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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9 (금)

호텔&리조트

[노아윤 기자의 HR] 앞만 보며 달려온 국내 레스토랑 서비스, 어느 언저리에서 뒤돌아보다


최근 연재하고 있는 레스토랑 서비스 시리즈 기사는 국내 서비스 종사자들의 직업적 인식 제고와 셰프들의 음식만큼 중요한 전문 레스토랑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기획됐다. 비록 이 지면에서 다루는 서비스는 레스토랑에 한정돼 있지만, 관련한 내용은 전체 호스피탤리티 업계, 특히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모두 해당되는 내용일 것이다. 호스피탤리티, 호텔, 레스토랑은 모두 서양에서 들어온 개념으로, 지난 50여 년간 급속도로 성장한 우리 사회에 소화할 틈도 없이 빠르게 흡수돼 버렸다. 이에 지난 호에서는 다시금 소화가 필요한 클래식 레스토랑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그렇다면 이어서 궁금해지는 내용, 한국의 서비스는 어떻게 정착됐을까? 한국식 서비스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레스토랑 서비스 그 세 번째는 국내 레스토랑 서비스의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지나왔던 과거에 대한 이야기다.


최저도 보장받지 못하는 식음료 서비스업

최근에 인터넷 서칭을 하다 놀라운 통계를 발견했다. 통계청에서 조사한 2017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보수) 결과였는데 17년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이 287만 원인데 비해 숙박 및 음식점업은 122만 원에 그쳤던 것이다. 게다가 20개 산업군 중 가장 낮은 임금이었다. 가장 임금이 높았던 전기, 가스, 증기 및 공기 조절 공급업의 615만 원에 비하면 무려 다섯 배의 차이가 난다. 게다가 근속기간도 1.4년으로 가장 낮았다. 숙박 및 음식점업 다음으로 낮았던 것이 건설업, 1.9년이다. 물론 임금과 근속년수가 업의 전문성을 설명해주는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대개 대체 불가능한 전문직종일수록 그 기술을 인정해주는 대가로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오랜 기간 근무할수록 산업을 꿰뚫어보는 전문가들이 많아진다는 것에 이견을 가질 이는 없을 것이다. 분명 숙박과 음식점업도 고도의 전문성과 노련함이 요구되는 업종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상황이 초래됐을까?



호텔에서부터 시작된 레스토랑 서비스

고영 음식문헌연구가는 외식에서 ‘서비스’를 말하고자 한다면 환대, 호스피탤리티의 개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값을 지불했다고 해서 음식을 내 주는 개념이 아닌, 환대의 서비스가 접목이 됐을 때 비로소 외식업의 본격성과 적극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레스토랑 서비스의 역사에 접근함에 있어 호텔의 성장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면서 “호텔은 기본적으로 전문 주방공간을 갖추고 있는 서양식 문화의 집결체다. 경성철도호텔은 이미 1930년대에 에스코피에식 주방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레스토랑은 고급 호텔을 위주로 접근이 가능했던 곳이었기 때문에 호텔의 모습이 진화함에 따라 레스토랑 서비스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러한 접근으로 국내 레스토랑이 호텔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시점을 따져보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은 ‘관광호텔 등급화’ 및 ‘관광호텔 지배인 자격시험제도’ 등이 실시됐던 해로 호텔서비스를 국제적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전환기를 맞이하며 호텔이 급성장했던 시기다. 또한 당시 정부에서는 관광호텔의 개보수를 추진하기 위해 특별소비세를 면제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호텔산업의 질적 및 양적 수준향상을 지원했다.


