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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컬리너리

[The Chef] “한식은 정성과 기다림을 기본으로 하는 요리”_ 한식당 비채나 전광식 총괄셰프


가온에서 파생된 한식당 비채나는 가온과 또 다른 색깔을 지녔다. 한식에 대한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보폭은 넓어졌고 걸음은 경쾌하다. 한식이 가야할 방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올곧게 걸음을 떼는 것만으로도 한국을 대표하는 한식당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이태원에서 시그니엘 서울의 초고층으로 자리를 옮긴 뒤 스카이라인에서 경험하는 감각적인 요리들은 지난해 부임한 전광식 총괄셰프의 개성을 덧입어 새롭게 태어났다.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에게 한식은 정성과 기다림을 기본으로 하는 요리다. 가온의 원년 멤버로서 한식의 DNA를 진하게 담고 있는 전광식 총괄 셰프가 전하는 요리, 그 이상을 꿈꾸는 셰프의 이야기다.


비채나에 총괄셰프로 오신지 일 년이 넘어 뵙게 됐어요.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가온에서 수셰프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3월 비채나 총괄셰프로 오게 됐어요. 23살에 요리를 시작해서 16년 정도 경력을 쌓았고 그 중 대부분이 한식이었어요. 가온이 잠시 문을 닫았을 때를 전 후해 줄곧 가온에서 몸담았죠. 김병진 셰프님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추면서 한식에 대한 선이 더 굵어졌고 그만큼 가온이 지향하는 한식에 대해 많은 탐구가 있었어요. 지금까지 김병진 셰프님의 의도가 많이 반영된 가온의 한식을 선보였다면 이제는 비채나의 요리에 제 색깔을 담아보려고 해요. 지난 1년 동안 내부적인 결속을 다지고 업장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면 이제 본격적인 무대를 올려야 할 시기인거죠.


비채나에서는 가온과 다른 어떤 매력을 보여주실 건가요?
가온에 있을 때는 전적으로 김병진 셰프님의 성향을 따랐죠. 그 분의 주방이고 저는 팀의 일원이었으니까요. 비채나는 음식에 저의 의도와 색깔을 선보일 수 있는 곳이에요. 이 둘을 굳이 비교하자면 직장인과 대학생 정도로 볼 수 있지요. 완벽을 기할 정도로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의 가온과 밝고 동적인 분위기의 비채나를요. 제가 비채나에 와서 무엇을 새롭게 시도 한다기보다 기존에 우리 한식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키우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한식이 가진 어떤 것을요?
가령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간장, 된장, 고추장 말고도 한식을 나타낼 수 있는 갖가지 향신료들이 있어요. 방아꽃, 차조기꽃 등 대부분 구하기 힘들거나 활용성이 떨어져 잘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죠. 한식의 큰 장점이자 단점은 갖은 양념이에요. 쉽게 뚝딱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재료의 특징을 다 덮어버리게 돼요. 일반적으로 알려진 한식의 갖은 양념인 파, 마늘, 참기름, 들기름 등을 빼고 나면 다른 나라 음식이라고 느껴 거부감을 갖더라고요. 하지만 접해본 적 없으니 거부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한식 고유의 향신료를 활용한 요리를 많이 소개하고 싶어요.


이번에 시그니엘 서울에서 같은 층에 있는 스테이와 컬레버레이션 갈라디너를 선보이셨다고요. 계기가 있었나요?
한 달에 한 번 씩 시그니엘 측과 관리자 미팅을 하는데 자연스럽게 그 때 이야기가 나오게 됐어요. 스테이가 바로 옆 업장이다 보니 스테이의 셰프들과 마주치게 되는 일이 많거든요. 어느 날 스테이의 셰프 한 분이 초절임 형태의 발효음식을 만들고 있더라고요. 프렌치에도 이런 것을 쓰는구나. 우리도 발효음식을 사용하는데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셰프님의 공식적인 첫 무대인 셈이네요. 한식과 프렌치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이었나요? 
갈라디너에서는 프렌치와 한식이 각각의 코스로 제공됐어요. 프렌치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고 우리가 가진 전통적인 것을 어떻게 매칭 시켜 고급스러움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한식의 멋을 화려하지 않지만 재료가 가진 빛깔로 단아하게 표현하는 한편 한국인의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메뉴를 구상했어요. 한국인에게 밥이 중요한 만큼 고기와 밥의 궁합을 채끝 등심구이 반상으로 선보였죠. 고기 요리에 천리장으로 양념한 명이나물로 감싼 주먹밥, 동치미가 구성됐어요.


