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환의 Local Food] 2011~2020년, 10주년을 맞이한 '류니끄 시그니처 디시'에 대해

2021.02.26 08:50:11

2011년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아온 식재료에 대한 오마주는 시그니처 디시로 표현된다. 수많은 고민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같은 재료 다른 형태의 버전은 10년 동안 수많은 디시로 탄생됐다.


지역은 수많은 식재료와 먹거리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재료도 풍부하며 지역에 맞는 음식의 옷을 입는다. 지역요리의 재해석은 각 지역이 가지고 있는 전통음식을 기반으로 기후와 지역의 총체성을 표현하는 작업이다.


풀어내는 방식은 ‘한국요리’와 ‘한식’의 모호함을 정리한다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식’은 ‘和食(일식)’처럼 한국식, 한국 스타일을 표방한다. ‘한국요리’는 ‘日本料理’와 같이, 보다 총체적 개념으로 요리의 근본과 지역의 근간 역사의 고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를테면 ‘한식’으로 음식을 풀어내자면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의 형태가 있어야 하며 코스의 마지막에 반상의 모습이 나타난다. 비록 메인 전의 디시가 현대적 프렌치 스킬이 들어간 모습일지라도 말이다. 


처음부터 한식을 배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일본요리의 기본과 프렌치의 기본에 오랜시간 집착해 왔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김치와 어머니의 탕국을 잊지 않고 있다. 처음부터 퓨전과 현대적 요리의 기반을 가지고 운영을 해온 터라 무작정 한식을 할 수는 없었다. 나름 깊은 고민과 정체성의 정립이 몇 번은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지역에 탐닉하면서 자연스레 ‘한국요리’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요리’의 ‘지역요리’는 그 지역의 역사와 떼루아, 지형,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더욱더 흥미로웠다.


한국요리를 나만의, 류니끄 터치의 지역요리로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요리를 한식적이지 않고 인터내셔널하게, 모던하게, 틀에 갖히지 않게 설명하고 싶었다. 최대한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들을 기반으로 말이다. 꾸역꾸역 버티며 하다 보니 벌써 10년이 됐고 시그니처 메뉴라고 할만한 것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2021년은 류니끄 10주년이 되는 해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시작을 위해 류니끄 시그니처 메뉴를 모아 연말메뉴를 짜봤다.

 

 


Jellusalem Artichoke, Uni-Soup and Chip 2013
돼지감자, 성게-수프와 칩스
시드니, 런던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가장 쉽게 접하고 먹을 수 있었던 재료 중 하나다. 예루살렘 아티초크라는 이름과 모양이 독특했고 맛은 달고 좋았다. 하지만 하루에 1박스씩 들어오는 돼지감자는 수프를 만들어야 하는 어린 셰프에게 넘어야할 고역 중 하나였다.


먼저 흙은 깨끗이 솔로 문질러 제거하고 껍질을 필러로 완전히 없앤 다음 물에 담근다. 알맹이는 얇게 슬라이스한 뒤 양파와 버터를 넣고 볶은 후 우유에 뭉근히 끓여 믹서기에 곱게 갈고 고운 채에 걸러 수프를 완성한다. 껍질은 홍갈색이 나도록 기름에 천천히 튀겨준 뒤 가니시로 사용한다. 만들어진 돼지감자 수프는 에스푸마(휘핑기)에 넣고 가스를 충전한 뒤 뜨거운 상태의 가벼운 거품형태 수프로 서브된다. 성게알은 크림과 함께 절반 이상 졸여내 끈적하고 녹진한 상태로 돼지감자 수프 바닥에 깐다. 성게알 크림을 졸이기 전 가벼운 크림상태에서 열은 넣은 뒤 핸드 블랜더를 사용해 거품을 내 수프 위에 올려준다. 그러면 마치 카푸치노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수프가 된다. 곁들이는 칩은 돼지감자를 익힌 뒤 반으로 갈라 속을 파낸 다음 건조기에 오랜 시간 말려 고온의 기름에 튀겨 바삭하게 만든다. 성게 크림을 칩 위에 올리고 얇게 슬라이스해 튀긴 돼지감자를 올린 후 소금을 뿌려낸다. 오랜 추억의 돼지감자는 2013년 류니끄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재연됐다. 

