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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금)

손진호

[손진호 교수의 명가의 와인] 샤를르 조게(Charles Joguet)


이 겨울, 내 대학 동기는 따뜻한 이집트로 역사 여행을 떠났다. 현명한 선택이다. 그런데 나는 정반대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서늘한 프랑스 중북부로 떠난 것이다. 그는 나일 강을 뒤지고 있는데 나는 루아르 강을 따라 가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지난 연말 직전에 한 수입사에서 루아르 지역 와인을 신규 론칭했는데, 필자는 그 매력에 쏙 빠지고야 말았다. 결국 글을 써야만 한다는 충동에 사로잡혔고, 이 엄동설한에 을씨년스런 프랑스 중북부로 ‘글 여행’을 떠나게 됐다. 애꿎은 독자 여러분들까지 내 겨울 여행의 동반자가 되실 것이나,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멋진 이야기와 멋진 사람, 멋진 와인이 있으니까~! 대망의 2020년을 여는 새해 첫 와인,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나의 신년 선물은 프랑스 루아르의 명품 ‘Domaine Charles Joguet’의 와인이다.


루아르 밸리의 정통 레드 와인, 쉬농(Chinon)
예술과 낭만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프랑스의 정원(Jardin de France)’이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이곳은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인 루아르가 유유히 흐르는 프랑스 중북부다. 중남부 ‘마시프 상트랄(Massif Central)’ 고산지대에서 발원해 12개 도에 걸쳐 흐르는 큰 강이니 만큼, 그 주변에 오래된 도시와 고성, 시골 마을을 끼고 있는 그림 같은 지역들이다. 루아르 와인 산지의 포도밭은 이 루아르 강가를 따라 형성돼 있다. 내부적으로 4개의 중간 생산 지역으로 나뉘며, 그 기후, 토양, 품종에 따라 각기 다양한 타입과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한다. 모든 색상, 모든 타입, 모든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 루아르다. 한마디로 와인 백화점 같은 곳이다. 물론, 프랑스 중북부에 위치한 입지 조건 때문에 루아르는 신선한 화이트와 로제, 스파클링, 스위트 와인을 주로 생산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루아르 지역의 한 가운데에 특이하게 까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이라고 하는 적포도 품종을 재배해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 마을이 있다. 쉬농(Chinon)이라는 곳이다.


쉬농은 남동쪽에서 비스듬히 루아르 강쪽으로 합류하는 비엔느(Vienne)강의 우안에 있는 도시다. 역사적으로 쉬농은 백년 전쟁기(1337~1453) 발루아 왕조의 샤를르 7세가 기거하던 성이 있는 곳으로 이 성에서 구국의 영웅 잔다르크를 만났던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농부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까베르네 프랑 품종을 사용해 레드 와인을 만들어 왔다. 쉬농의 레드 와인은 오래 숙성시키지 않고 다소 온도를 낮춰 신선하게 과일 향을 즐기며 마시는 것이 좋으나, 고급 와인은 숙성도 가능하며, 고기와 함께 마셔도 좋다. 쉬농 와인을 예찬하는 노래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이 지역 토박이자 프랑스 휴머니스트였던 프랑수아 하블레(François Rabelais)는 16세기부터 그의 문학 작품을 통해 쉬농 와인을 칭송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쉬농 아뺄라씨옹(AOC)이 받고 있는 명성의 일정 부분은, 보다 최근의 아이콘인 샤를르 조게(Charles Joguet)가 이룩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쉬농 와인은 조게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높은 산도와 견조한 구조로 인한 장기 숙성형 쉬농은 조게로부터 출발했다. 많은 애호가들과 양조자들은 쉬농 와인의 성공을 샤를르 조게의 이름과 연관 짓는다.


쉬농 와인의 거장, 샤를르 조게
영화 제목처럼 소개해 볼까? 31년생 샤를르 조게~! 그는 화가, 조각가이자 40여 년간 와인 양조가(1957~1997)였다. 파리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했던 이 젊은 예술가는 1957년 부친의 서거와 함께 가업을 잇기 위해 막 시작하려던 예술을 접어야 했다. 그가 말했듯이, 자기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결정하게끔 한 것이다. 부친이 사망했을 때 그에게 남겨진 것은 포도밭과 부채뿐이었고, 양조 경험도 없었다. 파리에서 예술을 전공한 그였으니 와인을 마시는 것은 좋아했지만 양조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귀농해 두 해를 실패했고, 위대한 1959년 빈티지 해에는 성공했으나 1963년 빈티지는 좋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그래도 그 해 와인을 쉬농 와인 살롱에 출품했는데, 쉬농의 유명한 양조가였던 타폰노 신부(Père Taffonneau)가 그 와인 맛을 보고는 그를 제자로 삼았다. 명장에게는 위대한 스승이 늘 있기 마련인가보다.