비채나는 국빈인 모디 인도 총리 방문 시 만찬 장소로 깜짝 소개가 됐는데, 내용이 궁금해요.
사실 인도 총리가 방문하시는 것을 이틀 전에 알게 됐어요. 그 전에는 외국인 고객이 채식 메뉴를 드시러 오신다고만 알고 있었죠. 특이식성 메뉴가 많으면 예약 사정에 따라 모두 맞춰드릴 수 없는 경우가 생겨 제한을 두기도 해요. 당시 예약 손님이 까다로운 채식 메뉴를 원해 고민하던 중 어렵게 메뉴를 구성했어요. 그 중 하나로 선보인 게 잣 옹심이 인데요. 야채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맛의 조합에 신경을 썼어요. 옹심이의 쫀득한 식감에 잣을 소로 채워 고소한 맛을 더하고 물 대신 오이의 즙을 내 옹심이 반죽에 넣었어요. 그리고 만두피를 밀가루 대신 데친 무로 사용하고 여기에 두부, 버섯, 양파로 소를 채운 무만두도 있었죠. 한식에서도 고급요리에 선이 등장하곤 하지요. 채소찜 요리로 가지선을 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특별히 관심 있거나 자신 있는 요리, 조리법이 있나요?
비채나에는 해산물의 비중이 높아요. 취미가 낚시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생선을 손질하는 게 재미있어요. 보통 횟감에는 쫀득한 식감을 위해 활어를 사용하지요. 하지만 활어를 사용하면 감칠맛이 없어져요. 반면 숙성을 시킨 생선은 감칠맛이 있는 대신 살이 금방 물러져 쫀득한 식감은 없지요. 이것은 생물이 죽은 뒤 일정시간 후에 근육이 수축해 단단해지는 사후강직과 관련이 있어요. 저는 이 시간을 최대한 벌기 위해 생선을 손질할 때 시매라는 방법을 사용해요. 뾰족한 바늘로 생선의 미간에서 척추를 따라 관통시키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 쫀득한 식감과 생선의 감칠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죠.    



국내외 한식에 대한 반응과 분위기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나요?
우선 외국인 고객들의 예약률이 높아졌다는 것에서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고요. 조리법도 업그레이드되고 외국인이 먹기 편하게 바뀐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의 음식이 지녀야 할, 변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지켜져야 한다고 봐요. 서양의 조리법을 사용해도 먹어보면 ‘한식이네’. 라는 음식이 있는 반면, 그릇이나 담음새가 한국적인 느낌이어도 전혀 다른 음식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즉 한식을 만들었다면 ‘이것이 한식이다’라고 느끼면서 먹을 수 있어야죠.


그렇다면 변하지 말아야할 한식의 정체성을 어떻게 세워가야 한다고 보세요?
정확히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가야 요리를 하더라도 이게 개발인지 변질인지 구분할 수 있어요. 지금도 지방에 가보면 우리가 모르는 한식이 많이 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요. 안타깝게도 주위에 잊혀져가는 한식이 너무 많아요. 친근한 음식인 잡채만 해도 재료마다 다 손질하고 각각 볶은 뒤 이것을 한 데 모아 비벼야 하죠. 하물며 신선로는 또 어떻고요. 전도 일일이 밀가루, 계란 옷 입혀 하나씩 부쳐내서 담아야 하잖아요. 이처럼 손이 많이 가고 조리 절차가 복잡해 안 해먹다 보니 잊혀지는 거예요. 이런 요리들을 찾아 간소화 하고 접하기 쉽게 개발하는 것도 요리하는 사람들의 의무인 셈이죠. 같은 맥락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재료들을 계속 찾아내고 연구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요즘은 한식당에서 한식을 강하게 느낄 정도로 자극적인 음식이 많이 줄었다고 생각해요.
비채나만 해도 자극적인 메뉴가 별로 없어요. 찜이나 구이 요리가 많고 고추장을 베이스로 하는 것은 새우 강정 정도가 있어요. 특히 코스 요리에서 고추장의 사용을 배제하는 이유는 코스의 흐름을 끊어놓기 때문이에요. 요리도 음악처럼 초반에는 약하게 가다가 점진적으로 올라가던지 낮은 데에서부터 굴곡 있게 가던지 하는 흐름이 있거든요. 하지만 고추장은 강한 특징이 있어 뒤따라오는 코스의 맛을 느낄 겨를이 없어요. 사용하더라도 소량만 사용하지요.


비채나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메뉴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제가 생각한 봄에 대한 이미지를 옮겨봤어요. 낚시터에서 본 지천의 나물들을 메뉴마다 겹겹이 넣었어요. 가령 냉이 한가지로도 무침 요리를 내거나 육수에 활용하고 데친 냉이를 갈아서 으깬 감자와 함께 치대면 쫀쫀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나물의 향과 어우러지죠. 나물 자체가 들러리가 아닌, 주연으로 매 코스마다 돋보이게 돼요.


셰프님의 요리 철학이 담긴 메시지와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요?
숨 가쁘게 달리다보니 요리를 하면서도 정작 철학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어요. 어떤 기회를 통해 내가 하는 요리에 대해 고민하고 과정에 대한 중요성을 곱씹어보게 됐죠. 단기간에 요리를 완성하기 위해 편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오래 걸려도 지켜야 할 것들은 든든히 세워나가는 것. 저는 이것이 정성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예쁘게 포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집중하면서 제대로 만들어가는 요리를요. 그리고 이처럼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이 지치지 않고 계속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저에게도 제 요리를 드시는 고객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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