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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7 (토)

호텔&리조트

[Hotel Specialist] 선배와 후배의 만남을 통해 조리 업계의 미래를 읽어내다

- 한국조리박물관 최수근 관장의 생애로 읽어내는 조리교육의 발전과정

 

한 업계의 생애주기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흔히 각 역사를 재현할 수 있는 사료와 다양한 증언, 문헌를 통해 이뤄지고는 한다. 방대한 자료를 모으거나 리서치를 통한 지식들을 발굴하는 작업도 의미 깊지만,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한 업계를 조망하는 방법도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차원을 아우르는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이에 생애사에 따른 조리교육의 역사를 살핀 논문이 나왔다. 바로 한국 서양 조리계의 역사를 몸소 체험하고 후대에 남겨줄 수 있는 인물, 한국조리박물관의 최수근 관장을 탐구한 논문이다. 


취재 채청비 기자  사진 조무경 팀장
인터뷰이 한국조리박물관 최수근 관장 / 은평메디텍고등학교 조리과 서민국 교사

 

인터뷰는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에서 이뤄졌다. 대학원 과정을 밟던 당시 은사의 추천으로 최수근 관장과 인연이 됐다는 서민국 교사와 한국조리박물관의 최수근 관장이 모여 논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고, 이번 논문은 심사가 끝났으며 한국외식경영학회 8월호에 게재 확정됐다는 사실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아직 조리교육계에서는 질적 연구를 통해 역사를 조망하는 논문이 거의 없던 차, 이 논문이 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것인지도 기대가 됐다.

 

“한 사람의 생애로
한국 서양 조리의 역사를 읽어내는 논문”


업계의 후배가 선배를 연구하고, 그 생애를 통해 한 업계를 조망하려는 시도가 인상적이다. 각자 소개 부탁한다.
최수근 1975년 경희호텔경영전문대 조리과를 졸업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3년, 미 대사관에서도 근무했으며 신라호텔에서도 17년을 일했다. 1983년, 프랑스 파리 르 꼬르동 블루로 유학을 떠나 한국인 1호로 졸업하고 돌아왔고, 경주대학교 7년, 영남대학교에서 2년 간 교수 생활을, 이후로 경희대학교에서 15년 동안 후학 양성에 힘썼다. 현재는 안성시에 위치한 한국조리박물관의 관장을 지내며 서양 요리의 역사와 진로 특강, 소스 시연 등 여러 강의를 하면서 업계에 이바지 중이다.


서민국 현재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은평메디텍고등학교 조리과에서 학과장을 맡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조리를 전공했고, 학부 시절에도 대학원 권유를 많이 받은 데다가 더 체계적인 교육을 하고 싶다는 지적인 열망이 존재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강의를 하니까 조리 교육 자료 자체는 많지만, 체계적인 부족함이 있어 교육과정을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경희대학교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됐고 지도교수의 소개로 최수근 관장님을 만나게 됐다. 

 

8월호에 게재된 <조리과 교수의 생애사에 따른 국내 서양조리교육 발전과정>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서민국 조리학은 실용 학문이기 때문에 학문적인 당위성을 인정 받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 실천에서 조리학으로, 조리학에서 조리 과학의 영역으로 확장된 일면을 최 관장의 일생으로 읽어낸 논문이다. 최 관장님과의 인터뷰, 그리고 기존 조리사들의 물품과 증언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것에서 전체적인 것을 살피려고 노력했다.


최수근 한국조리박물관을 건립하면서 나 또한 여러 조리사들의 인터뷰를 거쳤다. 해방 이후 미군 부대 때부터 조리를 해왔던 조리사들과 내 세대, 그리고 내 다음 세대까지의 역사와 조리 도구를 망라한 것이다. 이 경험이 논문에 반영됐다. 자료가 풍부했기 때문에 서 교사의 논문이 좀 더 당위성과 현장성을 갖춰서 작성된 것 같다.