다행히 조게 가족은 루아르 강과 비엔느 강 사이에 멋진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 중에 최고 밭들은 쉬농시 바로 외곽의 비엔느 강의 좌안 싸지이(Sazilly) 동네에 있다. 토질이 다양한 이 충적 평원은 다른 지방 같으면 프르미에 크뤼밭, 그랑 크뤼밭 등으로 선정될 만큼 가치가 충분한 곳들이다. 이 고급 밭의 포도를 네고시앙에 팔거나, 몽땅 섞어 와인을 만든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일 것이다. 조게는 네고시앙 회사들에게 포도를 팔았던 집안의 행태에 문제를 제기하며 직접 병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자기가 경영했던 기간 동안 단일 포도밭 와인을 창조하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했고 이는 쉬농 지역에서 처음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땅의 진정한 잠재력을 일깨우려 했다. 그는 점착 침강 정제(Collage) 기술이나 필터 정제를 하지 않고, 인공 효모도 사용하지 않았다. 포도밭에 자연 존재하는 토착 효모들을 믿고, 테루아가 살아있는 순수한 명품 와인을 만들려했다.


싱글 빈야드 까베르네 프랑의 명인, 샤를르 조게
그는 곧 까베르네 프랑 단일 포도밭 와인을 생산하는데 착수했다. 지형과 토질이 다른 단일 포도밭을 4곳으로 크게 구분하고, 각각의 테루아를 살린 까베르네 프랑의 영혼을 창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불가능할 것 같이 여겨졌던 100% 까베르네 프랑 단일 포도밭 뀌베 와인이 쉬농에서 탄생됐다. 유명한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의 유전학적 아버지 격인 까베르네 프랑은 특별한 이중성을 지녔다. 한편으로는 뻣뻣한 성격과 딱딱한 긴장감을 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입안에서 우아하게 춤추기도 한다. 보르도 스타일 블렌딩 레드 와인을 만드는 곳에서 까베르네 프랑은 조연의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쉬농에서는 원맨쇼의 스타가 됐다. 이렇게 쉬농 산지는 까베르네 프랑의 아성이 됐다. 그가 은퇴한 후에도 싱글 빈야드 와인은 도멘느 샤를르 조게의 대표 작품이다.


조게는 1985년 주식의 절반을 즈네 가족(Genet family)에게 양도하고, 본래의 꿈인 예술가의 길을 걷고 있다. 1997년 이후 즈네 가족은 농장을 100% 소유하게 됐으나, 샤를르 조게의 양조 철학에 대한 신뢰와 추구는 변함이 없다. 현재는 젊고 열성적인 재능 있는 케빈 퐁텐느(Kevin Fontaine)가 포도밭과 셀러를 감독하고 있다.


