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직을 한 남자들 중 상당수는 한 번쯤 전원생활을 꿈꿔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년퇴직을 한 남자들은 은퇴 후 도시를 떠나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꿈꾼다. 하지만, 농사 생활은 여러 가지 신경써야할 문제가 산재했다. 이처럼 귀찮은 이슈를 겪지 않고 농업을 즐기듯이 할 수는 없을까? 최근 이런 물음에 답하는 호텔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농원호텔 혹은 전원리조트로 불리는 호텔이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남편, 도망가는 아내
오랜 세월 대도시의 혼잡스러운 환경 속에서 일해 온 샐러리맨들이 은퇴 후 시골의 풍요로운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아내와 오붓하게 그 동안 갖지 못했던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보상심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의 입장은 남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이제 겨우 남편의 뒷바라지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연극을 보거나 미술관을 둘러보고, 요리보다는 백화점 지하에서 맛있는 것을 사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는 등 가사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이렇게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꿈꾸기 때문에 남자들이 전원생활을 꿈꾼다는 말을 하면 그 때 부터 집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갈등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만약, 정말 관대한 아내를 둔 덕분에 본인의 뜻대로 전원생활을 시작했다고 치자.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된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도시 생활 못지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간지역에 살다 보면 슈퍼나 병원까지 가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적어도 차를 두 대 구입해야 한다. 그러면 기름 값을 비롯한 유지비용도 더 많이 들게 된다. 또한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면, 철마다 수확되는 채소들은 두 사람이 먹기에는 양이 넘쳐나서 이제는 해방되고 싶었던 요리도 계속 해야 하고, 아는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한다. 그래도 남는 것은 작업을 해서 따로 보관해둬야 한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조금씩 사면 세상 간편할 것을 이렇게 복잡하게 처리해야하는 중노동이 이어지는 것이다. 남편의 입장에서도 힘들게 농사를 지었는데 달가워하지 않는 아내에게 원망이 쌓인다. 게다가, 전원생활의 어려움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주민들의 경우 외지에서 온 사람에 대한 경계심 같은 것이 생길 수 있어서 초창기에 관계를 잘 맺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로 인해 결국 전원생활을 포기하고 도시의 아파트로 되돌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부부간의 갈등 그리고 마음의 상처만 안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귀찮은 문제들을 겪지 않고 농업을 즐기듯이 할 수는 없을까? 최근 이런 물음에 답하는 호텔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농원호텔 혹은 전원리조트로 불리는 호텔이다.
호텔이 농업을 팔다
호텔이 농사에 주목하는 이유는 농업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유휴지가 증가하는 반면, 좋은 농산물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고, 미래산업으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전의 농업이란 농약을 많이 뿌려서라도 생산량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의 농산물에 대한 요구가 까다로워지면서, 농업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니즈에 맞춘 질 높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히려는 움직임 때문에, 자신들이 먹는 농산물의 생산과정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그야말로 농산물을 구입하는 소비자에서 체험하고 구매하는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소비자들의 변화에 주목해 농업을 체험하는 것을 숙박 서비스의 상품으로 제공하는 호텔이 생겨나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호텔이 1949년 창업한 리조트 인 야마이치(リゾートイン・ヤマイチ)다. 리조트 인 야마이치는 나가노현의 하쿠마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어 겨울에는 스키장을 찾는 관광객으로, 여름에는 등산객으로 붐빈다. 그리고 호텔의 역사가 80년 정도 되다 보니 매년 찾아오는 단골 고객도 많다. 한 70대의 고객은 중학교 시절부터 현재까지 계속 겨울에는 스키를, 여름에는 등산을 하러 이곳을 찾는다고 하니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는지 알 수 있다.
