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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컬리너리

[The Chef] 요리는 내 인생의 포르테 한상훈 셰프



성악을 전공했다. 지방의 시립합창단원에서 베이스 수석이었고 상임단원이었지만 서울에서 오디션을 보는 순간 기고만장했던 자신을 겸손히 내려놓는 계기가 됐다. 그 길로 상임단원의 자리를 반납하고 경주호텔학교에 입학했다. 

호텔 셰프를 거쳐 누구나 될 수 없는 자리인 대통령의 셰프가 됐지만 그를 이슈의 중심에 세운 것은 탄핵정국에서 비선실세의 내막을 증언한 청와대 셰프, 한상훈이었다. 이후 겪어야 했던 고난도 마음고생도 컸지만 이 시기는 오히려 그를 더욱 영글게 했다. 그리고 청와대의 셰프가 아닌, 카페 모리나리의 오너 셰프로 다시 섰다. 오늘날 한상훈 셰프를 있게 한 것도, 일으킨 것도 바로 그의 요리를 사랑해주는 고객임을 잊지 않기에 늘 그래왔듯 오늘도 주방을 지키며 최선을 다한다. 

한창 TV에서 뵀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지금까지 네 곳의 레스토랑을 오픈했어요. 이제는 보시다시피 제 가게를 운영하는 데 전념하고 있고요. 이 업장을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오픈시켰던 엔야 호텔의 영업장이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올라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홈쇼핑에 제 이름을 건 제품도 출시될 예정이에요. 아무리 바빠도 매일 새벽에 출근해 청소부터 재료 확인 등 고객 맞을 준비를 하는 건 언제나 제 몫이죠. 

청와대 셰프라는 타이틀이 늘 따라붙네요. 청와대 셰프는 어떻게 되신거예요?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근무할 당시 배한철 상무님의 추천으로 청와대 셰프를 선발하는 경합의 기회를 얻었어요. 한날한시에 가보니 하얏트, 워커힐, 신라 등 쟁쟁한 호텔에서 온 경쟁자들이 있더라고요. 면접을 보고 나서 최종 선발자는 날짜를 받아 대통령과 가족 등이 드실 코스요리를 10인분 만들어 평가를 기다렸어요. 최종합격통지 이후 신원조회 받는 기간이 한 달 넘게 걸리는데 마치 일년처럼 길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출근하라는 전화를 받고 청와대에 들어갔지요. 안정된 직장에서 정년을 마다하고 가느냐며 만류하는 동료도 있었지만 호텔에서 20년 머무는 것보다 새로운 경험을 하길 원했어요. 청와대에서 근무할 수 있는 건 누구나 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이후 또 다른 경험이 있을 거라는 기대와 확신을 가졌어요.  

힘든 경합을 거쳐 들어간 청와대에서 왜 나오셨어요?
엔터테인먼트사를 통해 TV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출연 제의가 있었고 청와대 셰프 신분으로는 출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단을 내려야 했어요. 당시 새로운 멤버 교체가 이뤄지는 상황이었고 냉부해에서 레스토랑을 오픈할 계획도 있었죠. 이후에도 여러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출연 제의가 많았어요. 