그의 팀은 36ha에 달하는 카베르네 프랑 밭을 경작한다. 샤를르 조게의 전통에 가깝게 9개의 뀌베 와인을 생산하는데, 각각 테루아와 미세 기후의 특성에 따라 밭을 경작한다. 이러한 신념은 양조실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신중한 숙고와 실험의 결과 점진적인 변화를 이룩한다. 농장의 와인은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조기 숙성 라인과 장기 숙성 라인이다. 조기 숙성 라인에는 ‘뀌베 테루아(Cuvée Terroir)’, ‘레 쁘띠 로슈(Les Petites Roches)’가 있으며, 신선할 때 마실 수 있도록 생산된다. 그 위에는 숙성형 라인으로 ‘레 바렌느 뒤 그랑 끌로(Les Varennes du Grand Clos)’가 있는데, 만일 쉬농 지역에 프르미에 크뤼가 허용된다면, 확실히 그 자리를 꿰찰 것이다. 아울러 최고 등급에 있는 ‘끌로 뒤 쉔느 베르(Clos du Chêne Vert)’와 ‘끌로 드 라 디오트리(Clos de la Dioterie)’는 아마도 그랑 크뤼에 속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와인계의 샤를르마뉴, 샤를르 조게
“샤를르는 언제나 테루아의 모습을 진정으로 담아낸 와인을 만들어 왔어요~!” 현재 와인메이커 케빈 퐁텐느(Kevin Fontaine)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토양의 구조와 강점, 약점 등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됐고, 2008년부터는 모든 포도밭을 유기농법으로 가꾸면서 각 와인의 정체성은 더욱 명쾌하게 드러나게 됐습니다.” 그림과 조각 일에 몰두하기 위해, 20여 년도 전에 쉬농의 농장을 양도했지만, 88세가 된 지금도 그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쉬농이나 루아르 지방에서는 그를 여전히 ‘위대한 샤를르(Le Grand Charles)’라고 부른다. 이렇게 쓰고 보니 중세 초기에 유럽을 제패한 그 유명한 황제 ‘샤를르마뉴(Le Charlesmagne)’가 떠오른다. 최고의 까베르네 프랑은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된다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샤를르 조게의 고품질 클래식 쉬농 와인들을 맛본다면 재빨리 루아르 와인 편으로 돌아설 것이다. 고결하고 순수한 과일, 완벽히 재단된 향과 풍미, 영혼이 살아있는 테루아 표현, 비교할 수 없는 매혹적인 질감, 이런 가치들이 샤를르 조게 와인을 최고로 치는 이유다. 새로운 소유주 즈네 가족의 입장에서는 샤를르 조게 같은 농장의 명성을 이어받아 유지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매우 엄격한 자기 관리가 필요했을 것이나, 손 바뀐 후 수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쉬농의 테루아를 담은 까베르네 프랑의 영혼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여전히 예민하고 유쾌하며 기분 좋게도 예측 불가능한 와인들이다. 무엇보다 완벽하게 맛있다. 경영자 자끄 즈네(Jacques Genet)와 딸 안느(Anne-Charlotte)와인메이커 케빈 퐁텐느에게 박수를 보낸다.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물어 보았다. “당신네 까베르네 프랑 와인을 마실 때에는 어떤 잔으로 마실까요? 보르도? 부르고뉴?” 왜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까베르네 프랑이니깐 당연히 보르도 잔에 마셔야지~”하며, 필자를 포함한 다른 쪽은 ‘루아르 까베르네의 예민함과 섬세함’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케빈은 명쾌한 대답을 들려 줬다. “까베르네 프랑 고유의 뻣뻣한 구조감이 아직 느껴지는 신선한 어린 와인일 때는 보르도 글라스를 사용해 주고, 시간이 흘러 숙성된 와인들에는 부르고뉴 글라스를 꺼내는 것이 어떨까요?”


치어스~! 해피 뉴 이어~!

쉬농, 끌로 디오트리 Chinon, ‘Clos de la Dioterie’, Monopole



루아르의 ‘살아있는 전설, 쉬농 최고의 와인 생산자’로 불리는 샤를르 조게는 1957년 이 양조장을 설립한 후 수십 년 동안 훌륭한 와인을 생산해왔다. 그는 이 지역에서 최초로 각 토질 별로 분리해 포도밭을 관리하는 부르고뉴의 끌리마(Climat)방식을 도입했으며, 싱글 빈야드의 개념인 단일 포도밭의 포도만을 사용해 와인을 생산함으로써 쉬농 와인의 품질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까베르네 프랑 품종만으로 7가지 와인을 생산하며, 특히 ‘전설의 100대 와인(100 vins de Légende, 1999)’ 책에 선정돼 있는 ‘끌로 드 라 디오트리’ 와인은 현재까지도 ‘쉬농에서 생산되는 레드 와인의 모범’이라 불리고 있다. 레이블에 써있는 ‘모노폴(Monopole)’이란 표현은, 단일 필지의 포도밭을 한 소유주가 100%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프랑스에서는 한 포도밭도 여러 사람이 쪼개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 역사적 포도밭은 1930년대에서 1940년대에 걸쳐 식재된 밭이니, 약 80~90년 된 수령의 고목들이다. 스테인레스 조에서 알코올 발효 후, 18개월간 프랑스 오크통에서 유산 발효 및 숙성을 하고, 다시 스테인레스 조에서 10개월 추가 숙성 과정을 거친 후 출시됐다.
시음해 보니, 어마어마했다~! 여타 다른 모든 조게 와인보다 진하고 깊고 농축돼 있다. 심원한 루비 칼라에 진한 검은 베리 아로마와 함께 느껴지는 향신료 풍미가 인상적이다. 얄밉지만 매우 매력 있는 후추 톤이 저변에 깔려 있어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부케가 일품이다. 더 오래 숙성된 후에는 매우 큰 거물이 될 것 같은 위협감도 느낀다. 한번 마셔 본 사람은 그 탁월한 개성과 거친 야생미를 잊어버릴 수 없을 듯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블랙베리, 익은 자두, 사향과 후추 이국적인 세련미와 동방의 생경스런 풍광을 내 글라스 안에 풀어 놓았다. 참고로, 하루 지난 디오트리는 송로버섯과 부엽토, 가죽 내음도 은근 슬쩍 꺼내 놓는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타닌감과 입안 가득한 볼륨감, 긴 여운을 선사한다. 이 모든 것을 갖추고도, 알코올이 13.5%vol이니 얼마나 섬세한가~!! (2016 vintage : Wine Enthusiast 94pt / 2015 vintage : Wine Spectator 93pt) Price 25만 원대


