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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금)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L’art caffee in Bergamo



             


Prologue# “앗 뜨거 xxx”, 운전대를 잡은 손이 왼손 오른손을 번갈아 가고 반쯤 욕이 섞인 말로 요란을 떱니다. 시동을 걸자마자 창문을 내리고 에어콘을 최대치로 틀어보지만 중화요리의 팬처럼 뜨겁게 달궈진 차내의 공기에 저항하기란 역부족입니다. 쑥 향기만 없을 뿐 바퀴달린 습식 사우나와 함께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기간 즈음 이었나요? ‘하동관’의 뜨거웠던 곰탕 맛에 영혼의 포로가 돼버린 그 날, 아무 생각 없이 놋그릇에 손을 댔다가 단테의 ‘지옥불’을 경험한 찰나의 제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오버랩 됩니다. 모닥불에서 꺼낸 고구마를 들고 있는 마냥 자동차의 핸들을 부여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면서도 시선은 앞을 향해 고정돼 있고, 머릿속은 다른 시공간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Scene 1#  수정체는 도로 위의 풍경을 지속적으로 좌뇌로 보내며 현실을 인식하고 있지만 우뇌는 어제 밤의 감동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카에 이사무 감독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였습니다. 지난 주토스카나의 마사(Massa)란 지역에 출장을 다녀온 탓인지 문득 이 영화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2001년 개봉한 이 영화는 16년이 지난 오늘 봐도 마치 새로운 영화처럼 보입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거리의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남주인공 준세이와 여주인공 아오이의 모습을 공중에서 헬기로 촬영해 드라마틱하게 그려낸 두오모 성당 꼭대기 ‘큐폴라’도 그렇고, 밀라노의 도심을 쓸쓸하게 걷는 여주인공 뒤를 관통하는 트램열차도 그대로입니다. 다만 여주인공이 전화를 걸기위해 찾은 공중전화 부스에 설치된 초록색 전화기가 촌스러움을 더하며 시절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영화에는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이 등장을 하는데요, 영화의 끝 무렵 준세이가 연인 아오이가 10년 전의 약속을 기억해 피렌체에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놓쳐버린 열차를 앞지르며 인파 속에서 하는 독백이 인상적입니다.

‘기적은 그리 자주 찾아오는 게 아냐. 우리 둘에게 일어난 기적은 단지 네가 혼자서 기다려줬다는 그것 하나뿐… 마지막까지 냉정했던 너에게, 난 뭐라 말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마음속의 허전함을 잊을 수 있을까. 난 과거를 되새기지도 말고 미래에 기대하지도 말고, 지금을 살아가야만해. 아오이, 너의 고독한 눈동자 속에서 다시 한 번 나를 찾을 수 있다면… 그때 나는 너를…’ 남들보다 빨리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경쟁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한결같아 좋은 무엇이 존재하나 봅니다. 이탈리아의 장점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조상이 남긴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복원한다는 사실인데요. 고속도로 위에서도 훤히 보이는 ‘알타 베르가모(Alta Bergamo)’의 정경 역시 그렇습니다.



Scene 2#  베르가모는 이탈리아의 상업 중심 밀라노에서 56km정도 떨어져 있지만 밀라노와는 전혀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여행자들 사이에선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훌륭한 커피숍, 레스토랑과 아기자기한 골목 등 볼거리가 많습니다.
롬바르디아의 평야의 북쪽 끝에 위치한 이곳은 알프스 산지로부터 공급되는 수력에 의해 금속, 알루미늄, 자동차, 직기, 냉장고, 식품 등의 공업에 발달해 있습니다. 금세라도 중세의 기사가 나올법한 느낌의 건축양식과 자연지형이 그대로남겨진 베르가모 알타(Bergamo Alta)와 보다 모던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쳐 보이는 베르가모 바사(Bergamo Bassa)가 대조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을 선사합니다.


