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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7 (토)

남기엽

[남기엽 변호사의 Labor law Note #16] “호텔 객실 TV 털어와라. 비싸게 매입해 줄게.” 죄가 될까?

 

 

생산이 아닌 소비가 만드는 자본주의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랜저로 답하던 시대가 있었다. 여기에서 차는 기능이 아닌 사회적 계급을 웅변한다. 시내 곳곳에서 시속 30km로 달려야만 하는 환경이지만, 몇 초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할 수 있느냐(제로백)를 따지고 스포츠카를 동경하는 까닭은 성능이 아닌 삼각별·황소 따위의 엠블럼에 있다.


이 부분에서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다.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원리는 생산이 아닌 소비다. 소비의 과정이 담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혁신적인 생산기법이라 하더라도 산업자본은 유통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소비는 물건의 기능이 아닌 상품의 상징·권위를 추동한다. 에르메스 가방의 가치가 ‘H’ 엠블럼이 제거되는 순간 급전직하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러한 상징은 부자들의 전유물이다. 돈이 있어야 명품을 사고, 좋은 차와 집을 갖는다. 가난한 이들이 빚을 내 그것을 탐낼수록 그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와 서민은 분리된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갈라치기’가 부자들 사이에서 더욱 심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유명 크루즈선(Norwegian Cruise Line)은 배 안에 일반 크루즈 승객이 모르는 비밀공간(The Haven)을 만들고, 최우수 고객만 초청한다. 다른 승객들은 이런 공간이 있는지도 모른다. 크루즈를 탈 정도의 고객임에도 말이다.

 

양산박 도적을 동경하는 사회


이런 상징의 대립은 영화·드라마에서 즐겨 쓰인다. 영화에서 부자는 대개 악(惡)이다. 재벌 2세는 룸살롱에 가고(베테랑), 이상한 취미를 가졌으며(상류사회), 부패했다(내부자들). 수호지의 108호걸은 양산박에 들어가 부패한 황실과 맞서 싸운 서사 덕에 큰 인기를 모았지만 그들 역시 민간인을 학살했고 도둑질한 살인 도적에 불과하다. 임꺽정 역시 관군을 상대로 몇 차례의 전과를 올리며 유명해졌지만, 자신을 배신한 자는 배를 가른 잔인한 도적이었다.


그럼에도 똑같이 나쁜 조정(정부)과 싸워 몇 차례 이겼다는 점, 부자로부터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아주 조금) 나눠줬다는 서사 덕에 수호지와 임꺽정은 여론의 지지를 받아냈다.


도적이 인기를 얻는 이런 스토리는 역사적이다. 전술한 사례 외에 홍길동(조선)이 있었고, 알리바바(페르시아)가 있었다. 급기야 범죄자들 역시 이 서사를 전용하려 시도하기에 이른다. 


B와 C는 유명한 강도였다. 건물구조와 도주경로 파악에 능했고, 전자기기까지 잘 다뤄 많은 집의 재물을 강탈했다. 그들은 많은 부잣집을 턴 뒤, 호텔에까지 눈을 돌렸다. 특급 호텔에는 값비싼 가구, 장식품들이 많고 의외로 많은 고가품들이 도난당한다. 미국 베벌리힐스에 위치한 포시즌스 호텔은 무거워서 옮기기도 힘든 값비싼 대리석 벽난로까지 도난당했다. 호텔에서 훔친 그림, 가구, 장식품 등은 A에게 헐값에 처분됐는데 A는 더 많이 강탈해오기를 바랐다.

 

“있는 놈들 물건 훔쳐봤자 그놈들에겐 피해도 없다. 어차피 호텔은 돈도 많고 부정부패한 놈들이니까 많이 좀 털어 와라. 값은 섭섭하지 않게 쳐줄게.”

 

A의 부추김에 B와 C는 최근 새로 오픈한 ‘6성급 호텔’을 탐문했다. 평일 낮 청소 시 문이 열려있다는 점에 착안해 복도 CCTV 및 내부동선을 사전 답사했고, 유사시 대응할 칼까지 준비하며 다음날 범행을 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C로부터 이러한 계획을 들은 C의 여동생 D가 경찰에 신고했고 이들은 붙잡혔다.

 

형법 제333조(강도)
폭행 또는 협박으로 타인의 재물을 강취하거나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B와 C는 아직 집에 침입하거나 폭행 협박을 하는 등 범행을 시작하지는 않아 강도 기수(범죄 완성) 또는 미수(범죄 미완성)로는 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국회는 특별히 강도범행의 위험성을 인정해 단지 ‘준비’만 했어도 처벌하는 예비죄를 뒀다.

