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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5 (월)

칼럼

[전용의 Coffee Break] 모데나 Modena의 스타일 아이콘. 카페 ‘MENOMOKA’


Prologue# 자욱한 안개가 도로 위를 뒤덮어 버렸습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도 몇 미터 앞을 볼 수 없는 현실 속 상황입니다. 시속 130㎞까지 주행할 수 있는 고속도로지만, 현실은 비상등을 켠 채 느릿느릿 굴러가는 중입니다. ‘새벽안개 헤치며 달려가는 첫차에 몸을 싣고, 꿈도 싣고’란 노래 가사를 중얼거리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애쓰지만, 얼마 남지 않은 주유 상태가 불안감을 높입니다. 이런 여행은 기억에 남을 만하지만 앵콜을 외칠 만큼 아름다운 경험은 아닙니다.
이탈리아의 겨울은 안개 쓰나미(Troppa Nebbia)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실제로 모데나(Modena)를 방문하기 위한 이번 여정에는 동행이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열리는 탱고 라이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하기 위한 모임이었는데, 이들은 안개주의보 앞에서 맥없이 백기를 들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혼밥, 혼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12월엔 눈이 내리기를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비가 더 많이 내립니다. 한국에 설날과 추석이란 대 명절이 있다면,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매우 중요한 축제이자 가족 모임의 날입니다. 각 지역으로 흩어졌던 가족들도, 이때가 되면 회귀본능을 가진 연어처럼 고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작년에는 제가 소속된 회사의 오너 가족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성탄절에 홀로 지내는 저를 매우 측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정작 제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이죠. 한국에서도 성탄절을 교회에 가는 날, 공휴일 정도로만 생각했던 저인데, 이 나라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성탄절 트리 이상의 의미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유년시절의 성탄절을 떠올려봅니다. 선물을 받고 싶어 빨래줄 위에 양말을 걸어놓고 밤잠을 설치는 꼬마아이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자정이 될 즈음 집 밖에서는 성가가 들려옵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들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란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울보의 특권마저 잠시 내려놓은 아이… 순수한 눈망울의 시절이 제게도 있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습니다.



Scene 1# 12월의 모데나는 매우 평온합니다. 볼로냐와 위치적으로 매우 가깝고, 비슷한 길을 걸어왔지만 동시에 라이벌 관계를 지속해온 모데나는 또 다른 색깔을 지닌 도시입니다. 북이탈리아 최대의 종루(鍾樓)가 있는 로마네스크 풍의 대성당(11∼12세기)이 있습니다. 현재 모데나는 농산물의 집산지인 동시에 식료품공업과 기계공업의 중심지입니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 카, 럭셔리 카로 유명한 페라리, 마세라티가 이 지역에서 생산됩니다. 피아트사가 위치한 토리노(Torino)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소위 명차들이 만들어집니다. 모데나 근교 마라넬로에는 페라리 박물관이 있습니다. 역대 명차들을 시대 순으로 전시한 이 박물관은 페라리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입니다.
모데나는 발사믹 식초(Balsamico)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합니다. 그런 탓인지 미쉐린 스타가 있는 레스토랑이 여러 개 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구매할 수 있는 발사믹 식초만 해도 매우 다양하고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몇 유로 안 되는 제품들부터 시작해, 엄청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도 있습니다. 위스키처럼 12년산 25년산 등의 레이블을 붙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올리브와 발사믹 식초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있어 다양한 종류를 맛보는 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 둘의 조합은 ‘치맥’이란 단어처럼 완전한 하모니를 자랑합니다. 기분 좋은 산미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단맛이 든든히 따라오면서 다양한 플레이버가 느껴지는 발사믹 식초는 맨 빵에 찍어먹어도, 샐러드의 드레싱으로 사용해도 너무나 훌륭합니다.




