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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9 (금)

호텔&리조트

[Hotel Show in Busan] 부산 호텔산업을 조망하다 ② 과거

- 부산 호텔산업의 산증인, 이종배 대표에게 듣는 부산 호텔 이야기


부산 호텔쇼가 올해 4월 4일부터 6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된다. 이에 호텔앤레스토랑 매거진에서는 부산 호텔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지난 호 부산 호텔산업의 현재에 대해 살펴본데 이어 이번 호에서는 부산 호텔산업의 과거로 돌아가봤다. 과거, 부산 호텔산업은 어떻게 시작돼 지금에 이르렀을까?
부산 호텔산업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해줄 적임자로 많은 이들이 추천한 이종배 대표를 만나 부산 호텔산업의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내용 일부 출처_ 디지털부산문화대전, 부산광역시청


부산의 첫 호텔
부산의 첫 호텔을 이야기하자면 교통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일본이 식민지화를 위해 대륙 침탈을 위해서 철길을 세웠는데 1904년 개통한 경부선은 한반도와 중국 침략을 해 나가기 위해 일본에게 가장 중요한 노선이었다. 이후 1910년 10월 부산역사가 완공되고 이곳에는 1층은 역건물, 2층은 호텔로 사용됐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호텔이다. 1957년 철도호텔이 관광호텔로 개칭되면서 민영화됐고 부산 철도호텔도 해운대관광호텔로 민영호텔이 된 후 1980년대 파라다이스비치 호텔, 1990년대 지금의 파라다이스 호텔로 변화를 겪었다.


이종배 대표는 부산에서 잔뼈가 굵은 호텔리어다. 1967년부터 75년까지 부산 해운대 극동호텔에 실습한 것이 인연이 돼 입사했고 군 제대 후 재입사해 근무했으며 이후 3년 여 서울 쉐라톤 워커힐 식음료부 지배인으로 외도 후 1980년부터 2005년까지 웨스틴 조선비치 호텔 판촉부장, 판촉이사, 총지배인까지 지냈다.(89년부터 2001년까지는 경주 코오롱호텔 총지배인 1년, 부산 농심포텔/허심청 대표이사로 1년씩 재직하기도 했다.) 이후 제주, 여수, 서울, 남해, 이천 등지의 호텔에 총지배인과 대표이사로 지내며 50여 년의 호텔리어 생활을 해온 그는 후배 호텔리어들, 또 호텔리어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지난 2017년 자서전, ‘호텔리어 50년, 글로벌 총지배인’을 출간하기도 했다.


부산호텔 산업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해줄 적임자로 많은 이들이 그를 추천했고, 그 명성대로 이 대표는 뼈 속까지 호텔리어였음을 짐작케 할 수 있도록 당시 그가 몸담았던 호텔을 둘러싼 세세한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호텔리어로서의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추후 따로 지면을 마련하기로 하고 이번에는 웨스틴 조선비치 호텔에 몸 담았을 당시 부산의 호텔산업 이야기 위주로 들어봤다.



1970년대 부산 그리고 호텔
1972년 2월에는 부산시 제3차 5개년 종합개발계획이 확정됐고, 1976년 4월 9일에 동래구 해운대출장소가 부산직할시 직할 해운대출장소로 승격됐다. 10월 4일에는 부산국제공항이 김해로 이전해 김해국제공항으로 개칭됐다. 1978년 부산의 면적은 432.32㎢로 늘어났고, 9월 30일에 부산항 제5부두인 자성대 컨테이너 부두가 개장돼 부산이 동북아 항만물류도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1979년 10월 1일 부산직할시 인구가 300만 명을 돌파, 우리나라 제2도시로서 국제적인 위상을 드높이게 됐다.


