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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선

[전복선의 Hospitality Management in Japan] 레크레이션으로 활력을, 일할 기회로 자존감을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

고령자의 감성을 존중하는 일본의 요양시설 3



CCRC는 ‘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의 약어로, 고령자가 건강한 시기에 그들을 위한 각종 시설을 갖춘 곳에 입주해 지속적인 케어를 받으면서 평생 지낼 수 있는 커뮤니티를 뜻한다. CCRC가 처음 시작된 미국에서는 고령자들이 노후를 보내는 보편적인 공간으로 자리잡았고, 일본에서는 최근 차별화를 모색한 형태들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고령자를 위한 CCRC는 어떤 형태로 진화하는 것이 좋을지 두 사례를 참고해보기 바란다.

 

레크레이션이 강화된 CCRC


최근 코로나 이후 관광 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많은 호텔들이 도산하자, 이들을, 고령자를 위한 CCRC 형태로 전환하는 케이스가 나타나 주목 받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야마구치현(山口県)의 하기시萩市)에 위치한 ‘그랜드 호텔 텐쿠(グランドホテル天空)’다.

 

 

코로나 여파로 인해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오랜 역사를 가진 하기시의 ‘그랜드 호텔 텐쿠’는 도산하게 됐고, 하기시의 지자체와 은행 채권단은 노후화된 호텔을 인수할 곳을 찾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고, 이에 시는 호텔을 인수할 기업이 나타나지 않으면 해체하는 비용만 해도 수억 엔이 들고, 시의 경관과 치안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기시의 공무원과 은행 채권단은 호텔을 이용해 무엇이 가능할까 하고 고민하게 됐고, 고령자들을 위한 전용 주거와 레크리에이션 콘텐츠를 갖춘 CCRC로의 전환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시와 채권단이 호텔을 CCRC로 전환하는 아이디어를 낸 배경에는 하기시가 안고 있는 노인 복지를 둘러싼 문제가 있었다.

 

 

하기시에는 돌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치매 등의 등급이 높은 고령자를 위한 시설은 충분했지만, 건강한 고령자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고령자 전용 시설은 부족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기시는 지역에서 가장 큰 노인요양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 복지 법인 ‘소우세이카이(創生会)’의  이사장에게 호텔을 인수해서 CCRC로 재생할 것을 제안, 소우세이가이의 이사장은 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호텔을 인수한 소우세이카이는 호텔을 ‘굿타임 홈 그랜드 하기(グッドタイムホームグランド萩)’라는 이름의 CCRC로 탈바꿈 시켰다. 특히, 호텔이 가지고 있던 하드웨어인 뷔페 레스토랑, 실내 골프장, 노래방, 마사지 룸, 피트니스 (재활 시설), 오락실 (극장, 마작, 바둑, 장기, 포커), 파칭코 및 슬롯머신 룸, 그리고 천연 온천 등을 리노베이션해서 고령자를 위한 레크리에이션 기반의 CCRC를 만들었다.


고령자 맞춤의 레크레이션 시설이 다양하게 갖춰진 ‘굿타임 홈그랜드 하기’는 여가에 관심이 많은 고령자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위기로 경영난에 빠져 있는 호텔의 경영자들로부터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평생 일할 수 있는 농촌형 CCRC


하지만 고령자들이 여가생활에만 관심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실제로 미국의 레크리에이션에 기반을 둔 CCRC에 입주한 고령자들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처음 한 두 해는 골프도 치고, 온천도 매일같이 즐기고, 게임을 하면서 신나게 지내지만, 얼마 지나면 똑같은 일상에 무료함을 느끼고, 점차 건강이 약해지면서 무기력함에 빠진다고 한다.

 

 

즉, 단순히 놀이와 휴식을 기반으로 한 CCRC의 경우 고령자들에게 단기간에는 만족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무료함과 무기력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여가와는 반대로 오히려 생산적인 일을 통해 자존감을 찾고 싶어 하는 고령자들의 니즈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령자들의 니즈를 위한 곳이 바로 ‘평생 일
할 수 있는 농촌형 CCRC’이다.


나가노현(長野県)의 유명한 리조트 지역인 카루이자와(軽井沢)에 인접해 있는 사쿠시(佐久市)는 연중 시원한 기후와 풍부한 자연 환경과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 거리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작은 마을이지만 지역 의료를 책임지는 종합병원이 있어서 인근 고령자들의 건강을 책임지는데 중요한 역학을 담당해 왔다.