Scene 3#  저는 오늘 베르가모의 커피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카페 l’art caffe를 방문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커피 PRO로 가운데 한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고든 호웰(Gordon Howell)이 함께 이 특별한 공간을 찾았습니다. 맨체스터에자신만의 개성과 높은 퀄리티의 커피를 제공하고 있는 오너 바리스타이자, 영국 브루어스컵 챔피언, 동시에 세계 WBC 굿 스핏 파이널 리스트인 그에게도 상당한 영감을 부여한 카페입니다.
산지를 돌아다니며 공수해 온 스페셜 한 싱글 오리진 커피로 만든 콜드브루와 토닉워터, 과즙을 잘 블랜딩해 만든 음료 등 특히나 진(GIN)을 응용해 만든 썸머 스페셜 커피 칵테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합니다. 카페 입구에 들어서면 동굴형태로 생긴 아치가 그대로 남아있어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BAR를 전면에 배치해 조화로운 공간을 제공합니다.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5kg의 독일 프로밧 로스팅 머신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의 주인은 툴료와 에르미니아 부부입니다. 20년 이상 최고의 품질을 만들고자 커피 농장을 방문 하고,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위해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이들이 커피를 볶아내며 그것을 테이스팅 하는 일련의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적으로 커피 테이스팅 세션을 열어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Scene 4#  Team Gastronomico 미식가 팀’은 L’art caffe의 구성원을 의미합니다. 이곳에는 커피의 장인이 만들어내는 커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메이라 고메즈(Esmeyra Gomes)셰프가 함께하며 건강한 식재료라는 테마로 점심 식사와 디저트를 만들어냅니다. 메뉴는 최대한 신선한 재료를 사용 할 만큼 구입하고 모든 원재료는 Bio여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두고 만듭니다. 건강하지만 다채로운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려는 이들의 열정은 커피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팀원들이 함께 모여 로스팅을 하고, 샘플 테이스팅을 한다고 합니다. 이들의 목적은 쇼잉(Showing)을 연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곳의 리더 에르미니아(Erminia)는 말합니다. “우리는 팀 빌딩(Building)을 통해서 최고의 숍을 만들어간다. 함께 가면 멀리갈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 최고의 제품은 훌륭한 사람들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 장소는 커피숍인 동시에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내는 랩(Lab)이기도 합니다.


Scene 5# 이곳에서는 기본적으로 판매되는 에스프레소와 조금 비싸지만 탁월한 개성을 지닌 스페셜티 커피가 함께 판매됩니다. 처음에는 1%의 고객만이 스페셜티 커피를 즐겼다고 합니다. 새롭게 오픈한지 2년이 조금 지난 현재 3~40%의 고객이 프리미엄 커피를 애음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인에게는 낯선 핸드드립 커피도 많지는 않지만, 하루에 15잔 정도는 꾸준하게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을 찾는 고객에는 특정한 층이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좋아합니다. 야외의 작은 정원에 위치한 테라스는 화사합니다. 이곳에서 담소를 나누는 20대의 여성들, 유모차와 함께 방문한 아이 엄마들, 중년의 여성들, 바에 서서 커피를 즐기는 노신사들, 컴퓨터를 앞에 두고 비즈니스로 한창인 사람들까지…에르미니아가 말합니다. “우리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그것을 발전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겐 사명감으로 여겨지는 프로젝트가 있다.” 농장에서부터 소비자에게 이르기까지 정직함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일. 끊임없이 좋은 품질을 발견하며, 그것을 전문가들과 공유하고 직원들과 나누며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일.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정직함이 빛을 발휘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바리스타들이 기계적으로 커피를 만드는 일은 불행한 일이다고 이야기합니다.


Scene 6# 며칠 전 이탈리아의 외식산업에 관한 기사 내용입니다. 독특한 경험, 유쾌함 그리고 공유는 내일의 음식 산업을 위한 키워드입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식음료 산업은 점차적으로 소비가 늘어나면서 프리미엄 분야로 옮겨가, 고기, 소금, 버터의 소비는 줄고 야채의 소비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외식 맥락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의 중심은 ‘사람’입니다. 식당가와 직접적이고 친밀한 관계는 성공을 위한 이탈리아 스타일의 가장 중요한 ‘비밀 레시피’입니다. 이는 유쾌함을 중심에 두는 ‘독특한 경험’을 창출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늑한 환경과 친절한 직원은 81.6%로 가장 중요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Epilogue# 이번 달에만 4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고품질 전문가란 미명하에 고객에게 관심조차없는 카페들을 방문할 때마다 #빠른, #멋진, #진동벨과 같은 문명의 편리성 뒤로 사라져버린 단어 #Barista의 의미를 떠올려봅니다. 품질을 논하기에 앞서 한 잔의 커피를 통해 전달되는 이들만의 ‘소통의 레시피’는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l’art caffe의 부부의 철학은 마치 ‘냉정과 열정사이’의 주인공 준세이의 ‘미술복원’처럼 과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천천히 오래 내려 독특한 풍미를 지닌 콜드브루에 토닉을 섞고 오렌지 필로 청량감을 더한 커피 한 잔으로 무더위를 날려보면 어떨까요?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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