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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 (수)

정승호

[정승호의 Tea Master 44] 홍차 문화와 함께 발달한 영국 명품 도자기 브랜드의 탄생이야기

 

 

오늘날의 유럽 명품 도자기 문화는 16세기 중국에서 수입한 차를 마시는 테이블웨어로 상류층에서 사용한 것이 시초다. 유럽에서도 최초로 차를 수입했던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포르투갈,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으로 유럽의 도자기 문화는 홍차 문화와 함께 발달해 나갔다. 특히 18세기 영국에서는 홍차 문화가 융성기를 맞으면서 수많은 도자기 업체들도 함께 탄생하기에 이르렀는데, 여기서는 영국식 홍차 문화와 함께 발달한 영국 명품 도자기 브랜드의 숨은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한다.

 

 

영국 도자기 산업의 모티브, 독일의 ‘마이센’
오늘날 명품 영국 도자기 브랜드의 역사는 거슬러 올라가면 18세기 당시 유럽 최고의 도자기 업체인 독일 마이센 지역의 ‘폴란드왕·작센선제후 도자기공장(Königlich Polnische und Kurfürstlich-Sächsische Porzellan-Manufaktur)’으로부터 유래됐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의 마이센 지방은 고령토가 풍부해 도자기 생산에 최적의 지방인 곳으로서 유럽 최초로 경질 도자기(硬質磁器)가 생산된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왕가와 상류층에서 즐기던 홍차 문화는 최고급 도자기의 자체 생산에 큰 동기가 됐는데, 당시 ‘도자기 수집왕’이라 할 만큼 많은 수의 수입산 동양 도자기의 수집에 열을 올렸던 작센의 왕, 아우구스트 2세(Augustus II, 1670~1733)가 폴란드왕·작센선제후 도자기공장의 개업을 지원하면서 독일에서는 1710년 도자기를 공식적으로 자체 생산했다. 물론 그 기술도 당시 유럽 도자기업계를 선도할 정도로 최고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영국은 1714년 앤 여왕이 후손이 없는 상태로 서거하면서 스튜어드 왕조가 단절됐는데, 왕가를 잇기 위해 독일의 하노버가의 조지 1세를 국왕으로 새로이 옹립하며 하노버 왕조가 시작됐다. 당시 조지 1세는 독일의 왕도 겸직하고 있었던 탓에 자신이 친숙하게 사용했던 유럽 최고의 도자기 브랜드인 독일의 마이센 도자기도 자연히 영국 상류층에 유입돼 큰 유행을 일으킨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중국산 도자기의 수입에 의존했던 영국도 큰 자극을 받아 도자기 자체 생산에 나섰다.

 

흔히 독일 ‘마이센’이라고 부르는 도자기 업체는 오늘날까지도 작젠 주에서 주립 도자기공장마이센유한회사(Staatliche Porzellan-Manufaktur Meissen GmbH)로 운영되고 있다. 이 도자기 업체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도 최고급 명품 도자기 브랜드 업체로서 그 명성을 지금도 떨치고 있다고 한다.

 

영국 최초의 도자기 업체, ‘첼시’
영국은 홍차 문화가 서양에서는 가장 뒤늦게 전파됐고, 또한 독일과는 달리 고령토도 나지않아 도자기 생산에서는 매우 열악한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당시 티가든(Tea Garden)이 유행하면서 18세기 후반부터 민간 중소 자본을 바탕으로 도자기 업체들이 등장했는데, 그 첫 업체가 1745년에 런던 남부의 첼시(Chelsea) 지역에서 창업한 첼시 도자기공장(Chelsea Porcelain Manufactory, 이하 첼시 업체)이었다.

 

 

이 첼시 업체는 그 당시 컴벌랜드 공작의 후원을 받아 창립됐으며, 공작이 첼시 도자기들을 상류층과 왕가에 소문을 내면서 점차 왕실에서도 주문을 받게 됐다. 그 결과 첼시 업체는 영국 내에서 도자기 업체의 선두주자로서 최고급 도자기 생산 업체로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당시 첼시에서 생산한 도자기 제품들은 영국 도자기 산업의 초창기였던 만큼 독일의 마이센 도자기를 모방한 수준이었다고도 전해진다.

 

이 첼시 업체는 1770년 더비 업체(Derby Porcelain)에 합병되기 전까지 연질 도자기를 주로 생산했다. 그리고 당대의 상류층을 사로잡았던 도자기 브랜드인 만큼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도자기 제품들은 매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본차이나를 최초로 개발한, ‘보’
오늘날 영국 도자기의 대명사 ‘본차이나(Bone China)’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본차이나를 최초로 개발한 곳이 바로 보 도자기공장(Bow Porcelain Factory, 이하 보 업체)다. 이 보 업체는 첼시 업체가 창립된 지 2년이 지난 1747년에 보((Bow) 지역, 즉 오늘날의 타워햄리츠(Tower Hamlets) 구의 런던버러(London Borough)에서 창립됐다.

