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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월)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TABACHEE DE LA BASSA

Prologue #

2019년의 끝자락에 우두커니 서서 저 멀리 보이는 알프스를 바라봅니다. ‘시간은 쏜 화살과 같다’라는 말이 실감이 나면서 왠지 모를 세월의 무상함 그리고 평온함 같은 것이 마음을 쓸어 내립니다. 만년을 녹지 않고 간직한 산을 바라보자니 어느새 입김이 차가워진 공기 사이를 가르고 있는 겨울을 실감합니다. 내 안의 따뜻함이 외부의 차가움과 마주하면서 만들어낸 일루젼 같은 입김을 바라보자니 문득 영화 <커피와 담배>가 떠오릅니다.
2003년 개봉한 이 영화는 짐 자무쉬 감독의 앤솔로지* 작품입니다.


✽앤솔로지(Anthology) : 시나 소설 등의 문학작품을 하나의 작품으로 모아 놓은 것. 대게 주제나 시대 등 특정한 기준에 따라 여러 작가의 작품을 모음. ‘꽃을 따서 모은 것’, ‘꽃다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앤토로기아(Anthologia)가 어원.



Scene 1 #
영화 <커피와 담배>는 세편의 단편 영화로 이어져있고, 커피와 담배를 매개로 한 11가지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흑백의 영화로 시작부터 테이블 위에 흐드러지게 펼쳐진 담배와 꽁초커피 잔들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커피에 중독돼 손을 덜덜 떨면서도 연신 커피를 들이키는 모습과 극중 주인공이 “금연의 장점이 뭔지 아나? 이제 끊었으니까 한 대쯤은 괜찮다는 거야.”라는 식으로 대화하는 모습은 해학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매년 만들어졌고 17년 만에 개봉됐다고 합니다. 커피 한 모금에 담배 한 모금. 십수 년 전에 금연을 한 필자로서는 이 장면이 다소 매혹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건강하진 않지만 휴식같은 무엇을 연상시키는 영상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Scene 2 #
문득 이탈리아의 ‘따바끼’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이탈리아의 삶에 깊숙이 파고 들어있는 담배 판매상점입니다. 담배와 시가를 주로 팔면서 종종 소금과 우표, 때로는 향수와 문구류 및 선물용품을 판매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는 19세기 말에 끼니노(Chinino) 지역에서 말라리아 확산을 막기 위해 담배업자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이 특권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지속됩니다. 오늘 날에는 송금, 공과금, 자동차세금, 벌금 납부 및 버스 티켓, 로또복권 구입과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Scene 3 #
검정색 배경에 T 로고가 새겨진 이곳의 간판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이곳을 ‘따바끼’라고 보시면 됩니다. 커피숍 기능이 배제된 형태의 작은 숍을 비롯해 카페테리아의 형태에 따바끼의 기능이 혼합된 ‘따바께리아’가 있습니다. 담배를 구매하러 오는 고객들이 잠시 들러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영화처럼 애당초 커피와 담배에는 어떤 불가분의 관계 같은 묘한 방정식이 존재합니다.
커피숍에만 집중한 형태의 매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곳 같은 경우에는 특별한 커피를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늘 필자는 이런 호기심으로 출발해 품질지향적인 ‘따바께리아’를 찾기 위해 데지오(Desio)란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Scene 4 #
밀라노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은 몬차현에 소속한 지역으로 4만 2000명 가량의 인구가 거주하는 작은 도시입니다. 지리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동네 이름이 ‘낮은’이란 뜻을 지닌 라바싸(La bassa)입니다.
오늘 찾은 이 매장의 이름은 바로 따바끼 라바싸(Tabacche de La Bassa)입니다. 이곳은 따바끼의 기능과 함께 커피숍의 기능을 지닌 ‘따바께리아’입니다. 마치 편의점에 방문하듯 쉽고 편하게 제품을 구매하지만 커피에는 큰 기대감이 없기 마련이죠.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다릅니다. 스페셜티 커피를 다양한 방식으로 음료를 제공할뿐더러 품질에 집중한 매장입니다. ‘라바싸’는 1921년부터 문을 열었습니다. 100년에 가깝게 한 곳을 지켜온 셈입니다. 1967년 주세페의 아버지는 이곳을 인수하고 커피와 함께 담배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세페에게 언제부터 커피를 시작했냐고 물었더니, 그는 수줍은 미소를 감추며 당혹스럽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67년은 주세페가 태어난 해이고 그때부터 시작된 가족의 사업은 그의 놀이터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꼬맹이시절부터 카페를 뛰어다녔고 십대가 돼서는 틈 날 때마다 일을 돕기 시작했으며 성인이 돼서는 그의 일터가 됐기 때문입니다. 53년째 가업으로 운영해온 기간만큼 이곳을 지키는 오랜 단골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보다 특별한 커피를 소개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의 동료인 젊은 바리스타가 노신사에게 설명을 하면 다소 냉소적인 반응이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일종의 습관이 있습니다. 신인이 TV에 등장하면 신선함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지만 익숙하지 않음 역시 존재합니다. 마치 이러한 삶의 관성처럼 수십 년을 이곳을 찾는 고객들에게 변화를 주기란 어려운 미션임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세페는 그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맛과 스타일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것이죠. 여느 따바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이곳에는 스페셜티 커피로 여러 개의 싱글 오리진을 주 단위로 바꿔가면서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과테말라산 페드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는데, 클린하고 상큼하면서 단맛이 있는 에스프레소였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면서 놀란 사실은 5년이나 같은 머신을 사용하고 있었는데도 새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외관의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매일같이 머신을 관리하고 주 단위 그리고 월 단위, 연 단위로 관리해야할 것들을 철저하게 준수한 탓에 쌩쌩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주세페의 커피는 이탈리아에서도 눈을 감고 라떼아트를 시연해 챔피언이 된 유명 바리스타, 안드레아의 스트릿 커피 스쿨(Street Coffee School)에서 로스팅한 커피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매우 이색적인 장면은 이탈리아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이들이 오르쪼(Orzo)란 음료를 마시는데 보통은 인스턴트 형태를 제공하는데요. 주세페는 그것의 생산자가 누구인지 알며, 잘 볶아낸 특별한 향미를 가지고 있는 오르쪼를 그때그때 분쇄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셜티 오르쪼’란 이름을 붙여도 될 만큼 말이죠.