쉬농, 바렌느 뒤 그랑끌로 Chinon, ‘Les Varennes du Grand Clos’



싸지이 마을 소재 단일 포도밭으로, 비엔느 강 좌안의 침식된 석회토 경사지 자갈밭 고원 발치에 위치한다. 나무 수령은 50~60년 된 고목이다. 수확율은 35hl/ha 정도다. 5일간의 저온 껍질 침용을 거쳤고, 조게의 다른 뀌베보다 다소 높은 온도에서 4주간 발효시켰다. 1~3년 된 중고 오크 배럴에서 유산 발효를 거쳐 오크조에서 15~16개월 숙성했다. 병입 직전 2개월을 SS탱크에서 추가 안정화 과정을 거쳤다. 바렌느 밭은 디오트리 밭과 붙어 있다. 점토와 석회질 토양인데, 다만 차이점은 더 낮은 곳에 있으며, 나무뿌리가 석회암 모반석까지 닿아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필자가 시음한 바렌느 와인은 진하고 깊은 루비 컬러에, 바이올렛, 아이리스 등의 향긋한 꽃향기와 깊은 숲의 향기, 아이리스, 딸기, 허브, 피망, 후추, 가죽 향이 전반적인 복합미를 느끼게 해준다. 입에서는 둥글둥글한 고운 타닌의 질감과 균형감을 지닌 풀 바디 와인이다. 미네랄 특성은 흙내음으로 표현되며, 살짝 느껴지는 쓴 맛과 함께 묘한 신비스러움을 준다. 참고로, 이 달에 필자가 시음한 와인들은 모두 2016 빈티지였는데, 이 빈티지 해는 매우 더운 해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자연스럽게 바디감을 더해 준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이 다른 빈티지 와인을 시음했을 경우에 필자의 테이스팅 느낌보다 약간 더 신선하거나 뻣뻣할 수 있다. (2016 Vintage : Wine Spectator 91pt / Wine Enthusiast 92 pt) Price 18만 원대


쉬농, 레 샤름므 Chinon, ‘Les Charmes’



본래 보르도 원산인 까베르네 프랑을 루아르로 전파한 이는 리슐리유 추기경 시대의 관구장이었던 브르똥 신부(Abbé Breton)였다. 그래서 까베르네 프랑의 현지 별명이 브르똥이다. 까베르네 프랑은 루아르 지방의 풍토에서 다행히 잘 자라 줬고 꽤나 매력적인 레드 와인을 생산해 왔다. 많은 예술가와 시인들이 루아르의 레드 와인을 좋아했다. 포도밭 이름 레 샤름므가 불어로 ‘매력’이라는 뜻이니, 까베르네 프랑이 주는 새로운 매력을 인정하는 명칭이 아닐까 한다. 샤름므 밭의 포도 나무 평균 수령은 약 30년 정도다. 스테인레스 조에서 알코올 발효 후, 오크 배럴에서 유산 발효를 거쳐 약 4개월간 6000L들이 큰 오크조에서 숙성했다. 굳이 새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이 와인의 품종 매력을 더욱 간직하고 부각시키기 위한 배려다. 알코올은 과하지 않은 13%vol의 가뿐한 몸집이다.
반짝이는 루비 칼라, 싱싱한 산딸기와 짙은 블랙베리, 약간의 향신료가 결합돼, 언뜻 ‘주브레-샹베리탱(Gevrey-Chambertin)’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잔을 돌리면, 은은한 토스트 향과 재 향, 덤불숲, 허브 향이 들판을 지나 내 코로 엄습한다. 본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왜 케빈이 자사 까베르네 뀌베 와인을 마실 때 부르고뉴 글라스를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 어울리는 음식은 닭구이, 오리 가슴살, 터키 케밥 등을 추천한다. (2016 Vintage : Wine Spectator 90pt, Wine Enthusiast 91 pt) Price 14만 원대


