 실력으로 승부하게 된 거죠. 이런 면에서 파인 다이닝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Q. 파인 다이닝이 많이 생기는 만큼 문을 닫는 곳도 많습니다. 외식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경제적인 부분 그리고 영업력입니다. 얼마 전 2층짜리 단독주택을 개조해 독채로 사용하고 있는 파인 다이닝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한번 수지타산이 맞는지 따져봤죠. 월세를 5000만 원으로 잡고 15명 직원 인건비를 따져 계산해 봐도 지출이 2~3억은 되겠더라고요. 좌석 수나 객단가를 고려했을 때 수지타산이 맞지 않거든요. 일단 임차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죠. 자기 건물이나 오너 셰프가 아닌 이상 이런 구조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어요.
우리나라는 트렌드에 민감합니다. 반짝 붐이 일었다가 2~3개월 후면 금방 사그라들어요.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고는 유명세만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이죠. 처음엔 호기심으로 한두 번 찾아갈 수는 있겠지만 금방 식상해져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그럼 맛으로만 승부할 수 있을까요? 안 돼요. 영업력이 받쳐줘야 해요.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너 셰프를 꿈꾸죠. 후배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작은 규모의 레스토랑의 경우, 영업력을 갖춘 오너 셰프라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투자자를 끼고 고용되기도 하죠. 이런 경우엔 영업에 대한 부분을 서포트 해줄 수 있으니 장점이 될 수 있겠네요.


Q.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발간을 두고 업계가 술렁이는 것 같습니다. 해비치는 제주에 있어서 이번 평가에서 제외가 됐는데 아쉬우실 것 같아요. 이번 미쉐린 발간을 두고 주변 분위기는 어떤가요?
미쉐린 서울편이 발간되면 아무래도 희비가 엇갈리겠죠. 어찌됐건 미쉐린에 오르는 것만으로 홍보가 되니까요. 대표이사의 특명이 떨어진 호텔도 있다고 할 정도로 파인 다이닝 업계에서는 미쉐린에 촉각을 세우고 있어요. 인테리어도 단장하고 메뉴도 개편하고 기물도 바꾸고. 방송용 식당이라고 하죠. 수요미식회나 식신로드나... 방송에 출연하는 식당을 보면 초반에는 호기심에 고객들이 몰려요. 미쉐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미쉐린에 올랐다고 하면 초반에는 고객들이 몰리겠지만 결국 기존에 가던 고객들은 이런 평가서에 연연하지 않고 그대로 가겠지요.


Q. 해비치의 ‘밀라우’는 프렌치 파인 다이닝이죠? 대표님이 해비치에 가시고 해비치가 다이닝쪽으로 많이 강화됐어요. 그런데 남아공 ‘더 테스트 키친’의 박무현 셰프를 헤드 셰프로 영입하셨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밀라우의 콘셉트를 잡을 때 메르씨엘의 윤화영 셰프가 도움을 줬는데 윤 셰프의 추천으로 박무현 셰프를 알게 됐어요. 박무현 셰프는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았지만 SNS에서도 상당히 알려져 있는 인물이었어요. 해비치에 세 곳의 파인 다이닝이 있는데 직원 역량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컸어요. 파인 다이닝의 시스템이나 요리를 배워야 실력도 커지는 거죠. 기초를 다져야 메뉴에 대한 시각도 커지기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박 셰프는 파인 다이닝의 시스템을 잘 아는 인물이라고 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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