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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3 (화)

전복선

[전복선의 Hospitality Management in Japan] 피렌체를 꿈꾸는 시골 료칸의 변신, 미사사소(三朝荘)

 

일본과 한국 모두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지방의 쇠퇴가 문제되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지방에 일하고 싶은 매력적인 기업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인구 5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일본 돗토리현(鳥取県)의 쿠라요시시(倉吉市)에 본사를 두고 있는 ‘발코스(バルコス)’는 도쿄와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시골에서 창업해 일본을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최근 발코스는 쿠라요시시를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같은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료칸 비즈니스에 뛰어들면서 또 한 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지방의 어패럴기업이 패션, 음식 그리고 숙박업을 연계시켜 지역의 가치 창출을 도모하는, 흥미로운 도전의 스토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출처_ www.barcos-misasasou.jp

 

 

 

미사사 온천 재건에 뛰어든 패션 기업, 발코스


돗토리현 미사사 마을(鳥取県三朝町)에 있는 미사사 온천. 이곳은 ‘방사능 온천(나트륨·염화물천과 라듐을 포함하고 있음)’이라는 특유의 온천수로 유명하다. 미사사 온천지에는 전통적인 일본식 여관들이 많이 자리잡았고, 온천지의 중심거리에는 음식점, 아트리에, 기념품점 등이 늘어서 있어 조용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온천지로 인기를 얻어 왔다. 보통 온천지는 관광객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지만, 미사사 온천은 온천의 원류가 주택가 안에 있어 동네주민들이 온천을 즐기는 연장선상에 관광객이 찾으며 형성된 독특한 분위기가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미사사 온천은 점점 낡고 쇠퇴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과거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발코스라는 기업이 쇠퇴해 가고 있는 미사사 온천의 폐업한 료칸을 인수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기 위해 지역 재건에 뛰어들었다. 발코스는 쿠라요시시에 본사를 두고 피렌체에서 제품을 생산을 하는 이색적인 시스템을 가진 일본 대표 패션 기업이다. 그렇다면 왜 잘나가는 패션기업이 굳이 오랜된 료칸을 인수해 숙박업에 뛰어든 것일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발코스가 20년 전 패션 분야의 스타트업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 도쿄가 아닌 시골마을 쿠라요시시에서 창업한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발코스를 창업한 ‘야마모토타카시(山本敬)’는 도쿄에서 패션 브랜드의 카메라맨으로 일을 하면서 오래 전부터 꿈꿨던 가방을 만드는 비즈니스를 전개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본사를 두기로 한 곳은 바로 어머니의 고향인 쿠라요시시였다. 패션업에 종사하던 지인들은 긴자가 아니라 시골에 패션 브랜드의 본사를 두겠다는 야마모토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전혀 주변의 걱정이나 비아냥을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창업 전부터 이미 일본의 패션산업이 대도시에 집중돼 있는 것에 위화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마모토는 패션 전문 카메라맨으로 일하면서 촬영을 위해 해외를 다니게 됐는데, 일본은 대도시에 모든 것이 모이는 반면 유럽 국가들은 각지에 도시가 산재해 있고 작은 도시에도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기업이 본거지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피렌체가 그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피렌체는 인구 약 35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연간 약 300만 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유명한 디자이너 상당수가 피렌체 출신이며, 우리가 잘 아는 페라가모도 피렌체에서 창업했다고 한다. 즉, 피렌체는 비록 작은 도시지만, 패션 브랜드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지역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 가치를 가지게 됐고,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곳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사실에 주목한 야마모토는 도쿄가 아닌 쿠라요시시에 본사를 두고 피렌체에 자회사를 설립해 생산하는 구조를 확립하면서, 그야말로 시골마을에서의 패션 이노베이션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목표를 세웠다.

 

 

피렌체는 구찌나 페라가모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하이 브랜드의 본사가 위치해 매년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 비록 지방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패션이나 음식, 관광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산업에 기반을 둔 지역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야마모토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고, 발코스에서는 ‘패션·음식·관광’이라는 3개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 복합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비즈니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 프로젝트가 바로 미사사 온천지를 대표하는 료칸, ‘메이지소’를 인수해 새롭게 선보인 ‘료칸 미사사소(バルコス旅館 三朝荘)’의 오픈이다. 

 

 

패션 기업의 료칸, 미사사소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에 지어진 ‘메이지소(三朝温泉 明治荘)’는 미사사 온천지의 흉물로 한동안 방치돼 있었다. 온천지가 쇠퇴하고 관광객이 줄면서, 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메이지소는 문을 닫는 중이었고, 그러한 료칸의 존재는 지역의 골칫덩이였다. 그런데 바로 이곳을 발코스가 인수하면서 새로운 료칸 ‘미사사소(三朝荘)’로 문을 연 것이다.


