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한층 무드 있게 만드는 12월의 기념일 크리스마스. 호캉스를 비롯한 파티와 모임 등으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바로 ‘크리스마스 케이크’다. 특히 호텔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완성도 높은 데코레이션과 질 좋은 재료, 풍성한 맛을 자랑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호캉스 문화가 자리잡히며 호텔이 더욱 친근한 이미지로 고객들에게 다가가며, 지금은 연령과 세대를 막론하고 크리스마스 케이크하면 호텔을 떠올리는 시선도 여럿이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어떻게 기획되고 만들어지고 있을까? 롯데호텔 서울에서 30년을 넘게 근무한 스페셜리스트, 준 명장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제과제빵 우수숙련기술자’ 타이틀을 호텔 제과장 최초로 보유한 나성주 제과장을 만나 그 달콤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어 채청비 기자 인터뷰이 나성주 제과장
사진 조무경 팀장
인터뷰는 롯데호텔 서울에서 진행됐다. 이 날은 마침 롯데호텔 베이커리 델리카한스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촬영 날이었다. 앙증맞은 베어 쇼콜라와 비스킷으로 만든 과자집 모양의 베어 쇼콜라 하우스, 델리카한스의 시그니처인 프리미엄 딸기 케이크와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화이트 글레이즈드를 사용한 마스카포네 치즈케이크가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나성주 제과장은 케이크의 오브제와 촬영 각도를 살뜰하게 챙겼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자식을 돌보는 아버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30년 넘게 제과업계에 몸담은 것으로 알고 있다. 소개 부탁한다.
현재 롯데호텔 서울 델리카한스에서 베이커리 내 제과점 관리 및 메뉴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직업을 선택한 계기는 우연찮은 기회였다. 본래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전역 후 뜻 하지 않은 계기로 제과점 직원으로 일하게 됐는데 그 이후로 제과제빵 기술을 배워 1992년 하반기에 롯데호텔에 입사, 30년 간 근속 중이다. 2017년에는 시그니엘 서울 페이스트리 살롱 오픈 책임 파티시에를 역임하고, 같은 해 델리카한스로 옮기면서 모든 제품을 리뉴얼 후 과거 대비 매출을 300% 이상 신장시킨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올해는 상반기 한미정상회담 등 국빈행사 베이커리를 맡아 진행했으며, 호텔의 다양한 행사 프로모션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콘셉트는 무엇인가?
‘화이트’와 ‘패밀리’다. 크리스마스하면 우선 눈이 생각나지 않나. 또한 가족적인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직접 곰 세 마리를 만들어 케이크를 꾸몄다. 아이들도 함께 먹을 테니 식용 색소를 쓰지 않고 발로나 초콜릿 본연의 맛을 살렸으며, 이외에도 몰드를 비롯한 장식물을 직접 만들어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이번 신메뉴인 마스카포네 치즈케이크는 호텔업계에서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던 화이트 밀러 글레이즈드를 활용해 광택을 살려 시각적인 장점을 한층 끌어올렸다. 웬만한 호텔 베이커리, 로컬 베이커리에서는 이 재료를 활용하지 않는다. 제대로 살리면 다른 제품 대비 더욱 빛나는 광택과 맛을 선사할 수 있지만, 응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번 크리스마스마다 고객들이 델리카한스에 거는 기대감도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연구 끝에 시그니처 방법을 개발, 차별점을 뒀다.
전체적인 셰입이 아니라 디테일이 모여야
완성도 높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
기획 과정이 알고 싶다.
이번 콘셉트는 8월부터 기획했다. 동료들과 함께 한 번씩 일주일에 새로운 케이크를 제작하면서, 기존의 케이크들의 완성도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몰드나 각종 장식물 완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롯데호텔만의 콘셉트를 살릴 수 있도록 3개월에 거쳐 수제로 만드는 작업을 거쳤다. 그리고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MZ세대 직원 4명과 스토리를 만들고 디자인과 콘셉트를 결정했다. 직원들과 레퍼런스를 주고받은 것을 정리해 피드백을 교환, 전체적인 맛 디테일은 내가 잡았지만 전반적으로 직원들의 취향이 묻어난 케이크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면서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궁금하다.
