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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7 (수)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무더운 여름, 드라큘라가 사는 곳, 루마니아의 커피를 맛보다


Prologue#
뜨거운 태양이 눈부시게 따갑습니다. 인기척 없이 다가온 여름은 출장용 캐리어의 무게를 줄여줬지만 반대로 흐르는 땀방울은 늘어났습니다. 인간은 공포심을 느끼면 저체온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는 땀이 인간의 몸에 설치된 훌륭한 냉각장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같은 항온동물은 체온이 늘 일정하게 유지돼야 하는데, 날씨가 추워지면 체온 중추가 근육을 흔들어 열을 생산합니다. 반대로 기온이 오르면 땀샘에서 수분을 배출해 기화열에 의한 체온 상승을 막아주는데, 이를 ‘온열성 발한’이 라고 합니다. 체온과 상관없이 인체의 반응을 보여주는 땀은 바로 긴장하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 나오는 ‘진땀’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른바 ‘정신성 발한’입니다. 공포를 느끼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 되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져 호흡이 가빠지고, 진땀이나 피부가 끈적거리게 되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런 땀이 피부를 미끄럽게 만들어 상대방으로부터 탈출하기 쉽게 하는 조물주의 배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Scene 1#
여름이면 안방을 점령한 ‘남량특집’ 공포물이 기억납니다. 선풍기와 시원한 수박으로도 달래지 못한 열기를 무서움이란 심리적 에어컨이 달래줬습니다. 하얀 소복에 피 칠갑을 한 여인들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전설의 고향이란 프로그램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내 다리 내놔.’는 너무 유명해져서 여러 번에 걸쳐 리메이크 됐을 정도입니다. 무서워서 이불 속에 숨어 고개만 내밀어 보다가 결정적인 장면에 귀신이 등장하면 비명소리를 지르며 이불 속으로 숨어버리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뙤약볕 아래로 지나가는 상념이 잃어버린 일기장처럼 생각지도 못한 기억들을 재생시킵니다.


  

 

Scene 2#
남량특집의 꽃 ‘드라큘라 백작’으로 유명한 루마니아를 지난주에 다녀왔습니다. 부쿠레슈티 공항에서 사온 드라큘라 캐릭터의 기념품을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이 소설은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가 흡혈귀인 드라큘라의 내용을 담은 작품으로 1897년에 집필됐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드라큘라는 어디까지나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상상의 인물인데도 실제로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과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지역에서 살았던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유명세가 이 지역을 드라큘라의 고향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드라큘라’는 1989년 공산주의 정권이 끝난 후인 1990년에서야 루마니아어로 번역됐습니다. 이 작품의 무대인 본고장 사람들은 정작 100년이 지나서야 번역본을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현지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관광에 이용할 수 있다고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조국의 영웅을 괴물 취급하는 것에 불쾌해 하는 이들도 있다 고 합니다.

 