 

보 업체는 당시 선두 업체였던 첼시 업체를 누르기 위해 동양 도자기와도 같이 얇고 투명한 광택의 도자기를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영국은 고령토가 나지 않는 곳으로서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야 했는데, 이로 인해 1748년 탄생한 기술이 바로 본차이나였다.

 

초기 본차이나 기술은 기본 흙에 동물의 골회를 섞어서 소성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기존의 상품에 비해 부드럽고 투명하면서 독특한 광택을 띠는 도자기가 생산됐다.

 

보 업체는 자체 개발한 초기 본차이나 기술로서 일본의 가키에몬 양식의 테이블웨어를 생산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중산층에게 판매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1756년에는 전사법을 최초로 도자기에 적용, 생산한 곳도 보 업체였다. 그런데 이 보 업체는 1776년에는 문을 닫아 오늘날에는 런던에 소재한 영국 초창기의 두 도자기 선두 업체로 역사 속에 남아 있다.

 

왕실 조달 허가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로열우스터’
오늘날의 로열우스터(Royal Worceter) 브랜드의 창립 역사는 1751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사였던 존 월(John Wall)과 약제상이었던 윌리엄 데이비스(William Davis)가 잉글랜드 우스터셔주의 도시인 우스터(Worcester)에서 자그만 도자기 공장을 설립해 운영했던 것이 시초다.


초창기에는 일본풍의 문양을 많이 사용했지만 점차 로코코 양식의 고급스러운 느낌의 제품을 생산했고, 1757년에 R. 핸콕이 도자기 그림에 동판전사(銅版轉寫)를 채용,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

 


 

이 로열우스터 업체는 테이블웨어와 고급 장식용 도자기 시장에서 고급스럽고 사치스럽기로 최고의 위치를 자랑한다. 특히 왕실 납품 허가증을 1788년 조지 3세로부터 처음 받은 뒤로 지금까지 역대 국왕(여왕)으로부터 모두 받은 유일무이한 도자기 업체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시대를 관통하면서 왕실 납품 허가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셈이다.

 


화려한 이마리 양식의 ‘로열크라운더비’
18세기 중반에는 오늘날 영국 명품 도자기 브랜드 업체인 로열크라운더비(Royal Crown Derby)의 모체가 창립됐다. 잉글랜드 더비셔주(Derbyshire)의 더비에서 윌리엄 듀스베리(William Duesbury, 1725~1786)가 ‘노팅엄 로드 공장(Nottingham Road factory)’을 1756년에 설립한 것이다. 이 노팅엄 로드 공장은 이후 더비 도자기공장(Derby Porcelain Manufactory)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발전하면서 조지 3세로부터 왕실 납품 업체로 지정됐고, 왕관을 뜻하는 크라운의 칭호를 얻었다.

 


 

더비 업체는 섭정 황태자(Prince Resent)’로도 유명한 조지 4세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성장했다. 당시 중국풍(시누아즈리)의 도자기에 매료됐던 섭정 황태자, 조지 4세는 특히 일본 이마리야키(伊万里焼)의 금란수를 좋아했는데, 더비 요업이 제작한 이마리 양식의 현란하고도 사치스러운 금란수 문양의 제품이 황태자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면서 당시 왕이었던 조지 3세로부터 더비 요업은 ‘크라운(Crown)’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 이마리 양식의 크라운 더비 제품은 독일의 가키에몬 양식의 마이센 제품과 화려하고 호화스럽기가 쌍벽을 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그 뒤 1890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로열(Royal)’의 칭호를 받으면서 왕실 납품 업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로열과 크라운이라는 두 칭호를 동시에 붙이게 됐다.


실용 자기 크림웨어의 대명사, ‘웨지우드’
영국에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테이블웨어도 많이 있지만, 일반 노동자나 중산층을 겨냥해 대량으로 생산한 도자기도 있다. 1774년 조사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 1730~1795)가 기계로 생산해 가난한 사람들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유백색의 경질 자기인 크림웨어(Cream Ware)가 있다. 장석을 많이 사용해 장석질 도기라고도 하는데, 오늘날에는 일상 속 실용 자기의 대명사가 됐다. 즉 ‘크림웨어’하면 ‘실용 자기’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이다. 따라서 웨지우드 업체는 영국의 도자기 산업을 크게 번창시킨 업체로 오늘날 영국을 대표하는 도자기 업체로 명성을 굳히고 있다.