호텔 전체 객실 수는 24개, 총 수용 인원은 86명이다. 현대화된 객실은 트윈 2실, 트리플 2실, 전통적 일본식 객실이 20실이다. 기타 시설로는 레스토랑, 남녀 천연 온천 목욕탕, 이벤트 홀, 회의실 등이 있다. 호텔의 시설로만 보면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는 작은 호텔이다. 하지만, 리조트 인 야마이치에서 주목할 만한 곳은 바로 레스토랑이다.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음식은 농사를 직접 지으면서 호텔을 운영하는 가족들이 저농약 재배로 정성들여 키운 채소와 쌀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기를 모으고 있는 ‘노자와나라’라는 이 지역 특유의 채소와 직접 만든 미소, 잼 등은 ‘야마이치 FARM’이라는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리조트 인 야마이치는 단순히 자신들이 농장에서 재배하고 키운 채소나 상품 등을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농업 × 숙박」이라는 콘셉트로 농업 체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농업 체험과 숙박을 세트로 한 프로그램인데, 농업 초보자인 도시인들을 위한 맞춤형 상품이다. 농업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숙박객은 농번기에 이 패키지를 이용할 경우, 호텔 가족들과 실제로 모내기와 제철 채소의 수확, 노자와나의 절임요리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이 이외에도 숙박객은 농업 체험 후, 직접 재배한 야채를 사용한 프렌치 창작 코스요리에 도전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이처럼 농업 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리조트 인 야마이치가 특별한 것은 호텔 오너 가족이 소중하게 심고 재배하는 저농약 재배 농장에서 고객과 함께 직접 워크숍 형태로 진행하기 때문에 초심자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고객은 직접 당일 수확한 농작물로 잼이나 절임을 만들고 여의치 않을 경우 호텔 측이 참가자의 집으로 배송해 준다. 리조트 인 야마이치 「농업 × 숙박」의 정수는 바로 이 부분에 있는 것이다.
한국형 전원호텔을 제안하다
농업은 너무 힘들다. 그리고 전원생활 역시 생각처럼 녹록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꿈꾸고 몸에 좋은 농산물을 먹고 싶어 한다. 이러한 욕구를 색다른 방법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힌트가 리조트 인 야마이치의 「농업 × 숙박」 패키지에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한국형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예를 들어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회원제 호텔을 운영한다고 가정하자. 고객들은 호텔의 농장에서 자신의 밭에 배추를 심는다. 그러면, 지역의 농민들이 농업 컨시어지로서 농업을 지도하고 그들의 배추가 자랄 때까지 돌봐준다. 호텔은 고객들의 밭에서 자라는 배추의 상태를 SNS로 알려준다. 그리고 시기에 맞춰 고객들은 찾아가서 직접 수확을 한다. 그리고 지역의 김장담그기의 명인 할머니와 함께 워크숍 형식으로 김장을 담근다. 미처 담그지 못한 배추는 지역 할머니들의 손맛이 보태져 집으로 보내진다.
이처럼 호텔이 「농업 × 숙박」의 콘셉트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하면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니즈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객들도 도시 생활을 포기할 필요 없이, 게다가 시골 생활의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고도 농사를 즐길 수 있다. 한편으로 시골의 주민들은 농사를 관리해주고, 고객을 지도하고 그리고 농작물 요리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호텔과 도시의 고객들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서비스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 아래서 탄생할 ‘농사짓는 호텔’, 참 매력적이지 않을까?
전복선 Tokyo Correspondent
럭셔리 매거진 ‘HAUTE 오뜨’에서 3년간 라이프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취재경험을 쌓은 뒤, KBS 작가로서 TV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쇄매체에 이어 방송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그 후 부산의 Hotel Nongshim에서 마케팅 파트장이 되기까지 약 10년 동안 홍보와 마케팅 분야의 커리어를 쌓았으며, 부산대학교 경영대학의 경영컨설팅 박사과정을 취득했다. 현재 도쿄에 거주 중이며, 다양한 매체의 칼럼리스트이자 호텔앤레스토랑의 일본 특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