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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월)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Barsegliere, 작은 마을 주민들의 유일한 사랑방이 돼 준 카페


Prologue #

8월의 이탈리아는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텅 빈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특히나 한국의 광복절인 8월 15인은 이탈리아의 최고의 명절 가운데 하나인 페라고스토(Ferragosto)입니다!
이날은 이탈리아에서는 ‘성모승천일(로마 카톨릭 교회가 성모 마리아의 죄 없는 영혼과 타락하지 않은 육체가, 하늘로 실제 승천한 것으로 가정하고, 의무적 축일로 기념할 것을 교리로 정한 날)’인데, 원래의 기원은 기원전 로마 신을 섬기던 풍습에서 라틴어로 Feriae Augusti라고 합니다. 과거 로마시대 때 아우구스토 황제가 만들었던 8월의 축제가 역사가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8월 내내 축제인 시절도 있었다고 하네요.


Scene 1 #

카톨릭의 본산 이탈리아인지라 성모승천일로 지정된 이들의 풍습은 가장 큰 명절로 현재까지 지켜지고 있습니다. 민족 대이동이 시작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요. 문득 어젯밤 이탈리아 친구들과 나눈 터키인의 민족 대이동 이야기가 오버랩 됩니다. 이탈리아인 친구인 마르코와 그의 아내 사리나, 프란체스코와 그의 베트남 아내와 고크, 그리고 저까지 다섯이 함께 즐거운 식사를 나누고 토스카나의 전경이 보이는 야외 정원에서 그라빠를 마시면서 잠시 터키인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무심코 터키인은 옛날 고구려와 형제 국가였다는 이야기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고, 연개소문이 누구인지 설명해도 알 수 없는 터라, 중국 이북에 살고있던 유목민 국가, 그 시기의 돌궐족 여인과 고구려 왕족과의 결혼 이야기 일부를 정돈되지 않은 언어로 주고 받았습니다. ‘뇌피셜’의 흐름대로 마구 뱉은 말이지만, 해외생활에서의 장점을 꼽자면 어떤 이야기와 처음 마주친다 할지라도 이슈를 제외하면 타인의 눈치를 보지않고 이야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대화 사이로 달빛이 스며듭니다. 너무 밝은 나머지 밤하늘의 별들을 찾기 힘든 정도입니다. 시원한 공기 사이로 매미 소리와 귀뚜라미 울음소리 많이 정적을 가르고 있습니다.



Scene 2 #

오늘 소개해 드리려고 방문한 곳은 토스카나의 주에 속해있는 인구 350명의 작은 마을 세라짜노(Serazzano)입니다. 이곳에서 유일한 커피숍의 주인장, 마르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해발 500m의 산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마을의 초입은 너무나 조용해서 사람이 살고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잠시 후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날아갑니다. 사막에 오아시스가 없으면 아무도 살 수 없듯, 이탈리아인에게 커피가 없는 공간은 메마른 사막과 같습니다. 오죽하면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해외여행에 모카포트를 챙기는 습관이 있었을까요? 지금은 에프스레소 커피가 전 세계에 유행이 되면서 이런 수고는 덜 수 있게 됐지만 말입니다. 이곳은 주민들의 비상구,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카페입니다.


이탈리아에는 수 십 만 명의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이 넘쳐나지만, 세라짜노에는 아시아인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유일한 동양인은 휴가로 친구의 집을 찾은 저밖에 없는 것이죠. 동네 주민들과 특히나 어린아이들은 신기한 나머지 저를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나쁘게 표현하면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지만, 좋게 표현하자면 신비함을 가지고 바라보는 관심의 대상이 돼버린 셈입니다. 이방인에게 마음을 열고 미소를 보내는 이들을 굳이 나쁜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운전해서 이곳을 도착하는 사이에 엄청나게 큰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는데요.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것은 한국에서도 시도를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는 지열발전소가 있는 곳 입니다. 천연의 자원에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을 지닌 것이죠.


지열 발전은 지구 내부의 지열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방법입니다. 지열 에너지의 근원은 방사성 물질의 방사성 감쇠와 화산 활동, 지표면에 흡수된 태양에너지 등입니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지열 에너지를 이용해 난방을 하기도 했는데요. 세라짜노에서 10분 떨어진 곳에는 뜨거운 물이 땅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고대 로마의 유적이 발견돼 잘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지열발전소는 비용이 적게 들고, 오랜 기간동안에도 꾸준한 전력을 얻을 수가 있으며, 친환경적이라는 최대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설투자 비용이 많이 들고, 화산 지대가 있어야 한다는 단점 역시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탈리아는 전 세계에서 5번째로 생산량이 높은 국가기도 합니다. 덕분에 이 작은 마을은 발전소가 들어서면서 지역 경제의 발전을 견인했습니다. 적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어 피자를 판매하는 레스토랑 한 개, 약국 하나, 커피숍 한 개가 이곳 주민들의 편의시설이지만, 생활 수준은 준수한 편입니다. 이탈리아에 살고있는 현지인들에게도 세라짜노라고 하는 지역은 낯선 곳입니다. 심지어 같은 주에 소속한 토스카나에 살고있는 현지인 친구에게 물어봐도 금시초문이라고 합니다. 불과 50분 정도 밖에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도 말입니다.



