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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목)

호텔&리조트

[Hotel Trend] 공간이 주는 아늑한 힘, 책과 함께하는 호텔

 

 

누구나 한번쯤은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쉬는 로망을 품어봤을 것이다.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은 집에서 벗어나 청소를 걱정할 것 없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 코로나19로 인해 내국인 마케팅이 중요해지면서 호텔은 단순히 숙박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여러 패키지, 부대시설을 활용한 행사 등으로 투숙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으며, 호텔에 웰니스, 워케이션 문화가 자리매김하면서 진정으로 나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업무 공간 등으로 다변해왔다. 특히 휴식을 취할 때 빠질 수 없는 독서를 콘텐츠로 삼아 북캉스, 북스테이 등의 이름으로 여러 프로모션을 해왔고, 이제 북스테이는 트렌드를 넘어 스테디로 자리 잡았다. 호텔들과 책, 더 나아가서 책을 집필하기 위해 창조적 영감을 얻고자하는 예술가를 타깃으로 한 공간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이제는 스테디가 된 북캉스

 

북캉스는 책을 뜻하는 Book과 바캉스(Vacance)가 합쳐진 신조어로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는 전반을 아우르는 단어다. 기존에도 책을 활용한 호텔 마케팅은 많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전국민 독서량이 증가하고, 안정적인 공간에서 쉴 수 있는 ‘룸콕’이 뜨면서 더 다양해졌다.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 소음이 차단된 나만의 공간에서 책과 함께 조용히 호캉스를 누리고 싶은 니즈 등이 발현된 결과다.

 

투숙객이 직접 책을 가지고 호텔에 투숙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호텔에서 책을 직접 제공하거나 관련 프로모션을 선보이면서 호텔에서 특별한 독서 체험을 하게 되는 일도 많아졌다. 예컨대 글래드호텔은 직접 큐레이팅한 책으로 ‘글래드 책방’ 패키지를 운영, 투숙객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시즌 5까지 북 패키지를 거듭 출시했다. 또한 파크로쉬 리조트앤웰니스에서는 요가, 수면, 명상, 건강 관련 서적을 비롯해 문화, 예술, 건축 등 깊이 있는 책을 북 큐레이션을 통해 비치하고, 로비와 야외 테라스, 객실 창가 등 리조트 곳곳에 소파를 비치해 어디서든 독서와 사색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여러 호텔들이 책을 활용한 마케팅을 선보이고,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아늑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는데 이는 코로나19 이후에 독서량이 늘어난 것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 트렌드모니터의 <2021 코로나 시대 독서 문화 관련 인식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로 독서량이 증가했다는 사람이 46.9%를 차지하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책을 읽는 문화의 저변이 넓혀지면서, 책과 관련한 패키지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새다. 이와 더불어 특히 경험을 중시하는 측면이 강한 MZ세대가 핵심 고객으로 호캉스의 수요가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한다면, 호텔이 숙박뿐만 아니라 책과 같이 하나의 콘텐츠를 매개로 특별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책방과 협업해 다양한 큐레이션 선보이는

호텔 내 라이브러리

 

 

호텔이 ‘진정한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만큼, 보기만 해도 마음의 양식을 채울 수 있는 듯한 부대시설 라이브러리는 북캉스에 빠지기 어려운 요소다. 이전부터 호텔 내 라이브러리는 투숙객에게 편안함을 제공했지만, 많은 경우 책이 장식으로만 기능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됨에 따라 위생적이고 안전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경험, 호텔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이색적인 체험이 중시되면서 호텔만의 차별화된 콘셉트를 가진 라이브러리를 찾는 투숙객이 많아졌다.