Scene 3#
저는 지난 주 개최된 ‘에스프레소 테크놀로지 이벤트(Espresso Technology Event)’에 참여하기 위해 루마니아에 다녀왔습니다. 이 행사는 루마니아의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RAZVAN이라고 하는 젊고 유능한 디스트리뷰터(Distributor)가 기획했습니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개최된 행사보다 더욱 세련미가 넘치는 그런 이벤트였습니다.
부쿠레슈티는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발전된 모습이었습니다. 공산주의 몰락 이후 개방의 물결 하에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는 나라지만, 여전히 소득의 불균형은 이들의 과제입니다. 놀라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영어권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구사하는 영어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입니다. 도시의 번화가를 위주로만 본다면 이 나라의 경제적 상황이나 삶의 수준을 구 동구권 국가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뛰어난 편입니다. 고급차들과 최신 유행의 상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행사장의 내부는 높은 천장에 샹들리에가 있는 고풍스러운 장소였습니다. 전문 DJ가 한 곳에 위치해 행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루마니아 산 최고급 로제 와인과 핑거 푸드를 준비해 참가자들에게 파티 분위기를 제공했습니다. 200명에 가까운 루마니아의 커피 전문가들이 이 행사를 참가했습니다. 대한민국도 세계의 커피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행사를 기획하거나 콘텐츠를 채우는 부분에서는 다소 부족함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루마니아에서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전망은 매우 호전적입니다. 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거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려는 젊은 전문가들의 열기가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Scene 4#
저는 ‘2MINUTES’란 커피숍에 방문했습니다. 작지만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의 오너 바리스타는 캐나다와 영국 그리고 독일에서 수 년 간 거주하며 바리스타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커피 문화를 익히면서 수 년 전의 루마니아의 커피문화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오래전 한발짝 앞서간 루마니아 선조들의 가치를 고국에서 재현해 보다 매력적인 커피로 만들고 싶었던 열정이 오늘의 2MINUTES을 탄생시켰습니다. 2MINUTES은 에 스프레소 한 잔이 만들어지는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지는 휴식과 소통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인심 좋은 주인 덕분에 과일의 향기와 달콤한 신맛이 입안 전체에서 고르게 퍼지는 탄자니아 커피를 비롯해 네 잔의 커피를 맛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을 찾는 고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한 눈에 봐도 뛰어난 패션 감각의 소유자들이 이곳을 찾았는데 물어보니 유명 디자이너들이었습니다. 골목에 위치한 상점임에도 불구하고 트렌드 세터의 발목을 잡는 이유는 다름 아닌 2MINUTES의 커피가 지닌 진정성과 멋에 있습니다. 일의 특성상 많은 나라를 방문해서 흔히 성공했다고 말하는 매장들과 마주할 기회가 많은 제가 느끼기에, 어느 매장이라도 그곳의 위치가 어디이든 규모가 크던 작던 각자만의 핵심 브랜드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성공하고 있음을 목격했습니다. 물론 성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습니다. 수익성, 지속성, 자아실현, 브랜드가치 등 여러 관점이 존재하겠지만 무엇보다 커피사업에 몸담기 시작한 이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다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마지막 날 방문했던 바이오숍, Vanfruct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들어서는 입구에서 부터 바이오와 스페셜티 커피란 단어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곳의 주인 스테판이 만들어낸 음료는 과장을 조금 보태면 신비로웠습니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에서 오는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훌륭한 맛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이 정도의 풍미를 네추럴하게 만들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오랫동안 최고의 파티셰, 셰프들과 함께 컬래버레이션을 해온 저이지만 Vanfruct에서 맛본 와플 또한 커피만큼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때 한국에서도 와플 열풍이 뜨거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와플은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스테판이 건네준 와플은 원재료 탓을 하기에는 너무나 독창적이고 건강하며 미사여구가 필요 없는 그런 맛이었습니다. 견과류와 커피를 절묘하게 블랜딩해 만든 반죽과 레시피를 알 수 없는 토핑은 말 대신 엄지를 치켜 세워주고 싶습니다. 매일 먹고 싶은 그런 맛이라고 표현하면 이해가 될까요?


Epilogue#
유행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이 납니다. 스스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호들갑을 떨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린 그 무엇들…
천편일률적으로 잘나간다고 하는 것들이 있으면 그것을 카피하기에만 급급한 생활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수 십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제공하는 어느 명품처럼, 일상 속에 빛나는 것 들을 마주할 때면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커피 하나를 만들더라도 커피 한 방울 한 방울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이들을 보면 말로만 최고의 서비스와 가치를 이야기하는 지식인들이나 업계의 전문가들이 오버랩됩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셰이커에 얼음을 넣고 에스프레소 더블 샷을 얼음 위에 부어 시럽이나 리큐류를 살짝 넣고 만든 ‘샤케라또’가 피로를 풀어줍니다. 커피의 향미를 간직하면서도 오랜 여운이 남는 커피입니다. 카페에 가서 샤케라또 한 잔 주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메뉴에 없더라도 그것을 제공해주는 매장이 있다면 나름 전문적이고 센스있는 바리스타가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무더운 여름, 남량 특집 아이스커피로 위트있게 ‘카페 드라큘라’와 같은 메뉴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요?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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