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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3 (토)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Lungarno’ 피렌체, 예술의 향연 그리고 장인의 젤라또




Prologue#  반가운 손님이 지구 반대편에서 찾아왔습니다. 미식을 즐기고 그림과 클래식을 좋아하는 커플인지라 즐거운 마음으로 사소한 것부터 챙기며 이들의 여행을 안내하게 됐습니다. 위대한 사상가, 예술가의 고향인 피렌체의 에너지를 몸소 느끼고, BisteccaFiorentina(비스떼까삐오렌띠나)의 정수를 맛보고자 고속도로 위를 가볍게 달리고 있습니다.
T-본 스테이크는 T자 모양의 뼈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Toscana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우연히 시청한 이탈리아의 서바이벌 요리 프로그램 ‘I Re dellagriglia(그릴의 왕)’에서 좋은 고기 부위의 선정, 손질, 조리방법 등이 자세하게 소개됐는데, ‘BisteccaFiorentina(비스떼까피오렌띠나)’편에서 T-본 스테이크에 대한 참가자들의 열정과 최고 셰프들의 자부심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스모키한 숯향, 구운 것과 날 것의 경계 안에서 갇힌 육즙 그리고 고기 자체가 단단하게 품고 있는 풍미는 그야말로 명불허전 입니다. 침을 꼴깍 삼키며 공기를 마십니다.


Scene 1#  햇살이 따가운데, 바람은 시원합니다. 눈은 앞 차와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동공을 움직이면서도, 머릿속에서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는 ‘World of Coffee’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더블린에 있었습니다. 가을 외투를 걸치고 다녀야 했던 날씨에서 생활하다 보니 홈그라운드의 여름이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이 행사를 위해 세계 각지의 커피 전문가와 업체들이 참여했습니다.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WBC 세계 바리스타 대회도 이 전시회 기간에 열립니다. 전 세계에서 각 나라를 대표하는 1명의 대표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뽐내기 위해 이곳에 모이지요. 저도 운이 좋게 2005년 한국 대회에 출전해 세계대회 대표로 선발된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강산도 바뀐다는 십 년을 넘어섰으니…. 삶이 쏜살같기만 합니다.
더블린으로 향할 때 아일랜드는 영국과 밀접한 나라이며, 북아일랜드 역시 영국에 귀속된 터라 영국과 비슷한 나라일 것 같다는 나름의 편견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아일랜드의 첫인상은 저의 무지와 편견을 깨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실로 짧은 여행 탓에 이들의 문화와 성향을 이해한다고 말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는 영국과 전혀 다른 느낌의 나라였습니다. 마치 한국과 중국 또는 일본처럼 말이죠. 호텔, 식당, 택시 어디를 가든지 농담을 건네는 사람들 덕택에 이방인의 경계심은 어느덧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유쾌하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친절하다는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무언가가 이들에게 있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스페인의 유명한 커피 트레이너인 킴과 함께 택시를 탄 후, 나눈 대화가 잊히지 않습니다. 브래드 피트를 닮은 킴은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벨기에 출신이었습니다. 유창한 스페인어 실력 덕분에 저도 처음에는 스페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킴, 유쾌한 택시 운전사와 입담이 오고가는 동안 호기심 많은 킴은 이런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아이리시 커피를 매일 마시나요?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나요? 어디에 가면 맛있는 아이리시 커피를 마실 수 있지요?” 잠시 후 택시기사는 털털하게 웃으며, “아이리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라고 답변합니다. 이에 박장대소를 하며 킴은 이야기 하죠. “샹그리아와 똑같군요, 기사님. 스페인은 샹그리아로 정말 유명한데, 사실 마시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렇게 웃음이 이어지는 동안 “한국인들은 전부 태권도 유단자라며?”하고 말하던 외국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선입견의 위력은 무시무시합니다. 참고로 아이리시 커피는 세계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에 서부 아일랜드의 샤논 국제공항의 BAR에서 시작됐습니다. 추위에 대기하는 승객을 위해 제공하면서 유명해졌다고 하지요. 추위에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기 위한 바텐더의 창의성과 고심의 흔적이 돋보이는 메뉴임이 분명합니다. 머릿속에 맴돌았던 아일랜드의 쌀쌀한 바람은 토스카나의 작열하는 태양 뒤로 그렇게 숨어 버렸습니다.


Scene 2#  햇살은 운전석 창문에 걸친 왼쪽 팔을 살랑살랑 간지럽히더니 어느새 한쪽 팔만 누렇게 태워버렸습니다. 피렌체는 여전합니다. 주차는 어렵고 길은 울퉁불퉁하고 좁습니다. 이 아날로그한 삶은 조금 불편하지만 시선을 바꾸면 제법 아름답고 낭만적입니다. 잿빛 아스팔트와 우피치 미술관, 두오모 성당은 상상만 해도 조화롭지 않으니까요.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된 무수한 명작들을 관람하다 보면, 입이 쩍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최근 반세기 동안 발전된 최첨단 기술들은 지난 20세기 동안 정보와 기술이 성장한 것을 넘어서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미술관 작품들은 현재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시공을 초월한 예술의 힘을 뿜어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같은 거장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움 이상의 경외감이 느껴집니다. 그 가운데서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뭐랄까 비현실적인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는 묘한 색채감과 무엇이 있었습니다. 미술 작품에는 문외한인지라 표현하기에 어렵지만 뇌리 속에 강한 무엇이 남았습니다.

