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교수의 명가의 와인] Ferro 13

2023.09.17 08:13:46

 

 

샤또(Chateau), 도멘느(Domaine), 이스테이트(Estate) 등 와이너리 호칭이 근엄하게 붙어 있는 클래식 와인들을 마시다 엄청 힙한 와인을 만났다. 레이블에는 격조있는 샤또 건물 사진도, 컬러풀하고 멋진 포도밭 사진도 없다. 흑백으로 구성된 간단 캐리커쳐와 숫자, 기호가 전부다. 힙한 시대인 만큼 힙한 대세 와인들을 만나 보자.  

 

개성 뿜뿜 와인의 탄생, Ferro 13


2021년 포브스가 선정한 이탈리아 최고 와이너리, 페로 13~! 페로 13은 와인에 대한 강한 열정과 창의력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만든 독특한 와이너리다. 페로 13은 2015년도에 4명의 와인 전문가가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Verona)에 있는 ‘Ferro 13번지’ 거리에서 저녁을 먹으며 양조장 설립을 결정해 붙여진 이름이다. 의기투합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속전속결 설립 스토리만큼이나 페로 13 와이너리는 혁신적이고 젊다. 우선 페로 13은 와인 생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한다. 테루아, 품종, 생산자를 한 와인에 녹여 담았다. 페로 13 와인 시리즈의 특별한 점은 각 와인이 이탈리아 북부에서 남부까지 각기 다른 지역 출신인 와이너리 설립자의 분신(Alter Ego)을 상징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4명의 창업 파트너와 그 와인을 살펴보자. 63년생인 알베르토 부라토(Alberto Buratto)는 분석적인 숫자를 다루는 사람이다. 그는 완벽한 고객 만족이라는 사명을 가진 와인 애호가다. 그의 또 다른 자아는 시칠리아산 네로 다볼라 로쏘 레드 와인이다. 77년생인 마르코 베르나베이(Marco Bernabei)는 진정한 신사며 와인 양조 전문가다. 토스카나 지방의 이소디(I Sodi)를 비롯해 이탈리아 전역 5개 양조장의 양조 컨설팅을 담당한다. 그의 분신은 파비아의 피노 네로 젠틀맨 레드 와인이다. 80년생인 알베르토 잠피니(Alberto Zampini)는 전자 상거래와 소셜 미디어 전문가로서, 베네토산 소비뇽 블랑 화이트 와인인 해시태그 화이트 와인으로 대표된다. 마지막으로 82년생인 가브리엘레 스트링가(Gabriele Stringa)는 온라인 매거진과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일해 왔다. 그의 분신은 힙스터 레드 와인 풀리아의 네그로아마로 로쏘다. 


페로 13의 와인은 특히 레이블의 디자인을 통해 성공을 거뒀다. 모두 핫하고 힙한 코드를 단순하고 가볍게 입힌 레이블이다. 한번 보면 브랜드명, 디자인 모두 잊혀지지 않는다. 그 결과, 와인 시장 자체를 젊게 만들고, 밀레니엄 세대를 비롯한 젊은 층들이 쉽게 와인을 접하게 하기 위한 매력적인 레이블을 만들어 냈다.

 

 

 

이탈리아 와인의 품질과 재미를 함께 담은 Ferro 13


페로 13은 젊은 고객층도 공략하지만 고품질 와인 생산에 있어 전통적인 방법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은 역량과 헌신으로 모든 상황에 맞는 고품질 와인을 생산한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남부까지 이탈리아 와인의 우수성을 보여주려 하며, 색상, 산미, 신선도, 구조, 타닌 등 클래식 와인의 모든 품질 요소를 갖췄다. 회사의 품질 규정에 맞춰 포도 공급자를 선정하고, 이탈리아 내의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포도를 받아, 매우 유연하게 활용하며 와인을 만들 수 있다. 현대적인 레이블 디자인을 가진 와인은 품질이 낮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고자 독립적으로 계약한 포도밭에서 일정한 품질 기준을 통과한 포도로만 생산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포브스가 선정한 이탈리아 최고 와이너리 중 하나로 선정됐으며 여러 와인 품평회에서 수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 가격 또한 매우 좋다. 필자가 이 달의 와인 명가로 소개 하는 와인들의 평균 가격이 10만 원대 정도인데, 이번 페로 13 와인은 국내 수입되는 6종 와인 모두 매우 합리적 가격대의 가성비 최고의 와인들이다. 


