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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월)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물의 도시, 베네치아






Prologue#
작가는 픽션이란 소재를 사용해 현실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세계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베니스의 상인’은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유명합니다. 영국의 강한 상업과 기독교와 유대교의 종교적 갈등을 빚던 시대의 민낯을 통렬하게 풍자한 작품. 많은 작가들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베니스의 상인’을 뛰어넘는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평을 남겼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된 베네치아는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도시였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애정처럼 말이죠.


Scene 1#
저는 지금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도시를 벗어난 피서지에서의 기고 활동 중이니 말이죠. 실로 오랜만에 ‘주홍빛 베네치아’를 찾았습니다. 수 년 전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베네치아 출신 친구의 초대를 받고 일주일 동안 머무른 기억이 있습니다. 관광객 모드가 아닌 현지인과 함께하는 느림의 미학은 이제와 돌이켜보면 매우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장터마냥 북적이는 여느 베네치아의 골목과는 다르게 갈매기 우는 소리, 가끔 짖어대는 견공의 소리가 고요한 마을 위에 생동감을 선사합니다.


                


Scene 2#
친구는 제게 바카로(Bacaro)를 소개해 줬습니다. 일종의 선술집과 같은 개념인데, 칵테일 바와 같은 이름 대신에 베네치아의 전통 그리고 문화가 담겨있는 장소를 ‘바카로’란 이름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런 명칭이 쓰였는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몇 가지 가설이 있는데요. 첫째는 와인과 포도 수확을 관장하는 로마 신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둘째는 전형적인 베네치아 방언의 의미에서 ‘파티’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됐다. 셋째는 산마르코 광장의 배럴 와인 판매로 유명한 상점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등 다양한 추측이 있습니다.
어원의 출발점이 어디이든 간에, 바카로라는 도착지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휴식처’, ‘비상구’와 같은 곳임에 분명합니다. 오후 5시 정도가 지나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유명한 바카로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한 손에는 국민 칵테일 ‘스프릿츠(Spritz)’나 샴페인, 와인 등을 마시면서, 또 다른 한 손에는 치케티(Cichetti)라 불리우는 조그만 애피타이저를 즐깁니다.
치케티에는 주로 고기, 살라미, 소시지와 치즈, 생선류가 빵과 함께 곁들여지는데요. 그중에도 미트볼, 대구로 만든 크림, 정어리 소스, 멸치 튀김, 문어 등이 유명합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맛 가운데 하나는, 대구와 각종 생선을 크로켓처럼 튀겨낸 다양한 종류의 치케티를 맛볼 수 있는 바카로였습니다. 베네치아 특유의 맛이 느껴지는 음식입니다.
길을 걸으며 추억의 편린을 꺼내어 보지만, 낭만의 불씨를 당겨 보기도 전에 관광객들 가운데 쓸려 다니는 제 모습만이 보일 뿐입니다.


Scene 3#
올해 8월의 베네치아는 인산인해와 20년 만에 찾아온 ‘폭염’이란 환상의 앙상블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베네치아도, 시끌벅적한 베네치아도 분명 같은 하늘 아래에 존재합니다.
길을 가다 잠시 Bar에 들러 에스프레소 한 잔을 청합니다. 서서 즐기는 찰나의 휴식. 현지인들의 베네치아 사투리가 귀에 들려옵니다. 제법 귀도 틀이고 말도 한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방언은 제게 마치 외계어처럼 인식됐습니다. 그제야 이탈리아에 무려 6000개의 방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됐습니다.
이탈리아의 지역주의가 거센 이유도 수세기에 걸친 중소 도시국가로의 분열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피렌체의 지역 방언이 표준어가 되면서, 이탈리아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주州마다 사투리가 있는 것은 물론, 작은 도시마다 심지어 인근 도시 안에서도 발음은 물론 억양이 판이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공중파의 한 프로그램에서 사투리를 소재로 한 ‘생활사투리’란 프로그램이 기억납니다. ‘나와 결혼해 주세요’란 전라도 버전은 ‘아따 거시기 허요’, 경상도 버전은 ‘내 아를 낳아도’ 당시 신선한 소재로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는데요. 몇 개 지역의 말투로도 웃음의 소재가 될 수 있던 한국에 비하면, 이탈리아 도시간의 문화적 상대성은 상상 이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000년을 베네치아 공화국으로 살아왔던 이들에게 오늘의 이탈리아는 어쩌면 다소 낯선 모습일는지도 모릅니다.


