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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6 (금)

호텔&리조트

[Hotel Specialist] 한 호텔의 시작과 현재를 함께하다, 콘래드 서울 김민선 상무

- 사원번호 1번이라는 위치가 주는 무게

 

 

사원번호 1번은 한 직장의 첫 번째 직원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당시 회사의 상황과 다른 직원들은 모르는 에피소드를 속속 알고 있는 특별함을 갖추지만, 직접 만나보기는 어렵다. 보통은 창업자가 1번인 경우가 많고, 역사가 오래 된 회사거나 이직이 잦은 업종일수록 남아 있는 이들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퇴직과 이직이 적지 않은 호텔업계에서 오픈부터 지금까지, 사원번호 1번을 달고 지금까지 불철주야 달려 나가는 이가 있다. 자재와 흙먼지가 날아다니던 준공 시절부터, 럭셔리한 호텔의 대명사로 꼽히는 지금까지 호텔의 변화 과정을 지켜본 1호 직원,  콘래드 서울의 인사부 김민선 상무다.

 

인터뷰어 채청비 기자 
인터뷰이 콘래드 서울 인사부 김민선 상무
사진 조무경 팀장

 


인터뷰는 콘래드 서울의 콘래드 스위트룸에서 이뤄졌다. 엔데믹 이후로 하늘길이 다시 열리면서, 로비에는 비즈니스 출장객과 여행을 위해 한국을 찾은 고객들로 북적였다. 31층에 위치한 스위트룸은 흐린 날에도 불구하고 통창 너머로 시원한 여의도 한강뷰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으며, 따뜻하고 고급스러운 질감이 매력적인 객실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민선 상무는 힐튼 브랜드에 대한 짙은 애정과 특유의 밝은 에너지가 돋보였다.

 

"사원번호 1번은 콘래드 서울의 시작과 현재를 함께한다는 뜻"

 

콘래드 서울의 1호 직원이다. 오픈 멤버라는 뜻인데,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법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부산 지역에 위치한 호텔에서 영어를 담당하는 팀 코디네이터로 호텔업계에 입문했다. 그러던 와중 힐튼 남해 골프 & 스파 리조트(現아난티 남해)에서 당시 닐스 아르네 슈로더 총지배인(이하 슈로더 총지배인)의 비서로 근무하게 됐다. 오픈을 마친 뒤 업무적으로 합이 맞았던 슈로더 총지배인이 해외 힐튼 브랜드로 이직하고, 나 또한 다른 기회가 생겨 잠깐 힐튼을 떠났다. 하지만 수평적이면서도 아낌없이 직원들을 서포트하는 힐튼의 문화가 늘 그리웠던 차, 슈로더 총지배인이 콘래드 서울의 부임하면서 함께 오픈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당시 업무 조건은 다니던 호텔과 똑같았고(웃음) 집에서 호텔까지 편도로 약 2시간씩 다녀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업무 스타일이 맞는 상사, 그리고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2011년 8월, 오픈하기까지 약 1년 3개월 전부터 첫 멤버로 합류하게 됐다.

 

오픈 당시 상황은 어땠나?
처음에는 총지배인과 둘 밖에 없었다. 당시 다른 건물에 사무실을 한 칸 임대해 공사 중인 호텔을 오가며 현장을 검토하고, 사무실에서는 일할 사람들을 계속 뽑았다. 호텔이 지어지기 전 이곳은 허허 벌판이었다. 항상 안전모를 쓰고 나무판으로 덧댄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임시 엘리베이터를 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사무실에서 계속 근무하고, 슈로더 총지배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면접을 봤던 기억도 떠오른다. 총지배인이 직접 링크드인이나 다른 HR 툴을 활용해서 헤드 헌팅을 하면, 내가 서포트했다. 우선은 인사부부터 컨택했다. 로컬 호텔시장에 대한 지식과 기반을 갖춘 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사부가 들어서고는 그 뒤에는 재경팀을 꾸린 뒤 차근차근 멤버들을 영입, 개업 2개월 전부터 업무에 대한 집중 트레이닝을 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 뒤로 2012년 11월 12일에 본격적으로 오픈하게 됐다. 

 

”모르는 일은 더 열심히 했다.
못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목표로 했던 비전도 알고 싶다.
오픈 당시에는 콘래드 자체의 인지도가 낮았다. 합류하기 전 근무한 호텔에서도 왜 안정적인 곳을 벗어나냐고 말할 정도였다. ‘내가 합류해서 서포트를 열심히 하자. 우리 콘래드 서울이 누구나 아는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서울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호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누구나 콘래드 서울을 알지 않나(웃음)? 초기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라 뿌듯하고, 내게는 특별히 의미가 깊다.