70년대 부산의 호텔산업은 1875년 사상공단이 생기면서 신발과 의류 수출산업의 영향으로 외국의 바이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단계였고, 당연히 당시 호텔업계도 이들의 유치에 조금씩 활기가 불어날 때였다. 하지만 당시 호텔은 오는 손님을 받기에 급급했을 뿐 진정한 국제적인 수준의 호텔경영이나 마케팅은 태동도 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말부터 신발제조업의 급진적인 성장과 고리원전 건설 그리고 거제도의 대형 조선소의 건설로 많은 외국인 바이어 및 기술자들이 방문 또는 장기체류를 하게 되면서 1978년 부산 최초의 국제적인 호텔 브랜드인 웨스틴 조선비치 호텔이 개관하게 됐다.


그 이듬해인 1979년 시내 중심지에 코모도호텔이 개관하면서 해운회사 및 무역회사 위주의 외국인이나 외항선 선원들이 이 호텔을 주로 이용했고, 신발과 섬유회사 위주의 서양 기업이나 고리 원자력발전소 건립에 참가한 외국기업(벡텔, 웨스팅하우스, GE 등)이 웨스틴 조선비치 호텔을 주로 이용함에 따라 호텔산업이 시내권과 해운대권으로 양분화가 시작됐다.


1980년대 정치 그리고 호텔
1980년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불안하고 어수선했던 사회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신군부에 대항해 5.18 민주화 운동 등 반 군부 운동이 전국적으로 장기간 계속되면서 호텔 영업을 하기에는 정말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다. 다행히도 당시 해운대 인근에서 고리 원자력 1호기와 2호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건설을 맡은 미국의 벡텔(Bechtel)사, 시설과 운영관리를 맡은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사, 그리고 발전의 핵심인 터빈과 원료 등을 맡았던 GEC(General Electric Corporation)사의 장기 투숙객들이 지속적으로 객실을 사용했고 또한 이 회사들의 크고 작은 모임이나 행사가 수시로 있어 웨스턴 조선비치 호텔은 고리원자력 전용호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위 3사의 총무담당(Administration Manager) 간부들과 수시로 만나고 그 가족들과도 절친하게 유대 관계를 유지하며 모든 행사를 유치했다.


또 다른 시장은 당시 대기업들이 앞을 다퉈 성장산업으로 추진했던 조선관련 사업이었다. 이때 대기업의 조선사업은 어려웠던 호텔영업에 그나마 숨통을 트게 해줬는데 그 중 가장 많은 도움을 줬던 회사가 바로 대우그룹에서 경영하는 거제도의 대우조선소와 삼성그룹에서 경영하는 삼성조선소였다. 조선소에서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은 주로 선주회사, 선급회사, 그리고 조선소 임원들과 외국인 기술자 등이었다. 그 중 가장 큰 행사는 선주회사가 주관하는 선박 명명식(Christening Ceremony)이었고,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고객들은 각국에서 파견돼 근무하는 선급회사(전 공정을 관리 감독) 임직원과 가족들이었다.
우리나라에 장기간 주재하는 외국의 선급회사들은 노르웨이의 DNV(Det Norske Veritas), 영국의 로이드(Loyd Resister of Shipping), 미국의 ABS(American Bureau of Shipping), 독일의 Germanischer Loyd, 프랑스의 Bureau Veritas, 일본의 해사협회(NK)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노르웨이 직원과 가족 250여 명이 거제도에 머물고 있어 주말이나 국경일 등에는 1박 2일의 큰 행사를 호텔에서 치르곤 했는데 수시로 거제도를 드나들며 호텔 영업을 했다.



