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연의 Hospitality Brand Talk] 매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경험을 풍부하게, 아이스호텔(ICEHOTEL)

2020.12.10 08:50:00


20여 년 전, 대학교 마케팅 수업에서 얼음으로 만든 호텔의 존재를 처음 접했다. 신기하긴 했지만 다소 협소해 보이는 이글루에 순록 가죽이 올려져 있는 네모난 얼음 침대가 덜렁 놓여 있어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게다가 투숙객들은 두꺼운 겨울 외투와 모자를 쓴 채로 침낭에 들어가 자야 한다니 추운 겨울에 눈밭에서 외박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작은 이글루에서 시작한 이 호텔은 계속 진화하며 이제는 매년 심사를 거쳐 선발된 아티스트들이 디자인한 얼음 객실을 선보이는 호텔로 성장했다. 바로 스웨덴 북부의 작은 마을 유카스야르비(Jukkasjärvi)의 아이스호텔(ICEHOTEL)이다. 매해 12월에 독특한 디자인으로 새롭게 지어졌다가 4월에 사라지는 겨울 나라의 얼음 호텔. 동화 속에서나 봤을 법한 얼음으로 만든 호텔에서의 낭만적인 경험은 많은 사람들의 버킷리스트에 올라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브랜드 정체성을 ‘얼음’, ‘예술’,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로 정의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얼음 호텔인 아이스호텔에 대한 브랜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래프팅 명소 – 이글루 아틱 홀 – 아이스 호텔로…

30주년을 훌쩍 넘긴 아이스호텔은 우연처럼 시작됐다. 이 호텔의 창업자인 잉베 베르크비스트(Yngve Bergqvist)는 1970년 중반에 유카스야르비에 도착해 토른 강(Torne River)에서 패들링과 낚시의 잠재력을 보고 카누 센터를 시작했다. 이는 스웨덴과 유럽의 최초 래프팅 지역 중 하나로 여름에 5000~6000명의 사람들이 래프팅, 낚시, 카누를 즐기기 위해 올 정도로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여름에는 호황이었으나 가을, 겨울에는 어둡고 추운 비수기가 시작됐다. 베르크비스트는 이곳의 추운 겨울, 아름다운 오로라, 반짝이는 하얀 눈을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제공할 방법을 강구했다. 겨울철에는 방문객이 절대 오지 않을 테니 시설을 폐쇄하라는 지역 관광 관리자의 조언도 그를 포기 시킬 수 없었다.


베르크비스트는 일본 여행 중 얼음조각가들을 만나게 됐고, 토른 강의 얼음을 활용할 수 있는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1989년 일본의 얼음조각가들을 유카스야르비에 초청해 스웨덴 북부의 조각가들을 위한 예술 워크숍을 개최했다. 1989~1990년 겨울, 250㎡의 이글루 아틱 홀(Igloo Artic Hall)이 개장한 순간이다. 전시회가 진행되던 어느 날 밤, 동네의 모든 숙소가 만실이 돼 방문객들은 예상치 않게 전시회장인 이글루 아틱 홀에서 침낭을 깔고 잊지 못할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그렇게 아이스호텔이 탄생했고, 이 호텔의 미션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을 만드는 것’으로 정해졌다.


아이스호텔의 첫 번째 키워드: 얼음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세계 최초의 얼음 호텔인 아이스호텔의 브랜드 정체성을 가장 강력하게 나타내는 키워드는 ‘얼음’이다. 브랜드명도 얼음 호텔을 의미하는 ‘Ice’와 ‘Hotel’의 합성어. 직관적으로 누구나 한 번 들으면 기억할 수밖에 없는 네이밍이다.


브랜드 마크는 그림 1과 같이 얼음 혹은 고드름을 연상시키는 역삼각형 안에 도구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형상화된 문양이다. 이는 언뜻 보면 창과 칼을 든 사람들 같기도 해 어떠한 왕국의 문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브랜드 마크에 대한 명확한 의미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매해 독특한 디자인으로 건축되는 아이스호텔의 특성으로 미뤄보아 얼음을 깎아 호텔을 건축하는 얼음 건축가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년 3월, 토른 강에서 개당 2톤의 얼음 블록 2000여 개와 2만 7000톤의 눈이 수확되고 건축을 위해 창고에 저장된다. 이후 오픈 시즌에 맞춰 객실마다 수정같이 투명한 얼음과 반짝이는 눈이 채워지고 아티스트의 손에 의해 6주 만에 호텔과 부대시설, 장식품 및 소품으로 재탄생한다(그림 2). 주류와 음료수를 즐길 수 있는 아이스 바(좌측 상단), 음식과 더욱 특별하게 먹을 수 있게 하는 얼음 그릇(우측 상단)과, 아이스호텔의 분위기에 화룡점정을 찍어줄 샹들리에 조명(좌측 하단), 그리고 침구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눈과 얼음으로 만들어진 침실(우측 하단)까지 얼음으로 시작해서 얼음으로 끝나는 얼음 왕국이다.