마케팅 전문가인 가브리엘레 스트링가의 말처럼 페로 13의 목표는 “와인의 외양과 레이블의 소통에서 시작해 와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페로 13 MBTI ‘나의 부캐 와인 찾기’ 앱이 있다. QR코드를 촬영하면, 앱으로 연결되며, 몇 가지 질문에 답하면, ‘나에게 찰떡인 페로 13 와인’을 찾을 수 있다. 예컨데, 당신의 부캐 와인은 ‘해시태그(Hashtag)’라고 답이 나오며, 해시태그는 밝고 발랄한 흰꽃과 어우러지는 스파이시한 부께를 느낄 수 있다는 정보가 뜬다. 또한 “당신은 친구들가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해요~!”라고 성격 판단도 해 준다. Ferro13.it 홈페이지와도 연동돼 각 와인 생산에 대한 정확한 설명과 함께 각각의 와인과 어울릴법한 음식, 음악, 영화, 심지어는 책까지도 추천해 주고 있다. 


페로 13은 MZ세대가 호감을 가질만한 미래 지형성 콘텐츠를 가진 와이너리라고 느꼈다. ‘핫하고 힙한’ 비전과 소통, 품질이 동반되는 22세기형 와인 명가, 페로 13을 시음해 봤다.

 

해시태그, 소비뇽 블랑 Sauvignon Blanc, ‘Hashtag’ 

 

 

페로 13 라인업의 가장 신선한 화이트 와인이다. 레이블에는 ‘Sauvignon’이라고만 적혀 있지만, 소비뇽 블랑 100% 와인이다. 이탈리아 북중부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Trentino-Alto Adige) 지방과 북동부 베네토(Veneto) 지방의 구릉지 포도로 생산했다. 특히 알토 아디제 지역은 알프스 산자락인 돌로미티(Dolomiti) 산맥 지역으로 하얀 백운석이 발달한 토질이며, 화이트 와인에 고급스러운 미네랄과 높은 산미를 전해 주는 멋진 테루아다. 서늘한 시간대에 수확된 포도는 바로 압착되고, 며칠 정도 껍질과 함께 저온으로 보관돼 품질의 향과 페놀 성분을 얻는다. 발효 종료 이후에도 수개 월 동안 고운 앙금(Lee) 위에서 배양되며, 이 후 여과된 와인은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약 1개월 동안 숙성되고 안정화 시킨 후 병입된다. 저가 와인 생산 공정치고는 정성과 디테일이 돋보이는 화이트 생산 방식이다. 


필자가 시음한 ‘2019 해시태그’는 맑고 밝은 연한 노란색에, 싱그런 라임향과 레몬, 화이트 계열의 가볍고 은은한 꽃향기와 신선한 풀내음 그리고 흰 후추의 스파이시함도 깃들인 잘 조화된 복합미 있는 부께를 보여 줬다. 입에서는 신선한 산미와 가뿐한 몸매, 알코올 11.5%vol의 순한 미감이 좋았다. 시음 온도는 8~10°C 정도로 차게 해서 시음했더니, 날아갈듯한 상승감에 8월의 폭염이 모두 날라 갔다. 석회암 테루아와 품종 특성에서 유래하는 쌉싸래한 미네랄 터치와 풍미가 살아 있는 멋진 화이트 와인이다. 음식은 바캉스 철을 맞아 바다로 나간다면, 갖은 해산물과 생선회 등과 아주 잘 어울리겠다. 


이 와인은 소셜 미디어 전문가인 알베르토 잠피니의 페르소나(Alter Ego) 와인으로 소개됐고, 따라서 ‘#해시태그’가 뀌베명이 된 듯하다. 해시태그는 동종 주제를 묶는 일종의 꼬리표 같은 것으로서, 분류와 집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21세기 와인명이 아닌가 한다. 이제 와인은 의미와 해석을 안주로 소비할 수 있게 됐다. 상복도 많아서 2022 대한민국 주류대상 대상 수상, 2020 인터내셔널 와인어워드 Silver 수상, 2019 런던 와인 컴피티션 Bronze 수상, 2019 루카 마로니 93포인트를 획득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것처럼, 롤링 스톤즈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을 들으며 와인을 음미해 볼까?  