 

  


‘Citrus Cured Mackerel’ 2011
‘씨트러스에 절인 고등어’

고등어는 국민 생선이자 고향인 부산의 시어다. 일본에 있을 때는 고등어를 소금에 절여 식초에 담근 시메사바를 많이 만들었었다. 유럽은 회를 많이 먹는 문화가 아니다. 한때 브레이 지방의 ‘펫덕’이라는 곳에서 견습생활을 했는데 헤스톤 블루멘탈(영국의 요리 연구가)이 만든 고등어가 인상적이었다. 당시 콘셉트는 뼈 없는 고등어였는데 고등어를 절일 때 시트러스 소금을 사용했다. 햄처럼 소금에만 절인 큐어링이 인상적이었고 영국 도버항에서 잡히는 고등어보다 부산, 제주 고등어가 훨씬 기름지고 맛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메뉴로 만든 식재료는 고등어다. 생선을 원래 좋아하기도 했고 고등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면 고등어가 살이 포동포동 찌기 시작하는데 회로 먹으면 고소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레몬, 자몽, 라임 껍질을 소금에 빡빡 문지르면 색이 노랗게 되는데 향을 맡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냄새가 난다. 고등어를 이 소금에 묻어두고 1시간 정도 냉장고에 넣어두면 고등어에서 수분이 빠지면서 시트러스 소금의 맛이 삼투압 현상에 의해 스며들게 된다. 식초에 절이지 않아도 이렇게 아름다운 절인 고등어회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어린 셰프는 좋았었나보다. 겨울 고등어와 함께 매칭되는 소스는 사과로 만든 칠리살사다. 사과를 갈아서 시럽스톡과 오랜시간 졸여내면 진득한 잼이 되는데 칠리 페이스와 섞으면 쓰리랏차처럼 만능 소스가 된다. 제주감귤 껍질을 발라내 가니시로 쓰고 껍질은 파우더로 만들어 향과 시각적 효과를 함께 끌어 올렸다. 겨울 배추는 제철이며 단맛이 좋아 비트물을 입힌 피클로 사용했다.

 

Beef Short Rib and Oyster ‘Surf and Turf ’ 2020
한우 갈비살과 굴, ‘서프 앤 터프’

예산은 사과도 유명하지만 광시면에 있는 광시한우도 유명하다. 다음 콘셉트가 예산이라서 3번 정도를 사전 리서치로 돌아다녔는데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그중 쇠고기는 단연코 돋보였고 광시한우촌에 들러 쇠고기 발골법을 배웠다. 31kg 갈비살을 짝으로 받아와 류니끄 주방에서 손질을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 힘들게 손질을 했다. 뼈에 고기가 남아 있지 않게 1번에서 13번까지의 갈비에 붙어있는 늑간살과 양지, 살치살을 잘 떼어낸 뒤 뼈에 붙어있는 살은 곱게 다졌다. 뼈는 끓는 물에 끓인 후 얼음물에 담가 찌꺼기를 제거하고 두툼한 살은 얼린 뒤 얇게 슬라이스를 했다. 배를 슬라이스한 뒤 설탕물에 오랜시간 졸이면 투명한 색의 정과가 된다. 생배를 슬라이스하고 굴과 다진 갈빗살을 함께 섞은 뒤 샬롯과 간장소스를 섞어 생배와 함께 슬라이스한 한우에 감아 정과를 겉에 둘렀다. 반으로 자른 뒤 와사비와 시트러스 알갱이, 시트러스 갤을 올려 완성시켰다.


서로 다른 성질이지만 하나가 돼 맛의 조화를 이루는 ‘서프 앤 터프’는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조합에 중점을 두고 오랫동안 만들어온 메뉴 형식이다.

