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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 (월)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제노바의 골목에 숨겨진 진주 Tazze Pazze

Scene 1... 덜컹거리는 소음 사이로 눈앞의 첩첩산중에 위치한 아기자기한 집들이 펼쳐집니다. 저는 지금 제노바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연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지 신이 난 초등학교 1, 2학년 즈음 돼 보이는 아이와 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과일이며 빵이며 연신 아이의 입속으로 넣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집니다. 밀라노 첸트랄에서 한 시간 이상을 열차로 달리다 보면 강원도 산간지역을 통과하는 듯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산 아래 풍경을 보니 제법 높은 곳을 달리고 있나 봅니다. 불과 어젯밤까지만 해도 저는 스위스 루체른에 있었습니다. 2016년의 커피 시장의 동향과 머신업계의 미래를 전망하는 모임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같은 산간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어제와 오늘의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바다가 펼쳐져 있는 이태리 제노바와 보석처럼 빛나는 호수를 품고 있는 스위스 루체른은 분명 다른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이탈리아의 꼬모 호수를 가로질러 스위스의 국경을 차로 넘나들면서 알프스가 제공하는 신선한 공기를 온몸으로 마셨습니다. 잠시지만 자연의 넉넉한 마음은 이방인인 제게도 관대하게 느껴집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깨끗한 자연이 가져다주는 위로는 비슷해 보입니다. 할머니의 시골된장처럼 따뜻한 무언가가 말이죠.


Scene 2... 제노바의 숨은 진주와 같은 카페를 찾아 나서는 길입니다. 고속도로의 아스팔트 풍경과는 사뭇 다른 열차길 풍경을 응시하고 있자니 엊그제 머물렀던 호텔방이 잠시 생각납니다. 그 곳에는 캡슐커피와 작은 머신이 준비돼 있었습니다. 지난 수 십년 동안 전 세계 커피 시장은 물론 한국의 커피 시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특히 최소 35만 명 이상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커피시장은 어느 나라보다 뜨겁습니다. 하지만 식음료의 꽃이라 불리우는 호텔에서는 유독 커피의 중요성이 간과되는 듯 보입니다. 그렇기에,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날로 팽창하고 와인처럼 각종 커피의 생산지별 맛의 차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경험이 많아지며 호텔에서의 커피 맛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방 한 곳에서 제가 이용해 주기만을 기다리던 캡슐커피를 미처 마시지는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스페셜티란 단어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1000원 대, 2000원 대의 커피숍이 증가하고 질 낮은 생두도 시장에 경쟁하듯 공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캡슐커피보다 맛 없는 커피를 마셔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스위스의 호텔서비스는 전 세계에서도 정평이 나있습니다. 웅대한 봉오리들과 보석처럼 빛나는 호수들, 해발 2000m가 넘는, 높은 곳에 위치한 고급 호텔들, 가파른 절벽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이 모든 요소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어쩌면 스위스의 호텔산업은 필연적으로 성장을 맞이해야만 했는지도 모릅니다. 자동 머신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데 선구자 역할을 했던 스위스의 커피시장도 최근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변화하는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키려면 바리스타의 손길의 더욱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호텔을 비롯한 레스토랑에서 바리스타가 제공하는 커피로 확대되고 있다고 스위스의 커피 전문가에게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Scene 3... 어느덧 열차가 제노바에 도착했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곳은 큰 항구를 가지고 있어 예로부터 베네치아와 함께 교역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밀라노 두오모 성당의 웅장함이나, 피렌체 거리의 낭만적인 풍경은 없습니다. 다소 소박하지만 강한 자존심이 느껴지는 곳 입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남부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 세계 각 지에서 몰려온 이민자 그리고 불법 체류자들로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산업적인 호황을 맞았던 당시의 경제 상황과는 매우 다르고 또한 커피숍의 진화가 매우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입니다. 강한 자존심이 때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매우 인색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Scene 4... 이제 제노바의 숨은 진주, ‘Tazze Pazze(‘미친 커피잔’이라는 뜻)’ 카페를 찾았나섭니다. 열차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한 후 다시 버스로 몇 정거장을 가야 이곳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가는 내내 ‘이런 동네에 좋은 커피숍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시내의 중심가도 아니고 제노바의 고급 아파트가 있는 신시가지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발견한 이곳은 밖에서 봐도 작은 간판이 그저 전부인 Bar였습니다. 하지만 작은 Bar에 줄지어선 손님들이 단순히 소박한 매장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막내아들이자 SCAE(Specialty Coffee Association of Europe)의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안드레아 크레모네(Andrea Cremone)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5년 전 어머니, 형과 함께 커피숍을 시작했는데 형 마테오(Matteo)는 이미 10년 이상 제노바의 유명 Bar에서 근무를 했던 베테랑 바리스타였다고 합니다. 우연한 계기로 스페셜티 커피와 관련된 모임을 통해 보다 나은 품질의 커피를 향한 열정과 동기부여를 갖게 됐고, 이들 형제는 어머니와 함께 숍을 오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작은 숍 안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오는 고객들로 가득합니다. 대부분 손님이 주문하기도 전에 고객의 이름을 부르며 메뉴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마끼야또? 리스트렛또?”라며 고객의 취향을 기억하고 먼저 물어보기도 합니다. 패스트푸드 문화의 정착과 함께 우리는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진동벨 문화를 보다 세련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곳의 아날로그한 방식이 때로는 디지털한 우리의 삶을 비웃기라도 하듯 깊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감성적이기까지 합니다. 3가지의 다른 에스프레소와 디카페인을 마실 수 있는 숍, 겉 멋 들지 않은 부드럽고 풍만한 우유거품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커피숍, 커피싱글 오리진(산지별 커피)의 에스프레소와 필터가 있는 ‘Tazze Pazze’는 제노바에서 이방인의 카페 같은 모습입니다.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은 결국 숍의 역할입니다. 무엇이 훌륭한 원두인지, 왜 좋은 머신을 사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최종적으로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는 소비자와 소통하고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안드레아는 1유로면 마실 수 있는 에스프레소를 좀 더 비싸지만 가치 있게 판매하려는 시도가 처음에는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고객의 1%만이 마셨지만 1년이 지나고 20% 이상의 고객이 스페셜티 커피만을 음용했으며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던 고객들은 다른 숍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 스트레스까지 받는다고 합니다. “바리스타의 매력은 모든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결, 훌륭한 에스프레소 고객과의 소통, 열정 같은 것, 제노바에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싶었습니다.” 안드레아 형제는 2주 전 온두라스의 커피 농장을 방문하고 돌아 왔습니다. 매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카데미를 열고 전문가와 애호가를 위한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전문 교육을 받는 이들도 있었지만 커피애호가들이 맛보기 과정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Scene 5... 이탈리아에서도 보다 좋은 입지나 인테리어가 영업에 유리하게 작용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우리는 저렴한 원두를 값싸게 판매하고 있습니다.’라는 곳은 본적이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들의 커피는 훌륭하고, 전문가가 그것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따라서 믿고 마실만한 가치가 있는 커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의 사실여부는 각자의 양심에 달려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직하게 열정적으로 자신의 길을 달려가는 이들, 그리고 그들의 열정에 호응하며 함께 즐거워하는 사람들에게서 잔잔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제품 그 이상의 문화적 가치가 공유되는 공간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제노바의 거센 바람은 옷깃을 닫게 만들지만, 열정이 담긴 커피 한 잔과 미소는 마음을 열어줍니다.

<2016년 1월 게재>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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