1982년부터 1988년까지는 부산이 신발 제조업의 메카로 불릴 정도로 부산에서는 신발 수출이 성황을 이뤘다. 당시 외국의 단골 고객들 중에는 나이키(Nike), 캥거루(Kangaroo), 컨버스(Converse), 아식스(Asics), 포니(Pony), 푸마(Puma), 아디다스(Adidas) 등 세계 유수의 신발 브랜드 임직원들이 많았다.
1987년 파라다이스호텔, 1988년 하야트리젠시(현재 노보텔), 1989년 해운대 그랜드호텔이 개관돼 1988년 올림픽 특수를 누리고 1990년까지 호황을 누렸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호텔
부산을 대표하는 번화가였던 원도심. 1970년대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국제호텔은 부산의 랜드마크였다. 국제호텔 앞에서 보자는 말이 곧 약속을 뜻하기도 했고 지역 정치인들은 주요 기자 회견이나 출마선언의 단골장소로 국제호텔을 이용했다. 영화 ‘친구’는 국제호텔 1층 나이트클럽을 배경으로 나왔고, 이후 호텔 앞에는 친구 기념비까지 세워졌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조폭들의 싸움터로 국제호텔 로비, 나이트클럽이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호텔 사우나는 1980년 정치인, 지역유지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산을 방문할 경우 국제호텔 사우나에서 꼭 이발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부산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국제호텔이 2017년 8월 휴업을 신청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호텔 자리에는 지하 4층 지상 20층 규모의 주상 복합상가가 신축될 예정이다.


한편 1976년 개관하며 부산의 대표적 호텔로 손꼽혔던 대아호텔은 1984년 대형화재가 발생해 38명이 죽고 68명이 부상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고 2000년대 경매에 붙여지기도 했다.


그때 그 고객
80년대 초에는 부산의 호텔에서 뷔페라는 식당서비스 형태가 처음으로 소개돼 당시 웨스틴 조선비치 호텔 주말뷔페에 대한 인기가 대단했고 주말만 되면 각 가정에서 어린이들의 성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한 뷔페서비스와 함께 처음 선보인 부산 출신의 명품 디자이너 배용 패션쇼(Fashion Show)는 단연 부산의 화제가 됐다.


당시 주 고객이었던 거제도 조선소에 장기로 체류중인 노르웨이 선박회사 기술자 및 선급회사 사원들과 가족들이 200여 명 정도 됐는데 매년 5월 28일 노르웨이 독립기념일에는 전 가족이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해운대로 와서 1박을 하며 밤새 파티를 하며 즐기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으며, 이때부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해 매년 10월에 옥토버페스티벌, 12월 말일에 New Year’s Party 등 이벤트 행사를 시작하게 됐다.


당시 웨스틴 조선비치 호텔에는 이전의 극동호텔처럼 대통령 전용객실이 있었는데 제일 높은 10층 코너에 위치해 해운대의 해안 전경과 달맞이 고개 그리고 남해바다가 일망무애(一望無涯)로 펼쳐 보이는 곳이었다. 그 방이 프레지덴셜 스위트(Presidential Suite)인 1031호였다. 이 방에 모셨던 귀빈들은 모두 정계의 거물급 인사나 재계의 총수들 그리고 부산을 방문하는 외국인 VIP였다. 외국인으로는 Mr. John Bradley 로스앤젤리스 시장이 가장 기억에 남고 내국인 귀빈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전두환 대통령과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첫 번째 방문은 1981년 3월경으로 생각되는데 그 전 해 8월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회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81년 2월 민주정의당을 창당하고 총재로 추대돼 신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초도순시차 전국을 순회하던 중 부산을 제일 먼저 방문한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영업부장이었던 나는 호텔 도착 직후 외국인 총지배인 페트로비치(Mr. Petrovici)가 현관에서 영접한 후 바로 전두환 대통령을 1031호 방까지 안내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랜드볼룸에서 개최된 부산지역 주요인사 초청 만찬 행사에서 인사말의 첫 마디로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있는 이렇게 좋은 호텔에 처음 와 본 촌놈입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게 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은 1982년 말부터 3년간 설 연휴와 추석 연휴에 1주일 정도 1031호에 묵었는데 그때 동행하셨던 가족 분들은 이병철 회장의 부인, 큰딸 이인희 여사 그리고 작은딸 이명희 여사였고 수행원이 2명 정도였다. 특히 메뉴 구성과 주문은 이명희 여사가 맡았던 것으로 기억되며, 외부 출입은 잘 하지 않았고, 주로 가족들끼리 방안에서 편안히 쉬며 명절 휴가를 보내곤 했다.