오래된 료칸을 인수한 발코스는 먼저 패션기업답게 미사사소의 외간판이나 살롱 벽, 현관 로비 옆의 벽에 일본을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오타니류지(大谷リュウジ)의 일러스트 작품을 담아냈다. 오래된 온센 료칸의 이미지를 불식시킴과 동시에 발코스의 정체성을 담은 아트 작품을 숙박객들을 맞이하는 입구에 두도록 한 것이다. 특히 현관 로비의 벽에 그려진 유카타 차림을 한 남녀의 큰 일러스트는 미사사 온천지의 오래된 이미지를 바꾸는 상징적인 공간 연출의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이렇게 료칸의 첫 입구를 변화시킨 발코스가 그 다음 단계로 공을 들인 부분은 바로 지하에 있는 3개 온천의 원천을 새롭게 리노베이션하는 것이었다. 미사사소에서는 지하에서 솟아나는 온천뿐만 아니라 온도조절을 위한 물도 천연 샘물을 사용하고 있어 그야말로 온천의 성분을 최대한 체험할 수 있다. 따라서 온천은 대욕탕뿐만 아니라 노천 온천과 작은 규모의 온천 등 다양한 온천탕을 만들어 온천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묵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특히 리노베이션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노천 온천과 우리나라의 ‘온돌’로 네이밍한 프라이빗 온천은 특히 커플들에게 인기가 높다.

 

 

발코스는 객실 또한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을 단행했다. 전체 15실이었던 객실을 모든 객실에 온천이 있는 9개의 객실로 새롭게 단장했다. 그리고 숙박객들이 객실, 대욕탕, 노천온천 모든 곳에서 일본 정원을 보며 온천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특히 리노베이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코스가 공을 들인 부분은 객실에서 온천으로 이동을 하거나, 식사를 할 때에도 숙박객들간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동선을 만들어 낸 것이다. 따라서 고객들은 숙박하는 동안 개인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사사소의 식사는 음식의 도시로 불리는 돗토리현답게 지역의 재료를 충분히 살린 메뉴를 제공한다. 미사사소의 숙박객들은 제철 식재료와 엄선된 돗토리 와규의 희소 부위를 사용한 메인 메뉴를 즐길 수 있다. 훌륭한 요리들 가운데에서도 발코스가 특히 공을 들인 메뉴는 이탈리아 요리와 일본 카이세키를 융합한 저녁 코스요리다. 피렌체와 쿠라요시시를 연결한 발코스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미사사소는 숙박 공간부터 음식 그리고 온천까지 모든 것을 새롭게 리노베이션함으로써 쇠퇴해 가는 온천지의 재생을 도모하는 기폭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숙박업의 장벽을 허문 발코스의 도전


일본에서 료칸과 같은 숙박 시설은 오랫동안 전문화된 서비스 분야로 여겨져 왔다. 때문에 료칸 경영은 다른 업종이 참여하기 힘들고, 보이지 않는 장벽이 높은 숙박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발코스는 료칸 경영의 장벽을 아무렇지도 않게 허물고 들어왔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바로 패션, 음식 그리고 숙박이라는 개별적으로 전문화된 비즈니스의 특성을 ‘라이프 디자인 비즈니스’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는 전략으로 내부의 반발과 도전의 장벽을 허물었던 것에 있다. 즉, 패션, 음식 그리고 호텔도 모두 라이프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콘셉트로 접근하면서 각 분야의 장벽을 쉽게 넘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발코스는 라이프 디자인 콘셉트를 통해 료칸이라는 전통적인 서비스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업종이 가진 장점과 특징을 료칸의 하드와 소프트적인 요소에 담아낼 수 있었다. 즉, 패션 기업이라는 성격을 료칸이라는 숙박공간에 담아내는 리노베이션의 과정을 거치면서, 료칸의 전문적인 요소를 보편적인 요소로 전환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게다가 발코스의 이러한 도전은 쇠퇴해가는 지역의 재생이라는 대의명분도 더해져 더욱 더 타업종의 진출을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에는 쇠퇴해가는 온천과 방치된 료칸이 굉장히 많다. 이는 바꿔 말하면, 발코스처럼 료칸과 무관한 성격의 기업이 자신들의 강점인 부분을 살려 폐업한 료칸을 미사사소같이 새로운 하이 브랜드의 료칸으로 살려낼 수 있는 기회도 많다는 말이 된다.

 


피렌체를 꿈꾸는 미사사 마을처럼, 오랫동안 방치된 일본의 료칸들이 새로운 기업과의 컬래버로 다시 태어나고, 쇠퇴한 온천지가 다시 활기를 찾는 케이스가 늘어나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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