쉬농, 레 쁘띠뜨 로슈 Chinon, ‘Les Petites Roches’



단일 포도밭 와인은 아니고, 자갈밭, 규소질 모래 충적토, 석회질토 등 다양한 토질의 밭의 포도를 블렌딩한 뀌베 와인이다. 와인 명 ‘레 쁘띠뜨 로슈’는 ‘작은 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석회암 조각이 부서진 파편같은 돌들이 이 지역에 많이 분포돼 있다. 석회석은 와인에 높은 산도와 광물질 특성을 전해 준다. 포도나무 평균 수령은 약 30년 정도며, 부족한 농축미를 더하기 위해, 프리런(Free Run) 와인 외에 약간의 고품질 압착 와인을 더했다. 뀌베 와인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고 18개월간 스테인레스 조에서 숙성시켰다.
이 와인의 밝은 루비 색상과 연한 농도, 가벼운 타닌, 라이트 보디감을 보면 꼭 부르고뉴 피노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반전은 코다. 향에서는 야생적이고 오래된 까베르네 프랑의 영혼을 뿜어낸다. 심지어 초보자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명료하다. 산딸기와 자두가 앞서다가, 드디어 특유의 피망 향이 나타나며, 저변에는 약간의 계피 향이 깔려 있다. 시간이 갈수록 허브 향이 등장한다. 가볍고 부드러운 미감을 생각하면, 닭구이, 연어와 잘 어울릴 것이며, 후추 향과 높은 산미를 생각할 때, 케밥이나 버거 등과도 맞을 듯하다. 이런 와인은 상자 째 사둘만 한 물건이다. 친구들에게 선물하자. 까베르네 프랑을 다시 볼 것이다. 이 가격대에서 가심비 갑~!!
Price 7만 원대


쉬농 블랑, 끌로 쁠랑뜨 마르땅 Chinon Blanc, ‘Clos de la Plante Martin’



계속 레드 와인과 까베르네 프랑 이야기만 하니깐, 쉬농 AOC가 레드만 생산하는 줄 알 수도 있겠다. 쉬농에서는 로제와 화이트도 생산한다. 화이트는 슈냉 블랑(Chenin Blanc)이라는 품종으로 만든다. 슈냉 블랑 품종은 전 세계에서 루아르가 가장 중요한 본거지다. 특히 앙주(Anjou)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는데, 이곳 쉬농에서도 이 품종으로 화이트를 만든다. 쉬농 쪽이 조금 더 점토질이 많아서 앙주 화이트보다 좀 더 단단하고 견실한 편이다. 포도나무 평균 수령은 약 30년 정도다. 600L들이 프랑스 오크통에서 7개월 발효 및 숙성을 했다. 알코올 도수는 레드 와인보다 높아서 14%vol으로 2016 빈티지의 특성이 발휘됐다.
반짝이는 밝고 진한 노란색 색상이 아름답다. 레몬과 오렌지, 키위 아로마와 함께 슈냉 블랑 특유의 견과류 아로마가 기분 좋게 구수하게 다가온다. 물론 일부는 오크통 발효에서 기인할 수도 있다. 잔을 흔들면, 강력한 미네랄이 짱~하고 코를 찌르며 신선미를 과시한다. 입에서는 높은 산도가 침샘을 자극하며 묵직한 광물질감이 와인에 힘과 고급스러움을 더해준다. 꽉 찬 느낌의 볼륨감과 함께 여운은 1분을 간다. 새해를 축하하는 멋진 슈냉 블랑 화이트다~! (2016 Vintage : Wine Spectator 90pt, Wine Enthusiast 90pt) Price 12만 원대


손진호 / 중앙대학교 와인강좌 교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와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이후 중앙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고, 이후 17년간 한국와인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와인연구소>를 설립, 와인교육 콘텐츠를 생산하며,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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