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와 문명을 가진 나라, 이집트. 이곳은 유구한 역사만큼 풍부한 음식문화를 지니고 있는데, 그들의 음식문화 역시 몇 천 년을 거쳐 형성됐다. 고대 이집트인의 식문화는 무덤에 있는 벽화, 남아있는 식기나 음식물, 그리고 히에로글리프 기록들로 자세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은 특정문화의 사람들이 어떤 것을 숭배하고, 축하하고, 애도하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게 해준다. 예를 들면, 벽화의 대부분은 이집트인들의 농사, 수렵, 요리활동을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무덤 벽화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빈부를 막론한 식생활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음식문화
우선 무엇이 이집트만의 음식문화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줬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식생활은 그들이 사는 지역적 특수성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요리도구나 조리법은 기존의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주로 사용했다. 의외로 고대 이집트인들의 요리는 현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는 아까도 언급했듯, 몇 천 년의 방대한 시간을 아우르는 용어다. 이 몇 천 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왕조가 바뀌고, 여러 나라들과 무역교류가 이뤄졌다. 이러한 변화는 당연히 그들의 음식문화에 영향을 줬다. 예를 들어,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해있지만, 지리상 중동지역과 맞닿아 있어 두 대륙을 걸친 무역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고대 이집트는 세계 무역의 핵심이 됐고 이집트인들의 먹는 요리는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요리의 중간 형태를 띄게 됐다.
이집트는 숲이 없고, 오직 2%의 국토만 농경지로 사용이 가능하다. 또한, 기후는 연간강수량이 채 2cm도 되지 않을 만큼 건조하다. 하지만 이집트는 건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인구의 95%가 거주하고 있는 나일강 유역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는 물이 부족해 농경이나 목축이 불가능했으나, 매년 6월과 9월 사이의 나일강의 범람은 강 주변을 비옥하게 만들어줬다. 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이집트 남부와 수단지역의 산에서 지중해로 흘러가는데, 강 상류의 산의 눈이 녹으면서 유량이 많아져 강이 범람하는 것이다. 범람이후, 나일강은 강 일대에 여러 토사물과 비옥한 토양을 남기고 간다. 이 토양은 훌륭한 농경지가 됐고 그 농경지에서 재배되던 대표적 작물로는 밀과 보리가 있다.
고대 이집트의 빵
여러 서양문명의 국가들처럼 이집트인들도 밀을 주로 빵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빵은 계층에 상관없이 사랑받는 음식이었고 이집트인들의 식사에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이 먹던 빵은 현재 우리가 먹는 것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 이집트인들의 식기나 조리도구는 매우 원시적이고 투박했기 때문에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릇에서 석영, 장석, 운모 같은 마그네슘 광물들이 밀가루에 섞이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밀가루를 만들기 위해 쓰이는 맷돌에서 떨어져 나오는 돌조각이 치아 질환을 유발하기도 했다. 비위생적인 빵을 많이 섭취하는 이집트인들에게 치아 질환은 매우 흔했는데, 파라오조차도 치아이식을 하거나 치아 질환으로 사망한 기록이 존재할 정도다. 이집트의 빵은 다른 곡물들에 비해 미네랄이나 식이섬유가 풍부한 에머밀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오늘날 ‘파로’라고 불리고 있다. 또, 현대 고고학자들이 흔히 ‘비어 브레드’라고 부르는 곡물로 만든 독특한 빵도 있다.
고대 이집트의 맥주
맥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알코올음료로 전체 주류 판매의 54%를 담당하고 있다. 이런 맥주의 인기는 고대 이집트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맥주는 빵과 함께 고대 이집트인들이 매일 먹는 음식 중에 하나였는데, ‘보우사’라고 불리는 맥주는 이집트 제1왕조(BC 6000년~3100년) 전부터 등장했다. 이곳에서 맥주는 인간과 신, 부와 명예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아이들까지 음용하며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음료였다. 맥주가 가장 사랑받는 음료가 된 이유는 당시에 가장 안전한 음료였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은 식수와 물을 나일강에서 구해야 했는데, 이곳의 물은 오염된 경우가 많았다.
이집트 맥주는 유럽의 것과는 달리, 매우 걸쭉하고 고체덩어리도 많아 일찍부터 맥주 잔이 많이 쓰였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사람이 사후세계에서도 맥주를 마시라고 맥주 잔을 같이 묻어줄 정도로 맥주를 사랑했다. 한편 고대 이집트의 맥주가 현재의 맥주와 다른 점은 알코올농도가 매우 낮았다는 점이다. 또한, 종종 의료목적으로 쓰이기까지 했고, 임금지불수단으로 사용됐다.
고대 이집트의 식재료, 과일과 채소
이집트 나일강의 삼각주는 지중해 동쪽지방과 비슷한 품종의 콩이나 채소, 과일을 경작하기 적절한 곳이었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의 요리는 현대의 채식주의자 식단에 어울릴 법한 콩이나 채소들의 비중이 높았다. 해산물의 비중이 높은 알렉산드리아 지역 같은 일부 해안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이집트 요리는 대부분 땅에서 자라는 재료들을 사용했다. 이는 대부분의 이집트인들이 나일강 유역에 거주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대 이집트 식단의 대표적인 요리 중에 하나가 치아콩과 파바빈으로 만드는 ‘팔라펠’이라는 음식이다. 팔라펠은 이집트에서 유래된 음식은 맞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양파, 리크, 마늘, 근대, 양배추, 케일 역시 많이 사용되는 채소였다. 또한, 인도에서 수입된 오이도 자주 쓰였다.