1990년대 올림픽 그리고 호텔
90년대 부산의 주 산업으로는 해운업, 조선업, 자동차 부품업, 의류 및 신발업이 강세였기에 이와 관련된 기업들의 외국인 바이어 및 기술자 유치에 전력했고, 88올림픽 이후 급격히 증가한 일본인 단체 관광객 유치에 부산시 관광협회를 중심으로 전 호텔들이 함께 일본 현지(특히 규슈지역)를 방문해 공동판촉을 하는 사례가 많았다. 또한 부산과 후쿠오카를 2시간 반에 달리는 쾌속선의 등장으로 개별고객들이 많이 증가하는 추세였으며, 특히 1997년 650실의 대형호텔인 부산 롯데호텔이 개관하면서 부산의 숙박 중심이 해운대권과 서면권으로 재편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산의 특급호텔들
1978년 개관한 웨스틴 조선 호텔은 부산 최초이며 해운대 최초의 특급호텔로 APEC 정상회담시 미국 부시 대통령 내외가 묵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듬해인 1979년 코모도 호텔이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으로 유명한 부산 중구에 오픈했고 이후 80년대 다수의 특급호텔들이 개관했다. 1987년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이, 1988년 하얏트 리젠시 호텔이 오픈, 두 호텔은 비슷한 개관시기와 규모 등으로 매번 비교대상이 됐다. 하얏트 리젠시 호텔의 경우 1999년 부산 메리어트 호텔에서 현재 노보텔 앰배서더 부산으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노보텔 앰배서더 부산은 지난해 말 영업을 중단하고 신세계 그룹에서 인수, 새롭게 재탄생할 예정이다. 1996년 해운대그랜드 호텔이 오픈한데 이어 1997년 부산 서면에 개장한 롯데호텔 부산은 수도권을 제외한 특급호텔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외 1962년 한강 이남 최초의 현대적 숙박시설을 갖춘 동래관광호텔이 2002년 휴양형 특급호텔인 호텔 농심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 부산은 해운대 뿐 아니라 서면과 원도심 등에 비즈니스 호텔과 같은 중소형 호텔은 물론, 분양형호텔 등 다양한 호텔들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경쟁일로를 걷고 있다.


2000년대 국제행사 그리고 호텔
2001년 부산 BEXCO(부산 전시컨벤션센터)가 개장되면서 비로소 부산이 세계적인 컨벤션 도시로 부상하게 됐는데 그 시작이 2001년 12월 벡스코에서 열렸던 2002 월드컵 조 추첨 행사였다. 이때 부산시내 특급호텔(웨스틴 조선, 파라다이스, 하야트리젠시, 그랜드, 롯데호텔 등)이 몽땅 사용됐고 2002 아시안게임과 월드컵 행사를 멋지게 치르면서 부산에 대한 인지도가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이들 행사를 걔기로 2005 APEC 행사를 유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3년 부산시 부시장을 주축으로 APEC 유치위원회가 구성, 부산시의 기관장과 각 호텔의 대표들이 매달 정기모임을 통해 준비와 점검을 확인했고 결국 치열했던 경쟁도시인 서울과 제주를 누르고 APEC 행사를 부산에 유치해 아시아 태평양지역 21개국 정상들이 부산에 모이게 됐다. 당시 APEC 유치를 위한 강점으로 첫째, 한국 최대의 항만도시로 월드컵 조 추첨행사 성공적 개최, 둘째, 벡스코를 중심으로 20분 내 거리에 특급호텔 밀집, 셋째 도시인근에 공업단지(울산, 창원 등)가 위치해 동남아 국가 정상들 현지시찰 용이한 점 등을 부각시킨 것으로 기억난다.