 

 

“나를 토대로 논문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조건 돕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작성하게 됐나?
서민국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리학은 자료가 방대하지만, 그 방대한 자료를 다양하게 정리하려는 시도 자체가 적다고 생각했다. 다른 학문들은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가 동시에 이뤄지는 편인데, 조리학은 아직 질적 연구가 확대되기 전이었다. 해외에서는 생애사 논문이 종종 있지만, 한국에서는 이 논문이 최초라고 봐야할 만큼 문헌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현장에 나와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지 않나. 그 이야기와 경험들을 알게 되면 학문과 업계를 이해하는 범주가 넓어지기도 한다. 작게나마 논문이 일조를 했으면 바람이 있었다. 그러던 중 경희대학교 정라나 교수님께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한국 서양조리 교육의 발전 과정을 다뤄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듣고 착수하게 됐다. 

 

최 관장을 논문 대상으로 삼게 된 계기도 궁금한데.
서민국 최수근 관장님은 조리업계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리고 조리 현장에 있으면서 동시에 교육자로도 이바지했다. 인사이트를 얻었던 정라나 교수님도 이렇게 산업계와 학계의 경험을 둘 다 갖춘 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최 관장님을 연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또한 르 꼬르동 블루 1호, 조리업계에서 빠질 수 없는 88올림픽의 현장을 경험하셨던 분이기 때문에 당시의 현장을 생생히 증언해줄 수 있는 사례 또한 많다고 생각했다. 유학 경험이 있으면서, 당시 1호라는 상징성과 세대 대표성이 특별히 와 닿았던 것이다. 연락을 어떻게 드리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최 관장님께 당신의 생애로 논문을 써도 되겠냐는 편지를 써서 드렸던 게 기억에 남는다.


최수근 추가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1953년생이니 70대를 넘은 나이다. 내 위에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있고, 그 아래로 후배들도 있다. 나는 산업계와 학계를 둘 다 거치기도 했고, 세대의 중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물관을 건립할 때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도 했으나, 어느 장소에 가도 중간자로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해방이 된 뒤에 냉장고가 없었던 무렵, 어떻게 고기를 저장할 수 있었는지, 햄버거를 만들 때 절구로 고기를 찧어서 만들었던 경험, 연탄 오븐과 주방에서 기구를 정비했던 목수의 이야기 등을 선배들에게 들으면서, 동시에 후배들에게는 현장의 상황과 내 이후의 주방이 어떻게 변모해 나갔는지 귀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다.

 

편지라니, 최 관장도 감회가 색달랐겠다.

서민국 한국조리박물관 견학을 갔을 때 관장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르 꼬르동 블루를 갈 때 편지를 써서 지원한다는 이야기였다. 사람이 진심을 전할 때 편지 만한 것이 없다는 게 인상 깊게 남아있었고,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한 자 한 자 썼던 게 기억에 남는다(웃음).

 

최수근 요리를 40년 넘게 했는 데도 처음 느껴보는 감동이었다. 이런 후배가 있었구나, 나의 생애를 토대로 논문을 쓰려는 후배가 있다는 데 영광스럽다는 기분이 기도 했다(웃음). 편지를 읽고 논문이 통과해도, 통과하지 않더라도 무조건 협조한다는 이야기를 나눴었다. 조리업계에서는 이렇게 생애 연구를 한 전적이 없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가 있는 연구라고 생각했다. 나도 이번 논문 참여를 통해 한국에서의 서양조리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서 의미가 남달랐다.


물론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두려움도 있었다. 내 위에 많은 선배들이 있는데 내가 너무 교만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 이게 자랑을 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면 안 되는데, 라는 고민이 생기더라. 논문이 작성될 때도 그 고민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종 논문을 확인하고 나서는 담백하게 쓰여져 만족스러웠고, 부담도 덜했다.