 

 

 

  


Sea Eel, Aubergine 2020
붕장어, 가지 

장어는 바다에 사는 바다장어와 민물에 사는 민물장어로 나눠지는데 바다장어는 붕장어가 바른표기다. 붕장어는 양식이 안되고 남해바다에서 많이 잡힌다. 붕장어의 영감을 받기 위해 고흥, 통영, 여수, 완도 등 집산지에 직접 가서 먹어보고 환경을 리서치했다. 생김새가 징그럽지만 맛은 굉장히 마일드하고 진한 소스와도 잘 어울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식재료 중 하나다. 2012년도에는 담백한 붕장어와 기름진 푸아그라의 요리를 만들기도 했었다. 

 


이번 메뉴는 붕장어를 깨끗이 손질한 뒤 간장으로 만든 맛국물에 뼈를 구운 뒤 붕장어 살과 천천히 익혀내 살을 건진 후 오징어 먹물반죽에 튀겨 낸다. 남은 국물은 끈적하게 졸여 붕장어의 풍미를 살린 버터소스를 만들어냈다. 감칠맛이 가득하고 일식에 쯔메소스의 변주를 준 소스다. 가니시로는 가지를 쎈불에 튀겨내고 멸치와 빵가루로 만든 크러스트 가지를 시꺼멓게 태워 올리브오일과 갈아낸 퓨레를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풍미와 시각적 효과를 살려내기 위해 태운 가지 파우더를 뿌려 완성시킨다.

 

Two Ways of Pork ‘Yesan Inspiration’ 2016
두 가지 방법의 돼지, ‘예산 인스피레이션’ 

예산은 사과뿐 아니라 돼지고기도 유명하다. 오래 전부터 알고지낸 지인으로부터 질 좋은 돼지고기를 받을 수 있었다. 예산은 사과는 특히 유명한데 사과를 사료에 섞어 먹인 돼지고기의 분뇨를 사과밭에 뿌려, 사과를 키워내는 선순환농법을 선보이는 곳이다. 처음 이곳을 알게 됐을 때 신선한 충격이었다. 돼지고기를 맛봤을 때 지방 함유량이 적어 담백하고 수분이 촉촉하게 느껴졌다. 홍두께살을 회로 해 초장에 찍어먹으라는 권유에 깜짝 놀랐지만 쇠고기처럼 돼지고기를 익혀낼 때 미디움으로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빨리 테스트를 하고 싶었다.

 

  


이전 메뉴는 항정살을 숯불에 천천히 구워 예산사과 쳐트니와 사과 바네그레잇을 사용한 디시였다. 발효한 양배추를 다진 후 토치에 태워 가니시로 사용을 했는데 좋은 반응을 얻은 메뉴였다. 이번 버전은 예산 돼지 삼겹살을 소금물에 허브와 함께 브라인을 한 뒤 오랜 시간 수비드해 고기가 익는 최소한의 온도로 맞췄다. 정성스럽게 포셔닝을 한 뒤 낮은 불에서 껍질부터 천천히 구워낸다. 가니시로 돼지고기로 만든 떡갈비와 브라운 치즈를 곁들였고 소스는 고흥에서 받은 어간장과 꿀, 고춧가루를 졸여 만든 소스로 맛을 냈다. 돼지삼겹의 촉촉함과 맵고 달달한 어간장소스의 궁합이 조화를 이룬 디시다.

 

Cod, Brown Crab Crab, Sauce Egg Yolk 2020
대구, 브라운 크랩, 노른자 소스 

겨울은 대구가 제철이다. 숫놈 대구는 배속에 고니가 꽉차있는데 고니를 빼면 거의 절반이 빠져나간다. 대구 살을 먹는 것인지 고니를 먹는 건지 주객이 전도되는 순간이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곤은 가니시로 사용하고 물컹한 살은 소금에 2시간 이상 재워 수분을 빼고 살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고니는 끓는 물에 살짝만 데쳐 모양을 잡았다. 아는 지인이 영국에서 브라운 크랩을 많이 가져왔다고 써보라고 줬는데 예전 유럽에서 썼던 기억이 나서 특별하게 브라운 크랩을 써보기로 했다. 등껍질이 크고 살이 달콤한 브라운 크랩은 ‘던저니스 크랩’이라고도 불린다. 브라운 크랩을 찜통에 쪄내 살과 껍질 내장을 분리하면 수율이 20% 정도만 나오는데 이에 소요되는 수고는 엄청났다.