2001 월드컵 조 추첨행사, 2002 아시안게임, 월드컵 조별경기 등 대형행사를 치르면서 부산 호텔의 전체적인 시설개선과 업그레이드가 대폭 진행됐고, 특히 종사원들의 적극적인 자세, 외국인에게 자신감 있는 서비스 그리고 글로벌화된 안목으로 변화된 것이 큰 발전이었다. 부산 시민들의 의식 역시 세계화로 탈바꿈한 것이 호텔문화 인식에도 많은 도움이 됐고 무엇보다 호텔이 세계화의 중심에 있다는 인식이 급부상 했다.


과거와 현재의 부산 호텔
1970년 대부터 2000년까지는 개발도상기, 2001년부터 2005년까지는 세계화로 대변환기, 2006년부터 현재까지는 글로벌 경쟁기로 나눌 수 있다. 과거의 호텔업계가 다소 사회적인 기업이라기보다는 소유주 개인의 수익(나이트클럽, 게임룸, 카지노 등)과 과시를 위한 도구로 비쳐졌다면, 지금의 호텔업계는 명실공히 고용 증대, 레저문화 선도, 국제회의 중심점으로 위상이 정립되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단지 호텔 종사원들의 자세가 과거에는 자기 몸을 사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전념하는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열정이 충만했던데 비해 근래의 종사원들이 힘든 일을 기피하고 쉽게 호텔리어로 성공하려는 경향이 있어 좀더 전문인이 되기 위한 자기희생과 인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의 호텔
내가 호텔리어로 처음 발을 들여놓은 곳이 부산이며, 50여 년 전에 비해 지금의 호텔문화는 극과 극으로 변화되고 발전됐다. 1960년대 불과 103실의 극동호텔이 최대의 호텔이었는데 지금은 650실짜리 롯데호텔도 있으니 실로 질적, 양적인 성장과 발전에 감개무량하다.


호텔에 투자하는 자본가, 경영자들이 너무 조급하게 투자에 대한 이익을 거두려 하지 말고, 호텔사업 본질인 초기 투자의 과다함, 연중무휴 1일 24시간 영업으로 고정비의 발생, 이동이 불가하고 재고가 없는 상품이라는 특수성을 재인식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영하기 바란다. 종사원들은 사회의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Socialization Center)에서 고객을 감동하게 해 결국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나의 본분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근무해 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부산의 호텔사업이 영세하고 소비적인 사업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여가창출 및 관광 산업 발전의 핵심으로 자리잡았고, 개인적인 치부 사업에서 사회적인 기업으로 변환된 만큼 사업주나 종사자 모두 호텔전문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요즈음 시대에 꼭 필요한 ‘쉼’과 ‘만남’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대승적인 목표아래 발전해 가기를 바란다.


호텔리어 50년, 글로벌 총지배인

2016년 9월부터 재직한 이천 에덴파라다이스호텔 대표이사직을 작년 말 퇴임한 이종배 대표는 2015년 함께 호텔에서 일했던 후배들과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 “업계 전설로서 길을 알려주는 차원에서 간직하고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한 번 써보시죠.”라는 권유를 받고 치기가 발동해 태어나서 성장하며 살아온 기억을 샅샅이 더듬어 2017년, 이 책을 발간하게 됐다.


책에는 극동호텔에 ‘호텔뽀이’로 출발한 이 대표가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가 선진국에서 진정한 호텔리어의 교육과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오며 성장한 이야기, 특급호텔에 근무하면서 이병철 회장, 전두환 전 대통령 등 VIP를 의전했던 이야기, 각종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호텔리어로서의 고충, 진급과 이직을 통해 겪었던 갈등과 해결 등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고 있다.  ‘호텔뽀이’로 불리며 밑바닥부터 시작해 수많은 노력으로 총지배인, 호텔 대표까지 50년 호텔리어로서 대장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호텔에 근무하고 있는 후배들이나 호텔리어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다소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을 통한 이종배 대표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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