결국 정치적인 분위기로 인해 프로그램에서 하차하셨다고요.
당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에 부담을 느낀 방송사들이 줄줄이 계약을 해지했어요. 반 년을 일거리 없이 빈손으로 집에만 있어야 했던 적도 있어요. 결국 맘 잡고 일을 시작하게 된 게 남부터미널 근처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심빠띠아를 오픈하는 일이었어요. 당시 모 잡지에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탄핵소식이 연일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지요. 해당 매체를 통해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고 몇 마디의 증언이 일파만파 퍼져 온 방송국에서 인터뷰 문의가 쇄도했어요. 열흘 동안 레스토랑 근처 숙소에서 숨어 지내다시피 했죠. 이러다가 죽겠다 싶었는데 지인이 저를 병원으로 끌고 가더라고요. 그런데 뜻밖에 레스토랑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어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거죠. 한상훈 이름 석자를 내건 이 가게가 잘 돼야 내가 산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더라고요. 하루도 안 쉬고 내 일처럼 일했어요. 레스토랑이 잘되자 종로에 들어서는 엔야호텔에서 식음업장 오픈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고 이후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네요. 결국 방황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고객들 때문이에요. 덕분에 요리에 집중할 수 있었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셨네요. 자신의 영업장을 갖는 것은 셰프들의 로망이잖아요.
네. 이제야 처음으로 제 가게인 카페 모리나리를 오픈하고 이달로 딱 일 년이 지났네요. 우리나라는 음식 장사하기 힘든 구조에요. 특히 양식당의 경우엔 더욱 그렇죠. 핫 플레이스를 제외하면 규모를 갖춘 양식당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타 업종에 비해 기물, 기구, 인테리어 비용이 높은 편이죠. 예를 들어, 보증금을 제외하더라도 40평을 기준으로 인테리어 및 기구, 시설비 등 2~3억이 드는데 임대계약 기간인 5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하기란 만만치 않거든요. 한 달에 300~400만 원 남아봤자 좋아할 일도 아니라는 거예요. 결국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투자금만 다 까먹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봤어요. 내 장사를 하려면 신중하게 따져보고 시작해야 합니다. 정말 힘든 순간도 많았어요. 호텔에 있을 때와 내 장사를 하는 것은 마인드가 다를 수밖에요. 책임감이 더해지죠. 이곳에서는 요리뿐 아니라 제가 청소도 설거지도 다 합니다. 곳곳에 제 땀과 노력이 배어 있어요. 월급 받으며 근근이 직장생활을 할 때는 앞이 안 보였는데 지금은 앞이 보여요. 계획도 세울 수 있고 내가 노력하는 만큼 결과는 달라지니까요.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데 연달아 오픈하시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있다면 팁을 주세요. 
심빠띠아를 성공시키니 자심감이 붙기 시작했어요. 이후 엔야호텔을 맡았을 때도 전반적인 셋업을 위해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죠. 지금도 이곳은 점심 100석이 모두 꽉 찰 정도로 영업이 잘돼요. 사실상 많은 호텔이 조식을 위한 구색 갖추기로 양식당을 운영할 뿐이지 영업 이익을 내기 힘들어요. 첫째, 먹고 나갈 때 ‘잘 먹었다’ 기억에 남아야 하고 둘째, 음식에 비해 가격이 턱없이 높아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어요. 호텔의 메뉴 가격은 상당 부분 인건비로 봐야 해요. 그만큼 규모가 큰 호텔은 유지비용 때문에 비싼 가격에 음식을 팔 수밖에 없는 거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면 코스트는 30%를 넘지 않아요. 가령 저는 카페 모리나리를 운영하면서 메뉴마다 재료를 따로 두는 법이 없어요. 즉 피자와 파스타 섹션의 재료를 공통으로 사용해 식재료의 순환을 빠르게 하는 거죠. 이는 곧 재료의 회전율을 높여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팁이 될 수 있어요. 규모로 본다면 레스토랑을 열기위해 일단 최소한 40석은 돼야 해요. 3000원짜리 커피를 파는 동네 커피숍도 하루에 많이 팔아야 100잔이에요. 열심히만 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단체 행사를 수용하는 공간이 있어야 영업 이익이 남아 운영이 된다는 겁니다. 인건비, 임대료, 식재료 원가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큰지 운영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레스토랑에 대한 환상만 갖고 오픈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지요.     


