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서리가 내린다는 한로를 넘겼다. 거짓말처럼, 밤 기온이 10℃ 이하로 내려갔고, 나무들은 잎과의 이별을 준비하느라 스산하다. 밤이 길어지고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면, 각자 생각나는 와인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바롤로다.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방의 찬 안개가 돌면 수확하는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드는 묵직한 와인, 바롤로~! 이 바롤로 와인이 11월에 소개할 와인이다.
바롤로! 이 얼마나 위대한 이름인가! 생각만해도 가슴 벅찬 와인, 부르기만 해도 가슴 뛰는 와인!
특별한 순간을 위한 섬세하고 우아한 와인, 매 빈티지마다 특별하고 다르다. 바롤로 와인을 앞에 두면 가슴은 따뜻해지고 마음은 열린다. 위대한 자연과 고상한 품종, 2세기 이상 숙련된 노련한 노동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와인에 대한 경외심이 느껴진다. 바롤로 와인 한 병을 열면… 부드러운 랑게 구릉의 능선과 갈색 포도밭, 그 속의 돌 내음, 흙 내음, 꽃 내음, 풀 내음이 흩어진다…
한 세기 전의 전통이 살아 있는 바롤로, 자꼬모 보르고뇨!
많은 바롤로 와인 생산자 중에서, 가장 전통에 충실한 양조장, 가장 터줏대감 같은 양조장을 들라면 단연 쟈꼬모 보르고뇨 양조장이다. 바롤로 지역에서 250여년 이상 와인을 생산해온 보르고뇨 가문은 1761년 바르톨로메오 보르고뇨가 농장을 설립함으로써 시작됐다. 피에몬테주 전체를 통해서도 가장 오래된 양조장에 속한다. 보르고뇨의 바롤로 와인은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됐을 때, 통일 축하 만찬에서 시음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으며, 1886년에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가 방문하기도 했다. 오늘날 보르고뇨 양조장은 수세기에 걸친 노하우로 전통을 유지하며 고품질 바롤로 생산자로서의 명성을 지키고 있다.
보르고뇨 사의 강점은 전통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중과 이행에 있다. 양조 기술도 지난 수십 년 동안 사용했던 것과 동일하다. 장기 침용 추출, 수작업 피자쥬, 그리고 커다란 슬라보니아 오크조에서 장기간 숙성시킴으로써, 와인에 숨길 수 없는 ‘Borgogno’ 인장을 찍는다. 3년은 대형 슬라보니아산 오크조에서 2년은 병 안에서 총 5년을 숙성시킨다. 와인의 품질과 특성에 영향을 끼치는 인공 효모나 효소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와인 생산 철학은 그야말로 전통적이다. 자연스러운 와인 양조 방법을 사용해 와인을 만든다. 그래서 보르고뇨 와인은 지난 옛날의 와인을 연상시킨다. 11월도 원래 그런 달이 아닌가?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게 하는…! 12월이 마지막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번잡하고…
[11월의 와인] 자꼬모 보르고뇨, 바롤로 포사띠(Barolo, Fossati)
포사띠 밭은 ‘바롤로 마을’에서 ‘라 모라(La Morra) 마을’로 올라가는 중간 길에 위치해 있다. 해발 290m에 있는 이 포도밭은 남동향 채광에 면적은 3.2ha다. 수백만 년 전의 해양 퇴적물로 형성된 암반 위에, 사토 성분이 특별히 다량 분포해있는 이 포도밭 와인은 꽃향기와 과일향이 풍성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2008년 바롤로 포사띠는 놀라운 향의 복합미와 파워를 가지고 있다. 숙성 8년차인데도 강인하고도 뇌쇄적인 향을 뿜어낸다. 향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폭발적이다. 들꽃향, 감초, 송로, 타르, 생강 등등… 병 안에서 진주 목걸이를 하나하나 꺼내 올리는 것처럼… 새로운 향들을 시간차로 맡을 수 있다. 환상적인 미네랄 초크는 일품이다. 먼지처럼 쿰쿰하지 않은 깔끔하고 시원한 미네랄 향이다. 매우 섬세하게 식각해 정교하고 치밀하게 완성된 조직 결과 바디감을 가졌다. 가히, 역대급 보르고뇨 바롤로 와인이다.
가격 19만 원 대
[11월의 와인] 자꼬모 보르고뇨, 바롤로(Barolo)
응회암 암반 속에 만들어진 보르고뇨사의 셀러는 바롤로 마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50여 년에 걸친 방대한 클래식 빈티지 컬렉션을 자랑하는 몇 안 되는 흔치 않은 양조장이다. 각 와인들은 이 역사적 셀러에서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다.
보르고뇨는 깐누비(Cannubi), 리스떼(Liste), 포싸띠(Fossati) 등 바롤로 지역의 가장 존귀한 밭들을 가지고 있는데, 각 싱글 빈야드 와인을 생산하고 남은 포도를 모아서, 클래식 스타일의 일반 바롤로 와인을 만든다. 그러기에 어찌 보면 가장 ‘보르고뇨 스타일’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맑고 부드러운 갸닛 색상에, 장미와 민트, 로즈마리, 송로 향이 우러 나오며, 입안에서는 얇고도 빳빳한 타닌의 매혹적인 질감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일반급 바롤로인데도 주변 회사들 것 보다 가격이 높은 이유이다.
가격 17만 원 대
구입정보 금양인터내셔날(02-2109-9233)
손진호
중앙대학교 와인과정 교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역사학 박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와인의 매력에 빠져, 와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이후 중앙대학교 산업교육원에서 와인 소믈리에 과정을 개설하고, 이후 17년간 한국와인교육의 기초를 다져왔다. 현재 <손진호와인연구소>를 설립, 와인교육 콘텐츠를 생산하며,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에 출강하고 있다. 인류의 문화 유산이라는 인문학적 코드로 와인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그의 강의는 평판이 높으며, 와인 출판물 저자로서, 칼럼니스트, 컨설턴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mail: sonwin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