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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3 (토)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커피를 향한 열정 - 산 지미냐노의 Bar Piazetta


Prologue# “그곳은 꼭 가보셔야 해요, 다른 곳은 몰라도 그 곳은 정말이지 꼭이요!.” 2013년 밀라노의 한 민박집에서 여행 도중 만난 카톨릭 신부님께서 제게 남겼던 메시지입니다. 이탈리아의 성당을 순례 여행하고 계신 그 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여행이었지만 저 역시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을 순례하듯 커피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에서 씨가 뿌려져 싹이 나고 꽃을 피운 하나의 문화입니다. ‘산 지미냐노라...’ 기약을 할 순 없지만 반드시 가보리란 스스로 짧은 다짐을 했습니다. 비제바노, 토리노, 피아첸차, 파르마, 모데나, 볼로냐, 피렌체... 맛을 향한 본능적 질주가 시작됩니다. 식약처가 권장하는 일일 카페인 권장량을 비웃기라도 하듯 궁금증을 못 이기고 이곳저곳 눈에 보이는 카페들을 들락날락 거립니다. 단지 몇 개월의 여행으로 이탈리아의 음료 문화를 이해한다는 의도 자체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매우 불순합니다. 결국 이 사실을 깨닫고 언어를 배우며 문화를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어느새 이탈리아에 살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회가 되면 여러 도시를 방문하지만 문화를 이해하고 느끼면 느낄수록 다양함과 깊은 역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3년 전 방문했던 커피숍이 나중에 알게된 친구의 Bar였을 줄이야...삶은 참 다이나믹해.’ 덜컹거리는 산 지미냐노행 열차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깁니다.



Scene 1# 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스쿠터 위의 제 모습이 보입니다. 조금이라도 뒤쳐질라치면 등 뒤에서부터 전해져오는 상향등과 경적소리 덕분에 긴장감과 땀에 범벅이 되지만 두려움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덤덤해 집니다. ‘시속 140인데 빵빵 거리기는...이 망할 놈의 이탈리아 운전 스타일...’ 불만감을 표출하면서도 새로운 도시에서 마주하는 낯선 이들과의 조우는 여행을 박진감 넘치게 만들어 줍니다. “조니, 정말 그것타고 밀라노에서 온 거야? 오 마이 갓! 이탈리아 전국투어? 어메이징.” 어설픈 체게바라의 미장센을 연출한 셈이죠. 그것도 매우 작위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의 지문을 남기며 향기롭게 기억됩니다.
오솔길을 달리고 있습니다. 포도향이 코끝을 간지럽힙니다. 실로 매우 과장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다만 포도밭으로 겹겹히 둘러싸인 오솔길에서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기분 좋은 흙냄새, 풀냄새, 꽃냄새, 과실향기 그 무엇이겠지요. 산 지미냐노로 향하는 길에는 두 개의 갈림길이 존재하는데, 운 좋게 네비게이션의 친절한 실수 덕분에 지역 주민에게만 익숙한 샛길을 지나갑니다. ‘좁은 길로 가라.’는 명언은 지금 이 순간 저를 위한 문장임이 분명합니다. 올리브나무와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언덕배기 잠시 머물러 주위를 돌아봅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공간임을 인지하고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과감한 행동을 저지릅니다. 소리도 질러보고 방방 뛰어 보기도 하고 춤도 춰봅니다. 그리고 잠시 멈췄습니다. 찰나의 고요함과 마주합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익어가는 포도들을 응시하며 자연의 열기를 온몸으로 태우고 있었습니다. 눈부시게 따사로운 맛. 꿈을 꾸는 기분이었습니다. ‘장자지몽’의 이야기처럼 내가 포도인지 포도가 나의 꿈을 꾸는지 모를 지경의 무아지경 같은 그런 몽상적인 순간 말이죠. 저멀리 산 지미냐노의 성곽이 ‘어서 와’하며 인사합니다. 포도서리를 하고싶은 강한 유혹에 빠져들었지만, 이방인의 추태는 여기까지였습니다.

Scene 2# 추억을 곱씹다 보니 어느덧 역에 도착했습니다. 마르코가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듭니다. 산 지미냐노의 입구에 도착하면 중세의 갑옷을 입은 기사가 금방이라도 말발굽소리를 내며 성문 밖으로 나올 것만 같습니다. 산 지미냐노는 ‘중세의 맨하탄’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토스카나 언덕에 스카이라인을 구성했기 때문입니다. 탑은 권력을 상징합니다. 귀족들은 경쟁적으로 탑을 세웠고 72개의 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10여 개의 탑만이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마을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현 시대에는 보기 드문 ‘중세의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이 작은 마을은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기에는 프란치제나 가도에 위치해 있어 로마와 바티칸을 연결하는 카톨릭의 성지순례지의 중간 지점이었습니다. 마르코의 안내를 받으며 시내를 구경하고 탑 꼭대기에도 올라가 봤습니다. 이 지역의 유명한 Bar의 주인장 친구 덕분에 어디를 가든 친구의 친구로부터 전해오는 융숭한 환대가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줍니다. 이탈리아의 소도시는 특히나 지역 커뮤니티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휴식처가 돼주는 Bar, 그것도 사랑받는 Bar는 지역의 소문과 인맥의 중심에 있습니다.