 

첫 직무와 현재의 직무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처음에는 총지배인 비서로 근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늘 인사부에서 교육 담당으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비서로 일하면 호텔의 모든 팀과 협업을 하게 된다. 그런데 늘 인사부와 일을 할 때마다 저 일을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래 방향성을 떠올렸을 때도 누군가를 독려하고, 교육하는 방향이 적성에 맞다는 확신이 생기더라. 우리 호텔의 장점 중 하나가 원하는 직무에 선택의 폭이 열려있다는 점이다. 인사 평가 상담을 할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했고, 근무한 지 5년이 지나니 인사부에 트레이닝 매니저 자리가 나 지원하게 됐다. 막상 합격하자 비서 업무는 적성에도 맞았고 일이 손에 익어 안정적이었는데, 인사 업무는 처음인지라 두려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도전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부서를 옮긴 뒤에는 가장 일찍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며 일을 배웠다. 

 

2019년부터는 업무를 더욱 인정받게 됐다. 당시 팀장의 이직으로 공석이 생겨 박경숙 전무가 인사팀장으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콘래드 서울의 오픈 멤버로서 호텔을 잘 이해하고 있고, 인사부에도 상당기간 근무했으며 장기간 묵묵하게 일하며 성과를 낸 결과, 지난 2022년 9월에는 인사부 상무로 승진했다.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한 번 해봐.’라고 했을 때 기쁘긴 했지만,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생기더라. 인사부는 수많은 호텔 내 갈등을 해결해야 하고, 교육 일정 및 내용 등 다양한 업무가 끊이지 않는 곳이라 중간 중간 그만두고 싶을 때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못하겠다는 말은 하기 싫었다. ‘일 잘 한다’라는 소리를 듣고 그만 둬야지, 내가 여기서 못해서 도망가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주어진 일은 밤늦게까지 남아 최대한 익히고, 배우며 노력했다. 기준을 남들 보다 높이 두고 맞춰 나갔다.

 

사원번호 1번인만큼 콘래드 서울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높을 텐데, 이러한 경험이 업무에도 긍정적인 시너지로 이어지나?
기존의 복지 체계나 인사 관련된 이슈, 현재의 이슈를 통틀어 알고 있으니 채용 프로세스를 구성할 때도 그동안 적립된 내용을 많이 활용한다. 내 뒤로 생긴 사번만 2000번대다. 이렇게 수많은 직원들을 거치고, 또 호텔의 역사를 속속 알고 있다 보니 직원을 뽑을 때 나만의 기준이 확실히 생긴다. 셀렉션 과정에서 이 프로퍼티에서는 이러한 성향을 지닌 직원이 필요하고, 이런 업무적 방향을 제시해야겠다는 판단 및 어떤 실수를 하겠다는 예측도 가능해지더라.


특히 인터뷰를 할 때 정성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똑같은 문제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애티튜드나 답변을 꼼꼼히 확인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 팀의 볼륨을 이전과 현재를 통틀어 생각해 봤을 때 어떤 사람이 와야 이 팀에 시너지를 더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대책이 선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너무 열정적인 면접자는 그만큼 빨리 식는다. 콘래드 서울에 대한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또 적절한 이성을 갖춘 지원자가 우리 호텔에 적합하다는 걸 알게 됐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겠다.
오픈하고 나서는 여의도 공원에서 Mass Recruitment를 진행했다. 우리 호텔의 테마가 퍼플 컬러다. 보라색 옷을 입은 지원자 1000명이 마주하니 시각적인 감동이 생겨났다. 지원자들의 열정을 느꼈던 경험이 잊히지 않는다. 직접 지원자들을 맞이하며 호텔에서 일할 구성원들을 구하는데 팀이 하나씩 만들어지고, 그리고 합류한 직원이 새로운 퍼포먼스를 보일 때마다 한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로더 총지배인과의 에피소드도 기억에 남는다. 슈로더 총지배인은 탁월한 리더십을 지닌 리더였다. 콘래드 서울이 들어서고 국내외로 많은 사건이 있었다. 메르스, 사드 배치 등…. 특히 2014년 세월호 사건 발생했던 날, 호텔에서 회원들을 모아 성대한 파티를 진행할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사건이 생중계됐고 당시 총지배인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는 이런 상황 속 웃으며 파티를 즐길 수 없다고 이야기한 후, 행사도 모두 취소했다. 당시 “민선, 난 정말 거짓말이 아니고, 호텔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끝까지 남아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 될거야.”라고 이야기했던 총지배인의 말에 좋은 측면으로 충격을 받았다. 평소에도 직원에 대한 서포트와 헌신이 지대했지만, 감정을 비추는 일도 적고 업무 시 굉장히 이성적인 터라 분명히 어려운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훌륭한 리더는 이렇듯 직원을 최우선으로 서포트하려는 생각을 갖춘 이라는 가치관이 생겨났던 것 같다.