 

 

“교과에서 접할 수 없는 국내 조리교육의 다양한 면모

논문에서 읽어낼 수 있기를 바랐다”


논문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서민국
질적 연구가 발전해 있는 교육학, 사회학, 간호학회의 강의를 들으면서 질적 연구는 이렇게 하는지 살폈다. 들어 보니까 우상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 보였다. 논문은 객관성이 중요한데 잘못했다간 찬양을 하는 듯한 논조로 갈까봐 경계했다. 그래서 리서치 논문 만큼이나 체계적이고 담백하게 쓰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관장님의 생애와 한국 조리업계의 큰 사건들을 하나씩 엮어서 정리하고, 인터뷰를 살리면서 현장감을 전달했다. 단순히 생애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이 생애에서 학문적, 실무적인 시사점이 도출 돼야 했고, 시사점이 나와야 했기 때문에 핵심을 조리 역사의 핵심을 살리는 방향으로 작성했다. 덕분에 심사위원들도 자세한 인터뷰와 당시의 증언들이 의미 깊었다는 코멘트를 받았다. 그리고 공정한 절차를 위해서 최 관장님도, 나도 아무런 연고가 없는 학회에 발표해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최수근 소위 ‘끼리끼리 논문’이 될까봐 경계를 거듭했다. 아무 이해관계 없이, 윤리성을 확보하기 위해 익명으로 투고했고. 나도 앞으로 다양한 논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러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주변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서민국
생애사 연구가 없다 보니, 다들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이런 논문이 필요했는데 착수하게 돼 기쁘다, 그러나 아주 어려운 연구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같이 해주셨지(웃음). 선행 자료가 없기 때문에 타 학계의 강의와 논문을 많이 읽으면서 준비했던 것 같다. 논문을 완성할 때쯤에는 미리 읽어본 이들이 자신도 생애사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의견을 종종 줬다. 조금씩 논문의 저변에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쁜 마음이었다. 연구를 진행할 수록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많이 느끼고 있어 더 열심히 연구에 정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논문을 읽은 이들이 어떤 생각이 들었으면 하나?
서민국
최 관장님도 이야기하셨다. 어느 학문이나 고전을 50% 알아야 하고, 현대를 50%를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전 사료를 확인하고 현재의 상황을 적절히, 밸런스 있게 알아야 실무적인 시사점과 학문적인 시사점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리업계는 절대 과거의 자료가 부족하지 않다.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도 너무 많다. 책에서는 못 보는 증언들을 현장에서 경험할 수도 있다. 논문을 읽는 이들이 실무적인 경험과 동시에 학문적인 역사를 통합하는, 그런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최수근 후학 양성에 더욱 몰입하고 싶다. 서 교사처럼 조리업계에 애정어린 관심을 가진 후배들을 많이 교육하기 위해 집중할 것이다. 우선은 한국소스학회를 활성화 시켜 2050년에는, 그때는 내가 없을 수도 있지만(웃음) 한국 조리업계의 최고 수준의 학회를 만들어 소스 과학고등학교를 만들고 싶다. 현재 한국조리박물관장을 은퇴한다면 꿈꾸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서민국 거창한 건 없지만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를 혼합한 연구론에 관심이 많다. 앞으로 다양한 연구를 하면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많이 발견하겠다. 한국의 조리 현장이 발전한 것처럼 조리 교육의 방법론도 더욱 다양해지면 좋겠다. 부족하게나마 그 과정에 힘을 보태고 싶고 조리 교육 방법론을 학문적으로 정립, 후학양성에도 신경을 써서 좋은 제자를 길러내는 교사가 되는 것이 최종의 목표다. 

 

 

최 관장과 서 교사는 둘 다 ‘후학 양성’에 관심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업계에 관심이 많다면, 향후 업계를 이끌어나갈 새싹 같은 후배들에게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더욱 좋은 현장과 더 좋은 교육을 위해 뻗어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왜 서 교사가 최 관장을 연구대상으로 삼게 됐는지, 그리고 최 관장이 서 교사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를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겸손을 미덕으로 삼으면서, 업계의 애정이 짙은 모습에서 같은 목표를 일궈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선배와 후배가 이끌어나가고 있기에, 한국 조리업계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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