 

 


 

이 웨지우드는 1759년 왕실 조달 허가증을 최초로 받았으며, 18세기 도자기를 영국 내에서 대중화시켜 영국의 도자기 산업을 크게 번창시켰다. 1760년에는 조지 3세의 샬럿 왕비로부터 크림웨어가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퀸즈웨어’라는 호칭도 획득했다.

 


 

 

1774년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신고전미가 넘치는 재스퍼웨어(Jasperware) 양식을 창조했는데, 자기에 가까운 석기를 신소재로 사용, 고전주의의 다양한 색상과 무늬, 도안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제품들을 다수 생산했다.


본차이나의 실용화에 성공한 ‘스포드’
한편, 영국에서는 보 업체가 문을 닫은 뒤로 본차이나의 기술은 답보 상태에 놓여 있었고, 영국 도자기 산업계에서도 계승, 발전시켜야 할 숙제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1770년 조사이어 스포드(Josiah Spode, 17331797)가 오늘날 영국의 도자기 마을로 유명한 잉글랜드의 스토크온트렌트(Stoke on-Trent)에서 스포드 업체를 창립했다.

 

 

 

도기 장인이었던 스포드는 1784년 동판 전사의 인쇄 기법을 완성시킨 뒤 도자기 업계의 숙원이었던 본차이나 기술의 실용화에 나섰다. 먼저 경질 자기의 소재를 부싯돌과 콘월 지방의 돌, 점토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사용하고 여기에 실험을 통해 소의 골회를 섞어 밑바탕을 백색에 가깝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던 중 스포드가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스포드 2세가 소의 골회 성분비를 매우 정밀하게 조율했는데, 점토 25%, 콘월 지방의 부싯돌과 돌, 25%, 소 골회의 함유비를 20%에서 50%까지 높여서 경질 도자기의 품질을 대폭 상향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탄생한 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파인 본차이나(Fine Bone China)’다. 흰색을 밑바탕으로 해 청색과 흰색의 문양을 그려 넣은 독특한 디자인의 상품도 생산했는데, 바로 ‘블루 앤 화이트(Blue & White)’다.

 

 

 

이 스포드 업체는 보 업체에서 단절된 본차이나 기술을 계승 발전시켜 파인 본차이나를 생산, 본차이나 도자기를 실용화에 성공한 것으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영국 여왕의 혼수 도자기, ‘아인슬리차이나’
영국의 왕실 납품 허가 업체로는 아인슬리차이나(Aynsley China)도 있다. 이 업체의 도자기 브랜드는 현재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와 고인이 된 다이애나 왕세자비(Diana  Frances Spencer, 1961~1997)가 혼수 도자기로 받았을 정도로 격이 높다.

 

 

아인슬리차이나는 본차이나 도자기와 테이블웨어, 고급 장식용 도자기의 제조로 유명한 업체로서 그 역사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75년 존 아인슬리(John Aynsley)가 스태퍼드셔주, 런던에서 창립한 것이다.

 

 

 

그 뒤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지만 현재는 아일랜드 도자기 업체인 벨리크포터리(Belleek Pottery)에서 소유하고 있고, 영국 왕실 납품 업체로서의 위상도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는 경영 상태가 악화돼 스토크온트렌트의 공장은 문을 닫고 그 판매 숍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여왕의 혼수 도자기, ‘아인슬리차이나’
영국의 왕실 납품 허가 업체로는 아인슬리차이나(Aynsley China)도 있다. 이 업체의 도자기 브랜드는 현재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1926~)와 고인이 된 다이애나 왕세자비(Diana Frances Spencer, 1961~1997)가 혼수 도자기로 받았을 정도로 격이 높다.

 

 

 

아인슬리차이나는 본차이나 도자기와 테이블웨어, 고급 장식용 도자기의 제조로 유명한 업체로서 그 역사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775년 존 아인슬리(John Aynsley)가 스태퍼드셔주, 런던에서 창립한 것이다.

 

 

 

그 뒤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지만 현재는 아일랜드 도자기 업체인 벨리크포터리(Belleek Pottery)에서 소유하고 있고, 영국 왕실 납품 업체로서의 위상도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는 경영 상태가 악화돼 스토크온트렌트의 공장은 문을 닫고 그 판매 숍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승호 
한국 티소믈리에 연구원 원장
국내 최초의 티(TEA) 전문가 양성 교육기관 및 연구 기관인 한국 티소믈리에 연구원장으로 글로벌 시대에 맞게 외식 음료 산업의 티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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