매트리스가 있고 그 위에 특수 제작된 침낭을 제공하므로 불편함 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한다. 눈으로 만들어진 벽은 단열 효과와 방음 효과가 있으며 조명을 끄면 모든 빛을 차단해 그 고요함이 타지에서,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는 더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아이스호텔의 두 번째 키워드: 예술

창업자 잉베가 일본의 얼음 예술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글루 아틱 홀과 아이스호텔이 탄생했기에, 이 호텔의 브랜드 정체성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예술’이다. 매해 봄,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가, 산업 엔지니어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은 설계 콘셉트와 방향, 아이디어, 스케치가 포함된 크리에이티브 보드(Creative Board)를 봄에 제출한다. 평균적으로 120~150개의 작품이 제출되고 그중 15~20개의 팀이 선발돼 11월에 유카스야르비에 초대된다. 각 팀은 자신의 개성을 담은 20개의 스위트룸과 15개의 객실, 1개의 세레모니 홀, 아이스 바, 리셉션, 메인 홀 등을 디자인하고 선보인다. 이 과정에서 아티스트들의 콘셉트와 스케치를 현실로 구현해 줄 건축팀, 얼음 제작팀, 예술 지원팀과 조명팀이 협력해 완성한다. 




투명한 얼음과 하얀 눈만을 이용해 공간을 꾸미기 때문에 자칫 단조로울 수 있다. 공간을 더 특별하게 하고 생동감을 주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상의 얼음 조형물과 조명의 역할이 매우 크다. 그림 3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조형물과 조명에 따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한 눈에 비교하고 느낄 수 있다.


일반 호텔은 한 번 건축하면 7~10년 정도 지나야 인테리어 개보수를 고민하고, 외관을 포함한 전체 호텔을 새롭게 다시 짓는 것은 몇 십 년이 지나도 결정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아이스호텔은 이러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부담없이 선보일 수 있다. 단순히 얼음으로 만들어진, 호텔을 뛰어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몇 달 후면 녹아 없어질 예술 작품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 이는 방문객과 투숙객에게 특별한 경험과 함께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는, 아이스호텔만이 갖는 차별점이다. 


아이스호텔의 세 번째 키워드: 지속가능성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분야와 환경 엔지니어의 경력이 있는 창업자 잉베는 친환경적인 지속가능성을 매우 중요시한다. 아이스호텔은 매년 겨울 토른 강이 얼면서 생긴 거대한 얼음덩어리와 눈을 섞어 만든 것으로 별도의 자재비가 들지 않는다. 또한 아티스트들에 의해 지어진 호텔도 봄이 되면 자연스레 녹아 없어지므로 환경오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에서 시작돼 물로 돌아가는 아이스호텔. 




2016년부터는 연중 내내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20개의 스위트룸, 아이스 바(ICE BAR) 및 아트 갤러리를 포함한 아이스호텔 365(ICEHOTEL 365)를 개관했다. 매년 겨울 아이스호텔이 지어질 때, 이 호텔의 내부 디자인은 새롭게 탄생한다. 5월에서 9월까지 강하게 내리쬐는 백야의 태양빛을 이용한 재생 에너지만을 이용해 실내 온도를 겨울과 동일하게 영하 5도로 유지한다. 이 역시 환경에 무리를 주지 않는 친환경적인 지속가능한 개발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해에 2개의 친환경 관련 지속가능성 인증(Nordic Swan Eco Label과 Artic Sustainable Destination)을 획득했다. 


명확한 신념을 바탕으로 브랜드 코-크리에이션을 실천하는 아이스호텔

여름에는 백야로 빛나고, 겨울에는 2주가량 태양이 지평선 위로 올라가지 않으며 1년 중 8개월 동안 눈이 내리고 밤에는 오로라를 감상할 수 있는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의 유카스야르비. 이 지명이 갖고 있는 ‘만남의 호수(Meeting Place by the Water/Lake of Assembly)’라는 의미처럼 아이스호텔은 얼음과 예술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으는 비전을 갖고 있다. 오너의 끊임없는 도전정신, 명확한 신념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아이스호텔. 이는 매년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며 재방문을 유도하기도 하고, 기존 고객과 잠재 고객 모두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할 뿐 아니라 호텔에서의 특별했던 추억을 곱씹으며 가족끼리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준다. 또한 매 시즌마다 투숙객과 관광객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은 여러 전문가들의 협동은 브랜딩을 할 때 무척 중요한 브랜드 코-크리에이션(Brand Co-Creation) 정신을 담고 있다. 아티스트는 자신의 실험적인 디자인을 마음껏 펼칠 수 있고,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알릴 수 있으며 호텔 오너는 디자인 비용을 별도로 지불하지 않는 대신 작품을 전시할 땅과 아낌없는 지원을 해줌으로써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이룬다. 올해는 12월 11일에 개관하는 아이스호텔, 또 어떤 멋진 작품들이 탄생할 지 기대된다.




정성연 브랜드 전략가

JW 매리어트 호텔 서울 프런트 오피스에서 3년간 근무 후 KAIST 경영대학원의 MBA 과정을 거쳤다. 그 후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에서 식음전략기획, 경영진단, 인사, 경영기획, 디자인기획팀을 거치며 브랜딩으로 업무 영역을 확장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브랜딩 컨설팅회사 ‘brandots 브랜닷츠’의 CEO로서 다양한 스타트업 브랜드 자문 및 컨설팅을 진행했다. 또한 세종대학교 외래 교수로 서비스경영론, 경영학원론, 여가공간계획론 등을 강의했으며 현재는 미국 보스턴에 거주하며 브랜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