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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4 (수)

칼럼

[Dining Story] 와인과 여행

- 사진_ 안승태
- 본 지면은 한국음식평론가협회와 함께합니다.


 

필자가 매일 아침 새해 같은 기분으로 눈을 뜰 수 있는 것은 와인과 여행으로 일상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와인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여행은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해준다.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 상상만 해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가장 큰 설렘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과 미식의 시대


맛있는 음식으로 이름난 도시는 반드시 수많은 보물지도를 숨기고 있는 법인데, 필자는 음식이라는 실마리를 따라 숨겨진 흥미로운 곳에 다다르는 즐거움에 빠져 매일 전문적으로 숨바꼭질을 하는 중이다. 특히 포도가 자란 땅의 향기를 간직하고 잘 숙성된 와인을 만나는 여행을 가장 사랑한다.


필자는 미국 워싱턴 D.C. 델러스 국제공항에서부터 여권상 마지막 출국도장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탐보국제공항에서 돌아오기까지 총 131회 대한민국을 출입국하며 73개국 500여 도시 이상을 여행해 온 행운을 가지고 있다. 몇 가지 쓸만한 깨달음의 순간들이 있었고, 그중 하나는 인류가 사랑하는 도시에는 반드시 와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파리와 런던, 밀라노와 피렌체 그리고 뉴욕과 요즘의 서울에 이르기까지, 와인과 음식은 각자의 색으로 낮동안 무채색으로 가라앉은 도시를 온통 휘젓고 자극한다. 서울은 이제 1조 산업으로 진입한 와인업계의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는데 동네마다 하루가 다르게 와인숍, 와인바와 레스토랑이 들어서고 마트와 수입사에선 와인이 동날 지경이다. 바야흐로 와인과 미식의 시대다.

 

 

레스토랑, 외식과 사교의 장소로 탄생


와인과 미식테마를 다루는 여행전문가이자 와인이벤트 디렉터 및 강연자로 활동하다
보면 어떻게 좋아하는 취미를 직업으로 가질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필자는 삶에서 가장 멋진 사람들을 모두 와인과 여행을 통해서 만났고 필자를 키운 건 8할이 와인과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쓸 만한 깨달음을 하나 더 보태자면 레스토랑은 사실 식사하는 곳이 아니라 정신적인 피로를 푸는 곳이다. 영어 ‘Restore’를 어원으로 1765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근처 불랑제가 경영하는 식당에서 ‘Restoratives’라는 양고기 수프를 ‘신비의 스태미나 수프’라며 판매했는데 루이15세조차 호평하자 1766년부터는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의 일반명사로 ‘Restaurent’가 등장했다. 이후 프랑스 혁명으로 귀족이 몰락하고 실업자가 된 전속 요리사들이 대중을 상대로 다양한 음식들을 제공하면서 국민들의 외식과 사교의 장소로 탄생하게 됐다.

 

만남에는 항상 음식이 함께 하는 법이고, 한솥밥을 먹으면 식구(食口)라고 하듯이 누군가와 함께 식사하는 경험은 언제나 특별하다. 사우나도 같이 하고, 밥도 같이 먹고 말이다.

 

 

와인,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열쇠


필자가 진행해 온 이벤트 중 손꼽는 특별한 추억들은 세계적인 미쉐린 가이드나 프랑스 ‘Gault & Millau’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레스토랑을 무대로 와인과 함께 하는 파인다이닝 이벤트였다. 우선 와인과 함께 하는 디너에서는 항상 어울리는 옷차림을 고민하고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참석하기 위해 모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일정들을 미리 조율한다. 그리고 그 자리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드레스코드가 부드러운 규범으로 존재하고 사람들은 평소와 달리 수트와 드레스를 입고 온화한 격식을 두르고 참석한다.

 

따라서 모두가 일상 속에서 편하게 나타나는 모습보다 조금 더 멋지고 우아하게 가다듬어진 자신 안의 가장 매력적인 모습으로 서로를 대하려 노력한다.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식사를 즐기며 이야기하는 사교이벤트의 성공적인 참여는 얼마나 자신을 빛내기 위해 공들였는지에 달려있다. 와인과 디너를 즐기는 멤버들도 모두 각자 방식으로 준비했을 노고를 생각하면 서로 존중하게 된다. 시간을 담을수록 향기로워지는 와인과 같이 일상의 평범함을 TPO(의복을 경우에 경우에 알맞게 착용하는 것)에 맞춰 꾸미고 준비한 만큼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상호존중의 경험’이라는 선물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참석한 멤버들만이 아니라 준비된 공간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와인은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열쇠다.

 

테이블 위 멋진 글라스에 담긴 와인을 한 모금씩 나누며 하는 이야기들은 서로 멋지고 매력적인 모습을 찾아 상대에게 귀 기울여 다가가는 가치로, 와인은 여행이 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마지막으로 와인과 여행에 있어 밑줄 치고 싶은 큰 교훈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여행을 미리 준비하고 공부하는 노력과 와인의 지식을 쌓는 일은 투자대비 가장 높은 효율로 돌아오는 것들 중 하나다. 솜씨 좋은 덕후와 유튜버들의 세상이지만 프로와 아마추어는 같은 정보를 가지고서도 통섭하는 관점과 가치있는 정보로서 판단하는 분석의 격이 다르다. 와인은 강연이나 아카데미를 통해 지식을 공부하게 되는 시점부터는 알파벳을 익히고 나서야 드디어 단어와 문장들이 눈에 보이게 되고 점차 아름다운 시적 표현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여행에 있어서 ‘목적’이라는 지도와 ‘취향’이라는 나침반은 매우 유용하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목적과 테마로 여행지를 즐기고 싶지만 준비하는 시간과 에너지라는 비용은 최대한 아끼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의 목적과 취향을 파악하며 구글맵에서는 보이지 않는 낮과 밤에 따라 흐르는 분위기까지 고려, 입체적으로 최적화된 동선을 고민하고, 사람들이 가진 취향의 주파수에 맞춰 소통하며 순도 높은 좋은 경험으로 안내하는 전문가의 역할은 중요하다.

 

특히 사람의 감각이나 느낌을 다루며 와인과 음식으로 소통하는 와인 소믈리에의 전문성은 큰 비용과 오랜 시간을 들여서야 자격을 갖출 수 있다. 따라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와인의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기위해 부지런히 공부하고 전문인으로서 기준을 잡으며 매일같이 다양한 산지의 와인들을 경험해 내공을 쌓아야 한다. 고객 앞에서 자신이 다져온 것들을 겸손히 눈높이에 맞춰 소통하는 서비스를 한다면 은은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A votre sante


와인과 여행은 구성요소가 모두 상호작용하며 성장하는 문화로서 전문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존중이라는 가치를 가장 크게 전달한다. 와인을 즐기고 여행을 많이 할수록 세상은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대한민국의 비공식적인 국시인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정신에도 부합하니 어제 와인을 마셨다고 오늘 마실 와인을 주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배사 ‘A Votre Sante’는 ‘당신의 건강을 위해’라는 뜻이다.

 

 안승태

살롱드로열 대표 
미식여행전문가. 여행의 꽃은 와인과 미식이라고 믿고 있는 ‘투어소믈리에’. 안승태(安承兌)의 한자어 뜻처럼 사람들을 와인으로 '편안하게 연결하고 기쁘게' 하기 위해 오늘도 강연과 여행으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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