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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Column_ 노혜영 기자의 세상보기] 한국와인과 한식의 마리아주

정부가 한식을 세계화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쏟아내며 동분서주하던 한편 한국의 와인 내수시장이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던 시기가 있었다. 여러 와인 생산국에서 한국을 눈여겨봤고 한국에 와인을 수출하기 위해 와인관련 단체 뿐 아니라 와인메이커 등의 방한이 이어졌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와인과 음식을 매칭한 와인 디너 행사가 많았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캘리포니아 와인과 한식의 마리아주다. 한국인의 입맛에 익숙한 한식과 와인의 궁합을 맞추느라 애를 쓴 흔적이 역력했으며 그만큼 친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와인과 한식의 어울림을 어떻게 연출했는지 귀를 쫑긋 세웠던 기억이 난다. 와인만으로, 음식만으로도 훌륭했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지만 어쩐지 뭔가 허전한 아쉬움은 지울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한 와인 전문가는 유독 매운 한국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와인이 문화로 자리 잡은 그들에게 음식을 먹으면 바로 떠오를 수 있는 와인이 있다는 것과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매칭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한식에 어울리는 뿌리 깊은 전통주가 있지만 이 둘의 마리아주는 생각만큼 세계화에 다가서지는 못했다. 사실 한국와인도 마찬가지다. 초창기 한국와인이라고 하면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의 소주와 포도, 설탕의 조화가 만들어 낸 담금주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고, 이후에는 포도 원액을 수입해 국내에서 숙성과 병입을 거쳐 한국와인 라벨을 붙인 와인도 등장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간의 시행착오를 딛고 한국 떼루아에 맞춘 토착품종 개발과 양조기술의 발전으로 한국 와인이 외국의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에서 수상하기에 이르렀고, 호텔 다이닝에 이름을 올리는 한국와인의 등장도 심상치가 않다. 지난 달 한식당 비채나와 한국와인메이커의 와인디너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와인이라고 하면 달고 독한 술이라는 선입견도 있었고 강한 알코올 향을 즐기지 않기에 한국와인을 멀리하기도 했다. 일전에 참석한 한국와인시음회에서 한국와인을 경험하고선 한국와인의 발전에 적잖게 놀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신반의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한국음식에 가장 잘 맞는 옷은 한국와인이다. 한국와인의 개별적인 캐릭터보다 음식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풍미는 분명 그 이상이다. 한국 땅에서 자란 식재료와 조리법, 한국적인 떼루아를 담은 포도의 풍미는 혀의 익숙한 감각과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와인이 가야 할 길은 멀다. 하지만 가능성을 갖고 지금의 성장을 이룬 사람들의 열정에 박수를 아낄 이유가 없다.   

여러나라에서 선전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셰프들의 활약을 보더라도 한식은 이제 세계화의 첫 발은 뗀 셈이다. 여기에 발맞춰 고개를 들고 있는 한국와인이 경쟁력을 갖추는 그 날을 꿈꿔본다.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남다른 감각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와인이 좋은 이유는 짝이 맞는 음식과 함께 했을 때 각자가 아닌 서로가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부각시키는 환상의 궁합이라는 말에 어쩐지 마음이 간다. 

연말연시라는 핑계로 술자리가 잦다. 좋아하는 한국와인을 한 병 사들고 집으로 가서 그윽하게 퍼지는 향과 함께 와인 잔을 기울이는 것도 좋겠지만 이왕이면 집밥과 함께, 여건이 된다면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과 함께 한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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