Scene 2# 모데나 두오모 광장 인근에는 멋쟁이들이 즐겨 찾는 매장 메노모카(Menomoka)가 있습니다. 주인 안토니오(Anotonio)는 쾌활하고 도전정신이 강한 친구입니다. 한국 나이로 36세인데, 벌써 14년째 커피 관련 일을 해온 베테랑입니다. 이 매장은 이탈리아 특유의 스탠딩 바를 비롯해, 동굴 형태로 생긴 안쪽에 비치된 테이블 공간, 그리고 겨울에도 이용할 수 있는 야외테라스가 마련돼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채운 전 세계의 유명 셀러브리티들의 캐릭터와 그들이 남긴 어록 페인팅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안토니오 나름의 운영 철학이 담겨 있는데, 메노모카에는 시계가 없다고 합니다. 이곳에 들른 사람들이 잠시나마 멈춰진 시간에 머물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잠시 커피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 동안 벽면에 그려진 셀러브러티의 명언을 읽으며, 삶의 활력소를 되찾길 원한 것이죠. 그리고 많은 이들의 캐릭터가 벽면 곳곳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매일같이 이곳을 들러도 다른 셀러브리티와 마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토니오는 현재의 아내와 함께 2014년 3월에 카페를 열었습니다. 몇 개월 있으면 3주년을 맞는데, 이곳은 모데나의 명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매장에서는 일반 커피숍의 에스프레소와는 달리 네 가지 종류의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v60, 에어로프레소, 사이폰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추출한 커피를 맛볼 수 있습니다.
메노모카에서 판매되는 스페셜 에디션 에스프레소가 있었는데, 이탈리아 로스팅 대회에서 2회나 우승한 경력이 있는 루벤스라는 유명 로스터의 커피를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1유로에 판매되는 일반 커피보다 무려 1.7유로 이상 비싸게 판매하고 있는 품질 높은 커피였습니다. 재스민 향기와 블루베리의 향이 코끝으로 전달되고, 입에 머금고 있으면 단맛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기분 좋은 커피였습니다.
이곳에서 커피만 판매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아침 식사 겸 티타임을 갖기 위해 카페를 찾는 이들을 위해 장인으로 불리는 빠스띠쩨리아(Pasticceria)(빵과 디저트를 판매하는 곳)에서 생지를 공급받아 매일 아침 빵을 굽습니다.



Scene 3# 안토니오는 서비스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주스에서 무언가 꺼내려는 노신사를 발견하고는 저와의 대화를 잠시 중단하고, 고객에게 다가가 불편한 점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새로운 음료를 만들어 제공하는 모습, 그리고 대화하는 방식에서 고객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운영철학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안토니오도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처음에 바리스타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누구도 전문성 있는 교육을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미소와 함께 때로는 진지한 얼굴로 그때를 회상하며 이야기합니다. “큰 스팀 피처에 우유를 담고, 쉴 새 없이 데우는 작업을 했는데 우유거품을 마치 비누거품처럼 만들곤 했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몰랐다.”고 말입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커피에 대해 더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걸 마치 연인의 사랑에 비유하며 말합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에 대해 점점 알아가길 원하지 않느냐, 나도 커피와 사랑에 빠지면서 커피의 재배부터 로스팅, 추출에 대한 다양한 방식을 심층적으로 알고 싶어졌다.”고 말하며 미소 짓습니다.
안토니오는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이탈리아의 바를 변화시키길 원합니다. 현재 창고로 사용되고 있는 공간을 개조해, 한국의 코피스족(Coffice)(카페를 사무실처럼 이용하는 사람들)같은 이들에게 여유로운 공간, 그리고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섹션을 나눠 꿈을 펼치고 싶어 합니다. 최근 런던의 스페셜티 커피숍을 보면서 그것이 지닌 장점과 이탈리안 바의 장점을 융합한 새로운 가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Scene 4# 저녁이 되면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가벼운 샴페인과 칵테일을 마시며 피로를 풀려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메노모카 역시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주인장 안토니오는 메노모카의 뜻을 제게 이야기하며 눈을 반짝입니다. Eno는 Gastronomia로 미식을, Mo는 Modena로 도시 이름, Ka는 Kaffe로 커피를 뜻합니다. 미식인을 위한 커피와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지요. 그리고 농담 섞인 말로 제게 팁을 하나 알려줍니다. 모데나는 세계에서 발사믹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이지만, 이곳에서 사면 바가지를 듬뿍 당할 것이랍니다. 현지에서 사면 좋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믿는 관광객을 상대로 오히려 비싸게 판매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상인들이 있는 반면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장인들이 있기에 모데나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안토니오 개인의 열정일지라도 이것은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향기 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깁니다. 마치 에스프레소처럼 말이죠.


Epilogue#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에 묘사된 안개 자욱한 뒷골목처럼, 12월의 모데나를 향한 여정은 흐릿했습니다. 하지만 뜨거운 열정이 있는 사람을 만나고, 인상적인 커피를 마시고 나니 기억은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2017년에는 삶의 안개를 조금씩 걷어내고, 희망차게 긍정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길 기대해봅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대한민국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지면을 통해 인사드립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전용(Jonny Jeon)
Dalla Corte S.R.L
한국에서 오랫동안 바리스타였던 전용 Pro는 각종 대회 수상,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론칭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다가 이태리로 건너가 세계 유명 커피 머신 회사인 Dalla Corte S.R.L에서 Pro로 일하고 있으며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로 육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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