현재 클러스터 총지배인인 마크 미니 총지배인과의 일화도 있다. 새로 오픈한 힐튼 계열 호텔에 키맨들을 소개시켜 주기에 현재 인력난이기도 하고, 여태 콘래드 서울에서 우수하게 키운 인재들이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마크 미니 총지배인에게 이 정도 자질을 지닌 인재들을 지금 마켓 시장에서 구할 수 없다고 걱정하니 직원들의 개인적인 커리어를 발전시키고 미래를 만들어주는 게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이야기하더라. 그때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직원과 관계없이 내가 인사부 상무로서 할 것은 어려운 팀을 서포트 하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까지 콘래드 서울을 다닐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우선 우리만의 컬처가 강한 점이다. 조직 구성력이 탄탄하다. 모든 것이 오픈돼 있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다 보니 직원들끼리 위계 없이 끈끈하다. 실제로 퇴사할 때 인터뷰를 하면, 가장 좋았던 것은 직원들과 회사 문화라고 이야기한다. 최근에는 아예 다른 업계로 이직하려는 전 직원이 ‘타 호텔을 염두 했다면 이직하지 않았다. 콘래드의 조직 문화가 가장 긍정적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하더라. 


그리고 호텔의 밸류가 내가 꿈꾸는 비전과 같다는 것도 이상적이다. 실제로 별명이 ‘김힐튼’이다(웃음). ‘Never Just Stay, Stay Inspired’, 단순히 머무르지 않고 영감을 얻는 공간이라는 태그라인이다. 실제로 콘래드 서울은 내게 많은 영감을 줬다. 대표적으로 서포트. 내가 예상치도 못한 일을 도전했을 때, 좋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이끄는 서포트가 없었다면 총지배인 비서부터 현재 인사부 상무로 거듭나기 어려웠을 수 있다. 나를 믿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직무를 맡기고, 상사들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명확히 피드백하고 또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나 또한 회사에 더욱 헌신 할 수 있는 인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겁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와 멈추지 않고 도전하도록 돕는 문화가 합쳐져 지속적으로 근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수한 동료들과 조직의 끊임없는 헌신
매일 영감을 주는 공간에서 일한다는 자부심”

 

향후 업무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 부탁한다.
현재 MBA 과정을 거치면서 입사 이후로 최초로 6시에 퇴근하고 있다(웃음). MBA를 다니는 것도 조직 구성원들의 이해와 공감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좋은 직원들에는 또 그만큼의 좋은 조직 문화와 복리후생이 전제돼야 한다. 직원들의 복지와 업무 환경을 발전시켜 더 많은 서포트를 할 수 있는 선임이 되고자 한다. 


더불어 앞서 언급했지만 작년 9월에 인사부 상무가 됐다. 전임자인 박경숙 전무는 호텔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나 역시 많은 영감을 받으며 업무를 배웠다. 그동안은 그 자리를 어떻게 메울지 고민했고 조직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조금 더 전략적으로,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커리어 패스까지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강화시켜 많은 구성원들을 한 발자국 더 성장시킬 수 있는 리더십을 선보이고 싶다.

 

인터뷰가 끝난 뒤, 김 상무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직업이 참 많았는데 호텔에서는 모든 것을 해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한때 앵커가 되고 싶었는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회를 보기도 하고, 법률인의 꿈은 인사부에서 근무하며 노동법 지식을 탐구하고, 피아니스트의 꿈은 직원 파티에서 선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서 콘래드 서울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실제로 오픈 당시에는 마치 아이를 낳은 것처럼 너무나 기뻤고,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고. 그 이야기에서 향후 콘래드 서울의 인사부 상무로서, 호텔의 가족이나 다를 바 없는 구성원들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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