전문 호텔종사원 양성 메카, 경주관광교육원

정부의 이러한 노력으로 1973년, 국내 관광사상 유래 없는 67만 9311명의 외래 관광객이 방문, 외화벌이의 중요성을 인식한 정부는 더욱 물심양면으로 호텔을 밀어주기 시작한다. 호텔을 찾는 이들이 많아 전문 인력들이 필요해졌다. 이에 한국관광공사는 1977년부터 경주 보문 관광단지에 ‘경주호텔학교(경주관광교육원으로 1982년 2월 개칭했다)’를 지어 호텔리어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당시 학교는 약 280여 명의 학생들을 국비로 양성했으며, 1년 과정으로 진행된 수업은 실습과 정신교육을 위주로 진행됐다. 과정은 호텔관리 및 서비스분야를 전공하는 ‘호텔관리과’와 조리를 전공하는 ‘양식’, ‘한식조리과’ 3개 분야로 나뉘었으며, 특히 호텔관리과는 외국어 구사능력과 예절 교육 등 완벽한 서비스 정신을 생활화해 호텔 서비스 종사자로서 현장적응 능력을 고취시키는데 큰 중점을 뒀다. 또한 조리과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식, 한식 수업이 필수로 지정돼 있어 기본적으로 음식, 요리에 대한 지식을 쌓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러한 점으로 비춰봤을 때 당시 호텔은 외식사업 부문의 비중도 높게 다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93년 9월 10일 여행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당시 16회의 졸업식을 통해 총 3552명의 졸업생이 배출됐는데, 당시까지도 100%의 취업률을 기록하는 등 국내 호텔업계에서 가히 절대적인 인력 수급 교육기관이었다고 한다. 경주관광교육원 출신의 웨스틴조선호텔 F&B 이희종 팀장은 “하계 방학이 되면 약 80일 동안 전국의 관광호텔에서 현장실습을 했었는데, 그때 다른 호텔들에서 경주관광교육원의 학생들을 눈여겨보고 졸업 전에 스카웃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면서 “당시 서구 문물을 제1선에서 받아들이는 호텔리어는 촉망받는 직업이었을 뿐 아니라 탄탄한 커리큘럼과 100% 보장되는 취업으로 경주관광교육원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률이 20:1이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여행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93년의 경우 총 지원자 832명 중, 전문대이상 졸업자가 무려 45명이나 지원, 15명이 기존의 학력을 뒤로하고 입교하는 등 획일적인 성향을 보여 온 고학력자의 직업관이 변화하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수요와 함께 떨어지는 전문성

그야말로 호텔리어하면 최고의 직업이었다. 당시 호텔에 근무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 입을 모아 경주호텔학교 출신들은 엘리트였고, 그만큼 직업적 소명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88올림픽을 맞아 호텔이 늘어나면서 호텔업계에 새로운 변화가 드리우게 된다. 세계적 축제인 올림픽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막을 앞두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다수의 특급호텔들이 대거(호텔신라, 롯데호텔, 르네상스서울호텔, 인터컨티넨탈호텔 등) 1988년에 개관했다.


이에 따라 호텔리어의 수요도 증가, 경주관광교육원 외의 사설 호텔리어 교육기관들이 늘어났는데, 문제는 사기업에서 공기업만큼 교육 시설이나 장비 등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론적인 수준의 교육에서 머무르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늘어나는 호텔리어에 대한 수요에 점차 호텔리어의 특수성이 사라지게 됐고, 1년 동안 전문적인 실무 트레이닝을 받아 쌓아온 전문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경주관광교육원도 1997년 IMF를 지나 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으로 1999년 폐원하게 된다.


이후 계속해서 따라갈 틈도 없이 급성장한 호텔은 상류층의 과시의 공간이 된다. 1993년부터 15년간 호텔업계에 근무했던 느린마을 양조장 & 푸드 홍대점 홍재경 대표는 당시 호텔 서비스에 대해 “비싼 값을 지불하고 호화스러움을 누리러 오는 곳이 호텔밖에 없었기 때문에 호텔의 서비스는 늘 최상이어야 했는데, 당시의 ‘정중’한 서비스는 그저 친절함, 손님은 왕이라고 하는 무조건적인 전제에서 비롯됐다.”며 “점점 전문 교육이 힘들어지면서 서비스 인력들의 전문성이 떨어지다 보니 웨이터들 자체도 손님에게 당당하지 못했던 실정이었다.”고 전했다.