 

형법 제343조(예비, 음모)
강도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B와 C는 강도할 목적으로 사전답사 등 준비를 하고 계획했으므로 준비한 것에 해당하고 예비죄로 처벌됨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이를 부추겨 준비 범행을 도운 A는 어떻게 될까?

 

범죄 준비를 도운 행위, 처벌되지 않는다


범죄에는 정범(正犯)과 종범(從犯)이 있다. 쉽게 말해 불법도박을 하는 자에게 도박자금을 빌려주었다면 도박을 하는 이는 정범, 빌려준 이는 종범이다. 형법 제32조 제1항은 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를 종범으로 처벌한다.

 

형법 제32조(종범)
 ① 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한다.


방조란 정범의 실행행위를 돕는 것이다. 가령 마이클이 강간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조던이 마침 집에 있던 수면제를 건넸다면 조던은 마이클의 강간을 도운 것이 되고 ‘방조’가 된다. 면허가 없는 여자친구에게 “내 차 운전해”라고 하면 무면허 범행의 방조범이 된다.


그러나 방조범이 되려면 요건이 하나 있다. 바로 정범이 범죄 실행을 적어도 시작했어야 한다. 즉 면허 없는 여자친구에게 “내 차 운전해”라고 했다 하더라도 여자친구가 택시를 타고 갔다면 방조범이 되지 않는다. 범행을 도울 실행행위가 없었던 덕분이다.
여기서 A에게는 살아날 길이 생긴다. 아직 B와 C는 범행을 시작하진 않았고 준비(예비)만 했기 때문.


그럼에도 검사는 A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강도나 살인은 그 범행이 잔혹하고 피해법익도 크기에 국회가 ‘준비한 행위(예비)’까지 처벌할 것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러한 ‘예비’를 도운 것도 죄가 된다고 판단해 기소했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예비죄는 ‘범죄를 계획하거나 준비’하는 것이므로 행태가 굉장히 다양하고 무한정한데, 그렇다면 이를 돕는 것(방조)은 더욱 다양하고 무한정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경계 없이 처벌 가능성을 확장시킬 수는 없다고 봤다. 또 대법원은 형법 28조에 주목했다.

 

형법 제28조(음모, 예비)
범죄의 음모 또는 예비행위가 실행의 착수에 이르지 아니한 때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

 

형법 제28조가 ‘예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어야만 ‘처벌’해야 한다고 하므로, 범죄의 구성요건을 무리하게 확장해 가벌성을 넓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형법전체의 정신에 비춰, 예비의 단계에서는 종범의 성립을 부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다.

 

독자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진짜 저거,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니야?”

 

예를 작출하면, 사회에 불만이 많아 칼로 ‘묻지마 살인’을 계획하는 X에게 “기왕 죽일 거면 임팩트 있게 죽이라.”며 Y가 기관단총(MP7)을 건넨 경우, 살인을 계획한 X가 준비단계에서 체포됐다면 Y는 처벌받지 않는다. 예비죄의 종범은 처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는 이런 생각이 또 든다.


“저건 진짜,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니야?”

 

예비죄의 방조범을 인정할 것인가.


학계의 견해도 다양하다. 예비 음모죄의 처벌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우려가 있어 법적 안정성이 크게 훼손된다며 대법원 견해에 동의하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필자는 범죄실행행위를 부추기는 위험성에 좀 더 주목하자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 “야, 저 집 가서 시계 털어와. 1억 원에 사줄게.”라는 말을 했다면 이미 사회안전망에 균열이 생긴다. 각칙에서 예비죄 처벌규정을 두고 있는 이상 그 구성요건을 실현하는 실행행위의 개념도 인정해 처벌해야 한다. 법은 최후수단일뿐 아니라 방어의 최전선에도 위치해야 하는 이중적 지위를 갖기 때문이다. 


법적안정성이 흔들린다는 우려에 공감 못하는 바는 아니나 이런 행위가 법리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면 더 중요한 사회안전망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실상 ‘교사’에 가까운 행위를 했음에도 순전히 준비 단계에 그쳤다는 우연에 의탁해 처벌받지 않게 된다면 나중에 더 큰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호텔 객실 TV 털어와라. 비싸게 매입해 줄게.”라고 부추겨도 현행법상 처벌되지 않는다.

 

 

사족1  방조하는 자체의 가벌성이 큰 경우 우리 형법은 각칙상 독립된 구성요건적 행위로 특별히 규정(간첩방조죄·도박장소등개설죄)한다.


사족2  전술한 기관단총 사례에서 Y는 살인예비의 종범으로 처벌받지는 않더라도 총포화약법 제12조 위반으로는 처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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