카페 모리나리가 남산피자, 남촌피자로 SNS를 달구고 있어요. 피자를 셰프님의 시그니처로 삼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남산피자는 토마토소스에 구운 채소, 루꼴라를 산처럼 쌓아올린 피자이고, 남촌피자는 바질 페스토에 볶은 버섯을 올려 오븐에 구운 피자죠. 카페 모리나리가 위치한 남촌(남산)에 이름난 돈까스집도 많은데 남산을 대표하는 피자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어요. 피자도 하나의 요리에요. 그런데 단순히 피자를 도우와 토핑의 조립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피자는 토핑 하나하나마다 간이 다르고 도우나 치즈 등 맛의 조합도 따져 요리해야 해요. 아무리 맛있어 보이는 음식도 간이 잘 맞아야 맛있다고 느끼는데 피자는 자칫하면 짜게 느껴질 수 있지요.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피자는 제가 직접 요리해요. 아침에 출근하면 화덕의 온도 맞추는 게 주방에서의 첫 번째 일이죠. 화덕에 손을 넣었을 때 바닥과 윗 공기의 온도가 잘 맞아야 도우와 토핑이 골고루 익어요. 구워진 피자를 들어 올렸을 때 아래로 처지면 설익은 거예요. 아무나 만들 수 없는 피자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남산피자 남촌피자를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요. 

시그니처가 된 비건 메뉴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카페 모리나리를 찾는 30%가 비건 고객이에요. 특히 동남아 관광객 중 비건, 베지테리언이 많아요. 메뉴에서 이것저것 빼달라는 주문이 많아 아예 비건 메뉴를 만들게 된 거죠. 그렇다고 모든 메뉴가 비건 메뉴인 것은 아니에요. 이곳을 찾는 외국인 고객들이 많은데 고객의 니즈를 따르다 보니 자연히 콘셉트가 형성됐고 입소문을 타 비건 레스토랑으로 정착하고 있어요. 



그동안 셰프로서 추억할만한 일이 있을까요?
호텔에서 수십 년을 근무했지만 5년간 있었던 청와대 시절이 더 많이 기억에 남아요. 제겐 특별한 경험이니까요. 대통령님이 제 음식을 맛있다고 칭찬해주시면 더 맛있게 해드리고 싶어서 책도 찾아보고 연구해서 여러 메뉴를 개발하기도 했고요. 이렇게 해서 탄생한 메뉴가 홍어 스테이크입니다. 자칫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이 재료를 누구나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홍어 특유의 특징을 살리되 거부감 없이 조리해 소스와의 조합을 잘 이끌어냈고요. 이런 제 요리의 기반이 된 것은 호텔에 근무할 때의 경험이에요. 특히 마르코폴로의 오픈멤버로서 외국인 셰프들에게 요리를 배웠던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이때 배운 기본 소스 등을 바탕으로 한식으로 치면 반찬 역할을 하는 메제, 타파스 등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었죠. 

요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조언을 남기신다면요?
살아남고자 한다면 모든 일을 내 것처럼 할 것을 당부하고 싶어요. 그래야 인정받고 자신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어요. 이런 사람은 어딜 가도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예요. 제가 호텔에 있을 때 외국인 셰프들이 지어준 별명이 ‘킹 오브 숏컷’ 이었어요. 잔머리의 왕이라는 뜻이죠. 일 잘하는 요리사는 일이 한꺼번에 몰렸을 때 겁내지 않고 치고 나갈 수 있어야 해요. 그 순간만큼은 짜릿한 희열을 느끼죠. 요리하는 사람은 일을 몸으로 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 일머리, 센스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앞으로 구상하는 계획이 있나요?
우선 카페 모리나리를 성공시키는 것이 우선이고 유튜브 개인 방송도 준비하고 있어요. 외식업체와의 협업으로 온라인 제품도 곧 출시될 예정입니다. 특히 비건 음식을 확산시키고 싶어요. 여러 업체에서 개발 문의도 들어오고 있지만 카페 모리나리를 통해서 비건 음식을 알릴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벌써 머릿속으로 맛의 조합을 다양하게 구상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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