Scene 3# Bar Piazetta는 1927년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1979년 외조부가 이곳을 인수해 어머니, 삼촌들과 함께 영업을 했습니다. 현재 이곳의 주인인 마르코는 대학에서 호텔 전문 서비스를 전공하고 더블린과 사르데나의 호텔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서비스인입니다.
2004년 카페를 인수하고 처음에는 5명의 팀원들과 매장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수십 명의 식솔들과 함께 하는 독립매장 치고는 규모 있는 Bar입니다. 2008년부터는 천연재료를 사용하는 젤라또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좀 더 품질 높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지역의 인근에는 세계 젤라또 2회 챔피언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운영 중인 젤라떼리아가 있는데 마르코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선수를 스폰해 준 적이 있는 것이지, 이 매장이 챔피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제품이 아니란 것입니다.
마르코는 품질에 대한 집착이 병적일 정도로 강합니다. 친동생은 실력있는 파티시에인데, 이것 역시 매장에서 신선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함입니다. 지난해에는 직원과 함께 온두라스 커피 농장에 다녀왔습니다. 올해에는 여동생과 다른 팀원이 콜롬비아의 농장에 다녀올 계획입니다. 현재 이탈리아에도 10대 스페셜티 커피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Lepiantagione del Caffe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가격이 높아 이탈리아 내의 숍에서 자주 만나기 어려운 재료인데 주인장의 커피를 향한 열정이 느껴집니다. 어디가나 1유로에 에스프레소 한 잔이 판매되고 있는 이탈리아의 숍들은 언제부터인가 좋은 제품을 사용하는데 부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작 1000명이 거주하고 있는 이 마을의 삶을 지탱해 주는 원동력은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입니다. 이들에게 보다 품질 좋은 커피와 젤라또 그리고 음료문화를 선보이고 싶어 올 가을 매장의 대대적인 리뉴얼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전문적이고 훌륭한 품질이지만 커피에 대한 보다 콘셉트 있고 다양한 커피들을 소개하고 싶은 열정 가득한 마르코는 에스프레소 문화의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며 수익의 상당 부분을 재투자하여 꿈을 품고 있습니다.



Scene 4# 최근 스타벅스의 이탈리아 진출은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성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부터 시작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스타벅스가 진출한다고 해서 안 될 이유도, 그렇다고 이탈리아인의 사랑을 받을 이유도 현재는 부족해 보입니다. 워낙 많은 외국인, 관광객, 젊은층이 있기에 스타벅스의 실패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명 브랜드에 열광하여 맹목적으로 숍을 찾는 다른 나라의 문화와 이탈리아는 상당한 간극이 있습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전자동 머신을 사용하는 방식의 같은 콘셉트가 들어온다면, 이탈리아인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물 탄 커피’(미국인들이 마시는 것, 아메리카노를 지칭)를 외면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스프레소에 더욱 신경을 써야하고 바리스타가 직접 만들어내는 에스프레소를 제공해야 할 수 밖에 없겠지요. 세계 1등 브랜드가 이런 부분을 생각치도 못하고 있을까요? 당연히 고려하고 있을 것입니다. 유럽의 Scae의 자문을 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과야 어쨌든 스타벅스는 오픈의 성공 여부에 상관없이 이미 마케팅적으로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충분한 노이즈를 형성하고 있으니까요. 이곳의 분위기는 그저 무덤덤합니다. 물론 스타벅스 내부적으로는 엄청난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에서의 성공이니까요. 관광객만 상대해도 절반의 승리인 셈이지요. Epilogue# 이곳에는 품질 그 이상의 바리스타와 사람들의 유대, 그리고 에스프레소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다만 제대로 된 성공이기를 바랍니다. 스타벅스가 성공한다고 이탈리아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마르코와 같이 부모님으로 부터 물려받은 전통과 정신을 계승하며 열정을 쏟는 이탈리아의 Bar들이 브랜드가 보여줄 수 없는 그들만의 무엇을 보여주기를 더욱 기대합니다. 적어도 이탈리아인에게 에스프레소는 음료가 아니라 소울 드링크이자 문화입니다.

<2016년 4월 게재>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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