Price 4만 원대

 

해커, 산죠베제 Sangiovese, ‘Hacker’ 

 

 

이탈리아의 국가 대표 품종 산죠베제로 만든 레드 와인이다. 중부 토스카나주에서도 오랜 역사적 평판을 받아온 끼안티의 심장부 그레베 인 끼안티(Greve in Chianti) 마을의 해발 300m 구릉지대에서 재배된 포도를 사용했다. 9월 마지막 주에 수확된 포도는 완숙된 향을 뽐내며 발효에 들어가고, 유산 발효를 위해 오크통에서 4개월 정도 머물며 숙성시킨 다음, 병입 후에도 1~2개월 안정화 과정을 거쳐 출시된다. 


필자가 시음한 ‘2019 해커’는 빛나는 보랏빛 톤을 가진 밝은 레드 색상에, 신선한 베리류 향이 제비꽃 향과 함께 산죠베제의 특성을 잘 살려 준다. 감칠 맛 나는 산미가 13.5%vol의 알코올에 부드럽게 감싸 안정되고 신선한 미감을 제공한다. 미네랄의 단정한 드라이감, 잘 익은 과일 풍미는 맛에서도 이어지며, 산뜻한 타닌감과 함께 끼안티스러움(Toscana IGT)을 완성한다. 페로 13 앱에서 제시한 페어링은 피렌체식 스테이크(Florentine steak)인데, 불고기나 갈빗살 구이와 먹으면 더욱 보디감이 맞을 듯하다. 함께 들을 음악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My Favorite Things’. 마시면서 볼 영화는 ‘In Time’ 그리고 힘들지만  함께 읽을 책은 ‘캐빈 미트닉(Kevin Mitnick)의 <Ghost in the wires>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0과 1의 디지털 숫자의 조합으로 디자인된 해커 레이블 자체가 이미 난해하고 독특하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해커’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보안 전문가를 일컫는 말인데, 산죠베제의 낭만적인 이미지와는 결을 달리하기는 하다. 하지만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는 품질만 따지니, 2022 KWC 골드, 2022 대한민국 주류대상 대상, 2019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 Bronze, 2019 디캔터 월드 와인어워즈 Bronze, 2017 루카 마로니 92포인트를 받았다.  

Price 4만 원대

 

카르마, 프리미티보 Primitivo, ‘Karma’

 

 

 

이탈리아 본토에서 장화 뒷굽에 해당되는 위치에 있는 곳이 뿔리아(Puglia) 지방이다. 넓은 평원이 존재해 이탈리아의 곡창 지대다. 기원전 216년 카르타고의 맹장 한니발이 로마 군단을 섬멸한 칸나에 전투가 벌어진 전장이기도 하다. 그 전장에 지금은 과수와 포도나무가 자라고 있으니, 가장 대표적인 품종이 프리미티보다. 이 품종은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진판델로 불리고 있다. 테루아와 양조법이 다르기에 맛은 약간 다르게 표현되지만 결국 같은 품종이다. 카르마 와인을 만든 프리미티보 포도는 브린디시(Brindisi) 남쪽 살렌티네 해안가(Salentine Coast)의 해발 80m 구릉성 평지에서 생산된 포도(IGT del Salento)다. 


필자가 시음한 ‘2020 카르마’는 부드러운 자줏빛 레드 컬러에, 농익은 체리와 딸기의 달달한 향이 한껏 솟아 오르며, 남국의 아로마를 선사한다. 시라 같은 느낌의 아니스, 정향 향신료 향과 밀크 초콜릿 베이스가 복합미를 형성, 입에서는 산뜻한 산미와 둥글둥글한 볼륨감, 벨벳 타닌과 14%vol의 알코올의 무게감이 프리미티보 DNA를 완성한다. 국내 수입되는 페로 13 와인 중에서는 가장 보디감이 좋은 편이며, 뉴월드 스타일 미감을 선보인다. 


브랜드명 ‘Karma’는 그리스어 기원으로 ‘(깊은) 인연’이라는 뜻인데, 불교적 용어인 ‘업’ 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으니, 레이블의 둥근 원이 그런 의미를 상징하는 디자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끊어진 부분을 이으려는 인연의 힘! 햄버거, 양념 치킨 등 스파이시한 배달 음식들과 잘 맞는 레드 와인으로 언제든 편하게 즐겨 마실 수 있다. 단, 16°C 정도로 시원하게 마시길 권한다.  

