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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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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숙 사케 소믈리에의 All About Sake] 가슴으로 마시는 사케, Kiss of Fire


이시가와현(石川県) 카가시(加賀市)에 있는 카노주조(鹿野酒造)에 가면 ‘Kiss of Fire’라는 사케가 있다. 그 사케의 병은 색깔이 파랗다. 허리가 잘록한 파란 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내 시선은 경이로운 파란색의 향연을 이은 병의 긴 목을 타고 내려오다 허리 중간 영문 앞에서 멈춰 선다. 여름의 푸름이 그랬고 가을의 석양빛이 그랬다. 들판의 풍경이 흘러와 내 마음에 스며든 한순간, 낯선 영문 속에 마음이 정지했다. ‘Kiss of Fire’. 어떻게 이 단어가 사케 이름이란 말인가? 이름이 너무나도 영롱하고 아름답다. 대담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한글로 번역해 보려 했지만 영문만큼 깔끔한 맛이 나질 않아 포기했다. 사케의 이름에 나의 가슴이 데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술병에 붙어 있는 내용은 이렇다. “세련된 파란 병이 우아하고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술맛과 향기는 입술 주변을 달궈주고 미네랄의 청초함은 산에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을 방불케 한다. 뒷맛은 여운이 길게 남고 깔끔하며 향은 몸 안에 깊숙이 파고든다. 스모키 미네랄과 꽃향기, 복숭아 향기를 맡는 그 순간... 정신적 사치에 빠져 든다.” 이 대목에서 빨리 술병을 열고 싶어져 마음이 앞선다. 2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도가에서도 이런 기발한 발상이 가능한가? 술병의 독특한 색감, 세련된 디자인, 숨이 턱 막히게 하는 술 이름까지. 감동을 넘어 고객을 졸도시키는 마케팅이다.
‘Kiss of Fire’의 히스토리를 들여다봤다. 야마타니시키 쌀의 50%를 깎아낸 준마이 다이긴죠 사케 숙성품이다. 역시 뒷맛의 여운이 깊다. 준마이 다이긴죠 사케를 3년간 숙성 시킨 사케라... 사케 전문가인 내 지식으로는 ‘맛이 깊숙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오래된 친구처럼 연인처럼. 사케는 대부분 주조 즉시 출하시키거나 냉장 보관한다. 하지만 ‘Kiss of Fire’는 3년간 저온의 세계에서 밀월의 시간을 보내고 속을 다졌다. 마치 경륜과 인내로 무장된 원숙한 사람을 보는 듯하다.



‘Kiss of Fire’는 카노주조에서 외국 수출용으로 개발한 사케이기도 하다. 와인에 익숙한 고객들을 위해 사케와도 쉽게 친해질 수 있도록 카노주조의 혼을 담아 진면목을 담아냈다. 일본의 사케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해외의 애주가들에게 흥미를 끌 수 있도록 고급스러운 색을 선택했고 술병의 디자인은 곡선의 우아함을 담아냈다. 이 제품을 만든 장본인은 42세의 젊은 장인이다. 이 7대 장인 카노히로미치(鹿野博道) 사장은 동경 농업대학 제조학과를 졸업하고 동경의 대기업에서 11년간 근무를 한 뒤 사케 가업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젊은 장인의 기발한 현장 감각을 살린 사케는 곧 국제적인 유명세를 치렀다. 이태리 ‘루이비통’ 2005년 일본 법인 신년 오픈 파티에서 건배주로 이 술이 선택됐다. 2012년, 2013년 노벨상 수상 저녁 파티에서도 건배주로 뽑히는 영예를 누렸다.




카노주조의 3가지 요소는 물, 쌀, 기술이다. 이 중 가장 최고는 단연 물이다. 카노 주조가 있는 요카이치쵸(八日市町)는 예로부터 영봉백산에서 복류수가 흘러나오는 곳이다. 정토신종의 연가상인(蓮加上人:초능력의 위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지팡이를 짚었다는 곳)에서 물이 솟구쳐 나왔다고 한다. 이 전설의 명수 ‘백수의 우물(白水の井戸’)을 사용한다. 둘째 요소는 쌀이다. 오랜 세월 출신 지역을 지키는 농부 다카이치상(77세)에게 벼의 품종, 재배지, 재배량, 정미율(35%와 50%)을 지정 위탁하고 있다. 쌀은 쌀 전문가인 농부에게 맡겨보자는 것이리라. 마지막 요소는 기술도지 즉 장인이다. 이 장인은 최근 20년간 고급술 기술 개발에 전념해 ‘야마하이쓰쿠리오이에케(山廃作りお家芸)’ 즉 야마하이(누룩으로 전분을 당분으로 바꾸는 과정) 마술사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정성과 공을 들였다. 그는 44세로서 사장과 비슷한 나이다. 일본 사케 제조업에서 보통 가업 장인과 기술 장인이 노년인 것에 비해 30~40년 젊다. 이 젊은이들이 합작해 ‘Kiss of Fire’를 낳았다. 드디어 걸작품 탄생 비밀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그것은 사케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용숙
니혼슈 기키사케시(사케 소믈리에)
㈜린카이 이용숙 대표는 오랫동안 사케 소믈리에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간사이국제대학 경영학과 교수 및 니혼슈 홍보 한국사무국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 시장의 사케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사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밤’을 매년 개최, 사케에 대한 정보 공유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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