살은 설탕물에 재워 드라이어에 말린 뒤 캔디의 형태로 만들었고 내장은 계란노른자와 함께 서서히 열을 넣어 최상의 맛을 냈다. 대구살을 찜통에 익힌 뒤 절반으로 잘라내면 묘한 무지개 빛의 촉촉한 텍스쳐가 보여지는데 엄청난 희열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살짝 데친 고니 위에 브라운 크랩 캔디를 뿌리고 노른자 소스를 뿌려 완성시킨다.

 

 

 

 

 

The Quail ‘Winter Vegetable’ 2012
메추리, ‘겨울 채소’

의령에서 마늘을 먹여 키운 메추리는 류니끄에서 가장 오래된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다. 지금의 메뉴는 일곱 번째 버전이며 겨울뿌리채소와 흑마늘을 매칭시켰다. 

 

  


작년 여름, 셰프의 언어라는 유튜브 촬영을 하기 위해 의령의 메추리 농장을 방문했다. 마늘 먹인 메추리는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낸 왕메추리로 일반 메추리는 크기가 작아 구웠을 때 수분감이 없어 먹기가 불편하다. 영국에서 일할 때 프랑스 안쥬 지방에서 온 야생비둘기를 하루에 몇 백 마리 손질했던 기억이 난다. 목에 안쥬 피죤이라는 메달과 털이 달려있었고 내장에는 피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징그럽지만 훌륭한 식재료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닭, 소, 돼지 같은 재료가 아닌 이렇게 귀엽고 특이한 재료가 필요했었다. 오픈하자마자 비둘기를 찾았는데 우리나라는 불법이라 유통이 안됐다. 하는 수 없이 찾아낸 재료가 의령 마늘을 먹인 왕메추리였다. 메추리의 맛은 담백하고 살이 부드러우며 냄새가 나지 않아 조리만 잘하면 아주 좋은 식재료다. 메추리 요리는 류니끄의 시그니처기에 매해 만들어지는 메추리 요리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겨울은 강화도에서 나는 순무와 제주 당근이 좋다. 껍질을 벗긴 순무를 우유에 푹 삶아 뭉그러지면 믹서기에 갈아 퓨레를 만든다. 순무와 당근을 스트립모양으로 썰어낸 뒤 가지런하게 놓고 찜통에 찐다. 


메추리는 다릿살과 몸통을 분리한 뒤 다릿 살은 카놀라유, 타임, 마늘 등이 들어간 콘퓌 오일에 약한 불에서 천천히 익힌다. 다릿살을 뼈와 분리시키고 닭가슴살과 계란흰자, 생크림을 넣어 무스를 만든다. 몸통 살은 뼈를 분리하고 다릿살 무스를 채운 후 스트링으로 단단히 고정시킨다. 찜통에 쪄낸 뒤 천천히 구워내고 태운 메추리 뼈와 채소를 끓여 만든 Jus(주)를 곁들인다. 흑마늘을 양파와 함께 천천히 볶고 스톡을 넣어 조린 퓨레로 임팩트를 더한다. 

 

 

Choco Cake ‘Winter Forest’ 2015
초코 케이크, ‘겨울 숲’

초코 케이크 또한 겨울이 되면 빠지지 않는 시그니처 메뉴로 프랑스에서는 뷔슈 드 노엘(BÛCHE DE NOÊL)이라는 나무모양의 초코 케이크를 많이 먹는다. 스폰지 시트에 콩가루 크림을 바르고 말아낸 뒤 초코로 코팅을 시킨다. 녹차로 만든 수프레드와 라즈베리 소르베를 곁들이고 설탕으로 만든 캔디를 올린다.  

 

 

 

 

류태환 
류니끄 오너셰프
프로젝트 류니끄 셰프디렉터
일본, 호주, 영국에서 8년간 요리 수행을 하고 2011년부터 류니끄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지방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