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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이경란

[미셸과 함께하는 세계의 디저트] 초콜릿(Chocolate)

 

우리는 우리가 기쁘거나 슬프거나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서 초콜릿을 먹기도 한다. 이것은 전 세계 사람들의 삶에 있어서 ‘맛’과 ‘맛있는’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표현한 것이다. 그럼 다른 먹거리와 마찬가지로, 혹시 ‘초콜릿’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초콜릿’이라는 단어는 맛있는 ‘초콜릿바’나 달콤한 ‘초콜릿트러플’을 연상시키지만, 과거의 초콜릿은 지금의 것과는 거리가 있다. 초콜릿의 4000여 년의 유구한 역사 중 대부분은 초콜릿이 달고 먹음직스러운 과자가 아닌, 추앙은 받았지만 쓴 음료였다.

 

초콜릿의 유래


초콜릿은 중남미 지방에서 유래된 카카오 나무의 열매로 만든다. 열매는 Pod라고 부르는데 각 열매는 40개 정도의 카카오빈을 가지고 있다. 카카오빈은 말려서 로스팅해 코코아빈을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마야인들이 원조라고 알고 있지만, 카카오빈을 처음으로 발효하고, 볶고, 갈아서 음료와 죽을 만든 이들은 기원전 1500년대의 멕시코 남부의 올멕(Olmec)인들로 추정된다. 올멕인들에 대해 기록된 역사는 없지만, 그들 문명의 항아리나 그릇에서 초콜릿이나 차에서 발견되는 테오브로민이라는 흥분제의 화학적 증거가 있다. 올멕인들은 카카오를 의식용 음료로 만들기 위해 사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남겨진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카카오 열매를 혼합물로 썼는지 펄프만 썼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올멕인들이 그들의 카카오에 대한 지식을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인들에게 전해줬다는 것이다.

 

마야인들은 기념행사나 중요한 거래를 마무리할 때 카카오를 사용했으며, 단순히 사용한 수준 넘어 숭배했다. 마야 문화에서 초콜릿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놀랍게도 초콜릿은 부자나 권력자들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었고, 거의 매끼 마야인들의 밥상에 올랐다. 마야의 초콜릿은 진하고 거품기가 있으며 종종 칠리 고추, 꿀 그리고 물과 함께 섞어서 섭취했다.

 

 

아즈텍인들이 사랑한 초콜릿


아즈텍인들은 초콜릿에 대해 한층 더 높은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초콜릿이 신이 준 선물이라고 믿었다. 초콜릿을 음료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이나 음식을 사는데 쓰는 화폐로도 사용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카카오빈은 금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아즈텍의 초콜릿은 상위계층의 전유물이었지만, 하위계층도 결혼이나 다른 축하행사가 있으면 가끔 즐기곤 했다. 가장 악명 높은 아즈텍의 초콜릿 애호가는 절대군주 몬테주마 2세로, 본인의 기력과 정력제로 엄청난 양의 초콜릿을 매일 마셨다. 또한 그는 그의 군대를 위해서 일정량의 카카오빈을 비축해두곤 했다고 한다.

 

세계 전역으로 퍼진 초콜릿


초콜릿이 스페인에 처음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여정에서 상선을 탈취해 카카오를 발견하고 이를 1502년 그와 함께 스페인에 가져왔다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는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가 아스텍인들에게 카카오를 소개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세 번째 가설은 1544년, 수도사들이 스페인의 필립 2세 국왕에게 과테말라의 마야인들을 바치면서 선물로 같이 카카오빈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스페인에 어떻게 들어왔던, 초콜릿은 스페인 왕실에게 사랑받는 사치품이 됐고 스페인은 1585년부터 초콜릿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다른 유럽국가들이 중앙아메리카에 진출하면서 그들 역시 카카오의 존재를 알게 됐고 본국으로 가져갔다. 곧 초콜릿 광풍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는데 유럽의 미식가들은 아즈텍의 초콜릿 음료제조법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 시나몬 그리고 다른 향신료나 감미료로 그들만의 ‘핫초콜릿’을 만들어 냈다. 초콜릿에 대한 수요가 늘자, 수천 명의 노예들이 일하는 카카오 농장들이 생겨났다. 당시 초콜릿은 느리고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 수작업으로 생산됐다. 하지만, 곧 산업혁명이 찾아왔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1828년, 초콜릿 압착기의 발명은 초콜릿 생산에 혁명을 가져왔는데 이 혁신적인 장치는 볶은 코코아빈에서 고운 코코아가루만 남기고 코코아버터(천연 지방)을 뽑아낼 수 있었다. 가루를 액체에 섞어 틀에 부어 고체화시키면 드디어 우리에게 친숙한 ‘초콜릿바’가 나오는 것이다.


부유층을 위한 세련된 초콜릿 공방들이 런던, 파리 같은 유럽 도시들에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초콜릿 한 조각을 먹는 것은 하나의 의식과도 같기에 필자는 그 매순간을 음미한다. 초콜릿은 예전에 대유행이었고 아직도 우리의 삶에서 그 위치를 잃지 않아 전 세계 모두가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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