 

때문에 ‘어떤 책’을 들여놨는지 알 수 있는 큐레이션도 중요해졌다.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호텔의 프린트 컬쳐 라운지는 국내외 독립 출판물 및 아트·패션지를 비롯한 도시 라이프, 스트리트 컬처 콘텐츠 위주의 책을 선정해 채웠다. 이외에도 파리 살롱에 영감을 받아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레스케이프 호텔은 스위트룸 고객 전용 라운지 공간으로 150여 권의 책을 들여놓은 라이브러리를 운영 중이다. 책을 추천 받고 싶은 이들에게는 매달 새롭게 테마를 정해 진행되는 큐레이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한편 그랜드 워커힐 서울 2층에 마련된 ‘워커힐 라이브러리’는 3000여 권의 책과 함께 1~2인이 이용할 수 있는 안락한 ‘프라이빗 존’을 비롯해 3~4인이 휴식을 취하기 용이한 공간이 돋보인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며 음악 감상을 즐길 수 있는 블루투스 헤드폰이 마련돼 있어 편안하고 안락한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더불어 2018년에 리뉴얼 오픈한 더글라스 하우스는 책과 함께 휴식할 수 있는 나의 코티지(Cottage)라는 콘셉트를 담아 운영되고 있으며, 문화공간을 겸한 동네책방으로 잘 알려진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가 ‘생각의 힘을 기른다’라는 철학으로 북 큐레이션을 담당했다. 도쿄 다이칸야마 츠타야 티사이트의 뮤직 컨시어지인 오이카와 료코가 총괄한 플레이리스트가 더해져 진정한 휴식을 선사한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박부명 파트장은 “워커힐 라이브러리는 국내외 소설 및 에세이, 역사, 과학, 예술, 자기계발, 자녀교육, 취미 실용 등 전 분야를 아우르는 3000여 권의 장서가 비치돼 있어 호텔을 찾는 여러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도서를 제공하는 만큼 특정 연령대나 고객에 치우치지 않고 체크인하는 투숙객 대부분이 한 번씩 와보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워커힐 라이브러리는 투숙객들이 편히 오갈 수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여러 예술 콘텐츠와 결합, 투숙객들로 하여금 보다 풍성한 경험을 얻게 만들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 파트장은 “일상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만의 휴식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모션을 마련했다. ‘제인 오스틴’ 사후 200주년을 기념해 오스틴 전집을 감상하며 영국의 차를 마실 수 있는 레이디스 티타임 프로모션을 운영했고, 더글라스 하우스 라이브러리에서는 그동안 미뤄뒀던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투숙객을 대상으로 ‘더글라스 문화살롱’ 등을 진행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작가와 함께하는 특별한 호캉스, 북토크 프로모션

 

 

호텔에서 특별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또 무엇이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 혹은 관심이 있는 분야의 작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경험이 될 것이다. 때문에 호텔은 공간을 제공하고 작가를 초청해 투숙객을 대상으로 북토크를 운영해왔다. 아난티 코브에서는 북스토어인 이터널 저니에서 각 분야 연사들을 초대해 ‘심야책방’이라는 이름의 북토크를 운영해왔다. 투숙객의 취향을 고려한 즐길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삶과 쉼을 고민하는 독자들을 위한 행사였다. 제주신라호텔에서는 ‘어텀북토크’라는 이름의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의 감성에 걸 맞는 북토크로, 낮에는 가족 및 친구와 수영장에서 활기찬 시간을 보내고, 자칫 무료하게 보내기 쉬운 저녁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실내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투숙객들의 마음을 끌었다.

 

 

뿐만 아니라 신라스테이에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북토크 패키지 상품을 선보였다. 고객들이 호텔에 갖는 기대와 니즈가 다양해지면서 이색적인 문화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멀티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모색했고, 특정 시즌이나 시기에 독자들의 관심을 받은 이슈 도서와 저자를 선정해 밀도 있는 대화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 그 골자다. 그러나 북토크 뿐이라면 다른 문화공간에서 할 수 있는 체험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터. 이에 신라스테이는 루프탑에서 맥주를 마시며 즐길 수 있는 ‘비어(Beer) 책방’을 열었고, ‘겨울 충전 레시피’라는 이름으로 일러스트 작가를 초청해 직접 일러스트를 그릴 수 있게끔 참여형 북토크를 준비했다. 이러한 차별화 때문일까. 신라스테이의 북토크 패키지는 기존 패키지 대비 2배 이상의 판매량을 보였다.