보호받지 못했던 서비스 직원들

대기업 자본의 보수적인 호텔의 특성도 레스토랑 서비스의 발전을 가로막는데 한 몫 했다. 서비스업의 경우 육체와 정신을 모두 소모해야하는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한 직업이다. 한 호텔 레스토랑 서비스 매니저는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하는 우리들은 호텔, 업장의 보호가 없으면 버티기 힘들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해달라며 이야기 하는 손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한 방어막이 없다면 직원들은 그저 손님들에 휘둘리는 시중일 뿐”이라고 말하며 “지금이야 많이 개선돼 가고 있지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호텔은 겉으로만 개방적일 뿐, 상당히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이었다. 손님이 왕이었을 시절, 직원들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호텔은 많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고영 음식문헌연구가는 “우리네 호텔 레스토랑 업계는 한 사람의 솜씨에서 벗어나 최종학력이 낮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 번도 승진하지 못하고 30년 동안 일개 찬모로만 전전긍긍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박약하다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가장 상위의 서비스가 이뤄져야 하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고 앞으로의 비전을 내다보기 힘들었다. 또한 대기업 자본으로 이뤄지는 호텔 특성상 순환근무가 이뤄지기 때문에 한 업장에 오래 있지 못하고 2~3년 주기로 이동해야 했던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홍재경 대표는 “웨이터들은 고객의 눈에 들 수 있어야 비로소 그들의 경력이 인정되는 것이다. 한 곳에서 자주 드나드는 단골손님들을 응대하고, 업장의 인사이트를 가지고 노련한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수시로 트랜스퍼되는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어려운 구조다. 10년 이상 존속하고 있는 서비스 종사자들이 거의 드물다는 점은 산업적으로 봤을 때도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식을 등지고 지키지 못한 우리의 서비스

이러한 상황에서 레스토랑 서비스를 우리의 방식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은 더더군다나 열악했다. 호텔, 그리고 90년대 말부터 빠르게 정착한 패밀리 레스토랑의 성장으로 사회는 우리의 것보다는 서양문물에 매료돼 있었기 때문이다. 프렌치 서비스, 이태리 서비스, 오모테나시와 같은 서비스들은 모두 자국의 식문화에서 비롯된 정서가 녹아들었기 때문에 그것들만의 특징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장금이 베트남의 국민 드라마로 떠오를 때에도, G20을 계기로 우리의 것을 세계에 알리자 목청을 높였을 때에도, 한식의 세계화를 외칠 때에도 그 어디에도 정형화된 한식과 그에 맞는 서비스는 없었다.



2011년, 서울시내 특1급 호텔 18개 중 한식당은 겨우 4곳, 롯데호텔(무궁화), 워커힐 호텔(온달, 명월관), 르네상스 호텔(사비루), 메이필드 호텔(낙원) 뿐이었다. 밀레니엄서울힐튼의 수라, 신라호텔 서라벌, 웨스틴조선호텔의 셔블,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의 한가위 등 주요 한식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은 것이다. 신라호텔 서라벌이 영업을 종료하기 전까지 한식조리장을 맡았던 한식공간 조희숙 셰프는 이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당시 사회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식문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라든지 가치판단에 있어 인색했던 경향이 있었다.”며 “호텔 자체가 서양식 문물이다 보니 모든 시스템이 서양식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좁은 공간에서 최소한의 인원으로 많은 종류의 찬들을 만들어 내야 했기에 이를 체계화할 여력이 없었고, 눈앞에 놓인 일을 쳐내기에 급급했을 뿐”이라고 그때의 상황을 전했다. 덧붙여 한식차림에 대한 분류와 용어 등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풀어낼 한국식 서비스가 자리 잡기 힘든 구조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시 시작해야 할 때

취재진들이 모두 인터뷰 말미에 덧붙인 말이다. 레스토랑 서비스의 본 국가들에서 수 십 년, 아니 수 백 년에 걸쳐 정착시켰던 것을 어쨌든 50년 사이에 빠르게 받아들인 것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너무 빨리 지나쳐 버린 것들을 이제 하나둘씩 수습해 나가야 할 때가 왔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미식’, ‘레스토랑’에 대해 말 그대로 ‘개념’이 없는 상태였다. 다른 것으로 대체할 무언가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한국의 정서를 어떻게 서비스에 녹여내야 하는지 모른 채 따라 하기 급급했던 서비스들. 그리고 중심이 없었기 때문에 흔들렸던 배움. 고영 연구가는 캐치업과 카피캣은 흉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단계를 지나 그것을 내면화 하지 못했을 때 흠이 되는 것이다.


지나간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흘려보내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면면은 살펴봐야 한다. 호텔 레스토랑이든, 로드숍 파인 다인 레스토랑이든,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비교적 정상궤도에 올라와 있지만 서비스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식 서비스를 정착시키기 위해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전통은 고수하고, 갈수록 국가 간 경계가 허물어져가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도 있어야 한다. 결국 서비스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업을 어필해야 하며, 주변에서는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오랫동안 업계를 지켜봐 온 조희숙 셰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들이 더 낫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필요성을 느끼고 고민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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