첫 번째는 디자인이다. 다양한 디자인 레퍼런스를 확인할 수 있는 해외 홈페이지와 SNS, 프랑스의 제과 잡지를 챙겨보며 영감을 위해 예술작품 전시를 감상할때도 많다. 로컬 베이커리, 유명한 카페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찾는 편이다. 두 번째는 가심비다. 가격대가 높은 호텔 베이커리를 찾는 이유는 무조건 값이 저렴한 제품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만족할 만한 제품들을 찾는 문화가 자리잡혔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좋은 식자재를 사용하는 호텔 베이커리 업계 내에서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하는 것은 경쟁력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세 번째는 트렌드다. 기존 고객층이었던 5060 뿐만 아니라 2030 고객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소비자가 열광하는 베이커리를 벤치마킹 후 항상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는 메뉴를 선보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디자인은 어떻게 영감을 받나?
디자인 레퍼런스를 참고할 때는 전체가 아니라 디테일을 본다. 사실 제과사의 손에 쥐어지는 재료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셰입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다. 중요한 것은 크림, 데코레이션은 등 디테일한 부분을 보며 각각의 장점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핀터레스트 사이트에 케이크나 다른 시각예술 작품들을 검색해 정리하고, 품목에 따른 장점과 단점을 담은 제빵일지, 벤치마킹할 타사 제품들도 기록해놓는다. 또한 세계요리대회에 다수 참가한 경력이 있어 그곳에서 대화하며 인사이트를 얻을 때도 많다. 이처럼 제과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미술 작품, 이미지, 대화들도 다 하나의 영감으로 작용한다.
동료들과 함께 롯데호텔에서만 맛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고,
대한민국 호텔업계 최초의 제과명장이 될 것
동료들과 함께 했다는 말이 인상 깊다.
가장 중요한 지점이 동료들과의 관계다. 팀에 나를 포함한 두세 명이 4050이고, 나머지는 20대라 중간 관리자 직급이 없다. 그래서 가교 역할을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많은 기회와 도움을 주려는 편이다. 예전에는 코엑스에서 개최하는 전시회나 유명 파티시에와의 미팅 등을 직급이 있는 파티시에들만 갈 수 있도록 했다면, 지금은 신입 직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체계를 바꿨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회식도 없앴고(웃음). 회식을 한다고 해도 8시 이전에 집에 돌아가는 것으로 하고, 커피를 마시는 식으로 대체했다. 다만 엄격할 때는 제대로 엄격해야 한다. 회사의 규칙은 지키면서 가끔은 아버지처럼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편하게 토론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편이다.
실제로 퍼포먼스도 많이 좋아졌나?
신제품 출시에 자율성과 권한을 많이 부여했다. 신입 직원들에게 과제를 부여한 뒤 3개월가량의 시간을 주고, 메뉴 개발도 직접 시켜본다. 메뉴를 개발해오면 내가 피드백을 주고, 보완 과정을 거쳐 판매해 보기도 한다. 실제로 지금도 델리카한스에 놓인 몇 제품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되니 ‘오늘 초콜렛 공예를 9시까지 하러 간다.’라고 말만 해도 자율적으로 남아서 공부하는 환경이 되더라. 상품으로 직접 출시되니 더 배우고 싶고, 더 잘 만들어 보고 싶은 거지.
앞으로의 업무 계획 및 바람이 있다면?
나는 계획을 이행하면서 성취감을 크게 느끼는 편이다. 매번 새로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디자인, 가심비, 트렌드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새로운 재료 발굴 및 국내에서 선보이지 않은 디자인 등을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여러 호텔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모범적인 케이크를 만들어내겠다.
또한 현재 국내에 총 14명의 제과명장이 있다. 제과명장은 기능인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권위인데, 이 중 호텔 베이커리 출신은 아직 없다. 내 이름과 롯데호텔 서울의 이름을 달고 호텔업계 최초로 제과명장에 도달하겠다. 현재에도 여러 강의를 다니며 기술을 가르치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베이커리에 관심이 있는 대중에게 확대시키고, 후배를 양성하면서 업계 발전에 도움을 주고 싶은 바람이다.
11월부터 예약을 한 일본인 고객들도 있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델리카한스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호텔에서 보내주는 출장 외에도 개인적으로 외국과 국내의 유명 로컬 베이커리를 다니며 영감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에서, 빛나는 의지와 열정이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