 

또 코로나19 이후로 언택트에 대한 니즈가 많아지면서 호텔 객실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즐길 수 있는 ‘방구석 북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에 신라스테이 문석준 과장은 “언택트 북토크인 방구석 북토크를 신청한 투숙객들은 객실에서 북토크에 참여할 수 있어 이색적인 재미를 느꼈다는 반응이 많았고,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세심한 배려가 인상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라고 밝히며 “호텔은 편안하고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독서를 즐기며 힐링타임을 보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책의 저자를 초청해 독자들과 직접 만남의 시간을 갖는 북토크 행사는 물론, 객실을 프라이빗 서재로 재구성한 신라스테이 서대문의 ‘라운지 1705’ 등 책을 사랑하는 고객들을 위한 다채롭고 알찬 패키지와 독서 관련 프로모션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여행에 다채로움 더하는

호텔의 북스토어

 

 

여행지에서 책을 만나는 것만큼 낭만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라한셀렉트 경주의 북스토어 ‘경주산책’은 경주 관광객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봄직한 곳이다. 특히 객실을 이용하는 투숙객에게는 경주산책을 이용하는 것이 여행코스 안에 들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공간이다. 경주산책은 다양한 주제로 큐레이션된 1만 2000여 권의 책뿐만 아니라 시즌마다 리뉴얼되는 감각적인 디자인 소품, 문구류, 로컬 특색이 담긴 굿즈, 호텔의 시그니처 기프트(PB)가 구비돼 있어 천편일률적인 대형서점과 달리 로컬 특색을 갖추고 있는 북스토어 & 카페다. 라한셀렉트의 김나영 파트장은 “새로운 형태의 경험, 여행에 다채로움을 더하는 경험을 제시하고자 만든 경주산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전 연령대를 아우르는 공간이라는 점도 일반적인 호텔 부대시설과 다른 차별 포인트”라고 경주산책을 소개하며 “키즈존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이 책, 저 책을 골라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고, 동시에 보호자는 다양한 디자인 소품을 구경하고, 1인 여행객은 경주의 역사가 담긴 여행 에세이를 즐길 수 있는, 모두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족시켜주는 장소”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경주산책은 경주 시민뿐만 아니라 문화도시인 경주를 찾는 다양한 여행객들을 아우르는 문화공간으로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책,

영감과 공간의 만남

 

 

한편 단순히 책을 콘텐츠로 활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오롯이 1만 4000여 권의 책을 위한 투숙공간이 존재하기도 한다. 2005년부터 파주 헤이리마을에서 운영하기 시작한 ‘모티프원’이 그 주인공이다. 이안수 대표(이하 이 대표)는 25년간 잡지 기자로 일하다가 낯선 곳에서 삶의 뜻을 찾으려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해외가 아니라 한국에서 삶의 방향성을 간구하는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했다. 그렇게 태어난 곳이 모티프원이며, 모티프원의 서재는 본래 이 대표의 작업실이었으나 많은 투숙객이 오가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모티프원은 밤마다 다양한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각자 삶을 대하는 태도, 목적 등 인사이트를 나누는 것에 초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다. 패키지나 프로모션 없이도 자연스럽게 북토크나 다름없는 이야기가 날마다 창조되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19 이전부터 워케이션을 위해 찾는 투숙객들이 많았고, 특히 창작의 영감을 받기 위한 예술가들이 자주 다녀가는 아티스트 레지던스기도 하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 박찬욱 감독 등이 사업 아이디어, 창작의 영감을 받기 위해 다녀간 곳으로도 유명하며 세계최대 여행전문 지침서인 론리 플래닛의 ‘Lonely Planet Korea'편에서 편집자 추천으로 소개됐다. ‘촌장’이라고 불리는 이 대표와 함께 서재에 놓인 수많은 책을 배경 삼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혀 자연스럽게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이곳에는 보통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도미토리 형태의 객실이 없다. 모든 방이 책과 책상이 있는 작업실이자 스튜디오다. 높이에 따라 구성된 창문과 예술작품이 전시돼 있는 벽면, 객실마다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꽂혀있는 책장을 보고 있으면 절로 릴렉싱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실제로 예술가들이 오고 간다는 소문이 돌자 예술 작품을 창작하고 싶은 니즈가 있거나, 회사의 반복되는 루틴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투숙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티프원을 찾고 있다.