 


Scene 4#
이런 이유 때문일까요? 베네치아는 관광객을 향한 불만을 크게 토로하고 있습니다. 관광수입으로 경제적인 혜택을 보고 있는 반면, 일상적인 삶을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현지인들은 ‘꺼져(Go away)’와 같은 적개심을 드러낸 문구와 이미지 전단지를 뿌리고,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합니다. 산마르코 광장의 거리에 비치된 쓰레기통에서는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버리는 관광객을 암시하듯, 쓰레기를 버리는 돼지의 그림과 함께 ‘멈춰, 당신은 환영받지 못한다’는 문구를 담은 전단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유인 즉 외부에서 온 소매치기, 공공기물파손, 술주정꾼 때문입니다.
현지인의 심정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아드리아 해의 여왕’, ‘꿈의 섬’이라 불리는 이곳의 치명적 유혹이 너무 큰걸요. 이 거대한 마력은 9월 첫째 주 일요일이 되면 피크로 치닫는데요. 곤돌라 축제 ‘레가타 스토리카’가 열리면서 눈부신 의상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배를 타고 펼치는 중세 퍼레이드는 장관을 이룹니다.


Scene 5#
커피와 사랑에 빠진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베네치아에 오지 않을 수 없는 치명적 매력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산마르코 광장에 위치해 1720년 문을 연 최초의 카페 ‘플로리안’ 입니다. 2003년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며 야외테라스에 앉아서 마시는 커피는 품질, 그 이상의 가치가 담겨있는 무엇이었습니다. 성지와도 같은 곳이죠. 세기의 연애술사 ‘카사노바’마저 극찬했던 카페 플로리안.
이곳을 그리워한 나머지 탈옥해 무도회 가면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이곳에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세계의 대문호 괴테, 바이런, 찰스 디킨스 등이 단골이었다고 합니다. 예술가의 사랑을 받은 카페 그리고 많은 영감을 부여한 베네치아의 풍경과 골목.


Scene 6#
걷다보니, 어느덧 인적이 드문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이름 모를 평온함에 반시간 정도를 길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습니다. 어디선가 배가 들어올 때 마다 출렁거리는 물소리며 바람이 부대낄 때 마다 나는 자연의 소리는 제 마음을 정화시키고, 맛있다는 감탄사를 뇌에 전달됩니다. ‘아 이 소리 참 맛있다….’ 무언가를 비워내면서 발걸음도 한결 가볍습니다. 콧노래가 절로 납니다. 흥얼거리며 골목길을 빠져 나올 때 즈음 우연히 마주한 한 장소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바카로 다이 모로시(Bacaro dai morosi)’
몇 평 남짓한 작은 공간, 모던해 보이는 이 장소의 내부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전통적인 양식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바닷물에 잠긴 나무, 벽돌, 녹슨 기둥 같은 것이 자연스럽게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휠체어를 탄 고객의 출입을 배려한 바닥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자주 찾던 패션 편집숍처럼 아이템 하나하나가 적재적소에 자리 잡은 느낌의 매장입니다. 더할 것이 아니라 뺄 것이 없는 장소.
우연히 발견한 매장에서 저는 베네치아의 명물, 스프릿츠와 이 집만의 삐아또(Piatto)를 주문했습니다. 대구를 사용해서 만든 3가지 다른 종류의 맛이 풍미가 있고 깔끔합니다. 이 숍은 리뉴얼한 지 3주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우 오래된 공간처럼 현지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습니다.


Scene 7#
이탈리아어, 베네치아 방언, 영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고객을 응대하는 마테오는 이곳의 주인입니다. 베네치아의 역사나 스토리에 관해서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봐 달라는 친절한 문구부터 시작해서, 칵테일, 위스키, 와인, 생맥주, 커피 등 심플하지만 흔하지 않은 레이블과 종류로 구성했습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협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편안합니다. 바카로에는 먹을거리, 볼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숨어있었습니다. 마테오의 애인이 모든 디자인을 직접 했다고 합니다. 예산에 한계가 있어서 더욱 잘하고 싶었지만, 여기까지가 최선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겸손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에게 한 마디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축하해, 너는 프로야. 적은 예산으로 멋진 공간을 만들어 냈으니까.”


Epilogue#
작지만 스피릿에는 담겨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고뇌한 흔적들,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을 계승발전 시키려는 신념과 나가려는 열정.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데서 직업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머무는 공간. 결국 모든 공간, 제품, 스토리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요. 그들은 베네치아를 닮았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이런 명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저렇게 작은 촛불이 어쩌면 이렇게 멀리까지 비쳐 올까! 험악한 세상에선 착한 행동도 꼭 저렇게 빛날 거야.”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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