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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3 (토)

칼럼

[김성옥의 Erotic Food] 관음증(Noyeurism), 욕망의 시작, 완두스프


12월 초순인데 날카롭게 차가운 한기에 온몸을 태아의 형상으로 웅크려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결혼 2년차 동생 부부를 위해 퇴근 후에도 없는 약속을 만들고 늦게 집으로 가려고 노력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누구와도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며 외롭다, 아프다 말하는 것도 초라해 보일까 싫어 저녁밥도 먹지 않고 집으로 오는 길에 온몸이 떨리고 감기몸살인 듯 끙끙 앓는 소리가 입 밖으로 절로 튀어 나왔다.


“언니 밥 먹었어?”라는 물음에 “응”이라고 짧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와 몸을 웅크리며 두꺼운 이불을 덮었지만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콕 집어 어느 부위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아팠다. 한참을 이불 속에서 앓다가 동생 내외가 잠에서 깰까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와 약통을 찾았지만 오래된 마이신과 소화제뿐이었다. 배고픔으로 현기증까지 날 정도여서 무엇이든 먹어야 했다. 냄비 속엔 짙은 녹색의 완두스프가 있었다. 소리를 죽여 스프를 데웠다. 데워진 스프에 생크림을 넣고 볼에 담아 두 손으로 스프 볼을 감싸 안고 있으니 몸이 녹는 듯하며 따뜻하고 부드러운 스프가 목을 넘어갈 때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단맛은 없었지만 생크림의 부드러움이 좋았다.


꽃을 피우기 시작해 넝쿨을 타고 올라가며 꽃을 피우고 꼬투리를 맺고, 또 이어서 계속 꽃을 피워 올리는 완두는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꽃술로 암술과 수술이 보일듯 말듯 그렇게 사랑을 하고 꽃을 피운다. 완두는 꽃밥이 익어갈 무렵에는 꽃잎을 꼿꼿이 세워 곤충에게 알리고 은근한 노출을 통해 곤충이 관음케 함으로써, 수정을 한다. 색깔부터 짙은 녹색으로 시선을 뺏더니 자꾸자꾸 몸을 비틀게 하고 가느다란 줄기를 타고 오르며 완두를 맺는 모습은 흡사 암고양이의 짝짓기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은밀하면서도 나긋하게 관음을 자극하는 테오도르 샤세리오(Théodore Chasseriau)의 ‘수잔느의 목욕’에서 풍만한 몸과 봉긋 솟아오른 젖가슴에 빠져있는 정욕의 눈빛을 기억한다. 어두운 수풀을 배경으로 투명한 천이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에로틱한 누드의 수잔나를 비추는 빛 너머 수풀 속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욕망의 시선을 동양적인 장식과 부드러운 빛 속에서 그려진 누드의 감각성으로 여신과 같은 고상한 느낌의 에로틱한 누드는 여자도 훔쳐보고 싶게 하는, 그 관음자들을 나는 관음한다. 수잔나의 에로틱한 몸을 훔쳐보면서 뜨겁게 달아올랐던 기억이 언제였는지 그 감정을 찾아봤다.
이미 다른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들어와 돌아누운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사랑은 어떻게 할까?’ 잠들지 못하고 사랑을 나눈 그 사람에게 노골적인 관음증이 발동했다.
예전의 나도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부럽다’ 댓글을 달고, 그러면서 은근히 나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은 노출증이 발동했다. 나체나 은밀한 부위, 정사장면 등을 보이지 않는 머릿 속에서 훔쳐보는 행위가 발각될 위험이 있다는 것에 더욱 큰 흥분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잠 못 들고 뒤척이던 늦은 밤에 본 아오이츠카사 주연의 영화 ‘관음증’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해고당한 전직 사진기자였던 공대유의 이야기다. 불륜현장을 포착하는 파파라치로 생계를 유지하던 그는 묘령의 여인으로부터 쌍둥이 여동생을 관찰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의뢰인의 여동생이 성 상담 클리닉을 운영하는 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호기심에 그녀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그날부터 그녀를 몰래 관찰하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의사에게 집착하며 관음증 증세를 보이게 된다.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여의사의 언니는 사건 의뢰를 취소하지만 이미 관음증과 도발은 도를 넘었다. 그러던 중 의뢰인과 여의사가 쌍둥이가 아닌 동일 인물이라는 것과 자신을 파멸시키기 위한 의도적 행동이었음을 알게 된 공대유는 많은 시간동안 관음증에 젖어있는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 자해하고 스스로 두 눈을 멀게 한다.


부드럽게 갈아 만든 짙은 녹색의 완두에 하얀 생크림으로 원을 그리고 담은 뜨거운 완두스프을 한 스푼 떠 입으로 가져 오는 순간, 그 농도가 나의 관음을 더욱 자극한다.


김성옥
동원대학교 호텔조리과 교수

김성옥 교수는 식품기술사. 조리기능장.
영양사 등 식품, 조리에 관련한 자격증 국내 최다 보유자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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