과일도 채소만큼 이집트 요리문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힉소스 통치기에 사과, 올리브, 석류같이 널리 쓰이던 과일들부터 코코넛, 헤이즐넛, 호두, 파스타치오 같이 상위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고급과일까지 이집트에 전해졌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이나 유적에 남아있는 여러 유물들은 과일의 다양한 용도를 보여준다.
대추, 무화과, 포도 같은 과일들은 디저트를 만드는 데 주로 이용됐다. 무화과와 포도는 주로 주스를 만드는 데 사용됐다. 대추는 여러 계층에서 두루 쓰였는데, 부자들은 와인을 만들고 하층민들은 감미료로 사용했다. 고대 이집트에는 설탕이 없었기 때문에 무화과, 건포도, 캐럽 같은 과일의 당밀과 시럽이 감미료의 역할을 했다. 다른 감미료로는 꿀이 있었는데, 고대 이집트는 양봉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흔했다.
고대 이집트의 향신료
고대 이집트인들은 향신료나 양념을 많이 사용했는데, 대표적인 향신료로는 여러 가지 오일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참깨, 아마씨, 무씨, 잇꽃, 고추냉이 등 다양한 식물에서 추출한 21가지가 넘는 오일을 가지고 있었다. 이 오일들 중에서 고추냉이에서 추출한 오일이 가장 많이 쓰였다. 또, 소금, 아니스 씨, 계피, 고수, 쿠민, 딜(허브의 일종), 회향, 겨자, 백리향 같은 여러 향신료들을 홍해일대로부터 수입해 사용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향신료를 고기요리를 하는 데 이용했는데, 이들의 고기요리는 현재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먹는 요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재료는 비둘기, 메추라기, 양, 영양, 영양, 가젤, 펠리컨, 두루미, 소, 거위, 생선 등이었는데, 돼지는 한동안 종교적으로 악의 화신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금지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돼지고기의 지방을 대체하기 위해 이집트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우리가 즐겨먹는 진미 푸아그라다. 이집트인들은 이미 기원전 2500년경부터 거위 같은 조류를 식용으로 사육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쥐나 고슴도치도 이집트인들이 즐겨먹는 육류였다. 고슴도치는 특이하게 진흙구이 식으로 요리했는데, 진흙을 벗겨내면서 고슴도치의 가시도 같이 제거하는 원리다.
육류를 이용한 요리는 상위계층 전유물이었는데, 사용가능한 토지가 적고 그마저도 농경지로 사용해야 하는 이집트에서 육류는 매우 귀했다. 어류는 육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숭어, 참치, 메기, 잉어 같은 생선은 주로 소금에 절이거나 말려서 보관했다.
계급에 따른 식사법
이집트인들의 식사는 계급에 따라 달랐는데, 상류층과 서민층의 구별이 확실했다. 귀족들이나 부자들은 다양한 요리와 육류를 즐겨먹은 반면, 하층민들은 옛날식 콩과 곡류 및 채소를 위주로, 현대로 치면 굉장히 건강한 식단을 가지고 있었다. 또, 계층을 가리지 않고 남녀는 부부 사이가 아니면 따로 식사를 했다.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 상류층들이 높은 의자에 앉고,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낮은 의자나 바닥에 앉아서 먹었다고 전해진다. 식사 전에는 항상 손을 씻을 물을 준비하고 식사를 하면서 벌레를 쫓기 위해 구과의 기름을 옆에 뒀다.
고대 이집트 음식문화의 우수성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는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반복된 정복과 지배의 역사를 통해 유입된 외래문화들은 이집트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형성하게 했다. 로마와 그리스 문화, 그리고 이슬람 문화까지 더해져 말 그대로 ‘다양성’이란 단어로 이집트 음식문화를 설명할 수 있다. 확연한 신분구별이 있는 사회였지만, 각 계층모두 음식에 관한 애착이 유별났으며 특히 서민층 구성원 모두가 농경과 경작에 종사하며 식량생산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이런 관심과 희생들로 놀랍게도, 고대 이집트인들 대부분은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한다. 저명한 해외 시민단체 worldometers.com은 현재 전 세계 8억 명이 넘는 인구가 굶주림을 겪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성남시에서 쓰레기를 뒤져서 먹는 노인이 발견돼 충격을 줬다. 이런 점에서 이집트인들의 음식문화와 다양성 그리고 그들의 식생활이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미셸 이경란
MPS 스마트쿠키 연구소 대표
Univ. of Massachusetts에서 호텔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오랫동안 제과 분야에서 일해 왔다. 대한민국 최초 쿠키아티스트이자 음식문화평론가로서 활동 중이며 현재 MPS 스마트쿠키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