70%는 로컬고객이지만, 30% 정도는 이곳을 지나가는 손님들이라고 합니다. 뜻밖에도 “커피가 정말 맛있습니다.”란 말을 하는 다수가 바로 뜨내기 손님이라는 점입니다. 좋은 것도 일상이 되면 특별함이 잊혀지는 법이지요.


주세페는 약 20년 정도 전부터 품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냥 일이였던 셈입니다. 커피를 향한 열정이 생기면서 어렵지만 따바끼에서 품질 좋은 음료를 제공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트레이닝도 지속적으로 받고 카푸치노 한잔에도 레시피에 맞는 훈련과 디자인이 된 음료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에 브리오시와 함께 카푸치노가 제공되는 스페셜한 트레이를 제작해 가치를 더했습니다. 단순하게 품질이 높은 커피를 제공하는 커피숍도 나쁘진 않지만 이토록 오랜 세월을 DNA 깊숙한 곳에서부터 커피숍이 어떤 공간인지를 이해하고 있는 친구들이 그것을 계승해 발전시키는 모습을 볼 때면 감동을 받게 됩니다.
제품은 최종적으로 소비자를 위해 존재하고 그것에는 가치가 담겨 있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소통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Epilogue #

며칠 전, 필자가 운영하는 유투브 채널 ‘밀라노 남자 Coffee Pro JJ’에 이런 댓글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를 여행하시던 분께서 사르데냐에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셨는데 1.5 유로인데 이게 실화입니까? ㅠ.ㅠ”


보통은 1.3유로지만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죠. 따바께리아에서 1.2유로에 스페셜한 에스프레소를 제공하고 있는 주세페의 열정을 지켜보면서 가끔 잊고 있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이곳은 ‘커피천국’이로구나!


세계적인 바이올린 ‘과르넬리’와 상업 바이올린의 차이를 설명하는 유트브 채널을 보면서 흥미로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내 옆에서 한 번도 낸 적 없는 소리를 상상하기는 굉장히 어렵거든요.”란 조진주 바이올리니스트의 말에 맛있는 에스프레소의 경험과 오버랩 됐습니다. 에스프레소는 단지 쓰고 맛없는 양이 적은 음료가 아닙니다.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의 추억이 여러분의 일상에 기억되길 바랍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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