 

 

이러한 자연환경, 지리적 이점, 그리고 의료 인프라 덕분에 사쿠시는 예전부터 고령자들의 이주지로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러던 차에 정부의 CCRC 지원사업이 시작되자 사쿠시는 도쿄의 시부야에 있는 주식회사 ‘민나노 마치 즈쿠리(みんなのまちづくり)’와 함께 25년 전에 세워진 아파트 단지인 ‘호시노마치’를 CCRC사업의 공간으로 재생시켰다.

 

사쿠시와 주식회사 민나노마치즈쿠리가 호시노마치 단지를 CCRC로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주력한 부분은 ‘평생 일할 수 있는 농촌형 CCRC’를 만드는 것이었다. 기존의 CCRC
가 골프장, 노래방, 요가, 헬스클럽, 전담 의료진 같은 서비스를 내세운 것과 달리, 리모트 워크를 바탕으로 계속 일을 하고 동시에 농사를 짓기를 원하는 고령자를 위한 공간을 창출했다. 그야말로 사쿠시는 은퇴 후 휴식의 공간으로서의 CCRC가 아니라, 현역으로 계속 일을 하기를 원하는 고령자들이 시골 생활과 일을 병행하는 형태의 CCRC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사쿠시는 ‘평생 일할 수 있는 농촌형 CCRC’를 구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작업으로 먼저 주식회사 ‘민나노 마치 즈쿠리’와 함께 호시노마치 단지의 건물인 철근 콘크리트로 4층의 아파트를 고령자 전용 주택으로 개조했다. 그리고 사쿠시는 고령자들이 이주 후 초기에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 호시노마치 단지 안에 생활 상담 및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인력을 배치해서 이주자들의 적응을 돕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고령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단지 내 리모트워크와 각종 교류를 진행할 수 있는 거점 공간인 ‘Shoku─Ba’를 만들었다. 실제로 고령자들은 와이파이와 프린터, 회의실, 주방 등을 갖춘 공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볼 수도 있고, ‘호시노마치 아카데미’를 통해 고령자들이 업무와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기능을 습득할 수 있다.

 

 

사쿠시와 주식회사 민나노마치즈쿠리가 추진한 CCRC사업은 은퇴한 고령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고령자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됐다고 볼 수 있다. 즉, 보통은 고령자들이 은퇴를 하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내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쿠시는 고령자들도 스스로가 능동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며 실제로 고령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일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호시노마치의 사례는 기존의 CCRC와 노인 요양시설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령자들이 능동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고령자들이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령자의 감성과 자존감을 위해!


이번 호를 끝으로 고령자들을 위한 일본의 요양시설들을 3회에 걸쳐 살펴봤다. 이들은 모두 독특한 시도와 발상의 전환으로 운영면에서 우리의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특별한 시설들이었다. 일반적으로 고령자들이 돌봄 시설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는 건강이 안 좋아져서 더이상 혼자 거주하기 힘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고령자들이 입주 여부나 시설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같이 고령자가 돌봄이 절실하게 필요한 타이밍에 입주하게 되다 보니 완전히 수동적인 상태에 빠져 삶의 활력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다.

 

 

특히, 고령자들이 요양시설에 거주하면서 처하게 되는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로 인해 겪게 되는 심리적 데미지는 심각하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의 고령자들이 요양시설에 들어가면서 우울증과 치매에 걸리고 점차 적응 능력이 떨어져 ‘트랜스퍼 쇼크(Transfer Schock)’ 상태에 빠지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 고령자가 시설에 들어간다는 것을 바로 새드 엔딩의 시작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령자들이 겪게 되는 불행한 삶의 결말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고령자들의 감성과 자존감에 다각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고령자들을 돌볼 때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고령자의 돌봄이 누군가의 절대적인 희생이 되는 것은 서로에게 부담이 돼 결국 행복할 수 없다.

 

 

온 마을 사람들이 드나들고 세탁같은 생활 노동은 스스로 해 나가는 활기 넘치는 공간, 육아 품앗이를 하듯 커뮤니티 안에서 자연스럽게 고령자를 케어할 수 있는 공간, 일을 통해 자존감을 지켜나가도록 하는 공간까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소개된 사례들처럼 앞으로 우리나라의 시설들도 고령자의 감성과 자존감에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가지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출처_ 굿타임앤드그랜드하기_ https://kaigo.homes.co.jp/facility/detail/f=60558/
호시노마치단지_ https://hoshinomachi.jp/wp/
https://e-office.space/karuizawa-by-hoshinoma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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