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Networks_ 광주] ‘철’모르는 과일들

2019.02.17 09:20:44

“여봐라, 이방. 산딸기를 따오너라.”
호텔을 비롯한 유통 업계가 경쟁적으로 딸기 프로모션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는 것을 보니 ‘딸기가 겨울 과일이었던가?’ 의문이 들며 전래동화 하나가 떠올랐다.


겨울날 심술궂은 사또가 이방을 불러 산딸기를 따오지 않으면 큰 벌을 내리겠다고 해 이방은 걱정에 몸져 눕고 이방 대신 이방의 아들이 꾀를 내어 사또를 찾아간다. “아버지께서 산딸기를 따러 가셨다가 독사한테 물리셨습니다.” “한겨울에 독사라니 그 말을 믿으란 것이냐?”라는 사또의 꾸짖음에 “그럼 한겨울에 산딸기는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지혜롭게 답변해위기를 모면했다는 내용이다. 그만큼 그 당시 사람들에게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의 딸기는 동짓날 뱀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봄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였던 딸기가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첨단 환기선, 수경 재배 등 고도의 시설과 다양한 재배환경, 품종개량 등을 통해 출하 시기가 앞당겨지고 길어졌다.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들어와 노지에서 재배해 5월에 수확했던 시절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출하 시기가 빨라졌는지 실감할 수 있다. 2008년 개발된 여름딸기 품종 ‘고하’, ‘열하’, ‘장하’, ‘무하’ 등 10여 종에 이어 작년 11월 강원도 화천에서 국내 최초로 가을 딸기 ‘고슬’ 품종을 수확하는데 성공하면서 올해부터는 사계절 내내 딸기를 맛볼 수 있게 됐다. 농촌진흥청에서 수확 시기에 따른 딸기 품질을 조사한 결과 맛 또한 겨울철 딸기가 당 함량이 높고 신맛이 적다고 한다. 추우면 딸기가 천천히 성장해 조직이 치밀해져 육질도 더 단단하고,겨울은 봄에 비해 기온이 낮기 때문에 쉽게 물러지지 않고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어 유통 과정에서도 선호된다는 것이다.


초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우수한 품질의 딸기를 확보할 수 있어서인지 12월 초부터 호텔, 백화점, 베이커리 전문점, 대형 마트, 편의점할 것 없이 딸기를 활용한 신제품이나 각종 프로모션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호텔 딸기 뷔페의 원조 격인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의 ‘딸기 정원’, 매년 SNS 인기 포스팅을 장악한 JW 메리어트 동대문의 ‘살롱 드 딸기’, 높은 베리 타워가 시그니처인 그랜드 워커힐 서울의 ‘베리 베리 스트로베리’ 등 식음료 관련 프로모션 행사가 많지 않은 겨울철과 봄철,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와 SNS 경험 공유 트렌드에 부응해 시즌을 공략하고 있다. 매년 호텔 딸기 식음료 프로모션의 규모가 커지고 시기가 빨라지는 것을 보면 특급호텔들이 뷔페를 선보이는 흐름 역시 ‘딸기의 겨울 과일화’를 부채질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딸기를 포함한 과일의 조기 재배와 출하로 유통업계뿐만 아니라 재배 농가 역시 미소 짓고 있다. 조기 재배로 출하 시간을 앞당겨 높은 가격에 출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출하 기간 연장으로 연간 1기작에서 2기작 재배로 확대돼 더 높은 소득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여러 지자체에서도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전라남도 곡성군은 대표적 소득 작물인 멜론의 조기 출하 지원 정책을 펼쳐 기존보다 10% 이상 높은 가격에 출하하고 있다고 한다. 다겹 보온 커튼과 난방 시설 등 멜론 조기재배 시설 개선 지원으로 출하 기간이 4개월에서 7개월로 늘게 되니 농가에서도 조기 출하를 반길만하다.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던 수박은 여름이 채 시작되기도 전인 5월부터 시장을 장악하고, 참외도 봄에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다. 겨울을 대표하는 감귤류 또한 한라봉 등의 만감류와 하우스 감귤까지 연중 맛볼 수 있다. 특정 계절에만 먹을 수 있었던 ‘제철 과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과일을 제철 못지않은 맛, 크기, 식감으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점점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는 현시대 사람들의 입맛에 호텔에서도 특정 계절에만 선보이던 체험들을 이제는 한 계절 더 빠른 시점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선보임으로써 많은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제철 맞이 과일을 활용한 다채로운 디저트를 선보이는 호텔에서 과일의 조기 재배와 출하가 앞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기대해본다.




구은영
호텔앤레스토랑 광주 자문위원 /

홀리데이 인 광주 총지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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