 


Scene 3#  이전에도 피렌체에 방문한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두오모 성당 방면으로 시내를 관통하는 길과는 정 반대편의 인적이 드문 길을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오늘 품질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숨어있는 젤라떼리아를 한 곳 소개하고자 합니다. 강줄기가 뻗어져 내려오는 양 길가의 도로 한 곳에 위치한 인적이 드문 곳, ‘입소문은 인터넷보다 강하다.’는 일본 영화 ‘우동’의 한 대사가 생각이 납니다.
좁은 가게 안으로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듭니다. ‘GelateriaLungarno’. 이 매장에 들어서면 WBC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이자 시그니처 음료 부문 세계챔피언 출신 Victor의 영상이 쉴 새 없이 나옵니다. 프랑스인이 저술한 책부터 영상, 매장 곳곳에서 보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잠시 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매장의 중앙에 위치한 쇼케이스에 전시된 ‘젤라또피스타치오’의 색감이 범상치가 않습니다. ‘비너스의 탄생’의 색채만큼이나 강렬합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이내 주문과 함께 “색상이 매우 독특하네요?”라며 묻습니다. 이유인즉슨 “천연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피스타치오를 ‘삐스따끼오’라고 부르는데, 아이스크림의 애호가들은 종종 말합니다. “그 집의 아이스크림 맛을 제대로 알고 싶으면, 피스타치오를 먹어보라.”고
깊은 맛의 배경에는 1962년부터 시작된 가족의 열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Casalini 가족은 50여 년 전 부터 젤라떼리아BAR를 열고 수제 젤라또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노력과 열정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대회에서 두 차례 수상을 하면서 해외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젤라또와 베이커리 관련 세계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전시회인 리미니의 ‘SIGEP’에서 수상하고 로마의 코라 박람회에서도 영예의 1위를 수상했습니다.
2012년부터 유기농 농장에서 신선한 저온 살균 우유와 크림을 독점적으로 공수해 사용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웰빙’이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맛’, 그리고 그 이전에 ‘건강’에 초점을 맞춘 아이스크림입니다. 한동안 불량식품처럼 여겨지던 빙과류의 그것과는 출발점부터 확연하게 다릅니다. 이탈리아에는 많은 젤라또 장인들이 있는데 이 부분은 이탈리아의 식문화 가운데 매우 부러운 요소입니다.



Scene 4#  세계 창작음료 챔피언 출신 빅토르와 인연을 맺게 된 이유 역시 새로운 음료를 선보이기 원하고 커피 또한 최고의 품질을 제공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LUNGARNO에서는 ‘오랑우탄’ 커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랑우탄 커피는 커피 회사의 이름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이름입니다. 커피의 농가에 지원해 보다 높은 품질의 커피를 수확할 수 있게 도와줄 뿐만 아니라, 거대기업의 팜오일 생산으로 파괴된 밀림과 그로 인해 죽어가는 멸종위기의 오랑우탄을 보호하는 시설에 도움을 주고 있는 사회적 운동입니다. 특정 기업이 착한 기업 이미지를 마케팅으로 활용하기 위해 벌이는 캠페인과는 다릅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생두는 누구나 다 구매할 수 있습니다. 함께 지구를 살리고, 농가를 살리기 위한 공공의 프로젝트입니다. 최근에는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젤라떼리아에서 최상의 커피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1유로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 ‘오랑우탄 커피’가 무엇인지 신경쓰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 말이죠. 원가 절감의 측면에서도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이들은 이 커피를 사용하고 소개하길 원합니다. 세계의 많은 곳을 다니며 훌륭한 매장들에게서 느낀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자부심’입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 최상의 상품을 만들어 정직하게 판매하는 것 그것은 단지 오너와 가족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와 스텝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Epilogue#  오늘 자 인터넷에서 중국산 김치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국산 재료를 사용한 김치는 점점 그 자리를 잃어갈 것만 같습니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지만 마음 한켠이 무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먹방이 대세를 이루는 2016년에 살고 있지만 성실하게 제대로 해보려는 이들의 폐업율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이율배반’ 역시 존재합니다.
중세의 흔적을 간직한 예술의 도시 피렌체에 편리성이란 이름으로 시멘트가 뒤덮기 시작할 때 이곳을 찾는 세계인들의 피렌체 사랑은 조금씩 식어 갈 것입니다. 고층빌딩을 세우자는 많은 이들과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조상의 유산을 지혜롭게 지켜낸 이들이 한편 부럽기도 합니다. 오래 걸리는 길임을 알면서도 묵묵히 오늘도 걸어가는 모든 분들께 응원을 보냅니다. 그것이 어떤 유형의 요소이든 비로소 그것을 향유하는 이들에게는 감동이 돼 전해질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과 씨름하느라 수고한 여러분께 마음의 에스프레소 한 잔 보냅니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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