 

 

Q. 모티프원을 주로 찾는 고객층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최근 들어 50% 이상이 혼자 오는 사람들이다. 변화의 속도에 현기증을 느끼거나 창조성을 회복하고 싶은 사람, 기존의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주 방문한다. 대부분 연박으로 묵으며 재방문을 하는 편이다. 15번을 다시 찾아온 이도 있다. 또 워케이션의 일환으로 찾는 고객들이 많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워케이션을 위해 방문하는 고객들이 많았는데, 예전에는 기업의 CEO가 주된 고객이었다면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리모트워크가 활발해지면서 CEO가 아닌 일반 직원들도 많이 찾는다.

 

Q. 일반 여행자에게 책과 함께하는 숙박이 어떤 의미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창조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다양한 본능 중 하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에서 요구받는 것은 능률과 속도지 않나. 그런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다는 박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창조 욕구는 무시되지만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창의성을 말한다. 모티프원은 그 괴리감을 좁혀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역할을 하는 곳이다.

 

Q. 방마다 콘셉트가 있다. 특히 서재뿐만 아니라 방 안에도 서재가 있는 것이 인상 깊은데, 비치한 책들도 콘셉트가 있나?

처음에는 인문학, 예술, 역사 등 장르를 나눠 꽂아뒀다. 그런데 투숙객들이 서재에서 책을 꺼내 가기도 하고, 방에서 꺼낸 책을 서재에 꽂기도 하다 보니 결국 이 방 저 방 거치면서 섞일 수밖에 없었다. 초반에는 다 제자리에 다시 꽂아두곤 했는데, 1만 4000여 권의 책을 분류해놓기가 실질적으로 어려웠다. 고객들도 제 위치에 다시 두라고 하니 스트레스를 받아하더라. 그러다 보니 다 섞이게 됐는데, 오히려 투숙객들이 숲을 산책하는 것처럼 새로운 생각을 충전 받을 수 있는 경험을 받는다고 말한다. 특히 재방문하는 투숙객 같은 경우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라며 재미있어한다.

 

Q. 앞으로 모티프원의 비전과 운영 계획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지난 16년 동안 해왔던 것처럼 창작자에게는 영감의 장소로, 여행자들에게는 열정을 되살리는 곳으로, 삶이 무거운 분들에게는 짐을 내려놓은 곳으로서의 역할을 이어갈 예정이다. 특히 창작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을 돕고 싶다.

 

작가와 호텔 공간의 상호작용,

소설가의 방

 

▲ 서울프린스호텔_로비 기획전

▲ 서울프린스호텔_소설가의 방

 

모티프원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공간을 구성해 많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면, 정부 기관과 문화예술후원사업을 운영하는 호텔이 있다. 바로 명동에 위치한 서울프린스호텔이다.

 

2011년~2013년 당시 호텔업계는 활황을 띠는 중이었다. 서울프린스호텔은 고객들에게 받은 관심을 어떻게 환원할지 고민하고 있는 차에, 공교롭게도 직원들과 함께한 독서에서 인사이트를 얻게 됐다. 서울프린스호텔은 2011년부터 내부적으로 독서 경영을 채택해 직원들끼리 달마다 지정도서 1권, 자유도서 1권을 선정한 뒤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사내 그룹웨어에 올리는 시스템을 취했는데, 당시 지정도서가 사회적 기업을 경영 모토로 삼은 재포스 CEO가 쓴 베스트셀러 <딜리버링 해피니스>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서울프린스호텔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두고 호텔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다방면으로 모색했다.

 

윤고은 작가가 <그라치아> 잡지에 발표한 산문 <호텔프린스의 추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학 시절 신춘문예를 준비하기 위해 서울프린스호텔에 방을 구해 하루 합숙훈련을 했던 일을 회고한 글이다. 이 글을 접한 호텔 측에서 작가에게 연락을 취했고, 미팅을 진행하면서 소설가의 방에 관한 구체적인 안이 나왔다. 특히 데뷔한지 얼마 안 된 신진작가가 원하는 여러 요소가 있었고, 집필실을 원한다는 이야기가 화두였다. 공간 활용이 가능하고 조식도 제공이 가능한 만큼 객실 몇 군데를 집필실로 제공하고자 했다. 몇 번의 회의 끝에 2014년에 ‘소설가의 방’ 공고를 올렸고, 첫 해에는 70여 명의 작가가 지원했다.

