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ing Story] 우리 삶이 지나가는 길, 청도

2025.01.19 08:46:29

✽본 지면은 한국음식평론가협회와 함께합니다.

 

2025년 희망찬 을사년 새해가 우리들의 지난 멍든 가슴을 어루만져 주고 새로운 일상에서 어제가 아닌 내일을 노래하도록 반기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일본의 소도시를 찾아 떠나는 여행객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아름다운 금수강산 이곳저곳 발길이 머무는 곳으로 삶을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대한민국 경상북도 최남단에 동쪽은 경주시, 서쪽은 대구광역시, 남쪽은 경상남도 창녕군·밀양시·울산광역시, 북쪽은 경산시·대구광역시와 접한 2읍 7면으로 산이 푸르고 물이 맑으며 인심이 후해 예로부터 ‘삼청의 고장’으로 불려오는 청도군을 겨울 미식 여행지로 추천한다.

 

 

팔색조 미꾸라지


장터에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배고픔을 달래고, 여행지에서 맛을 더하면 어느 순간 그 음식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어 인기 메뉴가 된다. 뜨내기손님이 장터나 역전에서 맛있는 음식을 찾기 어렵지만 지나가는 이들에게 정으로 남는 추억의 맛을 선물한 추어탕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관광지가 아닌 삶의 터전에서도 즐겨 찾는 메뉴가 됐다. 추어탕은 지역마다 조리 방식이 서로 달라 각자의 색깔이 뚜렷한 음식이다.


서울식은 미꾸라지를 통으로 익혀 미꾸라지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골육수에 두부, 버섯 등을 넣은 후 한 그릇 가득 담아낸다. 전라도식은 푹 삶은 미꾸라지 뼈를 걸러내고 우거지를 된장으로 버무려 고춧가루, 들깨가루 등을 넣어 끓인 다음 초피로 낸 칼칼한 매운맛을 정성으로 담아낸다. 경상도식은 푹 삶은 미꾸라지를 걸러내고 얼갈이배추, 숙주나물 등 각양각색의 야채를 가득 넣어 맑게 끓이고 기호에 따라 마늘, 방아잎, 산초, 다진 청양고추 등을 담아 한 상 내어준다. 강원도식은 미꾸라지를 푹 삶아 뼈를 걸러낸 육수에 보리쌀 고추장을 풀고, 각종 나물을 넣어 끓여 대접하기도 하고, 수제비 반죽을 툭툭 던져 추어탕의 맛을 더하기도 한다. 


지역마다 저마다의 독특함을 자랑하지만 추어탕은 지역색 없이 그저 추어탕으로 사랑받는 대중 음식이다. 각 지역 음식문화에서 서로 다른 조리법으로 발전돼 내려왔지만, 사람들에게 그저 반가운 음식으로 전해지고 있다.

 

 

산 좋고 물 맑은 청도


청도의 중심, 청도역에는 추어탕 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추어탕은 많은 이들이 한여름 더위에 지친 몸에 기운을 더하고 다가올 한겨울 엄동설한에 대비해 가을에 먹으면 좋은 보양식으로 가을에 꼭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청도 추어탕은 계절과 관계없이 사계절 내내 찾을 수 있다. 미꾸라지만을 사용하는 다른 지역의 추어탕과 달리 청도 추어탕은 민물고기를 섞어 끓인 색다른 추어탕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미꾸라지가 귀한, 겨울부터 봄까지 푸짐하게 한솥 올리기 어렵게 되자 청도천과 동창천에서 쉽게 잡을 수 있는 망태, 꺽지 등과 미꾸라지를 같이 끓이게 됐다. 그런데 국물도 맑고 시원한 맛을 내 청도를 찾는 이들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진 것이다.

 

청도 추어탕의 맑은 국물을 보고 “추어탕이 왜 이래”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이 바로 지금의 청도 추어탕이다. 1963년 청도역 인근에 ‘의성식당’이 최초로 생겨나면서 청도 추어탕 거리를 형성하게 됐고, 산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청도역 주변에는 시원한 추어탕 한 숟가락과 막걸리 한 사발로 등산의 피로를 풀어보는 이들이 조용한 소도시에 정겨움을 더하고 있다.

 

 

귀한 친구에게 대접하는 뭉티기


1950년 대구 향촌동 실비집에서 처음 술안주로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던 뭉티기. 도축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소의 처지게살, 우둔살을 주로 사용하며 얇고 넓적하게 썰어 한 접시 담아내면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뭉티기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1960년대 우리네 삶을 탄식하며 술자리 친구로, 산업화가 되면서 고된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는 활력소로, 대구 시민들에게 사랑 받았고 이제는 전국적으로 미식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 페이지가 됐다.

 

청도는 우시장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뭉티기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도축 뒤 하루가 지나지 않은 고기는 부드럽고 탄력이 있으며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기에 접시를 기울여도 쏟아지지 않아 처음 뭉티기를 접하는 손님들은 꼭 한번 접시를 조심스레 뒤집어 보기도 한다. 육회와 달리 아무런 양념을 하지 않고 생고기의 신선함 그 자체를 즐기는 뭉티기는 특별한 양념장이 뭉티기 특유의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을 더한다. 참기름, 고춧가루, 다진 마늘, 간장을 섞어 만든 별다를 것 없는 양념장이 ‘뭉티기 특별양념장’이며, 맛을 한층 더 흥미롭게 돋운다.    


양념된 육회가 보편적인 생고기 요리로 사랑받고 있을 때 우시장을 중심으로 대구 및 인근 지역에서 생겨난 톡특한 음식문화지만,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 보따리를 풀 수 있는 정겨움이 있는 뭉티기 한점으로 물맑고 공기좋고 인심많은 ‘삼청’ 청도에서 행복을 누려볼 수 있다.

 

 

여행과 미식이 공존하는 청도


청도를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해 행복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곳이다. 봄의 향기를 알리는 한재 미나리와 복사꽃의 향연, 여름이 왔다고 반겨주는 빨간 자두, 가을의 청명함을 기뻐해 주는 반시, 겨울의 문턱에서 한 해 동안 고생했다고 위로해주는 육회비빕밥 등 다양한 미식의 세계를 가진 청도에서 청도읍성, 낙대폭포, 와인터널, 유등연지, 새마을운동 발생지 기념공원, 청도 소싸움장 등 소소한 즐거움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