Scene 3 #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작은 마을에서 이탈리아 최고 수준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곳의 주인 마르코는 오전 6시부터 일을 시작해 자정이 돼서야 녹초가 돼 집으로 돌아가죠. 사랑스런 그의 아내가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바의 일은 전적으로 그의 몫입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아내 줄리아는 마르코와 결혼한 지 6년이 됐습니다. 하지만 둘이 알고 지낸 지는 15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백년가약을 맺고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깜찍하고 귀여운 엘리사란 이름의 딸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뤘습니다.


아내 줄리아는 이탈리아에 거주한 지 약 20년이 돼 대화를 할 때도 이탈리아인의 전형적인 손동작과 표정을 짓는 모든 면에서 이탈리아의 여인입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이 나라와 사랑에 빠지면서 삶의 여정을 따라 발걸음 옮기다 보니 어느덧 이 곳에서 연인을 만나 사랑하는 딸의 엄마가 돼있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꿈은 우크라이나에 본인이 꿈꿔오던 집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해외 생활 15년차 마침내 그녀는 꿈을 이뤄냈습니다. 드넓은 정경이 펼쳐진 곳에 동화책에 등장할 만한 목가적인 2층집을 지었습니다. 공사기간 내내 그곳에서 인부들의 밥을 먹이면서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갔다고 합니다. 꿈을 이루고 나서는 그것이 더 이상 꿈이 아니라서 성취감과 함께 또 하나의 아쉬움으로 남았다고 하네요. 그녀의 집은 휴가에 찾아가는 마음의 고향, 안식처가 돼버리고, 딸과 남편이 있는 이곳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떠나는 시기에도 그들의 사랑방이 돼주는 카페의 안주인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이 작은 마을에서는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지만, 이들은 8월 한 달 동안 3주에 걸쳐 지역민과 외부의 사람들을 초청하는 축제를 열었습니다. 세라짜노가 주최가 돼 토스카나 주에 전단지를 돌리고, 지역주민들이 자원 봉사자가 돼 수제로 만든 지역의 토속 음식을 손수 만들어 제공합니다. 초청 가수와 밴드가 이 축제의 열기를 한층 고조시켰습니다. 이 저녁에 이들이 만든 음식의 숫자만 1500 인분이 넘었습니다. 외부에서 이들의 축제를 축하하고 즐기기 위해서 방문한 사람들 덕분입니다.


어쩌면 평생 들어 보기도 힘든 이들의 이야기가 휴가 시즌에 이곳을 찾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삶의 작은 부분이지만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모습은 이방인인 제게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한 나라의 수준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삶의 형태와 문화를 관찰해야 하는데, 외진 이 곳에서 성공적이고 모두를 기쁘게 하는 축제가 열린다는 것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Scene 4 #

마르코의 커피숍 Barsegliere에서는 최고의 품질을 지향합니다. 지열발전소 덕분에 이 지역의 소득수준은 대체적으로 향상됐습니다. 유일한 커피숍에서 어쩔 수 없이 마셔야만 하는 그런 커피가 아니라, 대도시에 견줘도 손색이 없는, 아니 오히려 더욱 훌륭한 커피와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점은 작은 동네 주민에게도 나름의 자부심으로 작용합니다.


상업적인 논리에서 독점 형태의 커피숍에서 손익분기점을 낮추는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특수성, 그리고 사람들의 나름의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소비를 하는 주체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죠.


이곳은 마르코의 부모님부터 2세대의 역사가 남겨져 있는 곳입니다. 본인의 인생 안에 담긴 철학과 삶의 일부가 녹여진 장소인 셈이지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좀 더 좋은 것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우리는 옛날의 시골인심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한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겐 추억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세라짜노에서는 성실하게 지역 경제에 충실한 이들은 그들의 넉넉한 인심만큼이나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경쟁상대가 없어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닌, 소수의 지역민을 위해서 조금이나마 더 낳은 가치를 제공하려는 마음. 그리고 열정이 담겨, 최상의 커피와 머신, 그리고 식재료들을 사용했습니다. 보다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 더 많은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고 각종 전시회에도 참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바의 운영 때문에 쉽지만은 않습니다.



Epilogue #

토스카나를 여행할 일이 있다면 한 번 즈음 들려볼 만한 곳입니다. 에스프레소의 종주국 이탈리아에를 여행하다 우연히 발견한 촌 동네, 그곳에서 마주하는 엑설런트한 커피와 넉넉한 동네 주민의 인심을 느끼면 이만한 기쁨도 없지 않을까요?
커피 한 잔의 위로가 되는 동네 사랑방 이야기였습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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