 

2015년부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인 한국예술위원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등단을 통해 작가가 되더라도 따로 작업실을 얻거나 많은 부를 축적할 수는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러한 한국 문학계의 실태를 파악하고 작가들을 지원할 수 있는 레지던시 사업을 다방면으로 펼치고 있었는데, 소설가의 방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호텔프린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파트너가 됐다. 위원회는 예산을 지원하고 호텔은 객실을 집필공간으로 제공해 작가들의 실질적인 창작을 도와 한국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다. 소설가의 방은 상반기와 하반기를 나눠 신청을 받고 있으며, 조건은 등단 10년 이내, 최근 1년 내 출간 계약이 된 작가다. 선정되면 4~6주에 걸쳐 서울프린스호텔 객실을 무상으로 지원 받을 수 있으며 지금까지 81명의 작가가 머물렀다.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발간한 김초엽 작가, 2020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자인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작가, 장편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작가, 2018년 한무숙 문학상 수상자인 <급소>의 김덕희 작가 등 한국문학을 이끄는 차세대 젊은 작가들이 서울호텔프린스의 집필실을 거쳐 갔다.

 

2017년에는 서울프린스호텔에 숙박했던 소설가들이 집필에 참여한 ‘호텔 프린스’가 출간돼 이목을 끌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공간, 또 누군가에게는 사색의 공간이자 일탈의 공간인 ‘호텔’을 소재로 한 테마소설집이다. 또한 올해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문장 웹진’에 서울프린스호텔을 다녀간 작가들의 인터뷰를 게재하고 소설가의 방 사업을 보다 널리 알릴 예정이며, 소설가의 방에 다녀간 작가 기획전 등 다양한 프로모션을 운영할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호텔 근처에서 자주 다닌 음식점, 술집 등 여러 공간을 토대로 지도를 만들어 앞으로 서울프린스호텔을 찾는 고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계획이다.

 

책으로 가는 호텔

호텔로 가는 책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 책을 어떻게 콘텐츠로 삼아 운영하고 있을까. 이케부쿠로의 번화가에 위치한 BOOK AND BED TOKYO는 리노베이션 건물 전문 부동산 회사와 건축사무소가 공동으로 기획해 호텔로 거듭났다. 이곳에는 푹신한 매트리스도, 값비싼 베개도 없지만 책은 많다. ‘숙박하는 서점’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로 책을 읽다 잠드는 경험을 기반으로 디자인됐다. 이케부쿠로 본점을 포함해 5곳에서 운영 중에 있으며, 실제로 이곳의 투숙객들은 만화든 소설이든 책을 읽으며 새벽 2시가 될 쯤 정신없이 잠에 빠져든다. 방문 계층은 여성이 70%, 남성이 30%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내 여행객이 33%,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29%다. 이는 일반적으로 편안한 잠자리와 잘 갖춰진 욕실을 선호하는 젊은 여성 중에도 분명히 타깃층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국내 여행객을 상대로 메리트가 있음을 알 수 있는 통계다.

 

독서는 나를 찾을 수 있는 경험이며 책을 쓴 작가와의 유일한 조우라는 점에서 호텔과 닮아있다. 호텔에 숙박하는 경험 또한 오로지 나만을 위해 차려진 공간에서 바쁜 삶을 살아가며 잊었던 자신을 잠시나마 돌보게 한다. 호텔에 책을 가지고 들어가 휴식을 취하려는 고객이 많은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책은 다양한 투숙객을 아우르며 호텔 패키지, 부대시설에서 빠질 수 없는 콘텐츠가 됐으며, 호텔은 라이브러리를 꾸려 투숙객들에게 독서 경험을 선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토크, 오디오북 대여 등 책과 관련된 행사 및 북스토어를 운영하며 지역주민들도 편히 오갈 수 있는 문화 공간 마련, 호텔 PB 상품 판매를 통해 브랜드 아이덴티티 강화 등 및 긍정적인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호텔은 여러 작가들에게 책을 쓰기 위한 집필실로도 기능하는 중이며, 이를 매개로 앞으로도 책은 호텔이 제공하는 공간 서비스, 환대 서비스와 긍정적인 시너지를 일으켜 고객들로 하여금 한층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Q. 2014년 소설가의 방 론칭 이후 2015년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협업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과정과 협업의 시너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무엇인가?