Price 4만 원대

 

힙스터, 네그로아마로 Negroamaro, ‘Hipster’ 

 

 

뿔리아 지방은 ‘카르마’를 만든 프리미티보 품종뿐만 아니라, 네그로아마로의 본향이기도 하다. 네그로아마로 품종은 한 포도 열매 송이 내의 숙성도가 고르지 않아, 최고의 표현을 찾기 위해 번거롭고 비용이 추가로 들지만 수확을 2번에 걸쳐 나눠 진행한다고 한다. 즉 첫 번째 수확은 딱 완숙에 이른 포도를 수확해 특성과 향을 살리고, 두 번째 수확은 약간 과숙된 포도를 수확해서 보디감을 높이며, 진한 풍미를 추가로 간직할 수 있다. 각 밭과 수확 시기가 다른 수확분을 별도 탱크로 분리해 양조하고, 최종 블렌딩 후, 병입 숙성을 거쳐 출시한다. 


필자가 시음한 ‘2020 힙스터’는 네그로아마로 100% 단품종 와인으로서, 짙은 흑자줏빛 레드 컬러가 인상적이며, 농익은 포도에서 우러나오는 블루베리의 이국적 향긋함이 특별했다. 입에서는 매끈한 미디엄 보디 질감이 자연스럽게 입안을 적시며, 13%vol의 알코올은 부담스럽지 않고 세련된 균형을 이루게 한다. 무엇보다 향신료의 스파이시함과 잘 익은 과일 풍미, 신선한 산미의 삼박자가 잘 맞아 음식 없이 먹어도 참으로 맛있었던 경험을 전하고 싶다. 물론, 스페인 타파스 계열의 작은 한입거리 음식들과 살루미를 얹은 핏자, 목살 구이 등과도 잘 어울린다. 이탈리아 남방의 레드 와인은 15°C 정도로 차게 준비해서 마시기 시작하면, 한 병을 비울 무렵에는 20°C 가까이 올라가며 다양한 향과 입안 느낌을 연출해 주기에 까도까도 새로운 것이 나오는 양파같은 와인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털보 아저씨’ 디자인의 레이블이 힙스터처럼 아주 잘 어울렸던 와인이었다. 2019 런던 와인 컴피티션 Silver 수상, 2017 루카 마로니 93점을 획득한 경력이 있다.  

Price 3만 원대

 

너드, 네로 다볼라 Nero d’Avola, ‘Nerd’ 

 

 

시칠리아 섬 남동부 해안가의 시라쿠사 근방 해발 50m 밭에서 수확된 네로 다볼라 100% 와인(Sicilia DOC)이다. 네로 다볼라는 시칠리아 섬의 대표 토착 품종으로, 최근 현대 양조 기술의 발달과 재배 방식의 근대화로 놀랄만큼 품질이 진일보된 맛있는 와인이 만들어진다. 과일 맛과 향신료, 타닌감까지 풍부한 경험을 선사해서, 예전에는 아르헨티나의 말벡 와인을 마시던 사람들이 이제는 시칠리아의 네로 다볼라를 마신다고 한다. 


필자가 시음한 ‘2020 Nerd’는 밝고 선명한 루비색에, 장미향을 비롯한 붉은 꽃향, 산딸기와 새큼한 체리향을 드러내며, 시간이 지나면서 감미로운 향신료 풍미와 아니스, 감초향으로 발전한다. 최적의 산미와 미디엄 보디감, 탄탄한 타닌 구조를 가진 와인으로서 돈육 가공품이나 식전 음식들, 구운 생선이나, 구운 육고기, 핏자, 적절한 숙성도와 강도의 치즈와 버섯 요리들과 잘 어울린다. 


이 와인의 브랜드 명은 ‘Nerd’다. 옥스포드 사전을 찾아보니, 특정한 분야나 주제에 엄청난 열정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패션이나 화장 등 자신을 꾸미는 데에는 큰 관심이나 재주가 없어서, 좀 따분해 보이는 천재형 인간이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너드남’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필자도 너드남일까? 레이블에 보이는 까만 뿔테 안경은 그런 이미지를 연출하는가 보다. 레이블의 ‘안경쓴 남성’이 배우 키아누 리브스와 닮아서일까? 이 와인과 어울리는 영화로는 ‘The Matrix’가 추천됐다. AI가 적성한 듯한 이 추천에 대한 독자 여러분들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하다. 너드 와인은 2021 Harpers, WineStars 5스타, 2017 Luca Maroni 92점을 받았다.  

Price 3만 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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