모집하고 첫해에 이것저것 문의 전화가 많았다. 지원 자격 관련한 문의부터 개인적인 문의까지 이어지니 호텔 내에서 감당할 수가 없었고, 객실을 무료로 제공하다보니 세무적인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그때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알게 되면서 공신력 있는 기관과 함께 해야 목적성이 뚜렷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업무체결을 하게 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서울프린스호텔 외에도 예술가들을 위한 여러 레지던시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 작가들의 생태계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작가들 관련한 여러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해 운영하는 입장에서 북콘서트나 북토크 등의 인사이트를 얻고 있다.

 

Q. 소설가의 방을 운영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첫 번째로 입주했던 한 작가는 서울프린스호텔에 입주하기 전에는 본인이 어디 가서 작가라고 내세울만한 점도 없고, 작가를 직업으로 삼는 것에 약간의 회의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주 이후에는 호텔의 아늑한 객실과 직원들의 환대를 경험하면서 작가가 됐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전했다. 다른 작가는 임신 중에 입주하게 돼서 직원들이 특히 신경을 쓰기도 했다. 입주를 하면서 점심, 저녁식사를 직원들과 함께 했는데 출산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입실 중 제공됐던 직원식당 밥이 생각난다며 호텔에 재방문 했던 적도 있다.

 

Q. 다년간 소설가의 방을 운영하며 여러 시너지가 있었을 것 같다.

2014년에는 문학 강의 공간 제공의 일환으로 문학평론가를 초청해 문학행 야간특급열차라는 강연을 진행했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호텔 로비에서 여러 번 북콘서트를 열었다. 또한 2018년에는 서울프린스호텔에서 지냈던 작가들이 공동저자로 참여한 소설집 <호텔프린스> 출간 기념 낭독회를 운영하기도 했다. 호텔이 홍보를 하고 공간을 마련하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음향전문가를 비롯한 작가 섭외, 초대가수 섭외를 한다. 한 작가가 호텔프린스 작품집에 쓴 단편 소설을 토대로 연극 연출가가 각색을 하고, 배우는 낭독을 하는 방식이었다. 관객이 20~30명 정도 됐던 낭독회였고 참여한 분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로비에서 낭독회가 이뤄지니 호텔 전체에 자연스레 따뜻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투숙객들도 오가면서 한 번씩 보고 흥미로워 했다.

 

Q. 앞으로 소설가의 방을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가?

코로나19로 전반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소설가의 방은 꾸준히 운영하려고 한다. 특히 올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같이 입주했던 작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만들었다. 호텔에서 지낼 때의 상황과 호텔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등 여러 가지 사항을 알 수 있는 설문지를 준비해 작가들이 느꼈던 좋은 점과 아쉬웠던 점을 파악하려고 한다. 두 번째로는 작가들이 호텔에 묵으면서 자주 갔던 음식점이나 술집, 다양한 공간을 파악해서 ‘이곳은 모 작가가 자주 가던 곳입니다’라는 지도 형태의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한다. 동선을 토대로 주변 관광지도를 제작해 투숙객들에게 제공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앞으로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꾸준히 홍보하고, 소설가의 방과 관련한 북캉스 패키지도 내놓을 생각이다. 코로나19 시국에 서울프린스호텔은 럭셔리 호텔이 할 수 있는 시설적 측면을 부각하기보다는 여태 소설가의 방으로 쌓아온 소프트웨어, 콘텐츠 측면을 강화해 타 호텔과는 다른 차별화된 가치를 구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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